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9. 4. 6. 01:26

 

은쟁반을 구르는 옥구슬은 어떤 소리를 내기에 그리 상찬하는 걸까. 은쟁반도 옥구슬도 본 적 없으니 짐작할 수 없지만, 그런 표현이 필요한 상황까지 모르는 건 아니다. 동물의 거친 외마디는 아니고, 남자도 해당 사항 없다. 아주 어리거나 나이든 여성은 아닐 게고, 젊디젊어도 굵거나 허스키한 목소리의 소유자는 자존심을 눌러야 할 터. 아무래도 고우면서 밝고 활기찬 목소리가 상황에 잘 어울릴 텐데, 그렇다면 “꾀꼬리 같은 목소리”는 어떤 걸까. 은쟁반에 구르는 옥구슬 소리와 비슷할까.

 

흔히 높은 음역으로 곱게 올라가 빠르고 경쾌한 곡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여성 가수에게 상찬하는 ‘꾀꼬리 같은 목소리’. 꾀꼬리는 자연에서 얼마나 아름답게 우는지 궁금한데, 대부분의 사람은 꾀꼬리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까치나 참새와 달리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인가. 그럴지 모른다. 오죽하면 숨바꼭질하던 술래가 “못 찾겠다, 꾀꼬리!” 하겠는가. 하지만 울음소리는 우리 곁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았다. 아직은 늦은 봄부터 농익은 여름까지, 가까운 시골과 숲에 가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삣 삐요코 삐요, 삣 삐요코 삐요” 전문가의 귀에 그렇게 들리는가. 한 도감은 “히요 호호 호이요”라고 운단다. 우리가 사용하는 자모음으로 꾀꼬리의 울음소리를 표현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닐 테지만 나름대로 애를 썼는데, 어떤 이는 “호 호이호 호 호이호”란다. 아무튼, “꾀꼴 꾀꼴”은 아니다. 옛 가사에서 꾀꼬리를 곳고리새라 했다니 “곳골곳골” 운다고 본 걸까. 옛말로 ‘곳골-곳고리’는 “꽃처럼 고운 모습”이라는 설이 있나본데, 그러고 보면 예나 지금이나 꾀꼬리의 자태는 꽤나 고왔나보다.

 

꿈속에서 꾀꼬리를 잡거나 품으로 꾀꼬리가 날아온다면? 머지않아 아름다운 여성을 얻거나 부와 권력과 명예를 움켜쥘 거란다. 임산부의 방으로 꾀꼬리가 날아들면 장차 군인으로 성공할 아이가 태어난다는데, 꾀꼬리가 아름다운 여성을 상징하기 때문인지 하나같이 남성이 만족할 해몽이다. 파란 하늘로 꾀꼬리가 날아간다면? 그것 참! 그런 해몽도 좋다. 어려웠던 일이 술술 풀린단다. 숲에서 꾀꼬리를 잡는다면? 젊은 남성이여, 가슴을 부풀려도 좋겠다. 예쁜 사랑을 얻는단다. 꿈에서도 상찬하는 꾀꼬리. 얼마나 예쁘기에 그럴까.

 

봄철에 천천히 산록을 오르며 풀꽃들을 유심히 보라. 애기똥풀을 포함해 유난히 노랗다. 벌을 불러모으는 색이 그렇다는 건데, 꾀꼬리가 딱 그렇다. 엷게 붉은 부리 뒤에서 눈을 지나 뒷머리까지 안대처럼 두른 띠가 검고 날개깃과 꼬리의 일부가 검지만 나머지는 선명하게 노랗다. 이마에서 정수리, 턱에서 가슴과 옆구리를 지나 배까지, 등에서 허리 아래까지 샛노란 자태를 뽐내는데, 키 큰 나무 아래의 굵은 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니 25센티미터의 몸집이라도 쉽사리 눈에 띄지 않을 따름이다.

 

이른 여름부터 아카시 꽃이 흐드러질 무렵, 햇살 눈부신 산기슭과 어두운 숲 속을 바삐 들고나는 꾀꼬리는 과연 한 송이 꽃인데, 그 소리는? 예쁘다는 언어는 적당치 않다. 아름답다 하면 그리 어긋나지 않지만, 어딘가 설명이 부족하다. 꾀꼬리 울음소리는 듣는 이의 애간장을 녹이는 트로트 가수라기보다 고음과 저음을 시원시원하게 넘나드는 성악가 풍이라고 할까. 소프라노보다 메조소프라노에 가까운데, 5월의 따사로운 햇살 아래 한 줄기 바람이 귀 곁을 지나가는 느낌이다. 그래서 꾀꼬리의 소리는 아름답지만 결코 애절하지 않다. 싱그럽기 그지없다.

 

박목월은 ‘윤사월’에서 꾀꼬리를 노래한다.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고 있다.” 윤사월이면 5월이다. 지금 대학생의 부모가 대학생일 무렵, 서울의 유명한 여자대학마다 메이퀸 선발대회를 열었다. 이른바 ‘5월의 여왕’이다. 메이퀸으로 선발되는 여학생을 보려 구름 떼처럼 몰려든 남학생으로 그 대학은 북새통을 이뤘는데, 메이퀸과 짝이 되고 싶은 열망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박목월은 ‘윤사월’에서 5월을 맞은 애절한 여인의 싱숭생숭한 마음을 보았다. 산속의 눈먼 여인이 겨우 문설주에 몸을 기대며 꾀꼬리 울음소리를 듣는다는 게 아닌가. 마음이 찡해진다. 4월 말이면 남방의 아시아에서 우리 산하로 찾아오는 꾀꼬리에게 5월은 데이트로 정신이 없을 때가 아니던가.

 

텔레비전 대하드라마로 새삼 시청자의 뇌리에 각인된 고구려의 두 번째 왕, 유리가 읊조렸다는 ‘황조가’를 들어보자. “펄펄 나는 꾀꼬리는/ 암수 서로 놀건마는/ 외로운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 하며 애달픈데, 질투 끝에 본가인 한나라로 떠나고 만 부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라고 전문가는 해석한다. 짝을 정한 만큼, 너덧 개의 알을 긴 풀을 이어 만든 밥주발 모양의 둥지에 낳기 전에 나뭇잎 뒤에서 서로 희롱하고 있을 터였을 게다. 꾀꼬리의 금실은 유별스럽지 않던가. 그 모습을 본 유리왕이 잠시 처량해졌던 때가 5월이었을 게 틀림없는데, 중간고사를 마친 대학교의 싱그러운 축제도 그 언저리에 열린다.

 

조선 헌종 때의 정학유는 ‘농가월령가’에서 “사월이라 한여름이니 입하 소만 절기로다. 비 온 끝에 볕이나니 날씨도 좋구나. 떡갈잎 퍼질 때에 뻐꾹새 자주 울고 보리 이삭 패어 나니 꾀꼬리 소리한다.” 하며 꾀꼬리가 소리할 때 농사도 한창 바빠야 한다고 노래했다. 삼라만상의 생명이 움트고 올라오는 5월이 아닌가. 자식 키우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지식인인 정학유는 뽕잎을 따서 누에를 치는 동안에 면화, 수수, 녹두, 참깨를 이랑에 심고, 꺾은 갈대와 베어낸 풀을 섞어 거름하면서 무논에 서래질 해야 겨우내 양식이 모자라지 않는다는 노동요를 지은 것인데, 둥지를 거미줄로 나뭇가지에 단단히 붙이는 꾀꼬리도 그에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요즘 농촌에는 살충제와 제초제가 흥건하다. 잡아먹을 곤충과 거미줄이 점점 드물어진다던데, 지구온난화도 무관하지 않겠지.

 

국민가수 조용필이 못 찾겠다고 아무리 노래해도 5월을 싱그럽게 열어주려고 우리 곁을 여전히 찾아오는 꾀꼬리. 작년 태어난 형제자매들이 이듬해 태어난 아우들을 부모와 함께 돌보기도 한다는 꾀꼬리 가족의 금실을 내년 이후에도 계속 엿보고 싶다. (전원생활, 2009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