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0. 10. 31. 23:08

 

1862년 요절한 미국의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의식주를 체온 유지의 방식으로 해석했다. 동물 대부분은 체온 유지를 위해 먹이와 거처가 필요하지만, 사람은 옷을 더 요구한다고 지적한 것인데, 그는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간소한 옷과 가재도구로 2년을 버틴 적 있다.

 

요즘 사람의 의식주는 소로가 살던 시절과 비교할 수 없게 화려하고 복잡해졌다. 사냥한 동물을 먹고 가죽을 벗겨 입으며 서식지를 넓히는 데에서 멈추지 않았다. 커다란 초식동물을 울타리에 가둬 키우며 잡아먹고 채취하던 식물의 품종을 개량해 대규모로 재배하면서 인구를 거듭 늘려나갔다. 생태계에 천연의 모습은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척추동물을 보자. 무게로 30%는 사람이고 67%는 소와 돼지와 같은 가축이다. ‘동물의 왕국프로그램에 단골로 등장하는 터줏대감은 3%에 지나지 않지만, 여전히 사냥감이다. 그 결과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전파되었다.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사람도 서식지에 집을 짓는다. 대나무와 넓은 나뭇잎으로 바람과 비를 피하던 집은 보기 어렵다. 비바람은 물론, 초미세먼지와 벌레를 모조리 차단하는 철근 콘크리트 집을 고층으로 짓고 냉난방까지 자동으로 조절한다. 어찌나 높게 짓는지, 고속 승강기가 필요할 정도다. 세상에 어떤 동물도 제 새끼가 떨어지면 죽는 공간에 집이나 둥지를 짓지 않건만, 사람은 예외다. 사실 위험한 집을 지은 지 오래된 건 아니다. 화석 에너지를 마음대로 사용하게 된 이후의 일, 아니, 극히 예외적인 사건이다.

 

대략 15백 년 전, 나일강에서 중동 메소포타미아 일원으로 이어지던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농사가 시작된 이래 최근까지 지구의 온도는 온화했다. 덕분에 농사가 인류사회에 가능했고, 농사를 시작하면서 간빙기를 잃은 지구는 일정한 기온을 유지했을 것으로 학자들은 해석한다. 그런 주장을 최근 번역 출간된 사피엔스가 장악한 행성의 저자들이 제시한다. 저자들은 지질연대로 지금은 홀로세가 아니라 인류세(anthropocene)라는 걸 분명하게 선언하면서 인류의 독보적 에너지 사용의 결과라는 걸 빈틈없이 논술했다. “인류의 위대한 승리!”를 찬미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다. 실은 그 반대다.

 

빈약한 근육과 이빨을 가졌어도 집단으로 사냥하면서 인간은 뇌를 키웠다. 커진 뇌가 요구하는 에너지를 불로 요리해 먹으면서 작은 위장이 너끈히 해결해주자 인류는 생태계에 없던 독선을 이어갔다. 천적을 내몰며 거주지를 넓히고 동물 가죽으로 자신의 체온을 보전한 것이다. 하지만, 그 무렵 인류는 인구를 크게 늘리지 못했다. 가만히 쉴 때의 3배 정도 에너지를 사용하는 데 그친 조상은 필요한 에너지를 그때그때 자연에서 구했다.

 

수렵과 채취로 에너지를 얻을 때, 인구는 대략 500만에 지나지 않았지만, 1만 년이 지나자 5억으로 늘었다. 화석연료 없이 농사짓던 시절이다. 그때 농민과 그 가족은 쉴 때의 15배 에너지를 소비했다. 화석연료를 마구 소비하며 기후를 위기로 몰아가는 요즘은 어떨까?

 

내가 사용하는 에너지를 노예가 자전거를 돌려 생산한 전기로 충당한다면, 미국인 평균 250명의 노예를 착취해야 한다고 에너지 노예저자는 주장한다. 2005년 전후, 석유는 퍼올리는 양보다 소비량이 커졌다. 매장량에 다소 여유가 있다지만, 지금처럼 소비한다면 50년도 버틸 수 없다는데, 석탄도 앞으로 200년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동의한다. 사피엔스가 장악한 행성의 저자들은 영양분이 가득한 배양접시의 미생물을 주목했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배양하는 미생물은 영양분이 있다면 무한정 증식하지만, 고갈되면 한꺼번에 절멸한다. 화석 에너지로 인구를 78억 가깝게 키운 인류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사진: 도로를 아무리 넓히고 늘려도 몰려드는 자동차가 넘치면 꼼짝하지 못한다. 코로나19는 고속도로와 비행장을 타고 광범위하게 퍼졌고 내연기관의 화석연료 소비는 기후변화를 위기로 몰아갔다. 이와 같은 개발을 용인할 시간 여유는 얼마 남지 않았을 거 틀림없다. 인류는 절벽으로 돌진하고 있다. (사진은 인터넷에서) 

 

절벽에서 떨어지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낙화암에서 백마강으로 몸을 던진 궁녀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알 수 없는데, 페스트로 인구 격감을 경험한 서양은 걸핏하면 절벽을 거론한다. 독일 하멜른을 배경으로 하는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를 보자. 쥐가 들끓는 마을에 고용된 사나이는 피리를 불며 절벽으로 유인한 쥐 떼를 강에 떨어뜨려 죽인다. 다음 이야기는 생략하겠는데, 번식이 왕성한 레밍이라는 북유럽의 쥐는 먹이가 부족하면 절벽에 떼로 떨어져 죽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그 레밍은 다양한 이야기로 변주된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서슬 퍼럴 때, 주한 미군 사령관이 "한국인들은 레밍과 같아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면 그에게 우르르 몰려든다."라며 조롱해 공분을 일으킨 적 있다. 2017년 걷잡을 수 없는 수해로 충북지역이 휩쓸릴 때, 유람 성격의 유럽 연수에 나선 어떤 도의원도 공분을 샀다. 일정을 마치지 못하고 돌아온 그는 못마땅한 얼굴로 국민과 언론을 싸잡아 레밍에 비유했다. 뉴스의 초점을 한몸에 받았지만, 그는 다음 선거에 도전할 수 없었다.

 

인구절벽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한 경제학자가 15세에서 64세까지 생산인구의 비율이 급격히 위축되는 현상을 그렇게 표현했다는데, 생산뿐 아니라 소비가 왕성한 인구층이 줄어드는 인구절벽이 오면 경제위기가 심각해진다고 그 학자는 전망한 모양이다. “19801,440만 명이던 한국의 학령인구는 2017846만 명으로 감소했으며, 2040년에 이르면 640만 명, 2060년에는 480만 명으로 감소될 것으로 통계청이 최근 전망한 한국은 어떤가? 2017년 신생아가 30만 명 이하로 줄었고 가구당 아이가 1명 이하로 OECD 최하위를 고수한다. 인구절벽이다. 2700년이면 한 명도 남지 않을 거로 점치는 전문가도 있다.

 

사람은 레밍과 다르다. 먹을 거, 아니 소비할 에너지가 줄어들면 아이를 적게 낳고 회복되면 더 낳을 게 틀림없다. 초저출산국에 초고령사회로 치달아 경제활력이 떨어질지언정 1차함수처럼 규칙적으로 줄어들다 사그라질 리 없다. 한데, 세계인구는 지금 적당한가? 기후위기와 에너지 고갈 상황을 이겨낼 가망이 있을까? 에너지의 90% 이상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5000만 인구를 돌파했다. 4000만이 넘었다고 낙담하던 1983년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데, 인구절벽을 과연 모면할까?

 

경제위기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생산인구와 소비인구가 줄어드는 걱정은 한가롭다. 지금의 인구가 탐욕스러운 에너지 소비를 계속한다면 생존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휩쓸릴 수 있다. 1990년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눈에 띄게 줄여가는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는 오히려 4배 이상 키웠다. 유럽과 미국과 달리, 우리는 식량을 절박하게 걱정해야 한다. 추우면 껴입은 옷으로 견딜 수 있지만, 먹지 못하면 당장 생명을 잃는다. 곡물 기준으로 4분의 1도 자급하지 못하는 처지에 저출산은 눈앞의 파국에서 멀다. 걷잡지 못하는 기상이변과 에너지 고갈이 눈앞으로 닥치지 않았나.

 

동물에서 사람으로 전파된 바이러스는 시시각각 변신하는 독감에서 사스와 메르스로 이어지더니 코로나19는 불과 1년 만에 3천만 넘는 세계인구를 감염시켰다. 시간이 갈수록 독성과 전파력을 강화하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언제 잠잠해질까? 탐욕스러운 개발을 멈추지 않는다면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해도 안심할 수 없다. 게다가 정밀하고 거대한 과학기술일수록 막대한 에너지를 요구한다. 생태계를 치명적으로 훼손하고 들어선 고속도로와 공항을 타고 인류사회에 빠르게 창궐하는 바이러스와 병균은 치료제와 백신을 번번이 무시할 텐데, 우리는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나?

 

사라질 한국을 지탱할 생명이라 대견했나? 3살 아이들에게 짜장면을 공짜로 나누어주는 중국집 사장님이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런 상황에서 생명을 잉태해 낳고 보듬는 젊은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생명을 이어갈 희망이 없다면 동물은 후손을 줄이거나 생산을 멈춘다. 위기가 눈앞인 마당에 인구가 줄어드는 건 차라리 다행인데, 우리나 세계나 기득권은 탐욕을 줄이지 않는다. 절벽은 급속히 다가온다.

 

황폐해진 생태계를 서둘러 회복시키고 식량과 에너지를 지역에서 자급할 수 있어야 후손의 건강을 다소 연장할 수 있는데, 경제보다 생존을 먼저 생각해야 할 텐데, 코로나바이러스의 노골적 경고에도 엉뚱한 방향으로 뉴딜을 외치는 기득권은 경제성장에 목을 맨다. 머지않아 닥칠 고통을 어이하나. (작은책, 2020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