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0. 2. 12. 01:01

유난했던 올 겨울의 추위도 이제 물러앉았다.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진 이상 차가운 대륙성 고기압이 아무리 남하해도 봄기운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어린이는 “어둠이 비키면 내일”이라고 했는데, 눈이 녹으며 오는 봄은 겨울이 비켰기 때문일까. 얼었던 땅이 풀려 나무와 풀들이 물을 흡수하기 시작하면 삼라만상의 생명체들은 비로소 기지개를 편다. 벌과 나비는 꿀을 찾아 날개를 펴고 초식동물은 막 피어난 잎사귀를 먹으려 움츠렸던 몸을 움직일 것이다. 곧 태어날 새끼에게 젖을 물려야 한다.

 

초식동물이 새끼 낳을 때가 가까워지면 육식동물은 태기를 느낀다. 새끼들은 어미가 곁에 있어도 행동이 굼뜨니 쉽게 잡아먹을 수 있다. 육식동물도 제 새끼들을 무럭무럭 키우려면 잘 먹어야 한다. 어미젖을 때고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제 새끼의 식성을 감당하려면 아무래도 초식동물 새끼들의 동작이 날렵해지기 전에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그래서 그런가. 육식동물에 새끼를 잃을 확률이 높은 초식동물들은 한 번에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초식동물에 여린 잎사귀를 뜯길 나무와 풀도 마찬가지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데 필요한 만큼 이상의 잎사귀를 자꾸 펼쳐낸다.

 

영양가 넘치는 먹이가 흔전만전한 인간 주변을 벗어나지 않는 시궁쥐나 생쥐와 달리 산록과 이어진 논밭이나 크고 작은 산등성이에서 살아가는 등줄쥐는 봄이 오기 무섭게 번식에 들어가 해마다 너덧 번 새끼들을 낳는다. 한배에 적으면 서너 마리, 많으면 열 마리 가깝게 잉태한다. 3개월만 지나면 성숙하니 이론적으로 등줄쥐 한 쌍이면 한 해 1200마리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셈이다. 곤충도 먹지만 식물의 씨앗을 즐기는 등줄쥐가 죽지 않고 새끼를 거푸 낳아댄다면? 온 세상의 식물은 씨앗 한 톨 남기지 못하고 산간은 등줄쥐 천지일 테지만, 실상은 아니다. 눈이 여간 밝지 않으면 자연에서 등줄쥐를 만나기 어렵다.

 

우리 산천에 분포하는 들쥐 종류 중에서 가장 개체가 많아 십중팔구를 차지하는 등줄쥐는 다 자란 몸이 10여 센티미터에 몸무게가 고작 60그램에 불과한 보잘것없는 설치류다. 이마 뒤에서 꼬리 앞 몸통까지, 붉은 색이 도는 갈색 등판의 한가운데를 검은 줄이 지나가 등줄쥐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동작을 일순 멈추면 주위의 잘 마른 낙엽과 구별하기 어렵지만 사방에 천적이 많은지라 초조한 듯 두리번거리지 않을 수 없는 습성을 지녔다. 습하지 않은 땅 밑 40센티미터에 복잡한 굴을 뚫고 지내지만 다람쥐와 달리 먹이를 저장하지 않으므로 수시로 굴 밖에 고개를 내밀어야 하는데, 영악한 천적들은 그때를 노린다.

 

천적을 몹시 두려워하는 등줄쥐가 드물거나 없어지면 산록의 초목들은 무성해질까. 그렇지 않다. 등줄쥐가 식물의 천적인 곤충을 잡아먹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등줄쥐가 드물어지는 만큼 육식동물이 배를 곯아야 하므로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한 쌍의 등줄쥐가 새끼를 무섭게 낳아야 포식자들이 어느 정도 버티며 다른 초식동물의 수를 조절해주지 않던가. 햇볕이 스미는 비탈을 독차지하는 조릿대가 다른 식물의 씨앗이 흙에 파묻히는 걸 방해하는 건 토끼와 산양이 자취를 감춘 까닭이다. 겨울철 잎사귀가 뜯기지 않자 빼곡해진 탓이다. 칡넝쿨이 나무를 뒤덮어 탄소동화작용을 방해하는 건 뿌리를 캐먹는 멧돼지의 서식이 도로와 엽총 때문에 불안해진 결과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등줄쥐의 의지와 관계없지만, 등줄쥐는 구렁이를 지켜준다. 초가지붕에 똬리 틀고 앉아 천장을 쿵쾅거리고 곳간을 파고드는 집쥐를 잡아먹어 농약 모르던 농부들이 보호해주었지만 정작 구렁이는 등줄쥐를 주로 잡아먹는다. 툰드라 지대의 늑대가 순록보다 들쥐를 잡아먹는다는 사실만큼 놀랍지 않을지언정, 구렁이는 등줄쥐 없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거다. 어디 구렁이 뿐인가. 이 땅에서 여우와 늑대는 자취를 감췄으니 빼도, 족제비와 대륙목도리담비가 등줄쥐를 노리고 쇠부엉이와 큰소쩍새, 까치살모사와 누룩뱀, 하다못해 때까치와 황소개구리까지 등줄쥐를 먹이로 삼지 않던가. 그런 등줄쥐를 어찌 해롭다 할 것인가. 차라리 금수강산의 기둥이지.

 

치사율이 7퍼센트에 달하는 유행성출혈열을 일으키는데, 당치도 않은가. 방심하면 치명적일 수 있는 쯔쯔가무시와 렙토스피라 증의 원인을 제공하는데 어찌 해롭지 않다 호도하는지 의아한가. 사실 그 점에서 등줄쥐는 억울할 게다. 배설물과 침에 바이러스가 있는 거, 어디 등줄쥐만의 사정이던가. 남북 대치 상황에서 시야를 확보하려고 서로 키 큰 나무들을 베어버리자 햇살에 마른 등줄쥐의 배설물은 바람을 타고 군부대나 마을로 쉽게 날아간다. 그래서 한타바이러스가 사람의 호흡기로 들어가는 거야 등줄쥐의 잘못이 아니다.

 

쯔쯔가무시? 그건 등줄쥐 털에 기생하는 털진드기의 유충에 물려 생긴다. 백두대간과 이어지는 정간과 정맥들을 골프장과 스키장, 그리고 그 놀이시설로 빨리 이어주는 아스팔트로 사방팔방 끊어 놓은 게 누군데. 인간과 자동차와 아스팔트 냄새를 혐오하는 등줄쥐의 천적이 고립되자 등줄쥐는 물론이고 털진드기까지 늘어난 거다. 그 책임을 어떻게 등줄쥐에게 물으려 드나. 오염된 물과 흙에 퍼지는 렙토스피라 증의 세균이 등줄쥐만 먼저 감염시키고 그 다음에 인간에게 전단한다던가. 등줄쥐에게 화살이 집중되지만 다른 들쥐는 물론 가축도, 경우에 따라 인간 사이에도 세균이 전달되지 않던가. 등줄쥐를 의심하기에 앞서 당신의 강아지에게 먼저 백신을 투여하는 건 어떨까.

 

겨우내 비웠던 농막의 아궁이에 불을 붙이려는 순간 쌓아둔 나무 사이로 머리를 쏘옥 내민 등줄쥐와 눈동자가 마주친 한 농부는 굳이 달아나려 하지 않는 등줄쥐를 안쓰러워한다. 데리고 온 고양이에게 들키지 않기를 바란 건데, 깊은 산의 암자에서 부엌 아궁이에 불을 땔 때면 국수 한 가닥을 얻어먹고파 한 스님을 기다리던 등줄쥐가 있었다고 한다. 부엌 밖에서 다른 이의 인기척이 다가오면 냉큼 굴로 몸을 숨기던 그 등줄쥐는 스님의 등과 어깨를 타고 노는 친구였다는데, 등줄쥐는 사람에게 해로울까. 굳이 보호하지 않아도 불평불만 없이 잘 지내는 자연의 이웃이 아닌가. 질병? 사람이 생태계에 옮기는 게 훨씬 많다. (물푸레골에서, 2010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