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8. 4. 14. 06:20
 

참나무는 많은 천적을 거느린다. ‘참’자를 가진 나무답게 수십 종류의 곤충이 생명을 이어간다. 가을철 매달린 도토리를 떨어뜨리려고 발길질하는 사람도 한때 먹여 살렸지만, 먹을 걸 지천으로 수입하는 지금은 아니다. 장수하늘소는 수액을 빨아먹고 멧팔랑나비는 어린잎에 알을 낳아 애벌레를 키우며 땅강아지는 뿌리를 갉아먹는다. 품이 넓은 우리 생태계의 오랜 기반, 참나무 덕분이다.


참나무는 새들도 먹여 살린다. 애벌레가 잎을 갉으며 무럭무럭 자랄 때 나뭇가지 사이에 둥지를 친 새들은 막 부화한 어린 새끼들을 먹여야 한다. 숲이 연두색으로 번질 무렵, 잎사귀를 충분히 다는 참나무도 모든 애벌레를 떠맡지 못한다. 내일을 기약하고 싶은 곤충들은 알을 많이 낳지 않던가. 그 알이 모두 나비나 나방이 될 만큼 당해낼 재간이 없을 것이다. 다행스럽게, 새들도 알을 많이 낳는다. 어미가 품고 밤새 보살핀다 해도 여분이 있어야 안심인 법. 그만큼 애벌레가 많아야 한다. 새들은 그렇게 알과 새끼를 노리는 누룩뱀을 배려해야 한다. 싫든 좋든.


5월의 새들은 부쩍부쩍 자라는 새끼를 먹이려니 여간 바쁜 게 아니다. 순식간에 어미만큼 크는 새끼들의 성화는 잠시도 쉬지 못하게 한다. 노랑턱멧새도 팔색조도 먹성 좋은 새끼를 감당하려면 숲속을 헤매야 한다. 저보다 더 크게 자란 뻐꾸기 새끼를 키우는 붉은머리오목눈이도 정신없기는 마찬가지다. 덕분에 숲은 안정된다. 남은 잎사귀로 태양 빛을 받는 나무들은 꽃 피고 씨앗 맺을 것이다. 잎이 만든 영양성분을 줄기와 뿌리로 내리면서 키도 커지고 뿌리가 땅 속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잎사귀를 갉아먹는 애벌레는 눈에 잘 띈다. 뱀눈 닮은 무늬로 어미 새를 놀라게 할 수 있지만 잠깐이다. 잎을 쫙쫙 벌리는 새끼들이 모성애를 자극하는 한, 어미 새는 애벌레 무늬 따위에 더는 속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나무껍질 안에서 영양물질을 가로채는 곤충의 애벌레다. 웬만큼 눈이 밝은 새들도 두툼한 나무껍질 속에서 꼼지락거리는 벌레까지 집어낼 수 없다. 그래서 5월의 나무들은 가렵다. 가느다란 산란관을 깊숙이 박아 줄기나 뿌리에 알을 낳는 곤충까지 먹여 살리느라 고통을 참아야 한다.


깊은 산, 밟히는 낙엽 소리를 줄이며 키 큰 나무 사이를 천천히 걸어갈 때, 숲 저편에서 이따금 반복되는 명료한 소리. ‘따다다닥, 따다다닥’ 딱따구리다. 나무들은 일제히 귀를 기울인다. 어디 쯤 날아오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거친 바람이 불어야 겨우 긁을 수 있는 나무에게 딱따구리는 구세주다. 굼틀거리는 애벌레를 용케 꺼내지 않던가. 따다다닥 노크하면 얼른 문을 열어주려는데 아까부터 커다란 카메라 들쳐 메고 쌍안경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사람이 성가시다. 애벌레가 예 있다고 알려주고 싶은데, 딱따구리도 사람을 보통 싫어하는 게 아니니.


앞뒤 두개의 날카로운 발톱으로 나무껍질을 단단히 부여잡고 꼬리로 몸을 지탱하는 딱따구리는 나무를 연실 두드린다. 먹이를 찾으려고 두드리고 다가올 짝에게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 따다다닥 두드린다. 오색딱따구리와 까막딱따구리 수컷은 여기저기 나무에 작은 구멍을 여러 개 파고 암컷을 유혹한다. 암컷이 그중 한 군데 마음에 들면, 함께 집을 짓는다. 드디어 짝을 이룬 것이다. 3월부터 보름 동안 딱따구리 부부는 나무를 쫀다. 안에서 쪼아낸 부스러기는 주위를 살피며 사방에 뿌려댄다. 새끼가 깨어날 즈음이면 부스러기의 흔적은 사라질 것이다.


4월에 서넛에서 대여섯 개의 알을 낳은 딱따구리는 모성애로 충만돼 있다. 줄기를 비스듬히 오르며 연실 두드린다. 두드리면 안다. 어디에 애벌레가 숨죽이고 있는지. 위치를 확인한 딱따구리는 작심한 듯, 머리를 제 가슴 뒤로 한껏 제치고, 따다다닥! 단단한 부리로 전해지는 대단한 탄력을 연거푸 받은 나무는 줄기를 열었고 딱따구리는 긴 혀를 내밀어 애벌레를 쏙 집어낸다. 혀끝에 갈고리 같은 가시가 달려 좁은 공간에 숨은 애벌레는 어김없이 나무줄기를 빠져나가고, 딱따구리 새끼들은 어미를 기다릴 것이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아주 짧다. 1000분의1 초? 총알보다 2배나 빠르다는데, 1초에 15번 이상을 쪼아대니 나무줄기 속의 애벌레는 다가오는 따다다닥 소리에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으리. 그렇게 나무를 쪼아도 딱따구리는 머리가 성하다. 충격을 줄이는 장치가 있을 터. 지하자원을 탐하는 사람은 그 재주를 흉내 내려고 적지 않은 딱따구리를 희생시키지 않았을까. 그런 사람의 관심 쏟을 여유가 없는 딱따구리는 목표 지점을 가장 짧은 거리로 정확하게 쫀다. 직각이다. 각도가 조금만 어긋나도 머리에 오는 충격을 피할 수 없다.


우리 숲에서 자주 눈에 띄는 오색딱따구리와 큰오색딱따구리를 구별하는 건 카메라 든 사람들의 관심사일 테고, 크낙새와 까막딱따구리를 천연기념물 197호와 242호로 지정한 사람이 딱따구리에게 미더울 리 없다. 드물어져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면 사진 찍기에 몰두하기보다 숲의 다양성을 보전하는 게 훨씬 중요하건만, 사람들은 유전가가 똑같은 나무들을 양팔간격으로 심는다. 그래서 소나무는 솔잎혹파리와 재선충에 감염된 것인데 사람은 독한 살충제를 뿌리거나 산을 통째로 들어내 천적이 드문 외래 나무를 심는다. 숲은 단조로워진다. 딱따구리는 애벌레가 사라진 숲을 떠날 것이다. 살충제가 없는 곳으로.


딱따구리처럼 어려서 옷장이나 상자에 들어가 놀던 사람들은 밝고 시끄러운 도시에 지나치게 노출돼 어지럽다. 이웃을 배려하지 않는 풍토에서 가슴은 응어리진다. 지친 시민들이 딱따구리 소리를 가깝게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가슴의 응어리가 ‘따다다닥’ 풀릴 텐데, 머릿속의 가려움증이 그 순간 사라질 텐데. 약수터 몇 군데만 자제해 산에 물이 흐르면 가능할 텐데. 매미 시끄럽다고 천적 거느린 참나무 베어내고, 그 자리에 일본잎갈나무를 심는 사람들, 외롭지 않을까.(전원생활, 2008년 5월호)

산에 자주 다니는 사람으로서 딱다구리의 나무쪼는 소리는 항상 반갑습니다. 요즘은 청계산이던가..서울근교산에서도 딱다구리 소리가 들리더군요. 그래서 더욱 반갑습니다. 오랫만에 편한글(?) 읽고 갑니다. 건강하십시요 ^^*
황사때문에 창문을 닫고 지내야하는 봄 날에는 '사람 마음에는 자연이 들어있다'는 말이 더 생각납니다. 글 읽을 때마다 생명을 살리려는 님의 절실함이 느껴지고 생태계의 많은 것 배우곤 합니다..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