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5. 6. 9. 19:15


메르스, 메르스, 메르스. 사바세계의 이야기를 메르스가 평정했다. 장안의 분위기를 메르스가 압도한다. 오호통제라! 지하철 맞은편에 나란히 앉은 젊은이들은 아리땁게 화장한 얼굴의 절반 이상을 마스크로 가렸다. 그러자고 공들여 화장하지 않았겠지. 마스크가 주변인의 체액을 어느 정도 막아주겠지만 공허해 보인다. 자신이 감염되었다는 걸 충분히 의심할 위치에 있던 서울의 한 대형 병원 의사가 1500명이 모인 장소에 참석하는 현실이 아닌가.


남부럽지 않게 드디어 강연 하나가 연기되었다. 한꺼번에 취소돼 수입을 걱정하는 강사에 비하면 다행일 테지. 초기 대응은 외면했으면서 3차감염을 막겠다던 정부의 호언이 여지없이 빗나갔으니 병원 이외에서 감염된 사례가 없다는 당국의 자료를 믿고 마스크를 벗을 시민은 아마 드물 것이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자택에 머물러야 할 이가 골프장에서 땀 흘리는 형국이므로. 건강한 이에게 감염되지 않을 거라 의사들이 방송 카메라 앞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강연은 연기 또는 취소된다. 메르스가 감기 정도라고 서울 강남보건소장이 목청을 높여도 소용없을 것이다.


메르스 확진 환자를 격리 병동에서 치료한다는 소문이 돌았던 병원의 장례식장에 모친을 모시려 했던 선배는 서둘러 장례식장을 바꿨다. 이튿날 조간신문은 확진환자 입원 여부로 병원끼리 다투는 실태를 보도한다. 격리병동에서 치료하는 환자가 메르스 확진이든 아니든, 다른 질병의 환자나 보호자, 의료인이나 방문자들이 동요할 일이 아니지만, 현실은 아비규환에 가깝다. 메르스 확진환자가 있다는 소문이 돌기만 해도 내왕하는 환자가 크게 줄어드는 현실에서 고소고발이 춤을 추는 모양이지만,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는 시민들은 좌불안석이다.


메르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치사율이 얼마? 무시무시하게 이야기하는 통계수치는 언론마다 제각각이다. 분명한 건, 평소 건강한 사람은 감염되지 않거나 감염되어도 완치된다는 사실일 게다. 하지만 더욱 분명한 건, 메르스로 사망하거나 치료받은 이에 비해 교통사고나 작업장사고로 사망하거나 다친 이가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물론 스스로 조심하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교통사고나 작업장사고에 비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감염될 수 있고, 게다가 치사율까지 높다고 하니 메르스를 조심해야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어떤가? 시방 사바세계는 소문에 휘둘린다. 교통사고나 작업장사고 역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게 대부분이고.


메르스 바이러스는 내부 유전자가 DNA로 구성된 보통의 바이러스와 달리 RNA라고 한다. 조류독감 바이러스도 RNA로 구성되었다. DNA와 달리 복제가 부정확한 바이러스의 RNA는 다양한 변이가 발생하는 관계로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이 어렵다는데, 그간 메르스로 사망한 사람은 조류독감의 일종인 2009년 신종플루보다 훨씬 적었다. 닭이나 철새에서 기원한다고 알려진 조류독감처럼 낙타에서 기원한다는 메르스 역시 어제오늘 발생한 바이러스 질환은 아닐 텐데, 왜 하필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아우성일까? 일각에서 염려하듯, 우리나라 사람의 면역력이 유별나게 약하기 때문은 아닐 듯한데.


영어로 메르스(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는 중동호흡기질환으로 해석해야 옳을 텐데, 낙타의 사육 환경이 궁금하다. 낙타의 살코기를 먹는다고 하니 혹시 공장식으로 키우는 건 아닐까? 발생하기만 하면 생매장에 가까운 끔찍한 살처분으로 대응하는 조류독감은 2003년부터 언론이 주목했지만 그 이전에 없었을 리 없다. 메르스도 마찬가지일 텐데, 중동의 국가들이 덩치가 큰 낙타를 구제역에 속수무책으로 변한 소와 돼지처럼 밀집시켜 사육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메르스 바이러스가 변이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 전파된 바이러스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아무래도 초기 대응이 문제였나본데, 부실한 공공의료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숙주를 달리하면 바이러스는 갑자기 무서워질 수 있다. 변이가 빠르고 다양할수록 위험해질 가능성도 높다. 조류독감이 그렇다. 하지만 닭과 오리가 떼로 죽는 아유는 따로 있다. 과다하게 밀집해 사육하는 가축은 유전적 다양성을 잃었다. 한꺼번에 도살해 포장하는 공장의 대형 기계의 오차범위를 만족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육종한 결과, 면역력까지 덩달아 약화되었다. 그런 가축에 변이된 바이러스가 전파된다면? 정부는 안전반경을 설정해 살처분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효율성을 고려해 극단적으로 육종한 돼지와 소도 마찬가지다. 구제역이 창궐하면 살처분에 들어가는데 메르스 바이러스는 사람을 공격했다. 사람은 유전적 다양성을 잃지 않았지만 도시에 밀집돼 아웅다웅 살아간다.


닭과 오리, 돼지와 소뿐이 아니다. 사라지면 인간은 4년을 버틸 수 없다고 흔히 말하는 꿀벌도 타고난 유전적 다양성의 대부분을 잃었다. 더 빨리 더 많은 꿀을 모으는 품종으로 단순화했기 때문이다. 농작물도 사정은 비슷하다. 유전자가 단순해진 다수확품종은 엄격한 경작환경을 요구한다.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특히 그렇다. 그런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들의 면역력은 괜찮을까? 농사지은 농작물로 밥을 지어 식구나 이웃과 나누던 시절에 몰랐던 질병의 목록은 길어지기만 한다. 약과 건강보조식품이 늘어날수록 병원은 커진다.


정부의 부실한 대응은 세계만방에 씻을 수 없는 망신과 걱정을 안겼다. 선정성에 눈이 어두운 언론이 차분하지 못하니 시민들은 허둥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메르스의 경우 좀 지나치다. 바셀린을 코에 바르면 안전해진다는 뜬소문으로 약국의 재고가 바닥났고 먼지 많은 작업장에 적합한 마스크가 품귀를 빚었다. 감염자가 있다는 소문으로 병원과 학원이 곤혹을 치루고 법적 대응하는 사례가 늘어난다. 요즘 사람들의 귀가 얇아서 그럴까? 귀가 얇아졌다기보다 소문의 합리성과 진위를 가려내는 능력이 허약해졌기 때문은 아닐까? 면역력이 약해진 사회의 서글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지금여기, 2015.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