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2. 5. 10. 00:57

 

요사이 지리산 둘레길이 요란하다. 산수유와 진달래와 벚꽃이 만개했을 뿐 아니라 막 펼친 새잎이 산록을 초록으로 물들이는 봄이 아닌가. 경관도 그만이지만 날씨도 따뜻해, 둘레길 3코스가 이어지는 인월공용터미널은 오전부터 고급 등산복을 갖춰 입은 도시 사람들로 북적인다. 단출한 시골 사람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왁자지껄한 인파는 가벼운 평상복과 운동화로 충분한 산간마을의 오랜 오솔길을 스포츠용품 전시장으로 바꿔놓았다.

 

수업이 파하면 신문지로 접은 글로브를 준비한 우리는 야구놀이에 빠졌다. 문방구에서 파는 말랑말랑한 공을 적당한 각목으로 휘두르던 시절, 야구를 위한 복장도 등산을 위한 복장도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요즘은 아니다. 가끔 홈런도 날리는 사회인 야구단은 물론, 꼬마 야구단과 축구단도 복장이 완벽하다. 그뿐인가. 웬만한 집의 신발장은 식구 수만큼 운동화에 등산화는 기본이고 워킹화와 조깅화, 볼링화에 골프화까지 두루 갖춰 놓았다. 그만큼 풍요로워진 걸까. 없어도 그만인 신발이나 옷, 장비를 장만하느라 허리가 휘지 않았을까.

 

사회인 야구단이 운동장 대부분을 차지한 모교를 찾았다. 마지못해 반별 족구대회에 끌려 나간 것인데, 네트 너머 상대편에게 공을 남기는 일이 마음처럼 쉽지 않은 50대 중반 친구들은 모처럼 땀에 젖었다. 어쩌다 등산이나 골프 이외에 운동을 모르고 살았던 중년의 사내에게 족구는 무리였는데, 그들은 스포츠를 피동적으로 즐긴다. 그 중 프로야구 경기에 관심이 높다. 자신의 몸을 움직이든 지역 연고의 프로 팀을 응원하든, 스포츠는 쳇바퀴 도는 일상에 지치는 도시인에게 활력소가 된다. 개개인의 육제와 정신적 건강, 그리고 우정과 정주의식 고취에 기여하는 바 크다.

 

구단의 긍정적 인지도를 높이려는 의도가 크겠지만, 최근 프로 스포츠 팀은 친환경경기 운용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흔히 보는 태양광 발전 패널을 지붕 가득 붙인 경기장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어도 이벤트를 연출한다. 플라스틱 물병을 운동장 안에서 분리수거하거나 선수가 재활용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선다. 운동장에서 사용하는 물을 지붕에서 받은 빗물을 활용하는 경기장도 있고 관중에게 내주는 음식을 재활용 가능한 접시에 담아 내놓기도 한다. 관중도 호응하는 편이다.

 

사실 수 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체육 시설은 친환경이기 어렵다. 건설 과정은 물론이고, 운영할 때에도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만 한다. 1톤을 생산하는데 0.9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시멘트는 먼 곳에서 덤프트럭을 타고 온 모래자갈과 섞일 테고, 그 안에 들어가는 철근이나 철골도 철광석을 채굴, 정제, 가공하거나 고철을 녹여 성형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에너지가 들어갔을 것이다. 최근에 국내의 한 건설업체가 특수 반응 물질을 첨가하는 방법으로 시멘트 사용량을 5분의1로 죽이는 기술을 개발해 건설비 10퍼센트의 원가를 절감했다지만, 아직 보편적이지 않다. 유지 보수는 따지지 않더라도, 조명과 냉난방에 들어가는 에너지도 막대할 것이다.

 

덩치가 큰 경기장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일정한 수익이 보장되어야 할 텐데, 그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프로야구처럼 경기하는 날과 찾는 관중이 많다면 그럭저럭 운영수익도 기대할 수 있지만 관중동원이 어려운 육상이나 경기 수가 그리 많지 않은 축구장은 적자를 면치 못한다고 한다. 대개 도심에서 떨어진 경기장들은 넓은 주차장을 같이 이용할 수 있는 예식장이나 뷔페식당, 또는 대형 마트를 유치해 적자폭을 줄이려 애를 쓰는데, 지역의 풀뿌리 상권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경기가 벌어질 때 잠깐 환호하는 시민들은 경기장 건설과 운영에서 오는 부담을 이래저래 피하기 어렵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용도와 목적과 운영 능력 들을 종합 평가해 과분하지 않는 체육 시설을 건설하려 노력할 텐데,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세계 선수권 대회와 같은 굵직굵직한 국제경기를 개최할 때면 국가의 지원을 전제로 과도한 경기장을 신축하는 경향이 있다. 파급될 경제효과를 부풀려 국제 경기를 유치하는 우리나라에서 그 정도가 심하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위해 지은 경기장도 수익이 신통치 않건만 2002 한일월드컵을 대비해 여러 도시에서 경기장을 신축했다. 역시나! 대부분 적자를 면치 못한다. 2002년 아시안게임을 치룬 부산시 역시 신축 경기장의 운영에 허덕이는데, 물불 가리지 않고 2014년 아시안게임을 유치한 인천은 대회 포기를 고민해야 할 지경이다.

 

자국의 특산 개구리가 서식한다는 이유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주경기장의 신축 예정지를 바꾸며 세계적 호응을 유도한 바 있는 호주는 올림픽의 친환경 시대를 활짝 열었다. 폐건축물을 적극 활용해 경기장을 신축하면서 반투명 지붕으로 햇빛을 조명으로 사용하고 태양열 냉난방과 빗물 재활용을 실천하였는데,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준비하는 영국도 주경기장을 폐건축물 재활용으로 짓고 올림픽이 끝나면 규모를 축소해 지역에 개방할 계획이라고 한다. 1994년 동계올림픽을 치룬 노르웨이 릴리함메르는 철새 도래지 보호를 위해 예정된 경기장 부지를 옮겼고 자연 경관의 훼손을 막으려고 천연 동굴 안에 경기장을 만들었다.

 

릴리함메르 올림픽을 계기로 1995스포츠 환경 분과위원회를 만든 국제올림픽위원회는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라는 올림픽 구호에 더 친환경적으로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있다. 국제축구연맹도 친환경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유럽의 많은 축구전용경기장들은 지붕에 태양광 발전 패널을 붙이고 지붕으로 떨어지는 빗물을 모아 활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1회용품을 일체 사용하지 않는 경기장이 많다고 한다. 땅값이 싸다는 이유로 개발제한구역이나 경작지를 야금야금 파고드는 우리나라의 경기장은 어떤 친환경 배려를 하고 있을까.

 

오랜 경기장을 헐고 신축한 인친의 축구전용경기장의 지붕에 태양광 패널은 없다. 과문해서 그런지 허물 때 나온 폐건축물을 재활용했다는 소문도 듣지 못했다. 바닷모래를 사용했다면 해양생태계는 그만큼 훼손되었을 텐데, 2014년 아시안게임을 위해 기존 경기장을 보완해도 충분했지만 인천시는 규모를 키운 경기장을 신축한다. 거대한 경기장의 운영을 위해 입주시킬 대형 상가는 골목상권을 초토화시킬 텐데, 누구의 선동에 홀렸는지 주민들은 신축을 위한 집단민원을 펴기도 했다. 뒷감당은 누구의 몫일까.

 

삼수 끝에 쟁취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강원도는 하필 보전해야 할 생물상이 다양한 정선군의 가리왕산을 긁어내겠다고 고집한다. 할강 경기장을 위해 국제스키연맹은 표고차 800미터, 경사 17, 3킬로미터 이상의 거리를 요구하므로 대안이 없다고 강조하지만, 산림청은 영월군의 만항재에 국제스키연맹이 요구하는 기준을 충족하는 슬로프가 가능하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우리도 친환경을 천명할 텐데, 폐광지대인 만항재의 석탄운송도로를 활용하면 1998년 일본 나가노동계올림픽 이상의 슬로프도 가능하다는 전문가의 주장은 가리왕산 계획보다 반환경이라는 겐가.

 

강원도의 생태계는 시방, 골프장 때문에 여기저기 살점이 뭉텅 떨어져나가고 있다. 40개가 넘는 기존 골프장과 그 골프장으로 이어지는 아스팔트 도로가 생태계를 이리저리 끊고 있는데, 41군데 골프장이 더 생긴다면 어찌될까. 머지않아 강원도 생태계는 곰팡이 피 듯 망가지는 건 아닐까. 백두대간에서 뻗어나가는 생태계 흐름이 골프장에 의해 단절되게 생겼다. 여우가 사라지고 담비가 드물어진 이유의 설명일 것인데, 도지사로 당선된 이후 골프장 강행을 방관하는 강원도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을 친환경으로 치러낼지, 회의가 든다.

 

으리으리한 시설에서 빼어난 실력을 가진 극히 일부만이 즐기는 스포츠는 본디 친환경에서 멀다. 뜨거운 사막에 만든 중동 국가의 스키장을 친환경이라고 치장할 수 없듯, 지역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기후에 맞지 않는 스포츠는 환경과 친할 수 없다. 수천의 동식물이 오랜 세월 어우러진 산허리를 깎아내 유럽 원산 잔디를 일률적으로 심는 골프장은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에 들어올 수 없다. 겨우내 눈이 푹신하게 쌓이지 않는 생태계를 긁어내 인공눈을 두툼하게 뿌려야 하는 스키장도 마찬가지다. 투자자의 돈벌이보다 이웃과 내일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는 스포츠, 눈으로 만족하기보다 다 같이 몸으로 즐길 수 있는 놀이, 그 자리에 친환경 스포츠가 있다. (작은것이아름답다, 2012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