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8. 10. 14. 01:11

 

소쩍새는 “소쩍, 소쩍” 두루미는 “두룩, 두룩” 하고 우니, 따오기는 “따옥, 따옥” 하고 울까. 192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한정동의 시 ‘당옥이’를 노랫말로 윤극영이 작곡한 동요, ‘따오기’는 처량하게 “따옥, 따옥” 운다고 노래한다. 그래서 그런 줄 알았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따오기와 그 울음소리. 하지만 원로 조류학자 원병오는 까마귀 비슷하게 “과아, 과아”하고 운다고 주장한다. 까마귀는 “까악, 까악” 하고 우는데.

 

윤극영의 ‘따오기’는 슬프다. 보일 듯이 보이지 않거나 잡힐 듯이 잡히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다. 내 어머니와 내 아버지가 가신 나라로 떠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라를 빼앗긴 서러움을 표현한 ‘따오기’에서 따오기는 바로 우리 민족이다. 조선의 주권은 일제에 빼앗겨 해와 달이 뜨는 머나먼 나라로 갔다. 그 서러움을 노래한 시인은 따오기를 부모를 여읜 ‘당옥이’라 했다.

 

우리나라에 아주 흔했던 따오기는 1925년에 접어들 무렵 드물어졌나보다. 왜 갑자기 사라진 걸까. 1892년 영국의 C. W. 캠벨은 “한국의 따오기는 쉽게 총의 밥이 되는 멍청한 새”라고 국제조류학술지에 기록한 사실을 미루어, 전문가들은 사냥을 주요 이유로 꼽는다. 비슷한 시기, 서울 북부에서 50마리의 따오기를 보았다는 폴란드인 탁자노우스키의 기록이 남아있는 걸 보아, 아무래도 외세의 집합소로 전락한 조선 땅에서 서양 포수들에 의해 사라졌을 개연성이 높다.

 

총으로 동물을 죽이는 취미를 고상한 스포츠로 위장한 제국주의자들이 남의 나라의 금수강산을 난사하자 흔하던 따오기는 급속히 줄어들었다. 러시아의 시베리아는 1963년, 일본은 1980년 이후 자연에서 관찰한 기록이 사라졌고, 우리나라도 더는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1966년 판문점 근처와 1974년 대성동 비무장지대에서 보았다는 기록 이후, 아무것도 없다. 실체는 사라지고 동요만 남은 셈이다.

 

그나마 따오기는 다행인가. 미국 동부에 서식하던 나그네비둘기는 30억 마리에서 멸종하는데 불과 100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하니.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리지어 사흘 이상 머리 위로 날았던 나그네비둘기. 총알 하나로 80마리를 잡을 정도였다는데, 잠깐 사이에 달구지가 꽉 차도 총동원된 학살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고 멸종의 역사는 전한다. 작대기만 휘둘러도 하루에 1000마리 이상 잡을 수 있었던 나그네비둘기는 북미원주민들이 경외하는 가운데 수만 년 이상 북미대륙을 이동했을 테지만, 마지막 집단이 사라질 때까지 광란의 포획은 계속되었고 미 정부는 방관했다. 이내 늘어나리라 믿었던 게지만 나그네비둘기는 속절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1880년대 한 무리의 수가 수백만 마리로 줄었는데, 그 정도로 지속적 번식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쉽게 총의 밥이 될 정도로 흔했다 보일 듯이 보이지 않게 되자 우리 정부는 1968년 따오기를 황급히 천연기념물 198호로 지정했고,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은 멸종위기종 적색리스트에 등재, ‘각별하게 위기에 처한 종’으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멸종 직전에 보호대상종으로 선포한 것이지만 그런다고 개체수가 회복되는 건 아니다. 중국과 일본에서 인공으로 증식하는 개체를 제외하면 중국 산시성(山西省)에 분포하는 20여 쌍이 전부일 거로 조류학자는 조심스레 추정한다. 네덜란드 군인의 총소리에 대한 호기심을 참지 못해 몰려들다 16세기 말에 멸종된 모리셔츠 섬의 못 생긴 새, 도도와 달리 겨우 살아남은 20쌍이 인공증식의 가녀린 원천이다.

 

예쁘다기보다 아름답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따오기는 현재 중국에서 국조(國鳥) 대접을 받는다. 전체적으로 붉은 기운을 감도는 흰색의 몸은 70센티미터가 넘고, 날아오를 때 화사하게 드러나는 날개 안쪽의 붉은 빛과 바람에 나부끼듯 수평으로 늘어뜨린 뒷머리의 흰 깃은 가볍지 않은 기품을 과시하지 않던가. 붉은 이마와 얼굴에서 길게 이어지는 검은 부리는 아래로 완만하게 구부러지며 날카로운데, 끝이 붉은 색이다. 백로보다 조금 짧은 다리를 천천히 움직이며 논바닥에서 먹이를 찾는 모습은 천적 앞이라 해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으려는 자세를 엿보이게 한다.

 

그 점이 포수에 노출된 따오기를 위기로 몰았을 게 틀림없다. 추수철 날아와 모내기 준비하는 봄까지, 논 가장자리를 서성이며 농사 방해되는 곤충을 쏙쏙 잡아먹는 따오기는 농경사회에서 고마운 존재였을 것이다. 몸집이 크고 부리가 날카로우니 천적이 별로 없고, 농민이 해코지하지 않으니 바쁠 게 없는 따오기는 제국주의가 확산되기 전까지 우아한 자태를 수천 년 이상 뽐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제국주의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타오기는 급격히 자취를 감췄고, 한정동은 ‘당옥이’라는 시를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는 10월 28일에서 8일 동안, 경남 창녕에서 ‘건강한 습지, 건강한 인간’을 주제로 ‘제10차 람사협회 당사국총회’가 개최된다. “지구 차원의 습지보전 상황을 평가하고 공동의 정책을 개발하는” 것이 목적인 람사총회가 열리는 창녕 우포늪은 시방 정신 차릴 틈이 없다. 30년 전 우리 땅에서 사라진 따오기를 부활시켜야 하는 사명을 가진 중국 국빈 한 쌍이 람사총회를 준비하는 우포늪에 정착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우리와 중국의 전문가는 만전의 준비를 마쳤고, 10년 뒤 대가족으로 불어나기를 기대한다. 중국은 자연에서 생포한 7마리에서 1000여 마리로, 중국의 따오기 한 쌍에서 시작한 일본은 10년 만에 100여 마리로 늘었다지 않던가. 중국과 일본의 서식지보다 우포늪의 생태계가 따오기가 정착하기에 우수하다니, 정성껏 보살핀다면 우리도 충분히 증식시킬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겨우 한 쌍이다. 번식에 성공하더라도 근친교배에 의존해야 하니 유전적 다양성이 매우 빈약할 수밖에 없다. 또한 우포늪 이외의 자연은 아주 위험하다. 농약으로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기왕 들어온 따오기, 예산이 뒷받침되는 한, 최선을 다해 증식시켜야 마땅하겠지만 자연에 방사하려는 계획은 참아야 하지 않을까. 자연에서 짝을 지어 스스로 생존할 만큼 유전적 다양성은 확보되지 못한 마당이므로. 절종되지 않도록 개체수를 충분히 늘리면서 따오기가 생존 가능한 자연스런 습지를 확보해 증식 장소를 넓히는 것이 차라리 바람직한 순서라고 생각한다. 언론 앞에서 자연방사라는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고, 기왕 우포늪에 들어온 따오기, 앞으로도 계속 보일 듯 보이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물푸레골에서, 2008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