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4. 8. 20. 00:39


 조류독감이나 구제역은 전에 없었을까. 2000년대 이전을 생각해보자. 과로로 현장의 공무원이 죽어갈 정도로 수많은 가축을 빠른 시간에 죽이는 살처분은 도무지 기억에 없다. 관련 바이러스가 전보다 더욱 무서워졌다지만 독감은 분명히 예전에도 있었다. 조류독감 바이러스도 마찬가지일 텐데, 그 바이러스가 하필 왜 요즘 극성이고, 조류독감이 발생한 양계장을 중심으로 저병원성은 반경 300미터, 고병원성은 그 10배인 3킬로미터의 안전반경 안의 닭과 오리와 메추리들을 멀쩡해도 모조리 죽여야 한다는 걸까.


사람은 아니 그렇더라고, 독감에 걸리는 닭과 오리와 메추리들은 왜 대부분 맥없이 죽을까. 텔레비전 뉴스 화면을 보니 감염된 양계장이 처참하다. 양계장 안의 닭들 거개가 죽어 널브러진 건 확실하다. 그렇지만 모두 죽은 건 아니다. 사체들 사이를 겅중겅중 뛰며 카메라와 기자를 피하는 닭들도 적지 않았다. 그 닭들은 어쩌면 조류독감을 이겨낼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모조리 죽이고 만다.


땅을 파헤치며 마당을 돌아다니던 닭들도 조류독감에 걸리곤 했을 텐데, 떼로 죽는 일은 없었다. 이미 허약해진 사람이 이따금 독감으로 사망하듯 조류독감에 걸린 닭의 일부도 꾸벅꾸벅 졸다 죽었겠지만 나머지는 이내 건강을 찾았다. 훨씬 많은 닭들은 아예 감염되지 않았을 것이다.


닭과 오리에게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전한 악당으로 취급하는 철새들도 마찬가지일 게다. 조류독감에 감염돼 기력을 잃은 철새는 머나먼 길을 날아오는 도중에 떨어졌을 테고, 날아온 철새들은 갯벌이나 호수에 내려앉아 이것저것 먹으며 배설하겠지. 그러다 질병도 나눌 테지만 대부분 견뎌내어 봄에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극히 일부가 죽었고, 그 사체를 수거한 전문가가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분리했을 것이다.


마당에서 키운 닭들은 서로 쪼면서 서열을 정하고 흙을 파 벌레들을 잡아먹었으며 마음에 닿는 암수가 자유롭게 짝짓기를 해왔다. 닭이 가축으로 길들어진 이후 수천 년 동안 그래왔지만 지금은 아니다. 비록 어두컴컴하지만 불이 들어오면 사료를 풍족하게 먹을 수 있고, 비좁아 부대낄지언정 노상 따뜻한 축사 안에서 조상이 물려준 천명을 절대 누릴 수 없는 닭과 오리와 메추리는 존엄성 있는 생명체라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 살코기를 빨리 키우거나 알을 많이 낳는 기계에 불과하다.


닭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부화되자마자 쓰레기통에 던져져 질식해 죽는 수평아리는 대상에 끼지 못하니 빼자. 죽어라고 무정란만 낳는 많은 암탉과 유정란을 낳는 암탉이 적은 수로 있고, 유정란을 낳는 암탉과 죽어라고 짝짓기만 하는 선택받은 극히 일부의 수탉이 있다. 그리고 고기용으로 부화기에서 부화돼 도축 때까지 죽어라고 몸집을 키워야 하는 병아리가 나머지 대부분이다.


통닭용과 삼계탕용은 엄격하게 분리돼 무지막지하게 사육된다. 통닭용은 4주 만에 죽어야 하는 삼계탕용보다 2주 정도 더 살지만 아직 병아리에 불과하다. 샐러드에 넣는 가슴살을 위해 고작 7주만 살 수 있는 미국 닭은 어떤가. 조그맣던 병아리가 어찌나 빨리 자라는지 사람으로 따지면 생후 1년 만에 몸무게가 200킬로그램에 달할 정도다. 가슴살이 하도 빨리 비대해져 제대로 걷지 못한다.


도축장에 갈 시간이 되면 양계장은 커다란 병아리들로 가득 차 사람이 발 딛을 틈도 없어 보이는데, 그 병아리들은 일란성 쌍둥이처럼 유전자가 거의 같다. 사람의 까다로운 입맛에 맞도록 극단적으로 품종을 개량한 탓에 조상이 가진 유전적 다양성을 거의 잃은 것이다. 그 결과 환경변화에 견디지 못하고 질병을 이겨낼 면역이 아주 취약해졌다. 따라서 외부와 차단된 축사는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맞추고, 사료, 항생제, 호르몬과 같은 사육 조건을 엄격하게 유지해야 한다. 태풍으로 문짝이 떨어져나가거나 눈으로 지붕이 무너지고 우박으로 뚫리는 날이면 조류독감에 감염된 양계장 이상 처참해진다.


사람들의 먹성을 만족시킬 정도로 빨라야 하는 닭고기 가공은 기계가 맡았다. 하루에 100만 마리 이상 처리하는 닭고기 가공공장의 정교한 기계는 오차 범위가 좁다. 들쭉날쭉한 닭 때문에 값비싼 기계를 고장나게 만든 양계장은 고객을 잃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대한민국의 삼계탕 뚝배기는 크기가 한결같다. 뚝배기에 들어가는 닭이 제각각이라면 같은 돈을 내는 손님들이 달가워할 리 없다. 그 식당은 경쟁에서 쳐지고 말 것이다.


어떻게 해야 조류독감이 줄어들까. 정답은 뻔하다. 지금처럼 계란과 살코기를 거침없이 먹어치우는 한 줄어들 리 없다. 조류독감을 알지 못했던 예전의 식습관으로 돌아가서 닭과 오리와 메추리의 유전적 다양성을 회복시키는 일이다. 살처분이 사라지고 철새를 원망하지 않겠지. 사람들의 탐욕이 줄면서 몸도 마음도 건강해질 것이다. 조류독감만이 아니다. 규제역과 광우병은 인류에 돌이킬 수 없는 물적 정신적 파탄을 안긴다. 부메랑이다. (함께나누는삶, 20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