도시·인천

디딤돌 2020. 6. 17. 16:29

 

이제 식상해진 일기예보의 하나. “관측 이래 최대어쩌고, 곱게 차려입은 캐스터는 나름 시청자에게 경각심을 심어줄 요량이었는지 모르지만, 한두 번 들었어야지. 들으며 짐작하는 다음 이야기는 대개 더워졌다라는 거다. 장마가 시작되기도 전, 6월 초에 섭씨 37도를 넘나들다니.

 

그날 인천은 30도 아래였어도 무척 더웠다. 챙 넓은 모자를 쓰고 만보걷기에 나섰더니 목이 바싹 타들어갔다. 그늘 있는 연수구의 한 근린공원에 들어서니 급수대가 보였는데, 그 아래 축축한 곳에서 까치 한 마리가 물을 찾는다. 까치도 목이 탔겠지. 다가가니 근처 나뭇가지로 옮기더니 물끄러미 바라본다. 수도꼭지를 돌려 손바닥에 담은 물을 오목한 바닥에 떨어뜨렸다. 화장실을 들렸다 나오니 기다렸는지, 까치는 허겁지겁 물을 마셨다.

 

지난겨울, 연수구의 제설트럭들은 한 차례도 움직이지 못했다. 눈이 거의 내리지 않았다. 기상관측 이래 최초였을지 모르는데, 조경 전문가는 공원에 해충이 늘어날 걸 걱정했다. 여름이 깊어지면 나무 아래의 산책로를 걷는 주민들이 공원에 모이는데, 어떤 나방 유충들도 꾸물꾸물 모습을 드러낸다. 몇 해 전, 유충들이 유난히 바글거렸고 까치들이 신바람 났다. 그 무렵 까치들은 가장 충실하게 영양분을 섭취할지 모른다. 하지만 방제약이 이내 공원을 뒤덮었고, 까치와 직박구리, 그리고 참새들은 황급히 떠났다.

 

사진: 물까치. 까치보다 날씬한 편이고 하늘색 날개를 가졌다. 무리지어 숲과 가장자리 농가를 날며 남은 과일을 찾는다. 드물지 않으므로 산록과 근린공원 사이에 녹색 징검다리가 조성된다면 시민들도 도시에서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며칠 뒤 섬뜩했던 살충제 냄새가 사라진 공원을 찾았다. 과연 꾸물거리던 유충들은 말끔히 사라졌는데, 머리 깃털이 성큼 빠진 까치가 뒤척였다. 중독된 유충을 실컷 먹었나? 어린이와 노인들도 모여드는 근린공원에 꼭 살충제를 분무해야 했을까? 따져볼까? 민원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가 돌아오겠지. 어떤 해 늘어난 유충은 까치와 직박구리 같은 천적을 불러 이듬해 조절되는 게 보통인데, 안타깝다. 살충제로 뒤덮인 공원에 아장아장 걷었던 아기들, 바닥분수를 뛰어다녔을 어린이들은 깃털 잃은 까치처럼 당장 문제를 드러내지 않았겠지만, 내내 괜찮을까?

 

송도신도시와 가까운 동춘1동의 아파트로 이사한 이후 달빛공원을 걷는다. 어떻게 스며드는지 모르지만, 아파트 둔덕 아래의 산책로 가장자리에 맑은 물이 고이고 풀이 우거졌는데, 5월로 접어든 계절에 참개구리가 울었다. 물이 고인 논이라면 4월 중순에 울고 알 낳을 종류인데, 어지간히 늦었다. 절박했을지 모른다. 며칠 뒤, 풀이 우거진 좁은 습지에 참개구리가 떼로 운다. 밤이라면 대단할 듯하다. 곧 부화할 올챙이들은 더위를 잘 견딜까? 내년 이맘때 더욱 요란한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달빛공원 주변 녹지의 나무마다 잎을 활짝 펼치자 도시에서 듣지 못하던 새소리가 들린다. 개개비들도 목청을 놓기 시작했다. 송도신도시 가장자리의 물길이 오염되지 않도록 심은 갈대숲 사이에 둥지를 칠 모양이다. 왕복 10km의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를 이용하는 시민들은 그 사실을 알까? 계절에 맞게 봉우리를 펼친 꽃에 전화기 들이대며 촬영하는 사람들은 새소리와 개구리 소리에 무심한 듯 보여 마음이 놓였는데, 며칠 뒤, 산책로의 일부 풀숲이 사라졌다. 공원 정비사업이라는데, 풀숲 전부를 없애려는 걸까? 사람 발소리를 피하며 용케 자리잡은 참개구리는 버틸 수 있을까?

 

여러 해 전, 도시 녹지를 연구하는 사람들과 독일의 한 신도시를 방문하고 놀란 적 있다. 놀랐다기보다 부러웠다. 거주 공간에 승용차가 보이지 않는 건 주차장을 지하로 넣은 우리도 요즘 비슷한데, 독일은 정책적으로 30% 넘게 확보하는 신도시의 녹지공간에 풀숲을 의무로 조성한다는 게 아닌가? 생물다양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라는데, 그 아까운 땅을? 벌레가 있어야 새들이 모이고, 새들이 손 가까이 다가올 때 사람은 비로소 경쟁보다 배려를 배운다는 사실을 어릴 적부터 현장에서 충실하게 이해하는 게 분명해 보였다.

 

근린공원에 뿌리는 살충제는 벌레만 죽이지 않는다. 까치의 깃털만 빠지는 게 아니다. 사람은 당장 괜찮다지만, 그 피해는 나중에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까치와 참새는 물론, 새를 끌어들이는 나방과 그 유충도 우리의 오랜 이웃이다. 자연의 이웃이 제거된 공간에서 사람인들 건강할 수 있을까? 장마철이 다가오니 곧 맹꽁이가 울 텐데, 시끄럽다고 석유를 들이부으면 입시공부가 더 잘 될까? 덕분에 들어간 대학을 졸업해 월급 많은 회사에 취업하면 행복할까? 외롭지 않을까?

 

여름날 달빛공원을 걸으며 그늘에 매점이 있기를 바랬다. 시원한 물을 마시고 그늘에서 쉴 수 있으니까. 한데 근린공원의 새들도 비슷하겠지. 목을 축이고 목욕이 가능한 작은 물웅덩이를 인적 드문 공간에 슬며시 배려할 수 없을까? 생태계가 건강할 때 생태계의 산물인 사람도 행복하고 건강할 게 세상이 이치이므로. 도시의 생태계가 다시 건강해진다면 코로나19가 지금처럼 퍼지지 못할 텐데. (인천in. 2020.6.17.)

 

 
 
 

도시·인천

디딤돌 2008. 8. 23. 14:33

 

8월 무더위도 중순에 접어드니 견딜만하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해 잠이 편해졌다. 늦은 시간까지 억지로 피곤해져야 겨우 잠을 청할 수 있을 정도로 심했던 열대야현상이 슬그머니 사라진 거다. 그래도 8월 더위는 아직 맹렬하다. 문을 열고 선풍기를 돌려야 잠이 든다.

 

밤잠 설치게 하는 건 열대야현상만이 아니다. 베란다를 넘어 들어오는 자동차 소음도 잠을 방해한다. 하지만 그 소음은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주거지역에서 제한속도를 시속 80킬로미터로 정한 국가가 우리 이외에 또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런 곳에서 둥지 틀고 살자면 다른 도리가 없다. 공기를 찢는 자동차 소음에 일일이 신경 쓰자면 정신쇠약증이 생길 터. 다만 소음이 아이의 성장에 좋을 리 없을 텐데, 부모로서 미안할 따름이다.

 

여름밤의 소음은 자동차에서 그치지 않는다. 요즘의 매미도 한 몫 한다. 매미는 밤에 울지 않는데, 자동차 소음을 이기려는 듯, 처절하기 이를 데 없다. 올림픽 하이라이트 때문일까. 거실에서 새나오는 빛이 매미를 자극할지 모른다. 이래저래 잠 못 드는 여름밤인데, 매미는 알람시계를 대신한다. 짧은 여름밤이 밝아오기 무섭게 울어 젖히는 매미는 잠 모자란 몸을 새벽부터 채근한다.

 

매미는 왜 저토록 극성일까. 재작년인가. 여름이 지나자 10차선 도로와 아파트단지 사이의 둔덕에서 벌목이 한창이었다. 인부는 매미 소음에 대한 민원 때문이라고 했다. 아파트단지 둔덕의 나무는 자동차 소음을 차단할 텐데, 자동차보다 매미 소리가 더 싫은 것일까. 멀쩡한 나무들을 베어낸 뒤에도 매미는 여전히 극성인데, 시골은 어떨까. 시골의 매미는 그다지 시끄럽지 않다. 적어도 밤에는 울지 않는다. 도시처럼 사생결단하듯 집단으로 목을 놓지 않는다. 자동차 소음을 이겨내려는 걸까. 전문가의 주장을 듣지 못했으니 짐작하기 어렵지만, 무슨 곡절이 있을 듯싶다.

 

대규모 아파트단지는 대개 농촌이었다. 인천의 연수구 아파트단지가 그렇다. 적어도 3년 이상 땅속에서 나무뿌리를 먹고 성장하는 매미에게 숲은 생존을 위해 아주 중요하다. 짧은 여름날 경쟁적으로 짝을 찾아야 하는 매미에게 울음소리는 절대 양보할 수 없을 것이다. 맨땅이 넓어 그만큼 퍼져 있을 때, 경쟁이 치열하지 않을 테니 목청을 그리 세우지 않아도 무방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땅이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칠갑된 지금은 어떤가. 도시의 매미는 다음세대를 잇기 위해 사생결단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한 평의 땅과 한 그루의 나무라도 이게 어디냐고 찾아오는 도시의 매미는 불쌍하다. 목청 터져라 울어 젖히는 매미의 울음소리는 소음이라기보다 생존을 위한 몸짓일 터다. 도시에서 맨땅을 사라지게 한 우리는 처절하게 우는 매미에게 미안해해야 한다. 나무를 잘라 번식을 방해하는 건 옳지 않다. 아무리 시끄러워도 매미의 울음소리가 아스팔트에서 파열하는 자동차 바퀴의 소음보다 혐오스럽지 않을 게 아닌가. 두 소음이 겹치니 한밤중에 신경 쓰이는 것 이해하겠지만, 도시에서 매미 소리라도 들리니 다행이 아닐까.

 

도시에 맨땅을 늘여야 한다. 비 내린 뒤 진창이 되는 맨땅이 아니라 나무와 풀이 자연스런 녹지를 도시 곳곳에 조성할 필요가 있다. 도시의 완성은 높다란 건물이 아니라 자연이 어우러진 녹색공간의 확충으로 이루어진다. 유럽 대부분의 도시는 고층빌딩을 자랑하지 않는다. 도심 상가라 할지라도 빌딩으로 올라간 만큼 녹지를 조성해 도시를 푸르게 가꾼다. 주거공간을 초고층 시멘트구조물로 채우는 시대착오적 과오는 우리처럼 반복하지 않는다.

 

도시에 녹지를 확충하고, 자동차도로를 줄여 자전거에 양보하면 소음이 줄어들 뿐 아니라 여름에도 시원해진다. 자전거에 양보한 도로가 좁아진 만큼 제한속도를 줄이면 시민의 안전은 물론 환경도 깨끗해진다. 그런 도시의 여름밤은 쾌적할 것이다. 매미는 밤에 울 이유가 없을 것이다. 잠 못 든 이번 여름밤, 매미 때문에 별 생각을 다해본다. (인천e뉴스,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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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소리 때문에 나무를 베어버린다는 말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