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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돌 2013. 3. 15. 10:50

이상기후가 더는 이상해지지 않은 요즘, “기상관측 이래 최대라는 수식어조차 오래 기억하기 귀찮다. 지난 주말 오후 서울 한 복판에서 열린 행사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저녁 모임에 갔다 밤늦게 집에 가면서 기온에 몸을 떨어야 했다.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섭씨 23.8도를 기록해 기상관측 이해 가장 더운 3월의 날씨였다는데, 다음날 새벽은 서울 지방의 최저기온이 영하 1.5도로 곤두박질친 거다. 1차대전에 진저리친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파괴된 유럽 땅에 라일락이 피는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지만, 지구온난화 때문일까, 요즘은 3월이 더 잔인해 보인다. 봄 기온이 이른 여름처럼 치솟았다 늦겨울처럼 곤두박질한다.


기상대는 이맘때 북극권의 찬 공기가 태평양의 더운 공기가 한반도에서 힘겨루기 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간단히 해석하고 넘어갈 테지만 당하는 사람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예보를 듣고 스웨터라도 챙긴 이라면 다행이지만 늦은 시간 따뜻한 실내공간에서 밖으로 나간 시민들은 사시나무 부럽지 않게 오돌오돌 떨었다.


봄철에 기온이 널뛰는 현상이 어제오늘 유난스러워진 건 아니다. 지난 주말 서울만 들쭉날쭉한 건 더욱 아니었다. 서울과 인천을 비롯한 대도시마다 시민들이 당혹해한 건, 미처 대비가 부족한 불찰이었다고 간단히 넘길 수 없다. 녹지가 태부족한 도시일수록 기상 변화의 폭이 유난스러웠던 까닭은 무엇일까.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봄철의 널뛰기 기온을 사전에 막을 수 없지만, 그 충격을 어느 정도 완충할 수 있었다.


이번 겨울 잠시 태국과 대만을 다녀올 일이 있었다. 건물 벽에 덩굴성 나무와 풀을 붙인 건물이 녹색으로 눈에 띄는 대만은 물론이고 작은 도로까지 가운데 나무를 심은 태국의 도시들은 한결 깨끗했으며 건강해보였다. 6차선 이상의 도로 황색 분리선 자리에 나무를 좁게 심시 시작한 우리나라와 완연히 달랐다. 나무가 늘어난 만큼 소음이 줄고 공기가 깨끗해지는 도시에서 시민들은 교통체증에도 짜증을 내지 않을 것 같았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들은 도로 폭이 좁다. 마차가 다닐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자동차가 늘어나면서 넓혔을 테지만 왕복 4차선이 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유럽의 도시들은 우리보다 좁은 도로 한 가운데 나무를 심었다. 도로 뿐이 아니다. 차도와 인도 사이에 가로수를 두 열로 심어, 걷는 시민들은 가로수 터널을 지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시는 한여름이면 뜨거워도 나무가 충분하면 시원해진다. 나무가 더위를 완충하기 때문이다. 겨울도 마찬가지다. 기온의 변화 속도를 늦춰준다. 요즘처럼 날씨가 더욱 변덕스러워지는 봄에도 나무가 많은 도시는 기온을 완충한다. 시민들에게 당혹스러움을 덜 준다. 지난 주말, 한낮에 땀을 흠뻑 흘린 시민들이 밤중에 오돌오돌 떨었던 이유는 우리의 도심에 나무가 드물다는 것으로 잘 설명할 수 있다.


나무뿐이 아니다. 크고 작은 호수가 도시 여기저기에 조성돼 있다면 여름철에 빈발하는 홍수를 완충할 뿐 아니라 지하수를 유지하게 해 도시의 나무들을 건강하게 하며 도시의 기온변화를 크게 완충한다. 유럽의 많은 도시에 호수가 마련된 이유이며, 역으로 여름철 홍수 피해가 우리나라에 줄어들지 않는 이유의 설명이기도 하다.


사람과 반려동물 이외에 새들도 도시의 근린공원이나 가까운 녹지에 산다. 봄이 오면 나무 꼭대기에 앉아 울며 짝을 찾는 새들은 요즘 봄이 잔인하다. 심화되는 지구온난화에 이은 기상이변으로 짝 찾는 시간을 놓치기 일쑤기 때문이다. 기온 널뛰기가 완충되지 못하는 도시에 둥지를 치는 새들은 그 정도가 심하다. 새들이 불안한 도시에서 사람이 건강하지 못하는 건 상식이다.


     녹지와 습지가 부족한 도시의 봄은 아무래도 천천히 온다. 들쭉날쭉한 온도변화로 더욱 잔인해지는 도시를 안전하고 아름답게 가꾸려면 녹지와 습지를 적극적으로 조성해 기온변화를 완충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봄가을의 가뭄과 여름철 홍수도, 겨울 혹한도 기세를 꺾을 게 틀림없다. (기호일보, 2013.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