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7. 5. 4. 18:42


인간 이후, 마이클 테너슨 지음, 이한음 옮김, 샘앤파커슨, 2017.

 

 인간 이후

 

이른 4월 버드나무부터 잔잔하게 퍼지던 초록이 5월에 다다르면서 완연해졌다. 노랗거나 연분홍이던 근린공원의 꽃들은 화려한 색조로 변하고 봄바람에 나풀거리던 가로수 잎사귀들은 머지않아 녹색을 한껏 펼치며 가지에 다부지게 붙을 것이다. 낙엽으로 질 때까지 광합성에 열을 올리겠지. 그늘을 찾아 걷는 시민들의 발길은 이맘때 산뜻하다. 해를 거듭할수록 짧아지는 봄날이지만, 무더워는 저만치 떨어져 있고 바람은 아침저녁으로 시원하다. 아직은 분명 그렇다.


모처럼 깨끗한 보행자도로. 낙엽이 수북이 떨어지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미화원이 한가로운 시간을 만끽하는 계절에 문득 사람이 사라지면 변할 도시의 거리를 생각해본다. 고개를 돌리기 무섭게 떨어지는 낙엽을 쉬지 않고 쓸어 담는 사람이 없다면 눈비를 맞은 거리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추레해질까? 보도블록 사이로 모래 알갱이들을 부지런히 쌓아 올리는 개미들이 사람 발길을 요리저리 피해야하는 거리는 산간벽지와 다르지 않게 바뀌겠지. 그렇다고 추레하지 않을 것 같다.


오늘 자정을 기해 인간이라는 종이 생태계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10년 전 앨런 와이즈먼은 인간 없는 세상에서 바뀔 모습을 상상했다. 고속도로는 물론 모든 도로는 자동차의 충돌과 충돌로 자정을 넘기자마자 아수라장이 되겠지만 북한산을 빠져나온 멧돼지는 자유롭게 광화문 일대를 쏘다닐 텐데, 뉴욕 지하철은 하루 만에 물이 차올라 통행이 불가능하리라 전망했다. 허드슨 강의 수면 아래에 위치한 뉴욕 지하철뿐이랴. 물이 차오르는 시간이 다를 뿐 지하수맥을 건드린 지하철마다 사정이 비슷하겠지. 한데 인간이 사라지고 천년이 지나도 영불해협의 해저터널은 남을 것이라 앨런 와이즈먼은 예상했다


1주일이 지나기 무섭게 전 세계의 핵발전소가 앞다투어 폭발하고 10년이 못돼 대부분의 전깃줄이 끊어져 늘어질 테니 새들이 안심하고 허공을 날겠지만 방사선에 오염될 생태계는 한동안 전에 없던 돌연변이로 혼란스러워질 것이라는 가정은 과학저술가 앨런 와이즈먼의 가벼운 상상력이 아니다. 한반도의 비무장지대를 포함해 사람이 자리를 잠깐 비킨 세계 여러 지역을 방문하여 생태 전문가의 조언을 들었고, 전문 기술자의 식견을 바탕으로 인간 문명의 부식 현상을 기술했다. 인간 없는 세상에서 추측한 변화는 충분히 가능하리라.


영불해협의 해저터널은 단단한 기반 아래를 뚫었으므로 천년 동안 무사하더라도 전깃줄이 끊어지고 공기 순환은 멈출 테니 아무 소용없는 걸까? 인간이 없는 마당이니 소용이 무소용이지만, 영국에 빙하가 다시 덮치지 않는다면 터널에 크고 작은 동물이 오가는 건 아닐까? 천년이 지나면 그 터널마저 허물어질지 모르는데, 핀란드 온칼로 핵폐기장은 온전할까? 단단한 단일 암반 속에 저장하므로 핵폐기물은 10만 년 이상 생태계에 방사능을 내보내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봉인이 철저할 수 없으므로 안전을 장담하기 어렵다고 핀란드 전문가들은 염려한다던데, 하루 천 톤 이상의 지하수가 배어나오는 연약지반을 허물고 지은 경주 핵폐기장은 덮어놓고 안전만 되뇔 따름이다.


인간은 멸종할 것인가? 새삼스럽기보다 진부한 질문인데, “지금과 같은 행태를 멈추지 않는다면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그렇게 답하며 너털웃음 지으면 그만인 일은 분명히 아니다. 인간이 멸종하더라도 이번 세대에 닥칠 재앙은 아니라지만 전문가일수록 웃어넘길 사안일 수 없다. 취업의 어려움 속에서 진취적인 꿈을 잃지 않은 젊은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들이 장년이 되었을 때, 멸종의 고통은 시작될지 모른다. 그뿐이랴. 낮은 출산율로 국가의 부가가치와 정체성이 위축될까 섣불리 걱정하는 기득권의 불안함과 관계없이, 젊은 부부가 흔쾌히 낳을 아기의 내일이 건강하고 행복하리라 확신하기 어려울 수 있다.


기독교 종말론처럼, 선택받았다 믿는 인간이란 존재가 생태계에서 느닷없이 사라질 리 없다. 생태계에서 태어난 모든 생물종이 그렇듯, 인간에게 생태계는 생존 기반이자 삶의 비빌언덕이다. 생태계가 불안해지면 인간은 안정을 잃는다. 인간의 삶에 생존을 의탁하는 생물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떠나자 후쿠시마의 가축은 비참하게 죽어갔다. 사람이 만든 따뜻한 환경에 파묻혀 사는 도시의 바퀴벌레는 인간이 사라지면 두세 차례의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멸종할 거라 앨런 와이즈먼은 예상했는데, 적응해온 환경이 갑자기 바뀌면 사람이든 바퀴벌레든 생존하기 버겁다. 시방 사바세계의 환경은 치명적으로 변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은 6의 멸종을 예견할 정도로.


존재하는 생물종의 60퍼센트 이상이 한꺼번에 사라진 거대한 멸종은 지구 역사에 5차례 등장했고 지층에 기록돼 있다. 6500만 년 전 닥친 다섯 번째 멸종은 거대한 운석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학자들은 추정한다. 직경 10킬로미터가 넘는 운석이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서 지축을 흔들자 지각이 살짝 굳은 지구는 크게 출렁이며 화산과 지진을 도처에서 빈발하게 했다. 그때 발생한 재가 뒤덮으며 세상이 냉각되자 당시 번성하던 대부분의 공룡과 공룡 몰래 목숨을 이어오던 포유류의 90% 이상이 일순 괴멸되었을 것으로 학자들은 분석한다. 오늘날의 생태계에 다채롭게 번성하는 숱한 동물들은 그때 살아남은 일부의 후손인데, 여섯 번째 대멸종이 다가온다.


6의 대멸종에서 사람은 살아남을까? 숱한 어려움을 슬기로 극복한 존재인 만큼 과학기술을 동원해 살아남을 것으로 믿는 사람이 있다. 그 예상이 운 좋게 들어맞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개개인은 죽음의 문턱을 넘지 못할 것이다. 74억 중 수백 명이 살아남아도 후손을 이을 능력이 있다면 멸종은 아니라지만 다행이라 여길 수 없다.


멸종은 적응해온 환경이 급변할 때 발생한다. 정도에 따라 다를지라도, 빈발하는 화산, 지진, 쓰나미, 그리고 빙하의 후퇴와 전진, 그에 따르는 해수면 상승과 같은 일련의 환경 급변을 한평생 견뎌낼 사람은 거의 없다. 과학기술을 동원해도 한시적일 뿐이다. 현존하는 생물종의 60%를 사라지게 할 환경변화에서 한순간 살아남을 인간은 적응할 수 없는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후손을 이을 가능성은 없다. 과학기술을 앞세우는 인간의 슬기는 자연의 몸부림 앞에 한계가 분명할 거다. 세 차례의 핵발전소 폭발을 막지 못한 인간은 메르스와 조류독감에 덜덜 떤다. 에어컨과 보일러, 항생제와 마스크는 아무리 성능을 높여도 과학기술은 폭풍 앞의 촛불이다.


앨런 와이즈먼은 인간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 만든 문명이 얼마나 신기루 같은 존재인지 조목조목 밝혔다. 휘황찬란한 건물은 50년을 넘기지 못하고 단단한 댐도 300년이면 무너진다. 500년 지나면 뉴욕 맨해튼은 초식동물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인간 이전의 세상으로 환원할 것으로 예측하는데, 1분에 4억 원을 들여 불꽃놀이 10분 동안 펼친 롯데월드타워는 언제까지 화려함을 유지할까? 엄격한 유지보수 없이 서울특별시 강남의 랜드마크로 우뚝 솟을 수 없는데, 유지보수는 막대한 석유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4조 원의 비용으로 지은 그 건물은 얼마나 많은 수익을 기대하고 있을까?


여러 가지 돌이킬 수 없는 이유로 인간이 포함된 생태계는 대멸종을 피하기 어렵게 되고 말았다. 이제까지 지구가 겪었던 5번의 경험과 비교할 때, 그 원인의 원천은 사뭇 다르다. 환경 급변의 원인은 당시 생존하던 생물의 의지가 아니었지만 현재 진행하는 6번째 대멸종은 다분히 인간 단 한 생물종이 원인을 제공한다. 지구 생태계의 생물종으로 진화해 나타난 이후 99%의 세월동안 자연의 생태적 흐름에 완벽하게 조응하며 살아온 존재였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환경을 스스로 바꾸면서 사단은 시작되었다. 늘어나는 욕심을 위해 대담하게 바꾼 환경은 전에 없이 끔찍한 재해를 안겼지만 경각심을 갖지 않았다. 규모와 횟수를 늘리는 재해는 지질연대로 볼 때 지극히 최근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세 가지 경고

 

과학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렵다. 자신이 연구한 내용과 결과를 전문성이 없는 독자에게 쉽게 설명하는데 과학자들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과학저술가들이 있으니 다행이다. 과학자들의 다양한 연구 성과와 가치를 취사선택해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풀어주지 않던가. 앨런 와이즈먼이 그렇고 인간 이후를 쓴 마이클 테너슨이 그렇다.


앨런 와이즈먼은 무슨 이유에서 비롯되었는지 따지지 않고 인간만 느닷없이 사라진 뒤에 벌어질 풍경을 이야기했다. 멀쩡한 문명의 흔적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하고, 상처받은 생태계가 어떻게 회복될 것인지 상상했다면 마이클 테너슨의 상상은 묵시록에 가깝다. 생태계에 어렵사리 진입한 인간이 제 발등을 찍으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생태계의 치명적 변화를 예측했다. 사람만 곱게 사라지는 게 아니다. 생태계에 그럴 가능성은 없지 않은가. 자신이 난장판으로 바꾼 환경 때문에 대멸종 행렬에 휩쓸릴 생물종의 비참한 내일을 예상했다. 인간은 재앙을 극복할 수 있을까? 앨런 와이즈먼은 인간이 비킨 세상에서 비로소 옛 모습을 되찾을 내일의 모습을 생태계의 시각으로 낭만적으로 제시하지만 마이클 테너슨은 변화 과정의 참혹함을 들추며 고개를 젓는다. 이미 지층은 5차례 대멸종과 이후의 회복 과저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지 않던가. 재앙을 극복할 과학기술? 해괴망측하다.


인간도 오래 전 급격하게 변한 환경 덕분에 생태계의 일원이 되었다. 6500만 년 전 5번 째 대멸종이 없었다면 등장했을 리 없는 인간은 진화의 험난한 미로를 운 좋게 헤치며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그런 인간은 대부분의 세월동안 자연과 합일하며 살아왔는데, 부지불식간 멸종을 자각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지층은 같은 생물종이 다시 출현하지 않는다는 걸 5차례 증명한다. 스티븐 굴드가 풀하우스에서 거듭 지적했듯, 진화의 태엽을 다시 감았다 풀어놓는다고 인간이 다시 태어날 리 없다. 멸종은 곧 끝이다. 인간이라는 생물종이 생태계에서 마감되는 건데, 엉뚱하게 다른 생물종까지 멸종의 구렁텅이에 끌어들이려든다. 이미 징후가 흉흉한데, 마이클 테너슨이 제시하는 징후는 무엇인가?


첫 번째 경고는 토양이다. 사람은 오랜 세월 흙에서 식물을 채취하고 동물을 사냥하며 살아왔는데, 우연히 농사를 배웠고 전파했으며 인구를 사정없이 늘렸다. 생태계를 구성하는 다채로운 생물들이 조화를 잃지 않을 때 흙은 풍요로움을 한없이 선사했지만 철근콘크리트에 짓밟히고 화학물질에 오염된 지금은 아니다. 모든 생물은 흙을 벗어나 터전을 만들지 않지만 사람은 예외다. 날개도 없이 높이 올린다. 초고층을 지향하더니 123층을 지어놓고 자랑한다. 흙에서 자라는 식물의 절반을 먹어치우려 석유를 들이붓는다. 흙에 석유를 가공한 화학물질을 흥건하게 뿌리며 인구를 감당할 수 없게 늘렸다. 이제 석유와 철근콘크리트 없으면 삶이 불안할 정도다.


두 번째 경고는 항생제 내성이다. 사람에게 해를 입힌다고 규정한 미생물을 제거하려고 항생제를 남용하자 미생물은 내성을 키웠다. 이제 미생물의 항생제 내성은 사람의 항생제 개발 속도를 앞지른다. 꿀벌이 사라지면 삶을 유지하기 어려운 사람은 자신과 가축까지 미생물의 공격에 취약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꿀벌마저 사라지게 한다. 남보다 더 많이 더 빨리 돈을 벌어들이려는 탐욕은 꿀벌과 가축과 농작물을 획일화했는데, 그런 생물이 항생제 누적으로 위기에 몰렸다는 건 역설로 그치지 않는다. 인간 생존도 머지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세 번째 경고는 멕시코 서쪽 칼리포르니아 만에 출현한 훔볼트오징어와 향유고래의 급증이다. 존 스타인벡이 소설을 쓸 무렵 청세치와 가다랑어를 비롯해 덩치 큰 생선이 다양하고 흔전만전했는데, 슬그머니 사라지더니 훔볼트오징어와 그 오징어를 잡아먹는 향유고래가 그 자리를 차지한 이유는 기후변화다. 지구온난화로 대양의 순환이 약화되면서 산소 농도가 낮아졌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인간이 배출하는 농약과 화학물질의 해양 농축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과 중국에 팔리는 훔볼트오징어라도 잡히니 그나마 다행인데, 화학비료가 섞여 농축되면서 죽음의 해역으로 버림받은 풍요로웠던 어장이 어디 한두 군데인가? 최근 50년 만에 미국의 미시시피와 양자강의 하구를 비롯해 전 세계 150여 해역이 버림받았다고 한다. 황하 하구인 발해만도 마찬가지다. 꽃게 철을 맞은 중국 어선들이 악착같이 연평도 인근으로 몰려드는 이유가 그렇다.


인간이 사라진 뒷자리는 누가 챙길까? 여러 차례 리메이크된 할리우드 영화 혹성탈출과 달리, 영장류가 순서를 기다리는 건 아니다. 진화는 사다리처럼 상승하며 진행되지 않는다. 주변에서 생태계의 빈자리를 차지하며 진화하지만 과정은 험난하다. 인간이 사라지면 인간에 주눅들어 일찌감치 자취를 감춘 대형 육식동물의 자리를 덩치를 키우며 새롭게 진화한 개와 고양이가 차지할 것으로 학자들은 예상한다. 대형 물고기들이 급감한 바다도 비슷해질 텐데 그때 진화는 멸종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마이클 테너슨이 경고한 세 가지 징후가 한꺼번에 나타난다면 6번째 대멸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그 와중에 놓였는지 모른다. 과학기술을 앞세우는 인간만 모르거나 외면할 뿐.


인간 이후의 저자는 지적하지 않았지만 핵전쟁도 대멸종의 신호탄일 수 있다. 스스로 슬기롭다고 자부하는 인간이지만 멸종의 징후가 흉흉해도 탐욕을 멈추지 않는다. 지나친 개발로 삶이 불안해진 태평양의 고도, 이스터 섬이라 서양인이 칭한 라파 누이가 그랬지만, 식량을 자급하지 못하는 처지를 망각하면서 갯벌을 연실 매립하고 농경지를 없애는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석유는 고갈 신호를 보내지만 개발행위의 속도를 늦추지 않는 인간은 자신만 잘 살자고 항생제를 남발하고 과학기술로 온난화를 극복할 수 있다고 오만을 떤다. 그런 상황이 인간의 멸종을 낳을 거로 마이클 테너슨은 점친다. 한두 가지 원인은 반성이나 기술로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중첩되면 멸종을 피할 수 없을 거라는 주장하는데, 여섯 번째의 대멸종은 앞선 5번보다 진행 속도가 빠르다. 이러다 현존하는 생물종의 대부분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

 

 

그래도 사과나무를 심자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20074차 평가보고서를 채택했다. 같은 해 2월 그 보고서를 비관적으로 해석한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지구 평균 기온이 6.4도 상승하면 해저의 메탄하이드레이트가 녹아 대기에 분출하면서 지구는 화염에 휩싸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로 인해 산소가 결핍되면 대기권의 생물종은 사라질 수 있다고 덧붙이면서 10년 이내에 인류가 자신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100년 이후 지구는 대량 멸종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경고했다.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온실가스를 마구 배출하는 삶을 조금도 수정하지 않았다. 2007년의 경고가 옳다면 이제 돌이킬 수 없다. 6의 대멸종은 불가피한데, 이후 생태계는 회복될까? 회복된다면 어떻게? 인간 비슷한 생물종의 탄생은 기대할 수 없지만 지질 속의 화석은 상당히 회복될 거라고 귀띔한다. 인간의 시간 기준으로 그 세월은 아득할 따름이지만.


대멸종을 눈앞에 둔 지구에 미련스레 남지 말고 우주를 개척할까? 스티븐 호킹은 우주공간으로 피했다 지구 생태계가 회복되면 다시 돌아와야 인류의 삶이 지속될 것으로 예견했는데, 1977년부터 시작된 할리우드의 스타워즈시리즈에 심취한 걸까? 그 천재 과학자는 74억을 돌파한 인구 중 어떤 계층의 누가 성공적으로 피난할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40년이 지난 지금도 우주공간에 머물며 대대손손 의식주를 해결할 과학기술은 나타나지 않았다. 화성을 식민지로 개척할까? 마이클 테너슨은 침착하다. 화성 정착 가능성을 연구해온 학자의 주장을 두루 살피는데, 결국 구겨버린다. 연구할수록 모르는 게 늘어나는 과학기술로 뭘 극복한다고? 어림없는 소리가 아닌가!


그러니 어찌하나? 유전자를 제 맘대로 조작하는 생물종답게 새로운 인류로 손 붙잡고 도약 진화하는 건 어떨까? 마이클 테너슨은 그 가능성도 마지못해 모색하는데, 가능할 리 없지만 가능하더라도 그렇게 진화한 생물종은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는 오늘날의 인간이 아니다. 새로운 종일 따름이다. 새로운 종은 같은 생태 조건을 요구하는 기존 생물종과 공존하지 못한다. 크로마뇽인을 만난 네안데르탈인은 왜 사라졌겠나? 인간 멸종을 디딤돌로 탄생하는 새로운 생물종을 우리가 미리 축하할 필요는 없다. 인간이 사라진 세상에서 맘 편하게 숨 쉬며 번성할 생물종에 영광을 전할 필요도 없다. 인간이 사라지면 원고를 작성해도 읽을 자 없다. 원고도 없다. 어떤 이야기도 소용이 없다.


대체로 미국 과학저술가가 쉽게 쓴 글, 내일을 걱정하는 책은 뒤로 갈수록 긴장감이 떨어진다. 맥 빠지게 하는 경향이 보인다. 지구온난화를 잔뜩 겁주며 경고하더니 LED조명을 권고하고 마는 앨 고어와 다르지만 마이클 테너슨도 인간 이후의 세상을 명징하게 기술하지 않았다. 소용없기 때문이었을까? 그는 인간 이후를 서럽거나 안타깝다고 말하지 않았다. “인류라는 두꺼운 담요가 걷히면, 자연은 크나큰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다시금 예전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애쓸지도 모른다.”고 맺을 따름인데, 자식 키우는 우리는 그 전망에 환호할 수 없다. 어떻게든 돌이켜야 하는데, 슬기로운 탐욕에 취한 인간은 무슨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기본소득? 약하다. 그래도 탐욕을 거세하는 기본소득이라면 멸종을 조금이라도 연기하게 만들지 않을까? (녹색평론, 20175-6월호, 통권 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