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09. 3. 21. 09:56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리 호이나키 지음, 김종철 옮김, 녹색평론사, 2007년.

 

 

리 호이나키. 우리에게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그가 이반 일리치와 절친하다는 이유만으로 친밀감을 느낀다. 이반 일리치는 누구인가. 비록 바티칸에서 파문했더라도 ‘우정과 환대’라는 정신적 근본 가치를 지키는 신부의 자세를 마지막까지 흩트리지 않았던 사람, 신념을 바탕으로 아무도 선뜻 생각하지 못한 혜안을 우리에게 일러준 사상가가 아니던가. 자동차는 스스로 움직이려는 마음을 방해하고 병원이 오히려 병을 만들 뿐이며 학교가 배움을 망친다고 주장하던 그는 병원 신세를 거부하며 50세 중반부터 20여 년 동안 암과 친구하던 중, 다음 날 발표할 원고를 정리하다 세상을 떴다. 눈을 감은 그의 주변에 초를 밝힌 친구 3천 명이 모였다던데, 리 호이나키는 그 3천 명 중에서도 절친했던 친구라고 하니 그의 책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박사학위를 위한 시험, 그 마지막 시간에 교실 밖에서 벌어진 학생들의 베트남 전쟁반대 시위를 보고 내장 깊숙이 무언가 움찔거리는 느낌을 받은 그는 답안 작성이 불가능해졌음을 깨닫고 뒤 망연자실 교실을 빠져나가 항구적인 망명을 택했다. 도덕적으로 괴물로 변해버린 국가에 충성을 표시할 이유를 찾을 수 없어, 진정한 애국심을 위해 베네수엘라로 떠난 것이다. 망명한 지 8년, 학과 구분을 없애고 학생과 교수는 물론 지역민과 행정요원의 논의로 교육을 끌어가는 혁신적인 대학이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이내 실망하고 만다. 애국심을 펼칠 생각이었건만 기득권을 가진 교수들의 이기심과 물신에 중독된 학생의 태도에 절망했던 거다. 다시 7년이 지나 정년이 보장되는 순간, 대학 당국에 ‘무기한 휴가’를 자청한 리 호이나키는 미국에서 가장 낯설고 후미진 시골로 들어간다. 땅에서 뿌리를 찾기 위한 몸짓이었다. 그가 이야기하는 ‘정의의 길’이란 무엇일까.

 

“통상적으로 편안한 것에 취미를 잃은 대신 아름다움을 향수하고자 하는 욕망”에 이끌려 변두리로 들어간 리 호이나키는 이웃 농부의 “땅에 뿌리박은” 말과 행동에서 배운다. “완전히 무균 처리된 죽음의 테크놀로지” 공간인 도시에서 “희소성의 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사람들의 삶 가운데”로 들어갔다는 희열로 농사를 지으면서 비경제적 행동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시몬느 베이유가 땅과 육체적 노동에서 최대의 가치를 찾으려 했듯, 가능한 한 돈과 시장에서 멀리 떨어진 삶을 영위한다. “내가 어떤 종류의 닭을 키우는 게 좋겠습니까?” 물으니 의아해하던 농부에게 리 호이나키는 질문을 바꾼다. 당신은 왜 그 종류를 키우느냐고. 그랬더니 웃으며, “우리 아버지가 키우던 것”이라고 대답하는 농부. 리 호이나키는 감각적 경험의 세계가 살아있는 전통의 지혜에 순종하기로 하고, 이후 어떠한 후회도 경험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각인한다. “정부 관료와 대학과 기업들이, 실로 재앙이라고 할 만큼 진실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뜯어먹고 사는 기생충적인 흡혈귀”라는 잔인할 만큼 아이러니컬한 사실을.

 

너무나 리얼하게 기술적으로 조작된 CD에서 당황한 리 호이나키는 “나와 내 아이를 갈라놓는 테크놀로지”를 혐오하고 시를 찾는다. 근대가 시를 빼앗아가면서 장소를 잃은 사람들은 정신적 어둠으로 빨려들어갔다고 여기고, 과거 수도사들이 그랬듯, 영혼을 향해 있는 육화된 독서, 다시 말해 육체를 움직이면서 소리 내어 읽으려 애쓴다. 그는 자신의 삶 앞에 불현듯 다가온 암을 맞아 처신한 두 친구를 소개하며 “전통적 덕행이라고 알려져온 것의 실천을 저지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믿는 근대적인 제도에 노골적 반감을 드러낸다. 기도와 명상으로 극복하는 친구와 의사의 권고에 맹종하다 만신창이가 된 친구. 환영에 불과한 근대적 기술 시스템에 “아니오!”라고 말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평생 가족과 이웃 사이에서 영예롭게 살아온 아버지를 단지 “추상적인 장수의 사례로 연명”시키기 위해 병원 침상의 쇠틀에 가둬 온갖 기계에 묶어 놓는 의사는 생명 없는 언어로 적힌 가치중립적인 문건을 보여준다. 유감스럽게 우리는 정확한 결과를 예측할 수 없노라고. “예측할 수 없게 되어 있는 데 대해 신에게 감사드려야겠다.”는 냉소를 이해하지 못하는 의사에게 리 호이나키는 80을 훌쩍 넘긴 아버지가 존엄 있는 죽음을 스스로 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해 수긍하게 만든다. 의사의 양심을 잠시 깨운 것이다. ‘값 비싼 골칫거리’이거나 ‘허약한 보물’로 취급하면서 아이들을 어른에서 분리하는 ‘아동기’를 근대적 산물이라고 확신하는 리 호이나키는 땅에 뿌리내렸던 시절에 아동기라는 면역결핍증은 없었다고 갈파한다.

 

자신이 내는 세금이 전쟁과 군수물자를 구입하는데 사용하는데 저항하며 납세거부운동을 펼쳤던 애먼 헤나시는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멋진 대답을 했다고 리 호이나키는 전한다. “야뇨, 하지만 세상이 나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은 나는 확신합니다!” 폭탄과 하느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며 방공훈련을 거부한 도로시 데이, 그 이전에 억압적인 국가의 폭력에 반대한 고드윈, 프루동, 바쿠닌, 크로포트킨, 톨스토이를 예로 들면서 자기 자신의 변화로 세계를 변화시키는 ‘한 사람의 혁명’을 제안하는 리 호이나키는 분명 아나키스트다. 기득권의 지배를 거부하고 땅에 뿌리내린 삶을 옹호하는.

 

이반 일리치의 친구처럼, 리 호이나키는 자신이 믿는 정의에 단호했지 결코 비틀거리지 않는데, 그는 비틀거리며 정의의 길로 간다고 말해 의지가 약한 독자를 부끄럽게 만든다. 한 과목의 답안만 써 제출하면 받을 박사학위를 버리는 용기, 보장된 종신교수를 눈앞에서 내치는 용기는 아무나 옮길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둘러보자. 기득권이 단단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지위를 놓기 싫어한다. 철밥통이라는 교수나 관료가 특히 그렇지만 어쩌면 시민운동에 자신을 던진 이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달콤한 유혹에 흔들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 않은가. 기운이 빠질 때 용기를 잃지 말라고 우리를 다독거리는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이 시대의 사표가 되는 책임에 틀림없다. (우리와 다음, 2009년 5-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