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2. 4. 20. 11:11

냉장고에 아무 것도 없을 때, 쫓겨 사는데 지쳐 휴일이면 하루 종일 집에서 빈둥대고 싶은 청춘들도 밖으로 나가야 한다. 밥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리미리 챙겨놓지 않으면 귀찮은 일을 감수해야 굶주리지 않을 텐데, 그나마 수중에 돈이 있어야 자격이 있다. 냉장고가 텅 비어도 돈은 충분한데 주변에 문을 연 가게나 식당이 없다면 어떻게 하나. 명절 저녁에 방문한 친구들과 밖으로 나갔다 낭패를 볼 때도 가끔 있다.

 

대도시 아파트단지를 낀 넓은 공터는 대개 대형 마트가 차지한다. 넓은 주차장을 완비한 대형 마트는 없는 게 없을 정도로 온갖 식품들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풍성하게 갖춰 놓았다. 기름 가격 상승으로 가계 부담을 느끼는 고객을 위해 통 큰 주유소까지 마련한 마당이니, 기름을 넣어야 하는 고객들은 내친김에 승용차 트렁크는 물론 뒷좌석까지 가득 채우러 몰려든다. 그래도 다음 날 여전히 식품들로 넘치는 곳이 바로 대형 마트다.

 

생산자와 직접 연결하여 유통구조를 단순하게 하고, 종업원을 줄여 인건비를 절약하며, 판매하는 식품의 양을 늘려 원가를 줄인 대형 마트는 동네에 흩어졌던 가게들보다 훨씬 가격이 낮다. 그래서 승용차로 몰려드는 손님들은 집 주변 가게들이 문을 닫아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이 빠진 할머니를 위해 연시 몰래 감춰두는 가게는 사라진지 오래지만, 대형 마트의 식품매장에서 구입한 상품을 냉장고에 가득 채워두면 마음 든든하다. 갑자기 친구들이 쳐들어와도 끄떡없고, 천재지변이 와도 능히 견딜 것 같다.

 

대형 마트는 대개의 식품들은 도시 바깥에서 가지고 왔다. 잘 다듬어 포장한 농산물도 있지만 공장을 거쳐 가공된 식품도 있다. 물에 넣고 끓이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식품이 있는가 하면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으면 그뿐인 간편 식품도 많다. 그 자리에서 바로 뜯어 먹을 수 있는 식품도 부지지수다. 장 담그는 법을 알지 못하는 도시의 소비자들은 대형 마트 덕분에 반찬을 만드는데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조리법을 잊어도 그만인 세상으로 안내한 대형 마트는 머지않아 귀찮게 음식 차리는 일에서 소비자들을 해방시킬지 모른다. 대형 마트로 식품이 언제나 쏟아져 들어오고 구입할 돈이 수중에 있다면, 그렇다.

 

구소련이 무너지자 미국은 쿠바를 즉각 봉쇄했다. 그러자 국제 시세의 5배로 설탕과 담배를 구입한 소련 덕분에 식량을 해외에서 넉넉히 구입할 수 있었던 쿠바는 졸지에 굶주리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도시농업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석유로 가공하는 비료와 농약이 없었지만 유기농업으로 극복한 쿠바는 힘겨웠던 시간을 용케 버티고 요즘은 식량을 거의 자급자족한다. 텃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교환하면서 대형 마트가 없어도 시민은 건강하다. 돈이 없어도 굶주리지 않는다.

 

공원과 약간의 녹지를 제외하면 거의 전역이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칠갑이 된 우리의 도시는 외부에서 식품이 공급되지 않으면 당장 문제가 발생한다. 설날 딸기우유가 떨어지는 건 애교에 불과하다. 작년 311일 일본 동북부 해안에 초대형 지진에 이어 강력한 쓰나미가 도로와 건물을 휩쓸어가자 생필품을 구하지 못한 주민들은 굶주려야 했다. 일본에 식량도 석유도 전기도 충분하지만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사망하는 노약자가 적지 않았다. 농촌과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유통 과정이 투명하지 않은 우리 도시들은 괜찮을까.

 

세계적 경제잡지인 포브스의 기자인 크리스토퍼 스타이너는 2010년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석유 종말 시계에서 휘발유가 갤런 당 16달러가 되면 미국 시장에 초밥이 사라질 것으로 추정했다. 석유 가격을 감당하지 못해 참치를 잡으러 먼 바다로 나가려는 선단이 더는 존재하지 못할 것으로 추측한 스타이너는 1갤런 당 6달러가 되면 덩치가 큰 지프형 승용차는 휘발유 가격을 감당하지 못해 거리에서 퇴출될 것이라고 상상했다. 1갤런이면 3.78리터, 1달러면 1100원 정도, 우리나라는 현재 휘발유 1리터 당 2000원을 돌파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갤런 당 6달러를 훌쩍 뛰어 넘었는데, 거리에 대형 승용차가 넘치고, 대형 매장의 주차장을 연실 메운다. 우리의 석유 사정이 미국보다 나은 걸까.

 

대형 마트는 석유 지원 없이 식품을 들여올 수도, 전시할 수도 없다. 아니 운영조차 힘겨울 것이다. 가공식품은 물론이고 농작물도 석유 없다면 파종에서 수확. 저장에서 운송이 불가능하다. 석유를 가공한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으면 농작물은 재배할 수 없다. 농기계와 저장시설은 석유를 들이킨다. 거대한 선박 아니라면 수입 농산물은 저렴할 수 없다. 아직까지 값싼 식품들이 대형 마트의 식품 매장에 가득하지만, 석유 없다면 더는 볼 수 없다. 그런데 시방, 세계의 석유 가격은 오르기만 한다. 그것도 가파르게.

 

대형 마트에 식품이 떨어질 날은 멀지 않았다. 대체할 자원이 없는 석유는 분명히 고갈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석유 없이 살 수 있는 삶의 방식을 늦지 않게 준비해야 한다. 우리 조상의 삶에서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야곱의우물, 2012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