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3. 8. 7. 11:18

   내일의 그림을 마음껏 그릴 때

 

동희야, 오늘도 즐겁지? 재수생인 네 형이 집안 분위기를 조심스럽게 만들어도 넌 여전히 오늘을 즐겼으리라 믿는다. 가끔 만나 네 진로를 물으면 몰라요. 그냥 하루하루가 좋대요!”하는 네 아빠도 걱정하는 눈치더라. 하긴 당장 네 형도 있는데, 네 문제로 머리 아플 때는 아니겠지.


자기 일이 아니면 관심사에서 멀어지는 게 세상사인가 봐. 네 사촌 형이 대학에 입학하고 나니, 올 수능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소식을 뉴스 보고 알았지 뭐니. 작년 이맘때만 해도 네 고모는 합격할 만한 대학과 전공학과를 찾는 수천가지 방법 중에서 천 가지는 알았다고 했는데, 네 형이 섭섭하게 생각할지 몰라도, 올해는 무심하게 되더라. 그래도 네 형은 그나마 다행이야. 자신이 공부하고자 하는 방향을 분명히 정해놓고 있잖니.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강박이 없으면 돼. 공부는 평생 하는 거니까.


사실 말이 없어 그렇지, 네 아빠와 엄마가 범이 걱정을 하지 않을 리 없어. 그건 네 고모도 마찬가지야. 5남매를 둔 할머니는 어떻겠니? 네 큰 고모부터 작은 아빠 네까지, 계속 이어지잖니? 할머니는 언제 말씀하시더라. 집집마다 공부 못해서 걱정인 손주가 하나 씩 있다고. 손주만 그랬겠니? 다섯 남매 중에도 공부하지 않던 자식이 왜 없었겠니. 열심히 공부해도 성과가 없었던 형제도 있었을 테지. 그런데 생각해봐. 가장 공부를 잘했다는 네 작은 아빠, 첫 직장에서 뛰어나온 뒤 지금까지 고생이 많지 않니? 대학을 실패한 네 아빠는 어때? 가장 안정적이지 않니? 어쩌면 할머니도 널 그리 크게 걱정하지 않으실지 몰라.


사회운동하느라 바쁘다며 할아버지 제사 때 자주 가지 못하는 네 고모부, 바로 나는 네 나이 때 어떻게 살아갔을까? 지금 가만히 앉아 곰곰이 생각해봐도 얼른 떠오르는 게 없구나. 그저 평범했기 때문일 거야. 남들처럼 교실에 앉아 공부하고, 수업 끝나면 친구들과 어울려 탁구장에 갔어. 가끔 원예반에 가서 화분을 갈아주거나 독서실에서 책을 보기도 했지. 모범생이라 그런 게 아니라, 그땐 다 그랬어. 네가 사는 곳처럼 주변에 논밭과 산이 있다면 그리 몰려갔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대도시잖아. 그래도 그땐 주변에 갯벌과 논밭이 조금 있었는데, 지금은 통 찾아볼 수 없구나. 그 점을 애석하게 생각한단다. 학교 파하고 돌아다닐 데가 없으니 말이다. 다 다음 세대를 생각하지 않고 개발한 이 시대 어른들의 욕심 때문이겠지.


50대 중반이 지나 벌써 40년이나 된 옛일을 떠올리는 건 쉽지 않네. 하지만 그때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을 지금도 만나니까, 그 친구들의 지금과 예전의 삶을 고모부의 삶과 견주어보고 싶구나. 청소년 이상으로 훌쩍 자란 아이들을 가진 고모부 친구들은 어릴 적 품었던 청운의 꿈이 지금 활짝 피어 있을까? 어때? 동희는 그렇게 생각하니? 물론 험난하지만 그 길로 한 발 한 발 아직도 다가서는 친구도 있긴 있지. 하지만 대부분은 가족과 탈 없이 살아가길 희망하면서 평범하게 산단다. 모두 대학은 졸업했는데, 경쟁이 치열했던 대학에 자랑스레 입학했던 친구도, 원치 않은 대학에 입학해 시무룩했던 친구도 마찬가지야. 네가 보기에 고모부는 어떠니? 자신의 길을 가고, 그 과정을 즐기는 거 같다구? 같은 게 아니라, 맞아!

 



그런데 그거 아니? 그 친구 중에 지금까지 제 전공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거. 살아가며 조금씩 자신의 인생 항로를 수정하더니 지금은 전공과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해. 그렇다고 후회하는 거 같지는 않아. 대학에서 공부했던 경험이 모두 소용없진 않겠지만 대학을 다니지 않아도 될 일을 하는 친구도 있어. 네가 보이에 생물학을 전공한 난 어떤 거 같니? 비슷하지 않아? 지금은 전공과 거리가 먼 사회운동에 시간을 쏟고 있잖아. 한데 대학에서 배운 생물학이 사회운동에 많은 도움이 되긴 돼. 아니 생물학을 선택하기 위해 고교 시절, 그 전 중학생 때 관심 가지고 활동했던 순간순간들이 다 도움이 된다고 느껴. 남이 아니라 고모부 자신이 그리는 그림대로 살아가기 때문일 거야. 하루하루가 즐거운 중학생 동희는 지금 너 자신을 위해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벌써 20년이 되었구나. 학교에서 들었는지 모르겠다만, 1992년 미국의 대도시 LA의 한인타운에서 폭동이 있었단다. 그 원인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야. 그 광란의 폭동 현장에서 뉴스 카메라의 인터뷰에 응한 한 소년이 자랑스럽게, “소리만 들어도 어떤 자동소총인지 다 안다고 말했다는구나. 고모부는 그 이야기를 책에서 읽었어. 저자는 소리만 들어도 어떤 새인지 알아야 할 나이가 아닌가?” 되물으며 안타까워하더라. 동희도 이해할 수 있겠지? 한데 동희야. 물론 동희는 자동소총 소리를 구별할 리 없겠지만, 넌 소리만 들어도 어떤 새인지 알 수 있니? 집 주변에 어떤 들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는지 둘러볼 기회는 있니?


자신의 주위에 어떤 생물이 사는지, 이웃은 어떤 일을 하는지, 그들의 관심사는 무엇인지, 알고 살기 참 어렵구나. 알아볼 엄두가 나지 않아. 삭막한 거야.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인 아파트단지가 지천인 여기는 당연한 듯 삭막한데, 산이 가깝고 시내가 흐르는 동네에 사는 동희는 알고 지낼 기회가 있는지 모르겠구나. 여기 대도시보다 훨씬 났겠지만, 중학생이 된 이후에 예전처럼 밖에 나가게 되지 않지? 하루하루가 즐거운 동희는 다른가? 여느 도시나 오로지 성장과 발전을 내세우는 마당인지라 학원이 번창하고, 사교육 열정이 커지는 만큼 예외는 없을 거야. 동희도 학원에 다니긴 하잖아? 재미없지? 효과는 있니? 성적은 오르냐구? 학원에 시간 빼앗기면서 동네 새로 이사 온 이웃이 누구인지 잘 모르게 되고, 차차 관심이 없어지지 않던? 그 집 아이가 공부 잘한다는 소리가 들리면 공연히 화가 나지?


동희네 가까운 곳에도 있을 텐데, 우리나라에서 아주 크다는, 무슨 마트라고 하는 대형 소매상가 있잖아. 그 마트를 소유하는 회장 집의 아이들은 행복할까? 우리나라 최고 갑부의 딸이 유학을 가서 열심히 공부하는 줄 알았는데, 자살했던 거, 동희는 기억하니? 그이는 성인이었고, 자살을 선택한 걸로 보아 결코 삶이 행복하지 않았을 거야. 대형 마트의 아이들은 어떨까. 그들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보고, 지금 실제로 행복할 수 있어. 한데, 그 대형 마트, 우리나라든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든, 사실 많은 이의 행복을 빼앗고 있단다. 낮은 가격의 상품을 많이 만들어내기 위해 자연자원을 마구 파헤치고 노동자의 월급을 깎거나 해고마저 서슴지 않거든. 네 아빠가 다니는 회사도 마트의 그런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을 거야.


모르긴 해도, 그렇게 대단한 부자의 아이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공부가 강요될지 모르겠구나. 들리는 소문이 그렇다 하던데, 그런 공부는 대단한 부자의 자녀들만 감당해야 하는 건 아니지. 서울 대치동의 땅값과 아파트 가격이 높은 건, 그곳의 수강료 비싼 학원을 다니면 이른바 일류학교라고 말하는 대학에 많이 합격하기 때문이라지? 맞을 거야. 그 지역의 학원 출신들이 좋다는 대학에 많이 합격한 건 사실일 거야. 하지만 말이다. 따져보면 그 지역 학원 출신들이 좋다는 대학에 가장 많이 불합격한 것도 사실 아닐까? 어쩌면 대치동은 행복보다 불행을 더 많이 만들어내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데 많은 이들이 미어터지게 제 아이를 대치동으로 보내는구나. 다 자식을 위한 길이라고 말하던데, 정작 제 자식의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물었을까? 동희는 엄마아빠가 아무리 강요해도 싫다 했을 테지? 그래서 고모부는 네가 미더워.


어떤 광고가 생각나. 책 읽는 젊은이를 더 없앤 것이 스마트폰이라고 고모부는 생각하는데, 그 스마트폰이 아직 세상에 나오기 전이었어. 버스를 타고 가던 여인이 남대문을 보고 무릎에 앉은 아기에게 지식을 알려주더구나. “남대문이 국보 1라고. 그러고 보니 그 광고, 남대문이 불타기 전에 나왔나 보네. 제 엄마에게 남대문이 국보 1호라는 지식을 받은 아기는 그럼 국보 2호는?”하고 엄마에게 묻더라. 그러자 그 광고 속의 주인공은 얼른 전화기로 검색해서 국보 2호가 무엇인지 찾더구나. 한데 이상하지 않니? 아장아장 걸을 정도의 아기가 국보 2호가 뭔지 묻는다는 거, 동희는 이해가 되니? “국보가 뭐야?”하고 물어야 정상이라 생각해. 하지만 그 광고를 보고 불편해하는 사람이 적은 우리 사회는 아기에게 국보 2호까지 주입하려 드나봐.


요즘 고등학교도 겉으로 전인교육을 표방하지만, 대학 입학을 전제로 공부하는 분위기에 젖은 지 오래되었으니 일단 접어두자. 중학교는 어떨까. “초등학교 교육의 성과를 바탕으로 학생의 학습과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 능력을 배양하며 다원적인 가치를 수용하고 존중하는 민주시민의 자질 함양에 중점을 두겠다고 했는데, 말이 좀 어렵구나. 그를 위해 다양한 분야의 경험과 지식을 익히자 했고 학습과 생황에 필요한 기초 능력과 문제 해결력을 바탕으로 창의적 사고력을 기르겠다.”고 하더라. 과연 그런다고 중학생인 너는 생각하니?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와 가치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다양한 소통 능력을 길러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과 태도를 갖추게 하겠다.”는 중학교 교육 목표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대학을 향한 수업에 질식돼 있는 건 아닐까?


기초 능력을 배양하고 기본 생활 습관을 형성하도록 개성을 추구하고,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하며 진로를 스스로 개척하는 사람을 양성하겠다.”는 초등학교는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고 공동체의 발전에 공헌하는 사람을 키우겠다.”는 교육 목표를 세웠는데, 몇 안 되는 학습과목의 선행학습이 그 목표를 가로막은지 오래된 게 분명해. “전인적 성장을 위한 기초 교육으로서, 유아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 능력과 태도를 기르는 데 중점을 두겠다는 유치원 교육도 엉망이 되었어.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경험보다 초등학교에서 두각을 발휘할 과목을 미리 배우려고 하지. ‘더불어 생활하는 태도창의적 표현보다 주입식 수업을, “일상생활의 문제를 스스로 궁리할 수 있도록가르치기보다 경쟁에서 승리하는 법을 알려주는데 중점을 두는 느낌이야. 유치원의 승자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앞서 나가고, 그래야 고등학교를 우수하게 졸업해 좋은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거야.

 



오늘은 일요일이다. 회의다 강의다 시간에 쫓겨 살다보니 글을 많이 쓰는 고모부는 원고가 늘 밀리는 편이야. 그래서 약속이 없는 일요일이면 가까운 도서관에 자주 가지. 늦은 아침을 먹고 천천히 도서관에 갔더니 남은 자리가 거의 없더구나.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새삼 느끼겠더라. 게다가 고등학교 중간고사 기간이라네. 개인 컴퓨터를 가지고 앉는 책상에도 고3이거나 재수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로 거의 만원이더군. 대입학원의 강의 동영상에 빠져 있는 학생도 많아. 밖에는 깊어가는 가을을 겨울로 재촉하는 차가운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 도서관 열람실이 북적이는 이유는 오직 하나. 대학 입학인 게야.


정말 바보 같은 질문인데, 대학에 왜 그리 많은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걸까? 공부를 좋아하는 젊은이가 그리 많은 걸까? 대학을 졸업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을 것으로 여기기 때문일까? 우리는 주변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고 자신의 일에 충실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는데, 대학 학력이 장래를 위해 안정된 직장을 잡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 된다고 믿기 때문일까? 통계를 보면 그럴지 몰라. 대학을 졸업한 이가 그렇지 않은 이보다 큰 기업에 취직이 잘 되는 건 사실일 거야. 아마 월급 액수도 더 많겠지. 하지만 말이다. 대학을 졸업한 고모부 친구 중에서 행복하게 첫 직장을 계속 다니는 이는 드물고, 정년이 많이 남은 상태에서 직장을 일찌감치 그만두는 사람이 훨씬 많아.


꿈과 이상을 펼치려 대학을 들어갔고, 그 연장선에서 잡은 직장이라면 그만두는 일은 참으로 아쉬울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은 거 같아. 다니던 직장을 결국 때려치우고 가게를 차린 친구도 많은데, 대학 졸업 여부와 아무 관계가 없는 가게를 차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 가게를 진작 차렸다면 더 좋았을 거라고 그 친구들은 말하곤 한단다. 무슨 뜻일까? 대학을 입학하지 않아도 괜찮았다는 얘긴데, 그는 아마 자신이 선택한 직장에서 보람과 긍지를 찾지 못했을 거야. 대학 선택도 그리 흔쾌하지 않았을 테고.


동희도 알다시피, 먼저 자신이 어떤 일로 평생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학교는 가르치지 않아. 자신의 내면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하는데, 많은 젊은이는 부딪히는 현실에서 좌절하게 돼.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찾고, 그 일에 몰두해야 행복할 텐데, 그러지 못한 거야.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미처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알아내려고 노력하지 못했어. 남을 의식하며 대학을 가느라, 취업을 하느라, 그랬겠지. 부모나 선생님의 체면이나 주위 평판에 자신의 내일을 내맡긴 결과였겠지. 직장에서 하루하루 보내는 일이 지겹고 싫은데, 만나는 이와 마음을 맞출 수 없는데, 어떻게 그 직장에 오래 견딜 수 있겠니?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느라 하는 수 없이 직장에 묶이지만, 더는 자신을 속일 수 없었겠지.


비록 취직 또는 결혼을 위한 준비 기관으로 퇴색했어도, 대학은 말 그대로 큰 공부를 하는 곳이란다. 고등학교나 직업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분야를 마음껏 배우는 곳이 대학인 게야. 물론 어느 정도 지식을 갖춘 이를 원하는 직장이 있고 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직장에서 활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자신이 평생 행복하게 공부할 분야를 찾는 곳이 대학이야. 하지만 대학이 인생의 모든 공부를 책임지는 곳은 아니야. 실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공부는 대학 이외에서 훨씬 많이 배우는 거 같아. 적어도 고모부의 생각이 그렇고, 경험도 그렇단다.


생물학으로 박사학위도 받았지만 환경운동하는데 학위가 그리 중요하지 않더라. 현장에서 보도 듣고 이야기하고 배우며 느낀 것이 훨씬 많았어. 또 그런 경험을 토대로 글을 쓰면서 더욱 많이 배운단다. 어쩌면 대학에 입학하지 않아도 충분히 그런 활동을 할 수 있었을지 몰라. 실제로 많은 이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환경운동을 열정적으로 하고 있지 않니? 어떤 대학인가, 무슨 학과인가보다, 자신이 찾아낸 공부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는 이야긴데, 요는 그런 공부는 굳이 대학을 들어가지 않아도 스스로 충분히 배울 수 있다는 거지.

 



자신의 길을 묵묵하게 나가는 친구와 선후배 이야기도 해볼까? 겉모습으로 자격을 부여하는 현실에서 다소 억울하거나 어려움을 겪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길이기에 행복을 누린다고 그들은 답해. 어렸을 때 선택한 자신의 첫 방향에 실패했어도 한발 한발 수정하면서 행복한 일상을 누리는 이도 있어. 그들은 시행착오가 인생의 발판이 되었다고 말한단다. 현실의 어려움 때문에 펼칠 수 없었던 자신의 이상을 나중에, 기회를 만들며 찾아가는 사람도 있어. 교수로 자리 잡은 게 아니니까 대학에서 제자를 키우지 못하지만 많은 곳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 강연과 토론을 하는 고모부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


난 네 사촌형들에게 미안하단다. 고모부가 자랄 때, 주변에 논도 밭도 많았고, 자연은 숨 쉬고 있었어. 자연에서 내달리며 호흡하고, 자연과 함께 어울리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지. 들판이 가깝고 산이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동희는 짐작하겠지만 지금은 아니잖니? 자연이 가까울 때 사람들은 자연의 이웃들이 받는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는데, 우리는 너무 오래 자연을 떠나 살고 있구나. 이제 자연의 소식은 물론 느낌마저 잃어버렸어. 그러다보니 우린 이웃의 고통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못해. 오직 속도와 목표만이 가치를 독점하는 사회에 살면서 우리는 이웃을 잃었나봐. 그래서 현재의 자기만 유별나게 여겨. 자신의 내일, 후손의 건강을 소중하게 살피지 못하지. 그 결과 우리 환경은 엉망이 되었구나. 이런 삭막한 환경을 물려줄 수밖에 없으니, 난 네 사촌형들에게 미안한 게야. 물론 동희에게도 미안하지.


고모부는 어려서부터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소설가를 한 분 알고 있다. 형제가 많은 가난한 집에서 막내로 태어났는데, 그이의 부모는 그를 믿었다는 구나. 공부를 거의 하지 않고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면서도 책을 읽었던 그는 신춘문예에 당선된 문필가답게 비평가의 호평을 받은 소설도 여러 편 발표했지만 지금은 환경운동을 해. 소설로 환경운동을 하다 이젠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글을 쓰려고 한다는구나. 그의 환경운동 방식이야. 물려줄 환경이 열악하다는 사실에 환경운동을 멈출 수 없다는 프랑스의 농부, 피에르 라비와 비슷한 생각이겠지.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사람을 만나며 농사를 지으면서, 생각이 깊어진 이들의 자연스런 행동이 아닐까 싶어.


요즘 지하철에서 책 읽는 젊은이를 만나기가 아주 어려워. 만화책 보는 이도 드물다니까? 어쩌다 교양서적을 읽는 젊은이가 보이면 반갑게 인사하고 싶어지지. 몇 해 전에 한번 보았어. 반가운 마음에 왜 읽는지 물어보려 했더니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얼른 알아듣지 못하더구나. 그는 과제물 때문에 읽는 거라고 말하더군. 이후 지하철에서 책 읽는 젊은이 찾는 걸 포기했어. 대신 스마트폰 만지작하는 젊은이는 부쩍 늘었지. 물론 스마트폰으로 깨알 같은 글도 보고 책을 읽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 글자들은 머리에 오래 남을 거 같지 않구나. 화려하게 변화는 스마트폰의 화면은 글쓴이의 마음까지 헤아려 주는 건 아닐 게야. 밑줄 긋고 앞뒤 페이지를 넘기며 읽을 때와 아무래도 다르지 않겠니? 동희야, 네 아버지처럼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면 장차 어떤 일이든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단다. 무엇보다 자신이 할 일을 잘 이끌게 도와주지. 자신감 같은 게 생기는 거야.


학생은 공부가 제일이라는 어른들의 말. 대체로 옳다는 거, 너도 알지? 하지만 내 내일의 그림을 스스로 그리는 공부, 이게 14살 때 가장 중요하다고 고모부는 생각해. 두려워할 게 없어. 공부하면서 새로운 걸 알았을 때 기쁘지. 물론이야. 하지만 더 기쁜 건, 내가 모르는 게 무엇인지 알았을 때란다. 그때 비로소 무엇을 어디에서 더 찾아야 하는지, 누굴 만나 어떤 이야기 나눠야하는지 알게 되지 않겠니? 구해 읽어야 할 책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거야. 시행착오 또한 공부가 돼. 왜 아니겠어?


어떤 아버지는 학교에 갇혀 있는 아이의 손을 잡고 자연으로 나가라고 제안하더구나. 아이를 그냥 자연에 방치하라는 거야. 자신에게 즐거운 게 무엇인지 스스로 알아가도록 놔두라는 뜻이지. 도시 뒷골목에서 자동소총의 소리를 구별하는 미국의 청소년과 들로 산으로 쏘다니며 새와 꽃을 구별하는 청소년, 어떤 아이의 내일이 건강할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지? 싫든 좋든,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대학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 현실에서, 동희는 중학교 다닐 때 많은 경험을 쌓았으면 좋겠어. 산과 들로 쏘다니는 거, 고모부는 적극 성원할게. 그리고 먼저 경험한 이의 책도 좋겠지. 요는 동희 인생의 그림을 동희가 그리라는 거야.


교육행정을 하는 분들은 중학생을 끼인 세대라고 하더구나. 하지만 고모부는 그때가 가장 야무진 시절이라 생각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열중할 수 있으니까 동희는 14살을 마음껏 즐기기 바란다. 다시 강조하지만,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직장이나 거래되는 결혼이 행복으로 안내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에 가든 아니든, 자신의 내일을 스스로 그려나가길 바란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길 권해. 재미와 감동으로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야지. 네가 그릴 네 인생의 하얀 도화지는 지금 넓게 펼쳐져 있단다. (<개똥 세 개> 중에서(북멘토, 2013.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