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0. 7. 4. 21:31

《기후변화의 정치경제학》, 마크 마슬린 지음, 조홍섭 옮김, 한겨레출판, 2010.

 

제주도 곶자왈의 울창한 숲에 이따금 둥지를 치는 삼광조가 인천의 한 아파트단지에 나타났다. 따뜻한 곳을 즐겨 찾는 여름철새가 수도권 아파트단지의 알량한 숲에 모습을 드러내다니. 지구가 그만큼 뜨거워지고 도시의 여름이 특히 무덥다는 걸 웅변하는 걸까. 물론 그럴 것인데, 그뿐일까. 생수공장이 난립하는 제주도에서 취수공은 한라한 중산간의 곶자왈을 집중 공략할 게고, 한라산의 산록을 좀먹는 골프장마다 곶자왈에서 지하수를 퍼낸다. 점차 건조해지는 곶자왈은 생기를 잃었을지 모른다. 삼광조는 제주도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커피 농장이 대관령에서 이어지는 강릉 왕산면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노천 재배는 아니지만 그래도 맛과 향기는 근사한 모양인데, 관광객을 유혹한다고 소식통은 전한다. 열대나 아열대지방에서 재배되는 커피가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걸 두고 고정관념을 깬 일로 평가하는 이가 있고 상업적인 가능성을 점치는 이도 있지만, 적지 않은 석유 에너지를 태워야하는 온실 덕분에 재배된 커피가 경쟁력 있는 건 생산자 착취하는 기존 커피의 가격이 터무니없기 때문일지 모른다. 아무튼, 이 땅에서 커피가 재배되기 시작했으니 해변에 종료나무를 볼 날이 머지않은 걸까.

 

온난화. 다시 말해, “따뜻하다”는 긍정적 의미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은 지구온난화를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100년 전에 비해 섭씨 0.7도의 기온이 올랐다는 말에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고 다음 100년 안에 1.1도에서 6.4도까지 더 오를 수 있다는 전문가의 경고에 시큰둥이다. 6.4도? 봄가을 일교차가 그보다 하지 않던가. 북극해가 녹는다고? 그러자 이제 싱가포르를 능가하는 무역항을 우리나라에 열 수 있다고 열광한다. 북극해 아래 매장된 가스전의 소유권을 놓고 러시아와 유럽 사이에 갈등이 표출된다. 먹이를 찾을 수 없는 북극곰이 유빙을 찾아 돌아다니다 물에 빠져죽는 일이 벌어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변화하는 자연에서 늘 있는 일이라는데 동의한다. 자연계의 환경변화로 한 생물종이 사라지는 현상에서 사람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최근 우리나라의 정도가 다른 국가보다 현저히 커서 지구촌 지구온난화를 끌어간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회의론자’들은 온난화는 지구의 자연스런 흐름이라고 주장해 시민들의 위기의식을 무력화한다. 종려나무가 우리 해변에 서려면 기온 뿐 아니라 여러 생태 조건이 더불어 변해야하므로 쉽지 않다는 걸 잘 이해하는 회의론자들은 대기에 온실가스를 전에 없이 밀집되었다는 걸 부정하지 않지만, 그런다고 지구가 더워지는 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변수가 많은 지구온난화 원인 파악의 약점이다. 학자들의 가설마다 반박의 여지가 있다는 점을 빌미로 지구온난화 자체를 부정한다. 회의론자의 초점 벗어난 논리전개. 석유문명을 유지하려는 자의 사주를 받은 듯하다.

 

기후변화와 예술을 잇는다는 영국의 시민단체, ‘티핑포인트’의 소장을 역임하는 학자이자 칼럼리스트인 마크 마슬린은 지구온난화에 대한 논란을 끝내고 싶은 마음을 담아 《기후변화의 정치경제학》을 썼다. 보수언론에 각광받은 회의론자들은 상당수 석유자본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그 점을 강조해 독자들을 설득할 수 없는 일. 회의론자들의 주장 중에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 없는 게 아니다. 때로 부족한 부분을 지적한다는 점을 높이 사는 마크 마슬린은 익숙한 삶의 방식을 급작스레 바꾸고 싶지 않은 인간의 보수적 심리에 기대 본질을 왜곡하려는 회의론자의 논지를 살피며 지구온난화의 실체를 밝힌다.

 

만 년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최근 50만 년 동안 한 번도 겪지 못한 수준으로 대기에 이산화탄소를 증가시켰다. 영국의 니콜라스 스턴 경이 2007년 발간한 《스턴 보고서》는 “세계가 모두 당장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나선다면 GNP 1퍼센트의 비용으로 가능하지만 방심하다가 20퍼센트로 감당할 수 없을 거”라 했다며 《기후변화의 정치경제학》을 펼치는 마크 마슬린은 구체적 자료를 제시하면서,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곳에서 심각하게 드러나는 온난화를 서둘러 막지 못하면 지금 같이 안락한 삶은 돌이킬 수 없게 붕괴되리라고 행간에 암시한다. 부디 경각심을 갖자는 뜻일 게다.

 

지구온난화가 무엇이고 그 논쟁은 어떻게 전개되었나. 알 듯 잘 모른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증거에도 반박하고 싶은 기득권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때문에 자식 키우는 시민들은 경각심을 높일 수 없었다. 사실 조사방법의 오류와 자료 축적이 충분치 않아 혼란스러운 점도 초기에 있었지만 그렇다고 지구온난화가 거짓은 아니다. 회의론자들은 그 약점을 노린다. 이산화탄소 증가가 지구온난화로 바로 이어지지 않은 예를 들추며 자료 조작이라고 몰아세운 뒤 태양 흑점과 복사열의 주기적인 변화일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마크 마슬린은 그런 주장의 허구를 하나하나 짚어낸다. 자료가 축적되고 논의가 거듭되면서 초기의 약점이 보완되었다면서 수천 명의 학자들이 검토한 시나리오보다 온실가스 배출이 오히려 빠르게 증가한다는 걸 제시한다. 방심은 해결책이 아니라고 다독인다.

 

기상이변으로 인한 농업 생산량 위축과 질병 확산에서 그치지 않는다. 시베리아 동토가 녹아 메탄이 분출하고 나아가 아마존이 사막으로 바뀐다면 인류는 북극곰과 같은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 간 위원회’(IPCC)의 시나리오를 능가할 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 그린란드 빙하를 조사한 결과는 10년 만에 기후변화가 발생했다는 걸 보여주는데, 우리는 능동적으로 대비할 여유가 없다. 그린란드의 방하가 녹으면 7미터, 남극 서쪽이 녹으면 8.5비터, 동쪽이 녹으면 무려 65미터의 해수면이 상승한다. 돈과 기술로 대처할 수 있을까. 멕시코 만 난류가 흐름을 멈추면 유럽은 동토가 될 수 있다. 과학자들은 기온이 지금보다 2도 더워지면 이어지는 양의 되물림현상으로 인류는 패배자가 될 것으로 전망하는데, 우린 어떤 행동에 나서야 할까.

 

지구온난화를 막아보자는 취지에서 세계 정상이 모여 작성한 교토의정서의 한계를 짚어내는 마크 마슬린은 낙관적인가. 현재 모색되는 재생 가능한 에너지와 더불어 거론되는 기술적 대책을 소개하지만, 거기에서 그친다. 지구온난화의 대안으로 핵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저자는 “세계적 빈곤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가난한 나라들이 가능한 빨리 발전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과 같은 에너지 과소비 풍조를 충족시킬 재생 가능한 에너지는 존재할 수 없으며 철부지 같은 기술적 방안의 한계는 누가 보아도 명확한 것이거늘 마크 마슬린은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개발의 필연적인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에너지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행복할 수 있는 ‘대안적 삶’에 대한 논의는 《기후변화의 정치경제학》의 범위 밖인가.

 

가난한 나라의 발전보다 부자 나라들이 가난해지는 방법을 찾는 게 더욱 시급하지 않을까. 돈이 행복을 좌우하지 않는다. 부자와 가난뱅이를 구별하지 않는 동네에서 자급자족하던 때, 하늘은 언제나 파랗고 흐르는 물은 깨끗했으며 이웃은 언제나 다정했다. 진정한 대안은 그 시절로 되돌아가는 게 아닐까.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피할 행동, 자식 키우는 이에 경각심을 줄 《기후변화의 정치경제학》의 후편을 기대하고 싶다. (불교환경, 2010년 7-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