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5. 12. 5. 03:58
 

부천시 상동에는 작은 시내가 졸졸 흐른다. 이름하여 ‘시민의 강’이다. 아파트단지로 둘러싸인 지역에 작은 위안이 되는 시민의 강은 시민단체의 강력한 요구를 시당국에서 받아들여 만들어졌다. 인근 하수종말처리장에서 3차 처리한 물이 조금씩 흘려들어오는 시민의 강은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상쾌함을 전하지만, 그 하천에 물고기는 없다. 시멘트 콘크리트로 만든 인공하천에 물고기를 풀어넣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풀어넣으면 살아남을지 확신할 수 없었을 것 같다. 그래도 삭막한 콘크리트 도심이 한결 시원해졌다.


부천시 중동과 상동은 이웃하는 인천시 삼산동과 함께 드넓었던 김포평야의 끝자락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 광활한 갯벌을 매립해 논이 된 중동과 상동 일대의 김포평야는 인천과 서울 사이에서 기차에 이은 전철 승객들에게 전원 풍경을 한동안 선사했는데, 거대한 아파트 숲으로 바뀐 요즘, 인천과 서울은 부천과 함께 광활하게 덩어리졌다. 전철 승객들은 이어지는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에서 도무지 도시의 경계를 느끼지 못한다.


너른 갯벌이 논으로, 논이 대단위 아파트단지로 바뀌자 예전에 없던 일이 발생한다. 억수 같이 내린 빗물도 너끈히 완충해주던 논을 메워 높인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는 약간의 빗물도 잡아주지 않아, 내린 비는 낮은 곳으로 순식간 떠밀리고, 인근 농촌은 비만 내리면 느닷없이 물바다가 된다. 아스팔트에 더럽히는 경유차 배기가스와 공사장 먼지가 빗물을 타고 경작지로 몰려들면서 농작물에 피해를 주고, 집안까지 밀려드는 흙탕물로 해마다 몸서리치는 고통이 반복되니, 주민들의 민원이 거세지지 않을 수 없다.


주민의 빗발치는 민원은 굴포천 방수로를 유도, 멀리 인천 앞바다까지 바닥 폭 40미터의 방수로를 기안하게 했고, 건설당국은 방수로를 기화로 운하를 모색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바로 경인운하다. 당초 기획된 방수로는 바닥 폭 40미터였으나 은근슬쩍 80미터로 늘이더니, 기왕 확장하는 거 100미터로 늘여 운하를 만들자고 수정 제안한 것이다. 정부는 건설회사들을 모아 경인운하주식회사를 급조, 불투명한 타당성 조사를 근거로 공사를 강행하려 했다. 환경단체에서 끈질기게 문제제기하지 않았다면 탈 많은 경인운하는 운하 내에 정체돼 썩어버린 한강물을 바다로 조금씩 토해낼지 모른다.


완공되자마자 밀어닥친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앓는 청계천은 살아있을까. 환경단체는 청계천에는 생물들이 살기 부적합하다고 주장한다. 한강 원수를 흘려보내는 까닭에 딸려들어온 담수어류가 없지 않겠지만, 번식하며 살기 부적당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청계천은 서울시가 홍보하는 것과 달리 생태하천이 아니다. 복원도 아니다. 부천 상동의 시민의 강처럼 도심을 가로지르는 물줄기에 불과하다. 곳곳에 수초도 나무도 심겨있지만 오색 조명과 어우러지는 분수와 등떠밀리는 구경꾼들로 북적이는 관광수로일 따름이다.


복개돼 고가도로로 덮이기 전, 청계천은 맑은 물이 넘실대는 하천과 거리가 멀었다. 비가 어느 정도 와야 서울 주변의 크고 작은 산에서 흘러드는 물로 채워지지만 평소에는 마른 곳이 많은 개천이었다. 625 이후 몰려든 판잣집과 주변 상가에서 버린 온갖 쓰레기들이 너저분하게 널리다 홍수가 들면 쓸어내는 서민의 삶터였다. 큰 비가 올 때마다 홍수로 넘치는데 골치를 앓던 영종은 개천의 폭을 넓히며 바닥을 팠고 몇 개 멋들어진 다리를 놓았는데, 박정희 군사정권이 그 흔적을 시멘트로 덮었다. 그런데 복원공사를 서둔 현 서울시장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문화재를 소홀히 취급했다. 문화재마저 제대로 복원하지 않은 것이다.


환경단체는 물론 문화단체도 새로 선보인 청계천이 복원되었다는 서울시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복원된 모습을 보고 싶다고 처음 이야기를 꺼낸 소설가 박경리 여사도 고개를 젓는다. 그저 부천 시민의 강보다 규모가 큰 값비싼 조경시설로 여긴다. 복원을 주장하려면 수표교를 비롯한 문화재를 고증을 통해 원형대로 보전해야 했다. 수많은 지천에서 청계천으로 물이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 시공해야 옳았다. 테이프 자르는 날짜에 쫓겨 허둥대기보다 복원을 바라는 시민들과 공감대를 갖는 절차를 충분한 갖고 가슴 벅차게 공사를 진행해야 자랑스러웠다.


고가도로가 사라져 시야가 탁 트인 청계천은 한강물을 시원하게 흘리고 있지만 사실상 거대한 시멘트 도랑이다. 홍수에 대비한 방수로의 역할도 부여됐다. 철근 시멘트 위에 화강암을 갈아 깔거나 흙을 넣어 나무와 풀을 심은 무늬만 하천이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녀 새 한 마리 보이지 않는 공원이다. 그래도 눈에 시원하다. 물도 바람도 시원하다. 주변 아스팔트보다 3도 정도 기온이 낮다고 한다. 썩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 생태하천이나 복원이라고 주장하지 말자. 그냥 청계천 도심공원으로 말하는 게 솔직하다.


그런데 몰려드는 관광객의 수에 고무되었는지, 원래 계획이 그랬는지, 청계천 주변에 고충빌딩을 밀집시킬 예정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복개 시절 빼곡했던 상가들 대부분이 철수돼 시원한 공간에 고층상가를 지어 관광명소로 육성하겠다는 것인데, 도심의 열기를 식혀주는 바람골 역할을 잃어버린 청게천은 관광객 호주머니 유혹하는 앵벌이로 전락하는 셈인가. 후다닥 완공한 조경도랑 청계천은 어쩌면 모종의 특별 사명을 띠었는지 모른다. 불도저 같은 건설족의 화려한 등장을 열망하는.


청계천 찬사를 급조한 서울시장은 때를 같이하여 경부운하를 공약하고 나선다. 한강과 낙동강을 이어 부산항의 화물을 배로 서울까지 운송하자는 주장인데, 대한민국 건설족들, 벌써부터 가슴 뛰게 생겼다. 바닥 폭 100미터에 길이 18킬로미터에 불과한 경인운하도 수조원의 돈이 들어간다던데 400킬로미터에 달할 경부운하는 얼마나 많은 돈이 건설족의 호주머니로 흘러들어갈까. 그 생각이 들면 건설족들은 잠을 청하지 못할 것이다. 경부고속전철도 천성산 구간만 빼고 거의 마무리되어가는데, 이런 호기가 다시 있을까. 경제! 경제! 하는 분위기를 잘 조성하면 순조로울지 모른다. 청계천을 잽싸게 복원한 솜씨를 지난 불도저 시장이 대통령에 출마해 당선된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까짓 환경단체는 가볍게 무시할 텐데, 건설족들은 힘을 모아 특정인의 선거운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할지 모른다.


몇 년 전인가, 어떤 학자가 서울시장과 비슷한 주장을 해 어안을 벙벙하게 만든 적 있다. 경부운하로 물류혁명을 이루자는 그는 현지의 모래와 자갈을 충당하면 공사비도 절감할 수 있다고 예상했는데, 그 점도 현 서울시장의 주장과 같다. 한강과 낙동강 주변에는 사유지가 적어 보상비가 크게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도 그 학자는 부각했다. 그 학자와 현 서울시장은 경부운하가 과연 물류비용을 줄일지, 꼭 서울로 선박화물을 집결해야하는지를 사전에 연구했을까. 적어도, 운하 건설에 앞서 고려해야 할 항목을 공사비로 한정해도 무방한지는 진지하게 고민한 것 같지 않다.


한강과 낙동강은 청계천과 다르다. 규모만이 아니다. 끌어안고 있는 생태계와 역사와 전설과 문화의 폭과 깊이에서 비교할 수 없다. 부산항에 화물을 싣고 내리는 배의 규모를 충당할 규모라면 어느 정도일지 그 방면에 문외한이라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강을 낙동강과 만나게 하려면 수면이 꽤 높게 올라가야 한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중국 장강을 170여 미터 올라가는 삼협댐의 갑문도 어마어마하던데, 백두대간을 넘는 경부운하의 갑문은 도대체 어느 규모가 되어야 부산항의 대형 화물선들을 만족시킬까.


삼협댐 옆에 건설된 5개의 거대한 갑문은 2만 톤급 선박을 3시간에 걸쳐 상류로 옮겨준다. 물류비용을 걱정하는 운하라면 적어도 삼협댐의 갑문보다 작지 않아야 할 텐데, 건설족들은 어떤 그림을 그리며 가슴 조일까. 강의 좌우 양안을 거대한 철근콘크리트로 싸바르고 수심을 일률적으로 깊게 파내려할 텐데, 그렇게 되면 강은 생명이 살기 어려운 거대한 도랑으로 죽아갈 것이다. 흐름이 차단될 테니 생태계는 단순해지고 정화작용은 억제되고 말 것이다. 그 물을 마시는 무수한 시민들의 민원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생명이 흐르지 못하는 도랑은 앙증맞은 상동 시민의 강이나 대명천지에 화려한 자태를 드러낸 청계천만이 아니다. 경인운하를 예고하는 굴포천 방수로도 그렇고, 감당하기 어려울 구름 같은 반대의견을 용케 무시하고 건설된다면 경부운하도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이 땅에는 이미 숱한 하천들이 도랑 신세로 훼손되었다. 강 양안을 콘크리트 블록으로 절도 있게 싸바르고 강바닥을 일률적으로 고르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하천은 한강이다. 둔치에 잔디를 깔고 자전거도로와 체육시설을 들여놓았지만 먼지가 풀풀 난다. 방수처리한 양안에 콘크리트를 발랐기 때문이다. 어디 한강뿐이랴. 북한강과 남한강, 그 위의 지천도 같은 방식으로 훼손되기는 마찬가지다. 지방의 많은 하천들의 사정도 대개 그렇다. 지방자치단체마다 강을 도랑으로 파괴하는데 나선다.


구불구불 흐르던 강을 직선으로 만들고 콘크리트로 강의 폭을 좁히면 지방자치단체는 많은 하천부지를 공업단지와 주택단지로 개발할 수 있다. 실제 많은 주택과 공장들이 강변에 들어섰고, 주택과 공장에서 배출하는 생활하수와 폐수는 강으로 쉽사리 모여든다. 늘어난 아스팔트와 시멘트를 스친 빗물은 완충지대 없이 직선화된 강으로 쏟아져 들어가 세차게 흐른다. 그러다 비가 그치면 강물은 급격히 줄어들고, 속도를 잃은 물이 바닥에 떨어뜨리는 오염된 먼지와 흙과 쓰레기들은 악취를 진동하며 생명의 흐름을 저해한다. 반복되면서 오염된 강바닥은 점점 높아지고, 범람이 두려운 지방자치단체들은 강둑을 높인다. 강바닥을 준설하고 싶지만 비용을 감당하기 벅차다. 오니를 퍼낼 때마다 진동하는 악취는 거센 민원을 부를 것이 틀림없다.


직선화했던 강을 다시 구부리는 것은 매우 어렵다.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공단과 아파트를 구입해 헐고 강에게 돌려줄 예산을 어디 상상할 수 있겠는가. 히틀러 시절에 직선화한 강을 해마다 조금씩 자연형으로 바꾸는 독일도 겨우 흉내만 낼 뿐이다. 강가의 콘크리트를 벗겨낸 자리에 흙을 다시 채우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도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닥칠 것이다. 생명이 제대로 흐르지 못하는 강에서 사람의 삶도 건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의 직선화로 많은 이익을 챙긴 선조가 감당하기 어려운 숙제를 후손에게 떠넘긴 것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의 물은 자연스럽게 흐르지 못한다. 산은 강을 막지 않고 강은 산을 넘지 못한다고 했건만 우리의 건설족은 백두대간도 운하로 넘어야겠고 오만해한다. 청계천을 근사하게 꾸민 여세를 몰아 경부운하를 구상하며 하천 생태계의 가치를 깨우치지 못한다. 댐과 하구언으로 강의 흐름을 저해해온 경험은 직선으로 훼손되는 강을 구상하고,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많은 생명들을 내쫓아버린다. 크고 작은 강을 따라 생명을 잇던 존재가 바로 사람인데, 후손들은 생명을 잃은 강과 공존할 수 있을까.


강을 직선으로 질식시켰던 건설족들이 최근 자연형 하천을 만들겠다고 나선다. 하수관을 묻어 하천과 분리하고, 가장자리에 풀도 심고 자갈도 깔아 물고기도 살 수 있는 생태하천을 만들겠다고 근사하게 광고한다. 광고전단에는 바지 걷고 천렵하는 아이들 사진을 내세운다. 한데, 생활하수와 폐수가 빠진 하천에는 흐르는 물이 항상 모자란다. 건설족들은 하수종말처리장의 물을 정화해 흘리자고 제안하는데, 그런다고 강이 살아날까. 사람들의 눈과 코를 잠시 속일 수 있겠지만 복원을 시각적으로 보장받기 위해 물고기를 이따금 풀어넣는다면 그 물고기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강을 제대로 살리려면 물속의 생명들이 건강하게 살도록 생태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강으로 흘러들어오는 물이 깨끗해야 한다. 도시에 숲을 넓게 조성하고 곳곳에 잔디를 깔면 빗물은 도시의 하천에 들어가기 전에 어느 정도 정화될 것이다.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게 도시를 설계하면 도시의 강은 흐르는 물도 늘이고 깨끗해질 것이다. 아스팔트를 뜯어낸 자리에 가로수를 심어 자전거와 보행자를 위한 공간을 늘인다면 도시의 하천은 지금보다 깨끗해질 것이다. 시민들의 건강도 개선될 것이다.


청계천은 생태하천이 아니다. 보기에 멋진 수변공간을 가진 공원이다. 삭막한 도심에서 시민에게 수변공간은 환영받지만 생명이 흐르는 생태공간보다 친밀할 수 없다. 자연스러운 도시의 하천, 어렵지만 불가능하지 않을 텐데, 표에 굶주린 조급한 마음은 자연의 오랜 질서를 그르친다. 하천은 생명이 함께 흘러야 건강하다. 건설족을 위한 어설픈 하천복원보다 강의 자연성을 훼손하는 행태부터 자제했으면 좋겠다. 건강해야 할 내일을 위해. (인천문화비평, 2006년 상반기)

세상을 그리 삐닥하게 사는 이유를 모르겠군. 고가도로있을때 뭐라고 좀 짖어보지 그랬어?
푸하하 이 인간 생명윤리 어쩌구 저쩌구 초딩수준으로 비웃음사다 결국은 돈달라고 구걸하던 인간아냐. 블로그계에서 추방하여야 할 쓰레기 인간 사이비 환경교주
비판도 모름지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비판이어야 하지 않을까? 청계천이 생태 하천이 아니란 이유로 까대는 꼴이 우습다. 당신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고가도로가 지나가는 모습 그대로 두자는 말인지, 아니면 당신 마음에 들 때까지 마냥 세월을 끌어서 거기에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돈은 자신이 대겠다는 말인지, 차라리 노무현이 했으면 좋았을텐데, 이명박이가 해서 무조건 싫다고 솔직히 말해라~~
야 이 씨발 노마, 빨리 너도 대국민 사과해. 주댕이 찢어 버리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