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4. 7. 25. 00:59


 동그란 물건이 튀기며 다가오거나 땀 뻘뻘 흘리며 몸 부딪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므로, 체육시간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공 여러 개 돌아다니는 연병장에서 떼로 붙잡고 늘어지며 공을 뻥뻥 차는 군대축구에 진저리를 쳤고. 제대하고 그런 이야기를 꺼낼 일도 없었다. 그런다고 축구경기의 구경까지 싫어하는 건 아니다. 내놓으라 하는 선수들이 뛰는 월드컵이라면 특히.


광화문으로 나가지 않았을 뿐, 친구들과 선술집에서 우리 팀 선전하는 모습에 열광했던 2002년 월드컵 이후 2006년 독일 월드컵까지 별 생각 없이 세계 수준의 축구에 매료되었는데,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부터 축구 그 이면에 관심이 생겼다. 빈부격차가 유별난 지역에서 거액의 예산을 들이며 떠들썩하게 치루는 월드컵은 누구의 행복에 우선할까. 경기장 신축과 운영에 들어가는 예산 때문에 소외되는 가난한 계층은 분명히 아닐 텐데, 그들도 열광의 세계로 유인되는 모순이 궁금했다.


축구에 대한 시시콜콜한 역사와 다양한 일화를 특유의 촌철살인으로 엮어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축구, 그 빛과 그림자를 펼쳐야 남아공 월드컵에 빼앗기는 마음의 빚을 어느 정도 보상하겠다 싶었다. 스포츠가 산업화될수록 즐거움에서 의무로 치달아가는 상황에서 월드컵은 그 첨병이다. 움직이는 광고판인 선수들은 차라리 발노동자라고 그 책을 추천한 라틴 문화 연구자 고 이성형 교수가 지적했지만, 어쩌면 고액 연봉에 구속된 노예일지 모른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일본팀을 좌절하게 만든 코트디브아르의 디디에 드록바가 그랬다.


주고받는 달러의 크기로 평가하는 GNP 순위에서 밀려 가난하다 낙인찍힌 코트디브아르는 내전에 휘말려 있었다. 그때 드록바는 무릎을 꿇고 전쟁 중단을 고국에 호소했고, 이후 평화를 되찾았다고 방송은 전한다. 공만 잘 차는 게 아니라 애국심이 절절한 진정성에 내전 세력까지 감화된 결과라는데, 그런 드록바도 자본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남아공 올림픽 개최 직전, 일본과 가진 평가전에서 팔이 부러졌어도 그 발노동자는 쉴 수 없었다. 자신의 발을 감싼 신발 회사와 맺은 계약 때문이었다,


기다리던 카메라 앞에 풀 죽은 얼굴로 귀국 인사하는 선수와 감독에게 엿사탕을 냅다 던진 이른바 광팬은 우리나라의 축피아를 비난했다는데, 16강에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와 다행이라고 말하는 어떤 이는 우스개 반으로 홍명보 감독과 선수들이야 말로 애국자라고 평한다. 세월호 참사로 가슴 휑한 시기에 열광할 수 없는데, 일찍 돌아오지 않았냐는 거다. 사실 축구에 문외한인 사람의 눈에도 이번 월드컵에서 보인 우리의 선전은 틀림없지만 한계가 보였다. 1983년 박종환 감독의 청소년 대표와 2002년 히딩크 감독의 한일 월드컵은 예외였다. 예외를 일반화하는 건 옳지 않다.


신체 조건과 시설 수준이 낮아 아시아 최강을 자처하는 우리가 월드컵 본선무대에서 빛을 발하지 못하는 건 아닐 것이다. ‘축피아여부는 알지 못하지만, 따지자면 숱하게 많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걸 분석할 능력도 마음도 없고, 우리 축구가 세계를 석권하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승부에 집착하면서 제도화되고, 산업화되면서 선수들이 노예화되는 스포츠를 경원할 따름이다. 요컨대 다시 즐거움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A매치라 하는 국가 사이의 경기도 마찬가지다.


국제경기는 갈수록 경쟁적이다. 승패가 명예 뿐 아니라 돈과 연계되는 만큼 자본의 의도가 도사리고 있다. 스포츠복권은 애교에 불과하다. 여기저기 신축하는 경기장과 그 경기장의 흑자 경영을 위한 양판점 때문에 주변 상권이 피폐해지는 일, 경기장을 위해 땅값이 싼 지역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가난한 이웃의 터전이 사라지는 일은 자본의 의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월드컵을 준비하던 브라질과 남아공이 그랬지만 우리도 마찬가지다. 곧 개최할 제17회 아시안게임을 위한 신축 경기장들은 논밭을 짓밟았다. 그 땅을 투기한 자들을 배불렸지만 경기 이후의 대책은 전무하다.


14회 아시안게임을 치룬 부산시의 담당자는 인천시에 조언했다고 한다. 비공식적으로. 경기 마치면 부수라고. 하지만 부술까? 부수는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그 준비는 없을 것이다. 무모한 개발로 천문학적 빚에 시달리는 곳이 인천이다. 재정 형편 때문에 대회 자체를 반납하라는 여론이 비등했다는 걸 기억하는 인천시는 부술 때 빗발치는 민원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신축 경기장 때문에 터전을 잃은 시민들, 그 땅에서 재배하던 농작물을 잃은 우리는 재정 악화를 부추기는 경기장을 맥없이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


브라질 열기가 식자마자 세계와 우리는 월드컵 지역예선으로 불 지피려 애쓸 텐데, 4년 뒤에는 열사의 땅 카타르에서 한달 넘게 열기를 내뿜을 것이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렇지, ? 그 경기장에 에어컨을 컬 거라고? 섭씨 50도를 오르내리는 한여름을 피한다 해도 에어컨을 얼마나 가동해야 조금이라도 시원해질까? 실내경기장이라 해도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겠고, 실내가 아니라면 발노동자가 감당해야 할 더위는 가히 살인적이리라. 신축 경기장들을 86만 국민이 채울 수 없으니 관광객이 쇄도해야 한다. 언제까지? 지구온난화는 국제축구연맹의 관심사가 아닌 게 분명하다.


국제축구연맹의 부정부패가 얼마나 끔찍한지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독일의 스포츠 전문기자가 피파 마피아를 써야 했는데, 그 방면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라고 다를 거 같지 않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다수의 위원들이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승인할 수 있을까? 하루 300톤의 고농도 오염수를 태평양으로 내보내야 하는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6년 뒤 조용해질 리 없다. 그걸 모르지 않았을 위원들의 횡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자본의 노예에 불과한 선수의 건강 따위는 염두에 없었을까? 마음 놓고 열광하지 못할 관중은 정권의 노예인가.


국제경기 이면의 악취가 진동하는 이때, 인천 아시안게임에 도무지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 아시안게임 이후 열릴 인천 장애자 아시안게임의 상징은 주걱 주둥이를 가진 저어새인데, 맙소사! 인천시는 시방 멸종위기에 몰린 저어새의 마지막 생존 기반인 송도신도시 인근 갯벌을 맹렬하게 매립 중이다. (작은책, 2014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