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3. 2. 26. 17:40


올 설 고향 길도 붐볐다. 연휴 기간이 길지 않았어도 경찰이 정체 구간의 갓길 통행을 유연하게 풀고, 스마트폰을 활용한 운전자들이 출발 시간을 분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뉴스 진행자의 설명이 있었다. 교통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해주는 첨단기기의 도움이 컸다는 건데, 어쩌면 고향으로 가는 자동차의 수가 줄었을지 모른다.


최근 명절에 도시에 남는 이가 늘고 있다. ‘고향이라는 감상이 그리 사무치지 않은 청년은 물론, 부모를 도시로 모셔온 장년들도 굳이 먼 길 고생하고 싶지 않을 수 있다. 가 봐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고향이 오히려 서먹서먹한 이가 시간이 갈수록 늘지 않던가. 게다가 요사이 추세인 납골당은 대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고, 가깝게 살아도 살갑게 지낼 기회가 적었던 친지들을 꼭 명절에 고향에 가서 만나야 할 이유는 그다지 없다.


혼자 사는 어떤 이는 고속버스나 열차를 예매해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는 길을 굳이 승용차를 가지고 간다. 자식들 생각하고 한해 재배한 농작물을 나누어주는 꼬부랑 모친의 즐거움을 마다할 수 없노라는 게 그 이유인데, 그이는 요즘 귀경인파 중 예외에 속한다. 시골 농촌에 남은 농부들이 예전 같이 다양한 농작물을 재배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은가. 나이 들어 힘이 모자라기 때문만이 아니다. 도와줄 이웃이 마을에 없으니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은 포기한지 오래다.


잘 팔리는 한두 가지 농작물만 논밭에 획일적으로 심다 보니 기계화하거나 아예 영농 전문기업에 맡긴다. 노인 내외를 위한 텃밭 농작물은 단출하므로 자식들이 찾아오면 읍내로 나가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보아야 한다. 손님이라도 오면 면 소재지의 식당을 예약해야 한다. 그러니 자식과 나눌 농작물이 있을 수 없다. 명절에 찾아온 손주가 밭에 자라는 무라도 하나 뽑으려 하면 놀라 막는다. 야박하기 때문이 아니다. 밭떼기로 계약한 상품이기 때문이라기보다 상인이 몽땅 가져갈 농작물에 농약이 배어 있는 까닭이다.


도시인들도 흔히 자신을 농민의 자식이라고 말하지만, 그 말은 퇴색되어 간다. 길던 짧던, 자신이 농촌에서 농사짓던 경험을 가진 이는 물론이고, 부모가 농사짓는 모습을 본 기억을 가진 이가 점점 드물어지지 않던가. 농촌을 떠난 사람들이 몰려서 사는 도시에 인구가 넘친 지 오래라서 농촌에 아기 울음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층간소음이 살인과 방화로 이어지는 도시에서 산후조리원 외에 아기 울음소리 들리지 않지만 농약으로 새소리와 개구리 소리가 사라진 농촌에 아기의 출현은 어색해지고 말았다.


요즘 농촌에 아기들이 안전하게 놀 시설은 물론, 공간도 함께 놀 또래도 없다. 아기를 낳을 젊은 부부가 드물고, 아이가 자라 다닐 유치원과 학원이 없거나 지나치게 멀다. 대도시 또는 대도시를 지향하는 중소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대부분의 아이에게 농민의 지식이라는 말, 부모도 시큰둥한 마당인데 실감날 리 없다. 아이가 장년이 되면 제 부모를 기억하며 차례야 지내겠지만, 굳이 귀성길과 귀경길을 붐비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농촌에 5일장은 자취를 감췄다. 대부분 자급자족하고 이따금 자기 고장에서 나오지 않는 농작물이나 해산물을 구하거나 새로 나온 농구를 보러 대장간으로 나설 일이 없지 않은가. 커피 전문점에 밀려 도시에서 자취를 감춘 다방이 한 집 걸러 문을 연 면 소재지까지 퍼진 건 아니지만, 요즘 웬만한 읍 소재지에 가면 거대한 덩치를 과시하는 대형 마트가 승용차들을 연실 빨아들인다.


농민들은 자신이 생산하는 농작물마저 마트에서 구입해야 한다. 수확하자마자 상인에게 팔아넘기므로 텃밭이 없다면 하루하루 저녁 준비도 식품매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지역 특산물도 지역에서 구입하기 어렵다. 상인이 수거한 농작물을 재분배하는 대형 물류센터는 지역을 따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농촌 지역의 마트나 도시의 마트나 파는 농작물은 비슷하다. 여느 마트마다 수입농산물이 넘치고 가공식품이 널렸다. 그러니 식단이 지역의 기후 조건이나 문화와 관계없이, 식성은 어디나 엇비슷하다.


이제 농촌이 필요 없는 세상이 도시에 제조될지 모른다. 도시 텃밭이 유행처럼 생기기 때문이 아니다. 시민들이 틈틈이 식구와 먹을 푸성귀를 심어 조금씩 뜯어먹는 텃밭은 농촌의 가치를 높이면 높이지 불필요하게 만들지 않는다. 땅과 땀의 가치를 비로소 인식하는 도시인들이 농민에게 고마워하게 되지만 대형 마트에 쌓인 농작물은 그런 가치를 소비자에게 알려주지 못한다. 깔끔하게 다듬은 식품의 재료에 불과하므로 가격이 저렴하면 그저 인기를 끈다. 그 점을 간파한 기업이 제빵에 이어 농업으로 파고들 태세다.


도시 인근에 대규모 온실을 짓는 대기업이 등장했다. 30층 높이의 철근콘크리트 수직농장도 솟아오를 날도 멀지 않았다. 땅을 배제한 온실과 수직농장은 허리 높이 작업대에 뿌리를 펼치는 농작물을 시시때때로 수확할 예정이라고 한다. 자본과 과학기술이 안내하는 수경재배다. 도시에서 가까울 뿐 아니라 실내에서 재배하는 만큼 병충해를 막을 수 있고 파종과 수확에 계절과 장소가 장애일 수 없다. 기계화로 인건비를 최소화하는 까닭에 수입 농산물은 물론 지역 농산물보다 가격 경쟁력이 높을 거로 예견한다. 다만 그런 농장에 전통 농부는 필요 없을 것이다. 관리직 사원과 시간제 노동자가 고용될 뿐.


태양과 LED조명으로 탄소동화작용을 하고 과학기술로 영양분을 공급하는 도시의 농장, 아니 공장은 아무리 정교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관리할지라도 생태계 안에서 진화해온 식물의 성장을 완전히 흉내 낼 수 없다. 수확한 식물을 선택할 사밖에 없는 이에게 균형 있는 영양은 물론 건강을 장기적으로 보장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석유 공급이 제한된다면 가동이 불가능할 그런 농장은 도시의 확장과 집중에 기생할 수밖에 없다. 판촉을 위한 현란한 광고 능력을 가진 자본이 아니라면 투자를 망설이겠지만, 땅과 더불어 농촌과 농민을 잃은 도시의 소비자들은 피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농사에 비닐 사용을 한사코 거부하는 농부가 있다. 귀농한 그는 땅을 벗어나지 않으려 애를 쓴다. 유기농업은 물론이고, 농작물이나 농부나 겨울에는 쉬어야한다고 믿는다. 멀지 않은 과거까지 우리 조상이 살아왔던 방식이다. 이웃은 물론이고 생태계의 삼라만상이 살아서 도움을 주고받던 시절의 농업이었다. 그 시절, 집 떠난 이는 고향을 그리워했고, 명절이면 반드시 찾아왔다. 생명체가 가진 건강한 귀소본능이다. 삶의 정서와 뿌리가 내린 자신의 땅이므로.


     농작물이든 사람이든 땅에 뿌리내리지 않으면 건강할 수 없다. 우리는 시방 건강한가. 다행히 명절이면 고향을 찾는 인파가 붐빈다. 희망이 남았다는 증거이겠으나 그 시효는 충분하지 않다. 돈이 만들어내는 신기루, 그 이기적 탐욕에서 서둘러 벗어날 궁리가 필요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심각해지는 징후가 더 흉흉해지기 전에. (지금여기, 2013226일, "마트에서 농작물을 구입하는 농민"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