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9. 3. 1. 13:54

 

굴업도에서 ‘첫 남성’을 만났다. 키 작은 들꽃들이 작지만 화사한 자기만의 색을 부끄럽게 피어올리는 4월 중순, 햇빛이 잘 닿지 않는 기슭에 웅크린 그를 1994년과 1995년 뜨거웠던 핵폐기장 반대투쟁으로 간신히 지켜낸 서해안의 진주, 인천시 옹진군 덕적면 서포3리 굴업도에서 만날 줄이야.

 

첫 남성? 아니, 천남성이다. 남쪽 하늘의 별, 천남성(天南星). 근사한 이름을 가졌지만 섣불리 접근하다 자칫 생명이 빼앗길 수 있는 따뜻한 지방의 독초. 가시를 숨긴 장미와 차원이 다르다.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찔린 뒤 죽었다지만 그건 백혈병이 있었기 때문이고, 첫 남성, 아니 천남성은 자신을 무턱대고 탐하던 생태계의 백성을 수도 없이 응징했을 것이다. 우리 땅에서 천남성은 첫 남성을 치명적으로 유혹하는 팜므파탈이었는지 모른다. 응달에 고개 숙이고 피어오른 천남성에 멋모르고 접근했던 의기양양한 사내는 후회해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들풀들이 저마다 새순을 내보내려 애쓰는 4월 중순, 긴 꽃대를 밀고 원통의 깔때기 모양의 녹색 꽃을 비스듬하게 내미는 천남성은 굴업도에서 주인 행세를 하는 흑염소에게 철저히 외면 받는다. 마침 젖을 보채는 새끼를 낳아 허기질 텐데, 하얀 선들이 세로로 평행선을 그으며 부드럽게 올라오는 꽃잎과 말랑말랑한 잎사귀에 입도 대지 않는 흑염소는 천남성의 첫 남성이 아닌 게 분명하다. 천식이나 소염, 거담과 중풍에 효과가 있다지만 그건 약을 아는 사람들 이야기고, 조금만 먹어도 피부에 알레르기가 나타나게 하는 천남성은 사약의 원료가 아니던가. 사람은 배워서 알지만 흑염소는 경험을 물려주며 각인했을 것이다.

 

바닷바람이 싱그러운 4월, 덕적도에서 작은 배로 갈아타고 30분 정도 달리면 닿는 작은 섬 굴업도에는 새 생명의 향기가 가득하다. 이따금 이장네 작은 트럭이 방문자를 실어나르는 길가에 하얗게 피어난 민들레가 반가운 굴업도의 산록은 잎눈에 생기가 도는 소사나무가 따사로운 햇살을 만끽하는데, 나뭇가지 사이로 두드러지게 파란 하늘에는 커다란 매들이 천천히 맴돈다. 어릴 적 기억의 세계로 되돌아간 착각에 빠질 즈음, 문득 한 무리의 검은 눈동자들의 무심한 시선을 느낀다. 굴업도의 터줏대감 흑염소다.

 

마을이라야 대여섯 가구가 전부인 굴업도에서 이장 집에 짐을 풀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성이를 오르면 옅은 해무에 싸인 해변이 신비롭게 드러나는 굴업도는 과연 서해안의 진주답다. 동섬과 서섬을 잇는 두개의 넓은 백사장은 등을 맞댄 채 한가롭게 드리워지는데, 높은 하늘을 맴도는 매나, 사람들의 발길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흑염소는 한가로울 수 없다. 방금 세상에 태어난 제 새끼들을 돌보느라 여념이 없는 까닭이다. 마른 억새 사이로 파릇한 풀을 뜯던 흑염소 가족에게 매는 치명적이다. 천남성에 입을 댈지 몰라 어미가 안절부절 못하는 틈에 벼락 같이 내려와 새끼를 채가는 까닭이다.

 

다가오는 사람과 거리를 유지하는 흑염소가 만들어 놓은 오솔길로 발을 옮기다보면 여기저기 매에 희생된 어린 흑염소의 잔해가 눈에 띄는데, 굴업도와 같은 서해안 작은 섬의 하층 생태계를 왜곡시킨다며 지탄받는 흑염소는 저렇듯 매를 불러들여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제 매를 보려면 굴업도를 찾아야 할 것 같은데, 주민도 흑염소 증가를 억제하는데 한몫을 담당한다. 총을 사용하는 건 아니다. 길목에 직경 10센티미터 이하로 오므린 나일론 끈 올무를 여러 개 펼쳐놓고 며칠을 기다리면 필시 발목이 걸려 달아나지 못하는 녀석이 있을 터. 집에서 잡아 저민 고기를 원하는 손님상에 올리거나 연안부두로 판다.

 

몸무게가 30킬로그램 남짓에 불과해 염소 무리 중에서 작은 편인 흑염소는 한국 토종이다. 토종답게 추위에 잘 견디며 독초를 제외하면 아무거나 잘 먹어 섬 지방 주민의 수익을 위해 오래 전에 정부가 풀어놓은 가축이었다. 늦은 가을 짝짓기를 해 새싹이 파릇파릇한 계절에 2마리의 새끼를 낳는 흑염소는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지 않아 무인도에도 방목했지만, 섬 지방에 주민이 줄어들고 몰이꾼의 인건비가 높아지면서 하층 생태계를 지배하는 터줏대감이 됐다. 그러자 팔색조가 분포하는 섬에도 마구잡이로 풀어주었던 사람들이 뒤늦게 아우성이다. 유해동물이라며 엽총을 드는 게 아닌가. 엽총을 들자 매가 접근하지 않고, 천적이 사라지자 거침없이 늘어나게 된 원인은 사람이 제공했건만, 굶주릴 수 없어 발굽으로 풀뿌리를 파먹고 여린 나무껍질과 나뭇가지까지 뜯는다고 난리를 친다. 흑염소 성장호르몬을 개발했다고 소문낼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죽이잔다.

 

사람의 난소암 치료 성분을 젖으로 생산할 거룩한 임무를 씌우고 흑염소의 유전자를 조작한 생명공학자는 한 때 ‘메디’라 이름붙인 그 흑염소만 있으면 세계 시장을 평정할 것처럼 언론에 떠벌였지만 메디는 소리 소문도 없이 죽었다. 사료 첨가제, 안약, 식품과 화장품의 방부제로 사용하기 위해 생명공학연구원에서 유전자를 조작한 흑염소는 항균력을 가진 락토페린을 생산할 임무를 부여받았다. 언론이 이름을 주목하지 않은 그 흑염소와 후예는 특허권자에게 기대만큼의 이익을 보장했고 여전히 보장하고 있을까.

 

땅콩 심은 모래땅에서 엎드려 일하던 주민에게 짭짤한 소득을 보장해준 굴업도 흑염소의 운명이 시방 바람 앞에 등불이다. 제 새끼들을 키우려 하늘을 맴도는 매나 발목 올무로 부수입을 올리는 주민 때문이 아니다. 핵폐기장 위기에서 벗어난 뒤 찾아간 방문객들의 적극적인 입소문으로 아름다운 자태가 세상에 알려진 작은 섬에 18홀 정규코스 골프장이 포함된 관광단지를 만들려고 우리나라의 한 굴지의 대기업에서 52만 평 거의 대부분을 사들인 것이다. 흑염소는 골프장과 공존할 수 없다. 흑염소만 쫓겨나지 않을 것이다. 파란 하늘을 맴돌던 매도, 방문객에게 방을 내주던 주민의 운명도 언제 꺼질지 모른다.

 

천남성을 무심하게 피하는 흑염소는 하늘을 천천히 맴도는 매와 눈이 휘둥그레진 방문객을 맞는 주민과 더불어 오늘도 서해안의 진주, 굴업도를 지킨다. 시민들은 골프장을 위해 핵폐기장을 반대한 게 아닌데, 사활을 걸고 알려야 하는 기업의 사회적 이미지를 굳이 골프장으로 더럽혀야 할까. (전원생활, 2009년 4월호)

 
 
 

생태계·동물

디딤돌 2006. 1. 23. 22:48
 

가을걷이 마친 벌판에 어느덧 서리 내리고 파란 하늘이 더 파래질 즈음, 매를 만나려 우리는 굳이 남원산성까지 올라갈 필요가 없었다. 남원산성 올라가 이화문전 바라보지 않아도 코발트 빛 하늘엔 매 한두 마리 반드시 선회했고, 매가 내려다보는 너른 벌판에는 먹이가 될 작은 동물들이 부족하지 않았으리.


연줄 잡고 뛰어 오르던 과수원 언덕에서 드넓게 펼쳐지던 주안벌판은 인적 없어 쓸쓸하고, 하늘에 닿을 듯 아스라한 연과 천천히 큰 원 그리는 매는 파란 하늘에서 한가롭기 그지없다. 그럴 즈음 우리는 겨울이 다가오는 것을 직감한다. 뺨을 스치며 북녘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시리다 못해 뼈 속 깊이 상쾌했던 것이다. 때를 같이해 저만치 신작로와 가까운 무논엔 한 무리의 청년들이 북적이며 부지런히 일감 벌인다. 겨울방학을 맞아 야외 스케이트장 개장을 위해 서두르려는 것이다.


파란 하늘. 그런 하늘은 거의 요즘 보기 어렵다. 아이들에게 당시 하늘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짙게 파랬다고 하면 이해하려나. 퍼붓던 장마가 잠시 멈춘 오후, 흰 구름 사이 문득문득 드러나는 하늘은 요즘도 잠시 짙지만, 그 시간, 학교와 학원가를 맴도는 아이들의 눈에는 하늘이 들어오지 못한다. 스모그로 찌들어들기 전까지 반나절도 허락하지 않는 파란 하늘은 60년대를 잊었다. 눈꽃 핀 소백산만큼이나 파랗던 60년대 하늘엔 선회하는 매가 있어 고즈넉해도 지루하지 않았는데, 소음과 스모그로 뒤덮인 오늘, 말 그대로 별 볼 일없는 하늘이 되고 말았다.


‘탈춤’을 열창해 1978년대 대학가요제에서 은상을 받은 그룹사운드 ‘활주로’는 이듬해 배철수를 중심으로 새로운 그룹사운드 ‘송골매’를 조직, 1980년대 가요계를 풍미했다. 배철수가 졸업한 항공대학교는 ‘세계로 웅비하는 매 중의 매인 송골매’를 학교의 상징으로 정했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순발력으로 순간을 가로채어 비상하는” 송골매의 모습은 영광의 극치이며, “무한경쟁 시대로의 학문과 창의를 넓히고자 하는” 항공대학교의 의지를 표현한다면서. 서울시립대학교 교정에는 날개를 넓게 펼친 장산곶매가 콘크리트 횃대에 앉아있다. “가장 멀리 보면서 가장 겸손하지만 가장 당당한 장산곶매는 앞날을 미리 준비하는 지혜의 보고”라며 시립대학교 동문들은 의미를 부여한다.


독수리보다 덩치는 작아도 동작이 민첩한 매는 살아 움직이는 동물을 실수 없이 낚아챈다. 자신의 단호한 행동에 후회가 없어 보이는 매는 한국 젊은이에게 인기가 높다는 사실에 마냥 뿌듯해하지 않을 것이다. 시뿌연 하늘 아래 녹지가 드문 캠퍼스에 매 동상을 멋지게 만들어 놓고 기념사진 찍어대는 학생들의 긍지와 관계없이, 매는 자신의 습성을 대학의 상징으로 의뢰하지 않았다. 수진이, 날진이, 해동청, 보라매로 반색하며, 전라민요는 노래하지만 타고난 습성을 이용하려 할 뿐, 사람들은 매의 자유로운 삶을 거의 보장하지 않는다. 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만이 아니다. 목에 링이 끼워진 가마우지처럼, 발에 시치미 단 사람들은 꿩 사냥에 동원할 따름이다.


전라민요에 등장하는 날진이는 사실 없다. 산진이를 그렇게 노래한 모양인데, 산에서 산채로 잡은 매가 산진이다. 황조롱이나 붉은배새매도 동원할 수 있지만 붉은배새매는 작고 생포하기 어렵다. 황조롱이는 한사코 달아나려 한다. 덩치가 크고 의리도 각별한 매가 꿩 사냥엔 제격이다. 다리에 줄을 묶은 멧비둘기를 미끼로 늘여놓고 수풀 속에 숨은 매사냥꾼은 매가 달려들면 줄을 조금씩 잡아당겨 먹느라 정신없는 녀석의 다리를 단단히 움켜쥔다. 잠시 줄에 묶이는 매는 사람들이 던져주는 산 닭을 잡아먹다 한 달이 못돼 길들여지고, 이때부터 산진이의 삶이 시작된다. 산진이보다 어려서 잡혀와 신세 망친 매를 수진이라 하고, 수진이를 꿩 사냥용으로 길들이곤 보라매라 부른다. 산진이든 수진인든, 매사냥용 매를 해동청이라 하고, 해동청은 중국과 일본에도 명성이 자자했다고 얼마 남지 않은 매사냥꾼들은 옛 이야기를 풀어놓지만 이 땅에 매는 더는 보이지 않는다.


아직 제 모습을 숨기지 않는 황조롱이는 보존된 자연생태계 주변의 아파트 베란다에 둥지를 쳐 언론에 간혹 소개되는데, 천연기념물 323호로 지정 보호되는 매는 외딴 섬이나 해안 절벽에 이따금 생존한다는 소식이 전문가 인편으로 전해질 뿐이다. 얼마 전까지 파랗던 하늘을 지배했던 매는 왜 우리 곁을 떠났을까. 유라시아 대륙의 하늘을 호령했던 매가 세계적으로 자취를 감추는 이유는 짐작하는 대로 인간의 서식지 파괴겠지만, 전문가는 체내 오염물질의 축적을 중요한 이유로 꼽는다.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위치한 매는 디디티와 같은 합성유기물질에 고농도로 축적될 수밖에 없다. 알껍데기가 얇아져 부화에 실패하거나 짝짓기를 거부하는 사례는 최근 들어 최상위 육식동물에서 흔히 발생한다. 결국 사람이 원인을 제공한 셈이다.


‘한국 전통 매사냥 보전회’는 임금에서 백성까지 수 천 년 이어온 전통 풍속이 사라지는 데 안타까워한다. 우리에게 배운 일본은 매사냥을 계승 발전시키고 있는데, 명맥만 겨우 유지하는 우리는 세계 제일이었던 선조에게 낯을 들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자연 친화적이고 멋진 매사냥의 전통을 잇고 종주국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 인터넷에 동호회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한국의 매사냥 부활을 기원한다. 우리 토종 문화를 심층 취재하는 최성민 선생은 얼마 남지 않은 매사냥꾼을 인간문화재로 받아들이지 않은 문화재관리국의 단견이 아쉽다. 반면, 매사냥이 한국 수렵문화를 대표하지 않고, 사람이 아닌 매가 주인공이며, 개인 놀이에 불과하다는 문화재관리국과 반대 이유로, 매사냥을 전북문화재로, 여전히 활동하는 전영태 옹을 매사냥 인간문화재로 지정한 전라북도 문화재위원회에 고마워한다.


‘꿩 잡는 게 매’임에 틀림없지만, 꿩을 사람에게 주려고 매가 꿩을 잡는 것은 아니다. 영리한 매는 발톱을 감춘다고 한다. 꿩 잡던 사람은 굶주린 매를 앵벌이 혹사시키며 제 잘난 줄 알지만, 매가 사라져가는 원인에 무감각하다. 매사냥이 없으면 사람은 단지 허전할 뿐이지만, 매가 살지 못하는 환경이라면 사람도 살아갈 수 없다. 영리한 매는 제 발톱을 감추었는데 사람은 아직도 천방지축이다. 매보다 먹이사슬이 상위에 있는 사람은 매가 사라진 이후에도 안녕할 수 있을까. 파란 하늘에 맴돌던 매가 그립다. (물푸레골에서, 2006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