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5. 5. 2. 02:17
 

서울 시내에서 한 마리의 늑대가 파란 창공을 날았다. 그것도 아주 잠깐. 길든 짐승이므로 마음을 놓았던 사이, 허술한 나무우리를 뜯고 호기 있게 탈출했는데 이내 길을 잃었고, 추위와 허기에 지쳐 압박해 들어오는 마취총에 굴복했지만 그래도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뇌리에 남길 수 있었다. 서울대공원에서 광릉수목원으로 복원을 위한 씨받이로 옮겨지던 그 늑대는 동물원에서 지낼 후손들에게 파란 하늘과 우거진 숲의 기억을 전해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탈출한 수컷과 달리 기자 카메라에 순응했던 암컷도 광릉수목원으로 함께 가던 중이었다. 덤벼둘던 짝의 꼬리를 물어뜯던 암컷은 제 우리를 뜯어내지 않았다. 왜 따라 나서지 않았을까. 관계가 소원했나. 사육사가 무표정하게 던져주는 차가운 먹이에 길들여진 처지에 나가봐야 별 수 없다는 걸 짐작한 것일까. 늑대 탈출 소식에 하얗게 질린 일부 주민들과 왁자지껄한 300여 몰이꾼과 짖어대는 개들을 용케 피하면서 수면제 들어간 쇠고기 30덩이를 외면하며 의연하게 돌아온 제 짝을 암컷은 어쩌면 대견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광복 이전에도 도처를 놀라게 했던 우리 늑대는 멸종되었을까. 1960년대 중반 경북 청송과 영주에서 포획 또는 생포되어 창경원에 전시되다 1996년 마지막 한 마리마저 죽은 후 결국 사라진 것인가. 일제의 조직적 포획으로 치명적으로 줄어든 우리 땅의 늑대는 인구 증가와 그로 인한 생태계 교란으로 이전부터 사실상 위축되고 있었다. 농경지로 하천부지와 구릉지가 잠식되고 난방과 취사용으로 산림이 황폐화되면서 서식지를 잃은 늑대는 먹이도 부족했다. 녹용과 고기를 노린 인간의 사냥으로 호랑이나 표범과 나눌 사슴이 희귀해진 탓이었다. 60년대 말 충북 수안보와 경북 문경에서 생포된 기록 이후 90년대 초 한 언론사의 추적으로 경남 함양에서 생존 가능성을 희망하기도 했지만, 기대하기 어둡다.


‘마지막 늑대’니 ‘늑대의 유혹’이니 하며 늑대를 음험한 남자로 희화한 영화가 죽을 쑤던 대박을 치던 계속 만들어지는 현상은 늑대에 대한 우리의 낭만적 시각을 반영한다. 장독대 뒤에 숨어 생리 뒤처리하러 나오는 처녀를 소리 없이 물어가던 시절은 이미 까마득하다. 디즈니 만화로 막내 아기돼지의 활약상이 어려서부터 주입된 세대는 성장한 이후 늑대가 온다는 소년의 외침에도 시큰둥하다. 정직한 사람이 제도적으로 손해보는 세상에서 거짓말은 일상이 아닌가. 늑대에 대한 낭만적 현상을 반영하였을까. 서울대공원 종 보전팀은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늑대의 복원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언론은 전한다.


비록 북미 산이지만 지난 4월 건강한 팀버늑대 새끼를 5마리를 인공수정으로 낳은 서울대공원 측은 토종 늑대 인공수정을 장담하는데, 한 텔레비전 방송은 유목민들이 성가셔하는 몽골 늑대를 도입할 것처럼 전한다. 혈통이 거의 같기 때문이라는데, 그렇다면 인공수정으로 늘어날 늑대들은 어디에 풀어주어야 하나. 영화사는 아닐 테고, 백두대간일까. 고속도로와 스키장과 석회광산으로 수십 토막난 백두대간에 사슴은커녕 토끼도 드문데, 송아지도 게걸스레 먹어치우는 식성은 어떤 먹이로 허기를 채우려 들까. 벌통 건드렸다는 민원으로 지리산에 풀었던 반달곰들도 다시 잡아들이는 판인데, 야성 회복한 늑대는 과연 편할까.


미국의 자연주의 학자 알도 레오폴드가 산림감시원이었던 시절, 말을 놀라게 하고 순록을 잡아먹는 늑대만 보면 손가락이 근질근질했다. 거센 강물이 굽이치는 강가, 어떤 높은 바위에 앉아 점심을 먹던 젊은 산림감시원은 새끼들과 뒤엉켜 장난하는 늑대들을 보았고, 흥분해 총을 쏘아댔다. 하지만 득의의 표정으로 죽어가는 늑대에게 다가간 순간, 그는 큰 충격을 받는다. 맹렬했던 늑대 눈 속의 초록빛 불꽃이 서서히 꺼지는 게 아닌가. 그 자리에서 늑대와 산이 갖는 관계를 깊게 깨달은 알도 레오폴드는 늑대가 줄어야 사슴사냥꾼의 천국이 온다는 믿음을 버렸다.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인 옐로스톤에는 지금도 순록과 함께 늑대가 보인다. 순록을 보러오는 관광객들을 위해 보이는 족족 늑대를 죽이자 순록이 순식간에 늘었지만 웬걸, 먹이가 고갈되자 이번엔 순록들이 대책 없이 죽어 자빠지는 게 아닌가. 허망했던 국립공원 당국은 다른 지역의 늑대를 황급히 들여왔고 다시 안정을 찾았다는 것이다. 『울지 않는 늑대』에서 팔리 모왓은 늑대는 건강한 순록을 잡아먹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잽싼 늑대도 순록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동 중인 순록을 따라가며 간혹 무리를 헤집지만 그건 건강하지 못한 개체를 가려내기 위한 의도일 뿐이라고, 그렇게 순록의 무리는 안정될 수 있다고 전한다. 순록이 사라지는 것은 총을 쥔 인간 때문이고, 늑대의 주식은 들쥐들이라며 인간의 부당한 오해를 지적한다.


감성을 주고받으면 사람들은 동물에게 이름을 붙인다. 집에 강아지를 들이자마자 이름을 다는 것과 다르지 않으리라. 제인 구달은 자신이 연구하는 침팬지들에게 이름을 붙여 선배 과학자들에게 객관성 없다는 비난을 받았다는데, 팔리 모왓도 그 점을 걱정했다. 물론 이름붙은 늑대들은 그 사실을 몰랐고 관심도 없었겠지만 팔리 모왓은 진지했다. 순록 보전을 위한 늑대의 박멸계획 연구차 자신의 영역을 침입한 애송이 감시자를 이해한다는 듯 너그러운 늑대 가족에게 팔리 모왓은 경의를 표했고 내심 앨버트 아저씨라 불렀다.


버려진 암 사자를 키워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이야기를 담은 조지 애담슨의 『야생의 엘자』는 1966년 영화화되어 많은 사람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지만, 늑대 한 마리 살아갈 수 없는 생태계에서 개체 복원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공명심을 지나치게 앞세우는 한 생명공학자는 호랑이를 복제해 백두대간에 풀어주어 생태계를 풍요롭게 만들겠다고 기염을 토하지만, 요즘 호랑이들은 곶감 이야기를 모를 것이다. 곡마단도 외면할 늑대는 결국 동물원이 맡을 텐데, 늑대 인공수정은 왜 할까. 멸종 위기종의 가녀린 복원 차원일까. 복제된 호랑이처럼 돈벌이를 위한 동물원의 앵벌이일까.


잠시 파란 하늘을 우러렀을 늑대, 이 시간, 인공수정을 위한 씨받이로 고생 꽤나 심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늑대의 자유를 여러모로 빼앗은 인간은 야생과 공유해야 하늘이 계속 파랄 수 있다는 사실을 언제 깨달을 것인가. 인공수정으로 대를 이어야 하는 시절로 접어든 인간들은 넓은 자연이 그리울 그 늑대의 이름을 과연 붙일 수 있을까. (물푸레골에서, 2005년 5월호)

야생 동물의 얘기는 언제나 눈물나게 한다.
TV에서 간혹 환경스페셜의 야생동물 이야기가 나온다면 기겁을 하고 다른 데로 채널을 돌리려 하지만, 결국은 다시 그 채널을 잡고 앉아 넋을 빼면서 꿀떡꿀떡 아픈 목에 침을 삼키고 핑 코를 푼다.
미안해, 얘들아...내가 사람이어서 정말 미안해...

늑대는 파란 하늘을 보지 못 했겠지.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광릉 수목원...이 동네는 벌써 언제부터 뿌연 하늘이 되었던지 기억에조차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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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돌 2005. 3. 16. 21:56
 

“그려, 새만금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잡아버리는 거나 마찬가지여!”


이미 폐업 보상을 받았기에 집회나 시위 현장에 잘 나서지 않던 어민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모였다. 보상이라고 받긴 받았지만 외지에서 새 일감을 찾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나마 찔끔찔끔 내주는 통에 생활비로 다 써버렸다. 바다가 어지간하니 물고기와 백합 잡아 식솔 먹여 살렸는데, 4공구 제방마저 턱 막히니 얘기가 달라졌다. 잡던 고기들의 간데없이 사라지고 갯벌에 백합이 말라버린 것이다. 보상은 더 없다는 공무원들 밉살스러워도 어업보상이라 믿고 간간이 내다판 면세기름이 발목잡는다. 이제까지 묵인하던 공무원들이 불법 운운하며 으름장놓기 때문이다. 그래 잠자코 있었는데, 이젠 굶어죽게 생겼다. 보상을 더 받든지 제방을 트던지 양단간에 무슨 수를 써야 한다. 가자! 국회의원이 있는 여의도로! 죽어가는 어민의 목소리를 그들은 반드시 들어야 하지 않은가.


동진강과 만경강이 밀고나는 바닷물과 섞이며 하루 두 차례 자유롭게 유통되는 새만금 간척사업 일원의 드넓은 조간대는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그것도 수천 년 이상. 그런데 2.7킬로미터 병목만큼 남긴 33킬로미터의 제방이 물길을 차단하자 갯벌과 인근 바다가 제 모습을 잃어간다. 그래서 여의도에 간 것인데, 저벅저벅 군화소리 내며 압박하는 전투경찰의 위세에 눌려 텔레비전에서 보던 싸움도 못해보고, 소리 한번 크게 지르지도 못한 어부들은 상당수 고향을 등졌다. 떠나지 못한 어민들도 마음은 이미 떠났다. 며칠 째 집 비워놓고 공사판을 전전한다. 먹고살 길이 막막한데 예서 죽어야 하나.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망연자실한 어민들을 다시 궐기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움직여야 한다. 아직 바다가 죽은 건 아니지 않은가. 4공구 제방만 트면 갯벌도 바다도 다시 예전처럼 되살아날 수 있다.


‘바닷길 걷기’는 그래서 시작됐다. 뜻을 함께하는 환경단체와 같이 새만금 간척사업 대상 바닷가를 일주일 동안 걸으며 바다와 갯벌이 얼마나 풍요롭고 아름다운지, 그래서 얼마나 서럽고 안타까운지 몸과 마음으로 체험해야 한다. 어떻게든 바다를 다시 살려야한다는 의지를 어민은 물론 시민들의 가슴에 불지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엔 설 지난 이른 봄을 맞아 걸었다. “4공구 제방을 터라!” 외치는 깃발을 높이 들고 주먹밥을 챙겨 오전 오후로 걷고 걸었다. 돌이킬  수 없게 썩은 만경강 하구를 지나 동진강 하구로 접어든 일행은 모처럼 건강한 갯벌을 눈물겹게 보았다. “매립목적이 불분명한 새만금 간척사업을 중단하라!”는 서울행정법원 강영호 부장판사의 판결에 따라 축조가 중단된 제방 사이로 해수와 강물이 병목처럼 유통되는 덕분에 조상의 성장 터를 찾아오는 실뱀장어를 맞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작황이 전 같지 않은 요즘은 1킬로그램에 700만원을 호가하니 과연 실뱀장어는 어부에게 황금이다. 그래서 동진강 하구는 자릿그물 드리운 작은 배들이 갯고랑을 삼삼오오 지킨다. 2월 하순에서 5월 초순까지 동진강에서 만나는 실뱀장어는 십여 년 전을 돌이켜야 한다. 그 옛날 이맘 때, 동진강을 거슬러 올라간 조상이 칠팔 년을 뒹굴뒹굴, 수서곤충이나 죽은 물고기들을 먹으며 길이나 대구리가 70센티미터 정도 클대로 커지면, 식음을 전폐한 조상은 알을 낳으려 바다로 향했다. 6천 킬로미터 떨어진 아열대 심해로 천만 개 내외의 알을 낳으려. 따뜻한 바다에서 어미가 알 낳고 죽으면 알은 댓잎처럼 납작하게 부화하고, 이때 뱀장어는 하구의 냄새를 기억하는 것일까. 각고의 2년여 세월을 쿠로시오 난류를 타고 동진강 하구에 본능처럼 당도한다. 5센티미터 정도 성장한 이른바 댓잎뱀장어는 투명한 실뱀장어로 변태하여 뻘 밑에서 동면하고, 날씨가 풀리면 야음을 틈타 밀물에 몸을 맡기며 조상이 놀던 동진강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때를 기다려 어부들은 넓은 자릿그물을 갯고랑에 펼쳐 놓는다. 한 마리에 7백에서 천원이나 되니 실뱀장어는 가히 황금이다. 소주잔에 넣어 완샷! 하는 몬도가네를 만나면 한 마리에 2천원도 부를 수 있다. 얼빠진 몬도가네는 잊고, 모기장으로 만든 자릿그물로 잡은 실뱀장어는 양식장으로 간다. 인공부화가 불가능한 탓에 실뱀장어로 양식하는데, 장어구이집에서 만나는 뱀장어가 대개 그들이다. 다져 익힌 고기로 1년 만에 5년 자랄 몸집으로 키운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실뱀장어가 점점 드물어진다. 강에서 자라 바다로 알 낳으러 가는 성체들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 점을 고민할 겨를이 없는 어부들은 사생결단이다. 한두 달 죽어라 일하면 한해가 편하니 뼈빠진들 마다하랴. 작년에 누가 5천만 원 올렸다 ‘카더라 통신’에 운을 걸고 자릿그물 걸고 몰려드니 실뱀장어가 줄어들밖에.


실뱀장어 감소 원인은 남획만이 아니다. 지역 어부들의 욕심은 차라리 애교다. 바닷물의 흐름을 가로막는 연육교도 문제지만 강 하구를 통째로 틀어막는 하구언은 치명적이다. 어떤 어부는 강물이 배어나오는 갑문 사이에 몰려들어 죽어가는 회유성 어류들을 보며 안타까워한다. 갯벌은 어떤가. 동면 자체가 매립되지 않던가. 강물과 바닷물이 들고나는 동진강은 자연의 축복을 아직 간직한다. 실뱀장어가 찾아올 수 있을 뿐 아니라 갯고랑 너머 드넓은 갯벌이 아직 고즈넉하고, 타는 듯 넘어가는 석양도 찾는 이의 가슴을 벅차게 한다. 풍천장어가 잡히는 고창군의 인천강도 제 모습을 잃지 않았다. 선운사의 동백처럼.


근육이 발달되어 쫄깃쫄깃하고 비타민 에이와 이가 많아 정력에 그만이라는 풍천장어! 풍천장어는 인천강이 독점하지 않는다. 육지바람 맞아가며 강에서 자란 뱀장어는 모두 풍천장어이므로. 속된 말로, “안 하고는 못 배긴다!” 는 ‘아나고’는 또 무언가. 강으로 올라가지 않고 하구에 남아있는 뱀장어의 일본말이다. 암컷과 달리 수컷은 해안에서 오매불망 짝을 기다린다는 속설이 있다. 아무리 움켜줘도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지며 빠져나가는 뱀장어는 디에이치에이와 레시틴이 많아 노화예방, 피부미용, 고혈압, 시력보호에 좋으며 유방암, 폐암, 췌장암, 치매 예방에 효과가 크다고 들리는데, 그래서 그런가, 동의보감은 폐병에 그만이라고 귀띔한다. 한방은 뱀장어가 들어간 환을 처방하기도 한다.


제주도 천지연에는 무태장어가 든다. 황갈색 바탕에 검은 반점이 흩어진 무태장어는 몸길이가 2미터에 달하는 천연기념물 258호다. 아직 보호대상이 아닌 뱀장어도 이대로 가면 언젠가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야 할지 모른다. 오염된 먹을거리로 정자가 줄어들고 항생제 내성이 높아지며 아토피에 고생하면서도 정력 탐하는 인간 때문이다. 인간은 언제 정신을 차릴까. 마지막 남은 뱀장어에 물어보아야 하나. (물푸레골에서, 2005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