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9. 12. 20. 17:52

 

배고플 때 시장가지 않기.


5, 6년 전인가? 회의 때 만나는 오송생명과학단지 중견 연구원의 철칙이 그랬다. 주중에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그이는 저녁이 고민이라 했다. 밥만 짓고 반찬은 사먹는데, 배고플 때 반찬가게를 가면 모두 맛있어 보인다는 거였다. 골라도 결국 남기니 냉장고에 넣는데, 뜯지 않은 반찬이 가득한 냉장고를 열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날 잡아 젊은 직원들에게 대접했는데, 이젠 외면한다는 게 아닌가. 하루 이틀이지 선배마다 불러대니 진저리를 친다는 거였다. 그래서 배고플 때 반찬가게 가면 민폐를 부른다고 너스레떨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나는 중년 남성만이 아니다. 도시 아파트단지의 반찬가게는 날로 성황이다. 조리할 여유가 부족한 맞벌이 부부는 물론이고 자녀가 집에서 밥 먹는 일이 드문 가정도 사정이 비슷하다. 반찬을 만들어도 며칠 그대로니 낭패다. 하는 수 없이 시장에서 필요한 반찬을 조금씩 고르지만, 여전히 남는다. 반찬만이 아니다. 스티로폼 그릇과 비닐과 플라스틱 쓰레기가 쌓인다. 먹어치우지 못한 반찬은 음식쓰레기가 되니 분리 배출하는데, 잘 발효시켜 질 좋은 유기질 비료로 거듭나길 바라지만 확인한 적은 없다.


반찬가게에서 파생되는 비닐과 스티로폼, 그리고 크고 작은 플라스틱 쓰레기는 썩지 않는 석유화합물이다. 재활용된다고 하니 분리 배출하지만 역시 확인하지 못한다. 음식물이 묻으면 재활용이 어렵다지만 소비자는 그저 표시만 믿을 뿐이다. 작으면 쓰레기통에 버릴 때가 많다. 쓰레기봉투에 담겨 소각장으로 직행하겠지. 쓰레기통에 담긴 라면과 과자봉투, 냉동만두와 소시지 봉투, 그리고 요구르트 통들도 여김 없이 소각될 텐데, 지역난방 열량을 보태겠지만 소각장 굴뚝에서 다이옥신을 배출할 때가 있다고 들었다. 인간이 만든 최악의 독성물질을.



사진: 생각 없이 버린 비닐봉투가 빙상의 일각처럼 보여도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의 그림(인터넷 자료).  


착한 이웃들은 일회용 컵을 줄이려 텀블러를 사용하는데, 텀블러가 넘친다. 장바구니에 들고 슈퍼마켓에 가지만 여기저기에서 받은 장바구니가 집안에 굴러다닌다. 미처 장바구니 챙기지 못했다면 지역 쓰레기봉투에 농산물과 가공식품을 넣는데, 하나같이 비닐이나 플라스틱에 담겼다. 새벽에 가정으로 배달되는 음식도 마찬가지다. 손쉽게 받아 바쁜 가족이 아침을 서둘러 해결할 수 있지만 비닐과 플라스틱 쓰레기가 수북해진다. 택배산업이 흥할수록 플라스틱 쓰레기는 집집마다 넘치고, 마이크로플라스틱은 땅과 바다를 오염시킨다.


요즘 도시의 가정은 농산물을 손질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다듬어 작은 양으로 나눠 포장한 식재료를 가까운 슈퍼마켓에서 조금씩 구입하거나 오래 저장할 수 있는 가공식품에 의존하면서 플라스틱 쓰레기는 늘었고 배송산업이 커지면서 쓰레기는 상상을 초월해졌다. 텀블러로 일회용 컵을 줄이지 못하듯 장바구니는 비닐과 플라스틱 쓰레기를 해결하지 못한다. 택배는 사회의 파편화를 상징한다. 파편화된 사회에서 쓰레기는 넘친다. 아파트단지가 거대해도 주민들이 파편화되었다면 배송산업은 더욱 흥하고, 마이크로플라스틱은 넘칠 수밖에.


독일 베를린 한 복판에 우파공동체가 있다. 나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가 만든 영화사를 68세대가 일찌감치 점거한 우파공동체는 텃밭에서 생산한 농산물로 만든 빵과 가공식품을 주민과 나눈다. 공동체 안에 식당이 있어 공동체 식구는 물론이고 주민과 음식을 조리해 먹으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다. 서울 마포구의 성미산 공동체에 마을식당이 있다. 신선한 농산물을 그때그때 구입해 함께 조리해서 먹는다. 쓰레기 발생을 최소화하는 그 식당은 이따금 공동체의 모임방으로 활용된다고 한다.


바쁜 주민, 단출한 가구, 맞벌이 부부가 많은 아파트단지에 그런 식당이 활발하게 운영되는 건 불가능할까? 인터넷 가상공간에서 아파트 가격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데 그치지 말고, 조합으로 모이는 주민들이 현실공간인 마을식당에서 함께 밥을 나누고 대소사를 논의한다면 정주의식이 돈독해지는 건 물론이고 음식과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는 상당히 해결되지 않을까? 요즘은 아파트단지 내에 운동시설과 휴식공간을 마련한다. 공동식당을 더 마련해 능동적으로 활용한다면 장바구니가 해결하지 못하는 마이크로 플라스틱을 크게 줄일 텐데, 그런 식당을 구상하는 아파트단지 어디 없을까? (인천in, 2019.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