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08. 7. 10. 22:22
 

《조류독감》,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정병선 옮김, 돌베개, 2008

《슬럼》,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김정아 옮김, 돌베개, 2007



올 봄, 우리나라를 흔들었던 조류독감은 사라졌을까.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 전에, 한가지. 정부는 조류독감을 ‘AI’라고 칭한다. AI는 조류독감(Avian Influenza)의 영어 약자다. 그런데 왜 이 나라 정부는 굳이 외래어를 고집할까. 공안정국이므로 따지지 말자.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이익이 많은 어떤 집단을 배려하겠지.

 

“방역조치가 끝났으므로 AI는 사실상 소멸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하는 농림수산식품부는 “4월 1일부터 지난달 12일까지 발생한 AI와 관련해 가금류 이동제한 등 방역조치를 2008년 6월 29일 아침을 기해 모두 해제한다.”고 밝혔다. 전국에서 발생한 33건의 조류독감으로 닭과 오리 846만 마리를 도살 처분한 정부는 보상금과 수매자금들로 2637억 원의 예산을 사용했다. 그건 그렇고, 이제 마음 놓고 삼계탕을 먹을 수 있다는 뜻일 텐데, 이 땅에 조류독감은 다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인가.

 

그렇다면 오죽 좋을까. 정부의 발표는 조류독감이 영원히 소멸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열심히 방역에 나선 결과 토착화를 막았으므로 당분간 창궐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는, 그러므로 고위직이 더는 삼계탕 시식을 하지 않더라도 닭고기를 시중에서 구입하라는 당부다. 하지만, 철새가 찾는 한 조류독감은 계속될 수 있다. 내년 이후를 주목해야 한다.

 

이상하다. 철새는 예전에도 날아왔다. 독감도 마찬가지다. 머나먼 시베리아에서 힘겹게 날아온 철새 중 일부가 독감으로 죽은 사례는 오늘날에 국한될 리 없다. 그 철새의 똥을 쪼아먹은 닭 중에서 조류독감에 전염돼 죽는 경우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독감에 걸리는 사람이 거의 죽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철새든 닭과 오르든, 면역이 약해진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회복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요즘은 조류독감에 긴장하나.

 

《슬럼》을 쓴 마이크 데이비스는 슬럼과 공장식 축산과 패스트푸드와 정부의 부패가 조류독감이 창궐하게 하는 조건이라고 《조류독감》에서 주장한다. 그는 《조류독감》을 먼저 썼다. 《조류독감》을 집필하면서 자본의 탐욕에 의해 형성된 슬럼이 얼마나 위험한지 절감해 《슬럼》을 다시 써야 했다. 비록 마이크 데이비스가 주목한 슬럼은 우리나라에 없지만, 우리나라가 조류독감 청정구역은 아니다. 정부의 부패를 파악할 수 없어도 공장식 축산과 패스트푸드가 만연돼 있다는 건 분명하다.

 

독감은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된다. 조류독감도 그렇다. 조류에서 조류로 전이되는 조류독감은 양계장의 닭이나 오리를 거의 죽는 만든다. 유전적 다양성을 잃은 동일한 품종이라 면역이 약한 탓이다. 한데, 사람이 왜 조류독감에 위험한 걸까. 유전적 다양성을 잃지 않았고 공장식으로 사육당하지 않는데.

 

바이러스는 숙주세포를 가진다. 기생 시간이 늘면 숙주세포는 면역을 키우고, 치명적 위험을 크게 줄어든다. 하지만 숙주가 바뀌면 그 바이러스는 새 숙주를 위험하게 한다. 아직 면역이 없기 때문이다. 13세기, 유럽인 3분의1을 사망케 한 페스트가 그랬다. 지금은 그 페스트로 많은 사람이 죽을 것 같지 않다. 세월이 흘러 면역이 생겼고 치료법도 연구했을 테니. 한데, 조류독감은 13세기 페스트처럼 치명적이지 않다. 조류에서 사람에게 전이된 까닭이다. 당시 페스트처럼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된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만일 조류독감이 사람끼리 전염된다면 2년 내에 1억 명 이상 사망할 것이라고 마이크 데이비스는 섬뜩하게 경고한다. 세계 전문가의 공통된 주장을 근거가 그렇다는 거다.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돼지부터 감염시키고, 돼지에서 사람으로 전이되면 조류독감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퍼질 수 있다고 한다. 세계에서 4천만에서 1억 명 정도 죽인 1918년 ‘스페인독감’이 그랬다. 그래서 발생 반경 3킬로미터 이내의 닭과 오리를 모조리 도살 처분한 방역당국은 반경 내의 돼지까지 죽여야 했다. 조류독감에 감염되지 않았는데 죽어야 했던 돼지는 억울했겠지만 사람의 안전을 위해 가차 없었다.

 

문제는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환경변화 대응 능력이다. 조류독감의 RNA유전자는 보통 바이러스의 DNA유전자보다 100만 배 이상 변화 속도가 빠르다고 한다. 첨단 과학기술이 개발한 백신은 물론이고 어렵게 확보한 치료제 ‘타미플루’까지 쓸모없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 환경이 바뀌고 바뀐 환경에 조류독감의 RNA유전자가 적응하는 한 그렇다는 거다.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면?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그대로일 테니, 개발한 백신과 치료제는 약효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환경은 바뀐다. 오늘의 환경이 바뀌리라고 어제 짐작하지 못했던 사람은 내일의 환경을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어제보다 빠른 오늘의 환경변화는 내일 더 빠르리라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힘겨운 방역으로 조류독감 토착화를 계속 막아낸다면 우리는 조류독감 청정국가로 남을 수 있을까. 배설물로 마실 물조차 오염될 정도의 슬럼이 없을 뿐 아니라 의료 수준이 높으므로 사람을 위협하는 조류독감은 우리와 상관없을까. 광우병을 염려하게 하는 쇠고기도 막지 못한 우리의 공안정권이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창궐을 막아낼 수 있을까. 무엇보다 불안한 것은 환경변화 속도다.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은 탐욕의 결과요 부패의 원인인데, 슬럼은 발생하지 않을까. 개발과 산업화로 온난화 속도가 유난히 빠른 한반도에 갯벌이 매립되니 철새는 더욱 밀집된다. 공장식 축산과 패스트푸드도 변함이 없다면 과로사를 유발하는 방역만으로 조류독감 토착화를 차단하기 어렵다. 지구를 뒤덮은 《슬럼》은 《조류독감》을 사회적으로 생산되었다고 주장하는 마이크 데이비스는 삶을 근본에서 바꿀 것을 주문한다. 공장식 축산이 없는 생태적 다양성이다. 패스트푸드가 없는 공생공락(共生共樂)이다. 결국, 자본의 이익보다 후손의 삶을 먼저 생각하는, 생태적 지속가능성이다. (우리와 다음, 2008년 9-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