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10. 10. 24. 13:56

 

가을이 깊어지면서 강원도 산악의 단풍이 남녘으로 내려간다. 예년보다 도운 단풍을 따라 무더위와 기상이변에 지쳤던 이들이 산길과 들길을 걷는 것도 좋겠다. 전국은 바야흐로 걷기 열풍에 휩싸였다. 제주도 ‘올레길’이 앞장서자 지리산과 북한산도 ‘둘레길’을 열어 걷기 열풍을 이어준다. 허겁지겁 정상까지 떠밀려 오르지 않고 명산의 둘레 경관을 만끽하며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주민과 호흡하며 걷는 일은 가파른 언덕이 아직 부담스러운 어린 아이나 무릎이 성치 않은 노인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경원하지 않는다.

 

움직인다는 것. 사상가 이반 일리치는 일찍이 자동차는 스스로 움직일 권리를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현관 앞에 둔 자동차까지 걸은 뒤 서울을 가든 부산을 가든, 공항으로 가 파리나 뉴욕을 가든 나는 그저 의자에 앉아 주변을 살피기만 했다. 나머지는 기계가 이동시켜주었다. 그 자동차를 위해 사라진 자연은 얼마나 되며 아스팔트에 쏟아내는 온실가스의 양은 또 얼마나 되나. 애 어른 할 것 없이 하체가 부실해진 현대인이 동네 피트니스 클럽의 기계 위에 올라 걷거나 뛰지만 재미가 동반되지 않으니 이내 지친다.

 

1800년대 말, 영국의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 제물포에서 하선하고 서울까지 조랑말을 타거나 걸었다고 하는데, 지금 인천에서 서울로 걷기 매우 어렵다. 종횡으로 누비는 아스팔트가 걷는 길을 온전히 남기지 않았지만 소음과 오염된 먼지가 보행자의 건강을 오히려 부담스럽게 한다. 저녁이 지나 어둑해진 공원과 학교 운동장을 손까지 휘두르며 가족과 씩씩하게 걷는 이웃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리 재미있어 보이지 않는다. 기계에 둘러싸인 일상으로 무력해진 인천의 시민은 큰맘 먹고 제주도나 지리산을 찾아야 하거나 가까운 북한산을 찾아야 하나.

 

비록 녹지가 태부족하고 건물과 아스팔트가 넘치는 인천이지만 동네마다 자동차 소음이 덜한 길을 찾을 수 있다. 근대 역사의 유물과 이야기가 있는 곳, 인천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갯벌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 나무와 숲이 잘 어우러지며 근사한 경관을 보여주는 곳이 없을 리 없다. 시흥시에서 3방향의 ‘늠내길’을 그린벨트에 조성해 시민들의 발길을 유도하는 것처럼 인천도 구군 별로 시민이 걷고 싶은 길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나들길’을 조성한 강화군은 시민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연수구도 ‘둘레길’에 높은 관심으로 조성하려고 뜻을 모은다. 비류 백제와 소서노의 기억이 서린 문학산에서 숲 사이를 걸으며 연수구와 송도신도시, 그리고 멀리 시화를 전망할 수 있고 선학동에서 동막까지 승기천을 따라 걷다 봉제산으로 올라 청량산에서 다시 문학산으로 이어지는 16킬로미터의 장정이다. 걷는 중간 중간에 도심의 숲에 자생하는 독특한 나무 군락과 텔레비전에 소개된 적 있는 ‘돌 먹는 나무’도 볼 수 있다. 어머니 치마폭처럼 넒은 지리산 자락이나 햇빛을 머금는 바위가 아름다운 북한산과 같은 경관은 없어도 타는 듯 떨어지는 낙조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저기에 이야기가 있으니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뜻이다.

 

이맘때 지리산 인월면 시외버스정거장은 둘레길을 찾는 외지인으로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북적일 것이다. 한데 정작 인월면의 주민들은 왁자지껄 모여드는 탐방객에 호의적이지 않다. 둘레길에서 주민이 소외되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배낭에 가득 채운 음식과 음료수만 먹으니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지만 농사일로 바쁜 주민을 비웃듯 자기들끼리 어울리는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낀다고 한다. 주민을 제외시키는 길은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음미하며 걷는다는 본래의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스페인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주민이 순례자와 함께 호흡하므로 명성을 유지한다. 강화든 연수구둔 재미를 이어주는 이야기와 지역의 먹을거리, 그리고 주민과 더불어 걷는 길이어야 기억에 오래 남는다.

 

“걸음아 날 살려라!” 회색도시에 지친 시민들이 둘레길에서 되새기고 싶은 말이 아닐까.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둘레길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인천신문, 2010.10.28)

처음이니 관광객들이 배낭에 음식을 가져왔을 것입니다.
인월면 주민들이 성심껏 둘레길 탐방객들을 대하면 많은 사람들이
현지에서 식사등 관광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
올레. 둘레 할것 없이 너도나도 그럴싸하게 이름을 부쳐놓고 한적하고 호젓한길들을 한푼이라도 벌려는 욕심에 먼지나고 북적이도록 고쳐 놓았으면 그들이 감수해야 하는게 아닌지요?
요즘 누가 그런곳에서 식사 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새끼들 데리고 가면 더욱 더 싫어 할것인데 그저 길을 떠나려면 혼자 아님 두세명 맘 맞는놈들끼리 아무집에나 가서 밥 해달래고 잠좀 자자 들어가 말동무도 해주고 ...뭐 그렇게 다니는게 여행이지 이건 뭐 조사하는것도 아니고 감사 하는것 처럼 몰려 다니면서 잘 닦인길을 다니는면서 닳고닳은 사람들을 만난데서야 .......그래도 길이니 가보기는 하지요.

 
 
 

도시·인천

디딤돌 2010. 7. 14. 16:24

 

남쪽 지방에 장맛비가 예보된 지난 주말. 그린벨트로 뒤덮인 시흥시에서 요즘 유행하는 걷기에 나섰다. 그 길은 ‘늠내길.’ 13킬로미터의 늠내길은 작은 언덕을 여러 차례 아기자기 넘으며 수도권 그린벨트의 숲을 만끽하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중간 중간에 쉬더라도 예닐곱 시간을 걸었으니 내심 힘겨웠을 테지만 서로 기운을 북돋던 10대에서 70대까지 30여 명의 일행은 모처럼 숲 사이에서 도시락을 꺼내 먹는 즐거움을 나누고 이마의 땀을 씻어주는 산바람에 환호할 수 있었다. 다음 일정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고.

 

가족과 친구, 그리고 연인이 꾀꼬리와 뻐꾸기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걷는 즐거움. 그 즐거움을 인천과 가까운 시흥의 숲길에서 만끽하는 가운데 더욱 기뻤던 건, 한 꼬마가 우리에게 인사했다는 사실이다. 평소 걸을 기회가 거의 없는 도시인에게 늠내길이 지나치게 높거나 가파르지 않아도 10여 킬로미터가 넘으니 아무래도 버겁다. 수다 떨다가도 지치면 말없이 터덜터덜 앞만 보며 걷게 되는데, 그때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이를 피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귀찮아진다. 바로 그럴 때, “수고하십니다!” 인사 건네며 다시 활기를 찾는 사람들. 산길은 그래서 좋은데, 한 꼬마가 밝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넨 게 아닌가.

 

철근시멘트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점철되는 도시라는 곳. 그 도시의 후미진 골목에서 시민들은 지나치는 이와 눈을 마주하기 극도로 꺼린다. 대도시일수록 그렇고 녹지가 부족할수록 그렇다. 바로 인천이 그렇다. 생각해보라. 자신을 바라본다는 사실 만으로 욕설이 횡행하는 곳이 어디인가. 적어도 녹지는 아니다. 숲길은 더욱 아니다. 고층빌딩이 즐비한 도시의 뒤편이거나 술집에서 그런 폭력이 난무한다. 언어폭력에서 그치지 않는다. 문을 걸어잠가도 부시고 들어와 성폭력을 자행하고, 전화를 길게 건다는 어른의 핀잔에 칼부림하는 자들이 활보한다. 도시의 거리에서 어깨를 부딪치는 사람들은 서로 모른다. 군중 속의 외로움. 회색도시는 배려할 이웃이 없다. 삶이 뿌리 내리지 않은 익명의 공간이다.

 

익명의 도시에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사심 없이 도와줄 이웃은 가까이에 없다. 뼈대를 치우면 사람이 위아래 좌우로 사람이 빼곡한 아파트단지에서 주민들은 식구 이외에 마음을 함부로 터놓지 못한다. 공연한 오해살 수 있고 사기당할 두려움도 크다. 응급환자를 위한 기관이 있지만 살갑지 않고 사회복지 시설이 있지만 따뜻하지 않다. 운 좋으면 박제된 친절을 은행과 대형 상가에서 멋쩍게 만나지만 흔쾌하지 않다. 규정과 일정에 치이는 담당자들은 고객의 사정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시간과 편의를 제공하는 게 아니다.

 

어떤 생물보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이 인간이건만, 요즘 사람은 내 옆에 있는 다정한 이웃의 존재를 깨닫지 못한다. 목표에 도달해야 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수록, 불안감을 조성하는 경쟁이 치열할수록, 이웃을 돌아보지 못한다. 타인의 도움과 배려 없이 하루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으면서 내 옆에 있는 이웃의 희로애락을 공유하지 못한다. 속도와 목표를 숭상하는 도시가 그런 구조를 강요했다. 뒤처지면 돌이킬 수 없다는 불안감이 지배하는 회색도시에서 시민들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나락으로 곤두박질칠 가능성을 항상 끌어안고 살지만 이웃의 외로움과 고통을 외면할 수밖에 없으니 행복하지 않다.

 

낳은 아기를 산후조리원에 맡겨야하는 부부보다 친정엄마나 시어머니가 보살펴주는 부부가 더 행복하다. 엄마와 아빠가 보살피는 아이가 바쁜 부모 대신 할머니가 키우는 집의 아이보다 행복할 것 같다. 식구와 친척의 관심 속에 자라면서 동네의 언니와 오빠, 누나와 동생이 마을에서 어우러질 수 있는 아이의 행복이 그렇지 못한 아이보다 훨씬 행복할 것이다. 그런 동네라면 이웃에 삼촌도 많고 이모도 많다. 옛 이야기 들려줄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많을 것이다. 에어컨이 시원한 실내에서 국영수 과탐 사탐만 파다 엄마 아빠 없을 때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는 청소년에 비해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 클 게 분명하다.

 

사이코패스와 같은 범죄는 삶이 뿌릴 수 없는 토양에서 쉽게 배양된다. 거리를 감시하는 카메라가 도시의 안전을 도모하는 건 아니다. 시민의 삶이 마을에 뿌리내릴 수 있는 도시라야 한다. 이웃과 희로애락을 나눌 수 있는 도시라야 시민들은 마을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도시의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 어려울 때 도움을 나눌 수 있는 이웃과 함께 삶을 뿌리내릴 수 있는 마을을 도시에 만드는 거다. 규정에 의한 사회복지와 보상을 요구하는 친절이 아니라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며 개성을 배려하는 친절과 도움으로 따뜻한 안전망이 돈독한 사회를 만들자는 거다. 바로 녹색도시다.

 

이웃에는 앞뒤와 위아래의 집 식구만이 전부가 아니다. 내 삶을 지탱해주는 농민과 상공인, 세탁소와 배달 직원도 당연히 포함되어야겠지만, 맑은 산소를 제공하는 나무와 풀, 귀를 싱그럽게 하는 아파트 단지의 직박구리와 여름이면 찾아오는 숲속의 꾀꼬리도 들어가야 한다. 내게 익숙한 언어와 생활문화를 전해준 조상의 삶은 아니 그럴까. 주변의 생태계는 물론이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역사와 문화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거다. 그런 도시를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 똑똑한 전문가의 멋진 아이디어를 밀어붙여 완성되는 게 아니다. 사회 구성원이 팔 걷고 함께 나설 때 만들어갈 수 있고, 그런 도시라야 후손에게 자부심으로 물려줄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낙후되었다면서 요구하는 개발은 주민들의 삶과 어떤 관계를 맺을까. 새로 지을 거대한 아시안게임 주경기장은 적자를 회피하기 위해 온갖 상업시설을 유치할 텐데, 빚을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처지의 인천에서 시방 이웃의 행복을 증진할 수 있을까. 아시안게임 후 놀릴 가능성이 높은 선학동의 하키 경기장은 그린벨트를 반드시 허물어야 하나. 갯벌을 매립하고 들어선다는 151층 쌍둥이빌딩은 일대에 거대한 그늘을 드리울 텐데, 시민들은 덮어놓고 환영하란다. 송도11공구는 어렵게 둥지를 친 세계적 희귀종인 우리의 이웃, 저어새의 터전이건만 매립이 예정돼 있다. 강화 일원도 갯벌은 어패류의 산란장이자 수도권의 산소탱크이건만 조력발전으로 희생시키겠다고 벼른다. 녹지가 태부족한 인천의 유일한 외곽의 S자 녹지축은 고속화도로에 뜯기고 찢길 예정이란다. 이런 공간에서 나와 이웃의 삶은 뿌리내릴 수 없다. 남보다 많은 돈을 빨리 벌어 다른 곳으로 떠나려 한다.

 

남에게 잘 보이려 하거나 비싼 가격으로 팔아치우려 드는 건지, 세간에 ‘명품도시’를 운운하는 자가 많다. 아무나 들고 다닐 수 없는 명품 핸드백처럼, 화려하게 솟아오른 명품도시는 모든 사회 구성원의 행복을 보장할 것 같지 않다. 두바이가 화려할 수 있었던 건 여권을 빼앗긴 채 착취되는 가난한 이웃을 그늘에 감췄기에 가능했다. 한데 그 화려함은 거품을 유지하게 하는 돈이 마르자 한갓 신기루에 불과했다는 게 드러났다. 인천이 추구하는 명품도시의 진면목은 무엇인가. 내 건강한 삶을 보장해주는 시민 모두의 행복을 진정 보장하는 것인가. 내일의 인천시민인 후손의 삶을 뿌리내리게 배려하는가.

모두 잘 알듯, 인천은 대다수의 시민이 사는 마을 주변에 녹지가 아주 부족하다. 건물이 하늘을 가리고 아스팔트가 걸음을 차단한다. 외곽의 녹지와 이어지는 도심의 녹지축이 보잘것없는 만큼 마을을 찾아오는 생태계의 이웃도 매우 드물다. 이웃을 안심하고 만날 공간도 길도 빈약한 인천에서 시민들은 숨이 막힌다. 떠나고 싶다.

 

녹지가 필요하다. 부자들만 즐기는 골프장은 물론 아니다. 살충제를 뿌리는 공원녹지에서 그칠 수 없다. 소통에 목말라하는 이웃과 공유할 수 있는 녹지를 말한다. 다행스럽게 인천에도 제주도의 ‘올레길’이나 시흥의 ‘늠내길’과 같이 시민들이 걷는 이른바 ‘둘레길’을 만들겠다고 62지방선거에 당선된 지방자치단체장마다 약속을 했다. 어떤 개성을 가진 ‘둘레길’을 어디에 어떻게 만들 것인지 궁금한 만큼, 만드는 과정에 지역의 주민들이 민주적으로 참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웃과 천천히 걷는 길은 오늘은 물론이고 내일까지, 인천시민의 삶에 뿌리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길은 광장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웃을 느끼고 배려하면서 아이와 노인들도 안전하게 걸고 만나 속마음 털어놓을 수 있는 광장을 녹색으로 활짝 열어야 한다. 이웃의 개성이 배려되는 녹색의 광장과 둘레길. 다음 세대 시민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는 도시의 행정이 되어야 한다. 눈이 마주치는 낯모르는 이웃에게 어린 꼬마도 스스럼없이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인천을 위해. (인천in, 2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