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2. 12. 12. 13:21

    자연의 이웃을 생각하는 계절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동물은 자신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먹고 때때로 집을 필요로 하는데, 사람은 거기에 하나 더, 옷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은 반대로, 사람은 옷이 없으면 체온을 유지할 수 없다는 의미다.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들기 전에 겨우살이 준비를 마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일러 가동되는 집에서 냉장고에 저장된 음식 따뜻하게 데워 먹으며 지내다 두툼한 옷을 껴입고 밖에 나간다. 하지만 변변한 은거지도 없이 겨울을 나야 하는 동물은 겨울을 어떻게 보낼까.


일찍이 소로우가 지적했듯, 겨울이라고 특별한 옷이 필요하지 않은 동물은 먹을거리만 충분하다면 거뜬히 버틸 수 있을 텐데, 요즘 들어 그게 점점 확실치 않아진다. 겨울에도 제 먹을거리가 충분한 곳으로 오래 전에 옮겨와 적응했지만, 한참 뒤 제 의식주를 싸들고 찾아온 사람들이 동물들의 터전을 잠식하면서 사정이 전 같지 않다. 처음에는 조금씩 위축되었는데, 막대한 돈과 장비로 무장하는 과학기술로 막무가내로 침범하면서 이젠 작은 몸 숨기기조차 버거워지고 말았다. 물론 집안에서 통조림이나 개껌을 먹는 반려동물은 예외다.


1980년대, “간첩은 녹음기를 노린다!”는 펼침막이 으스스하게 등산객들을 노려보았는데, 활엽수들이 잎사귀를 모두 떨어뜨린 요즘, 산간 계곡의 동물들은 사람들이 내뿜는 소음과 냄새를 피할 도리가 없다. 먹이를 구하기도 어렵다. 수명이 긴 LED 전등 들고 오르내리는 인파 때문에 밤이라도 쉴 곳이 없다. 깊은 산중으로 달아날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도 전국을 바둑판처럼 가르는 고속도로, 고속화된 국도와 지방도로가 나란히 달리며 번쩍거릴 뿐 아니라 소름 끼치게 하는 타이어의 마찰음이 거침없다.


어쩌다 냄새를 따라 도시로 나왔다 119대원의 총구를 피하기 어려운 멧돼지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작은 새들에겐 차라리 도시 근린공원이 낫다. 자연의 생명을 다정하게 바라보려는 사람들이 이제는 해코지하려 하지 않기 때문인데, 투명 방음벽이 없던 문제를 일으킨다. 근린공원에 쇠기름을 매달아 놓거나 땅콩을 내주는 사람이 반갑긴 한데, 가끔 출몰하는 말똥가리나 황조롱이가 목숨을 노린다. 정신없이 열매를 먹는 순간 획 날아온 맹금류의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에 화들짝 놀라 달아나지만, 그것도 잠시. 투명한 방음벽에 부딪혀 목숨을 엉뚱하게 잃지 않던가.


작은 새 뿐이 아니다. 덩치가 큰 맹금류도 번쩍거리는 빌딩의 유리벽에 부딪혀 목숨을 잃은 경우가 많다. 공원 주변의 아파트에 둥지를 친 황조롱이가 먹이를 물고 날아오르다 유리로 마감한 건물에 부딪혀 정신을 잃는 건데, 겨울이면 건물 안에 있는 사람을 춥게 하는 유리 건물은 빛이 반사돼 가까이 오는 날짐승의 방향을 잃게 한다. 사람들 보기에 좋은 유리 건물은 투명할수록 날짐승에게 흉기에 가까운데, 투명 방음벽은 미리 충돌을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다. 맹금류의 그림자 스티커를 투명한 곳에 붙여놓으면 충돌을 예방할 수 있다. 정신없이 다가가던 작은 새들은 맹금류 그림을 보고 놀라 방향을 바꾸게 된다. 유럽의 투명 방음벽마다 그래서 맹금류 그림을 붙여 놓았다.


가을이 깊어지며 추수를 마친 들판에 서리가 내리는 요즘, 내려앉은 철새들은 전에 풍부했던 먹이를 도저히 찾지 못한다. 기계로 수확하며 떨어뜨린 나락을 한동안 주어먹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근처 목장에 팔아넘기기 위해 둥글게 모아 비닐로 뒤집어 씌워놓았다. 나락은커녕 짚 하나도 남지 않았다. 볏짚과 나락이 철새의 먹이가 되었다 새똥이 뿌려지는 들판이 훨씬 풍광도 좋고 땅도 기름질 텐데, 야박하면서도 슬픈 시절이다. 요즘 내려오는 철새들은 사람의 돈 욕심에 오랜 터전을 잃었다. 살얼음이 끼는 갯벌도 거듭되는 매립으로 자꾸 줄어드니 내려앉을 곳은 사라지기만 하고, 간척지 인근에 조성한 호수에는 철새들로 벌써부터 만원사례다. 질병을 공유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


만주나 시베리아에서 추위를 피하고 먹이를 찾아 우리나라로 날아온 독수리들은 목장에서 죽은 가축의 사체를 내주면 허기를 그 순간 때울 수 있지만, 조류독감이나 구제역이 돌면 굶주릴 수밖에 없다. 멀쩡한 상태에서 살처분한 어마어마한 사체들 한 마리도 내어주지 않는다. 야박하기보다 질병의 창궐을 막기 위해서라는데, 철새가 조류독감을 옮겼다고? 사람들은 그리 의심하지만, 대부분의 철새들은 조류독감에 걸리지 않았고 걸려도 이내 회복된다. 어쩌다 새똥에서 바이러스가 발견될 따름이지만 사람들은 호들갑이다.


자동으로 온도가 조절되는 좁아터진 실내에서 유전자 조작 옥수수 사료만 축내는 닭과 오리들은 면역력이 없다. 유전적 다양성을 빼앗긴 채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조류독감에 속절없이 감염돼 떼로 죽거나, 발생한 목장과 가깝다는 이유로 불문곡직 몰살된다. 그건 공장식 목장의 돼지나 소의 구제역도 사정이 비슷하다. 자연의 동물은 그런 질병에 잘 걸리지 않고, 걸려도 잠시 앓다 이내 낫는다. 사람이 그런 것처럼. 한데 요사이 자연의 동물들은 전 같지 않다. 겨울이 되면 오로지 사람 때문에 먹을 게 없기에 허기진다. 그래서 체온을 혹독하게 유지해야 한다.


먹을 걸 찾아 도시로 내려왔다 봉변당하는 멧돼지를 동정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데, 깊은 산골이라고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낙엽 위에 눈이 쌓인 산중에 아무리 잘 숨어도 사냥꾼의 총구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짖어대며 겅중거리는 사냥개의 예민한 코는 멧돼지를 막다른 사정권으로 몰아넣는다. 멧돼지만의 사정이 아니다. 밀렵꾼이 겨울철마저 적지 않게 출몰하고, 산간의 오솔길마다 발목을 노리는 덫과 목을 노리는 올가미가 탈출로를 가로막는다. 그뿐인가. 허기진 동물에게 동정어린 사람들이 주는 상당량의 농작물은 농약에 오염되었거나 유전자가 조작된 미국산이다.


     가을걷이와 월동준비를 마친 사람들은 겨울을 거의 걱정하지 않지만, 자연의 동물은 죽지 못해 살아간다. 새봄을 준비하는 계절인 겨울은 사람이나 자연의 이웃이나 건강하게 견뎌야 이듬해를 무난하게 이어갈 수 있다. 한해 수십 억 원에 달하는 음식 쓰레기를 버리면서 비만에 허덕이는 사람은 동물에 비해 지나치게 넓은 시공간을 독점한다. 이래저래 요즘 자연의 동물은 털이나 깃털이 있더라도 겨울마다 전에 없이 춥다. 욕심 사나운 인간, 이제 좀 양보할 수 없을까. 곧 산천이 본격적으로 추워질 텐데. (지금여기, 2012.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