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20. 12. 1. 14:29

 

작년과 달리 올겨울은 쌀쌀할 거라는 예보가 나왔다. 그래서 그런가? 11월에 들어서니 찬 바람이 인다. 거리에 오리털외투로 무장한 시민들이 종종걸음이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닐 성싶은데, 추위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겠지. 아무리 추워도 만보를 쉬지 않고 걸으면 등에 땀이 밴다. 뺨에 스치는 바람이 차도 몸이 더우면 답답하다. 그렇다고 외투 벗으면 느닷없는 한기가 엄습한다. 코로나19가 여전하다. 감기는 피해야 하니, 얇은 옷 한 벌 더 입고 밖에 나선다.

 

코로나19 이후 동네병원에 감기 환자가 무척 줄었다고 한다. 손 씻기가 강조되고 어디를 가나 손 세정제가 비치돼 있으니 그럴 만하겠다. 기침 일으키고 콧물 흘리게 만드는 감기는 코로나19처럼 재채기보다 손으로 쉽게 감염되는 바이러스 질병이라지 않던가. 실내는 물론, 걷는 사람이 드문 거리라 해도 마스크를 습관처럼 착용하는 분위기에서 동네 의원의 수입도 줄었겠지. 추위로 곱은 손이 떼에 찌들 때까지 동네방네 누볐던 1960년대, 누런 콧물을 줄줄 흘릴지언정 조무래기들은 감기라는 걸 모르고 살았다. 21세기 아이들은 건강할까?.

 

찬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긴 외투로 몸을 돌돌 마는 아이들은 털모자와 목도리로 빈틈이 없는데, 감기를 달고 산다. 손을 유별나게 세척하는 요즘은 예외겠지만, 피부가 새하얀 도시 아이들은 걸핏하면 병원행이다. 바지춤에 흙을 묻히고 집에 들어서면 목욕탕에 순순히 끌려가는 요즘 아이들이 손 씻기를 거부할 리 없는데, 고기를 원 없이 먹어도 면역력이 떨어진 걸까? 할아버지는 물론 아버지보다 키와 허우대가 부쩍 커졌지만, 자라는 동안 여름이 겨울 같고 겨울이 여름 같은 실내공간에 머물며 허약해졌는지 모른다.

 

시골에 사는 아이들은 어떨까? 요즘 어느 시골이든 아이가 드무니 그 여부를 짐작하기 어려운데, 도시 어린이도 자연에서 흙을 만지며 놀면 짧은 시간 안에 면역력이 높아진다는 핀란드의 연구를 최근 한 신문이 전했다. 서너 살 어린이 7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학자는 어린이집 마당을 숲과 비슷하게 바꿨고, 흙에 작은 나무와 이끼 종류를 심으면서 하루 한 시간 반, 한 달 정도 놀도록 유도했더니 뚜렷하게 건강해진 효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핀란드 학자는 생물 다양성을 주목했다. 토양 미생물을 만난 도시 어린이에게 사람 피부에 분포하는 프로테오박테리아가 다양해지면서 면역력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날마다 숲을 돌아다니는 시골 아이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높아졌다는데, 핀란드 숲이 특별할 리 없다. 우리도 다양한 토양 미생물이 분포할 게 틀림없다. 위도가 높은 핀란드의 겨울은 무척 매서울 텐데, 감기 잘 걸리는 어린이는 어느 나라가 더 많을까?

 

사진: 수원 드림봉사단 어린이들이 텃밭을 체험하는 모습(인터넷에서)

 

자연을 체험하지 못하는 현대 도시의 생활환경이 어린이의 면역체계를 약화한다고 주장한 핀란드 학자는 도시에 자연의 다양한 요소를 추가한다면 아이들의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자연이 박탈당한 도시에서 아토피, 알레르기, 당뇨, 만성 소화장애, 그리고 면역력이 떨어진 현상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강화 유기농 마을에서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아토피로 피부가 거칠게 부어오른 도시 아이는 가려움을 이기지 못해 짜증이 심했지만, 6개월 만에 피부가 깨끗해지면서 상냥해졌다. 온갖 치료가 소용없자 강화의 유기농단지를 찾았고, 제철 유기농산물을 먹으며 산과 들을 뛰어놀자 생긴 효과였다.

 

분교 대부분이 통폐합된 읍면 단위의 아이들은 건강할까? 흙을 만질 기회가 있을까? 입시를 위한 선행학습에 주력할수록 산과 들로 돌아다닐 틈이 없는 건 어디나 비슷할 텐데, 주변에서 자연을 찾기 어려운 도시는 말해 뭐랄까. 놀이보다 학과 성적에 치중하는 도시에 텃밭이 있는 학교가 더러 있지만, 모든 학생이 한 시간 이상 놀 규모는 아니다. 없는 것보다 낫더라도 흙 묻기 무섭게 비누로 씻어낼 테니, 피부 박테리아가 늘어나기는커녕 붙어있기도 어렵다.

 

개구리를 보려고 관광버스를 타야 하는 아이의 눈에 흙은 물론, 모래도 가깝지 않다. 아파트단지의 어린이놀이터는 흙을 철저하게 치웠다. 화학 포장재로 푹신한 바닥 위의 조합놀이대는 천편일률이고, 그네 아래 모래를 깔렸지만 좁고 위험하다. 모래 놀이터는 민원의 대상이다. 주머니에 들어간 모래가 세탁기에 쏟아지지 않나!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젖은 모래 속에 쑥 넣은 주먹 위를 두드리며 부르던 전래동요를 기억하는 어린이가 있을 거라 기대할 수 없다.

 

도시 변두리였던 인천의 주안 일원은 논밭이 넓었지만, 지금 흙은 찾기 어렵다. 대신 다닥다닥 다세대주택으로 어지럽고 좁은 골목에 주차된 자동차가 걷기조차 방해하지만, 얼굴을 그럭저럭 기억하는 주민들이 지나치면서 안부를 묻는 공간이 되었다. 한데,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10여 지구의 재개발로 시방 몹시 어수선하다. 재개발 조합은 초고층 아파트단지로 솟아오를 단꿈에 젖었지만, 정든 주민들은 헤어져야 한다. 다시 만날 기약은 없다.

 

40층을 넘나드는 초고층 아파트단지에 주민을 위한 주차장은 보이지 않는다. 건물 사이의 녹지는 커다란 나무와 아기자기한 조경수목, 그리고 다양한 풀꽃으로 근사하게 장식되지만, 자연을 흉내 내지 못한다. 지하를 파내 챙긴 흙으로 조성한 녹지가 빗물을 머금지 못하는 탓이다. 주민들은 지하의 넓은 콘크리트 공간에 차를 두는데, 큰비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주차장이 자칫 물바다로 변한다. 그뿐인가? 제초제 뿌리는 녹지라면 위험할 수 있다.

 

주택 보급률이 100% 넘어섰다는데, 아파트 가격은 왜 오르는 걸까? 동네의 이야기와 정체성을 훼손하는 초고층 아파트단지가 진정 필요한 걸까? 주택이 낡았더라도, 이웃의 숨결이 유지되는 마을로 가꿀 방안은 없었을까? 일부 자본의 이권보다 훨씬 소중한 다음세대의 행복을 위해, 어릴 적 삶터를 고향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꾸며야 옳지 않을까? 한때 대구시는 담 없는 마을을 만들면서 주민을 지원했는데, 그 사업은 확산되지 않았다. 담과 더불어 주차장을 없애고, 그 자리에 텃밭을 조성했다면 달랐을지 모른다.

 

비타민A가 풍부하지만, 달지 않아 그런지, 아이들은 좀처럼 당근을 먹지 않는다. 좋아하는 카레나 갈비찜에 넣어도 쏙 빼내 엄마 속상하게 하지만, 텃밭에서 가족과 재배했다면 다르다. 당근만이 아니다. 땀 흘리며 심은 씨앗에서 자라오르는 농작물을 주말마다 호기심으로 바라보다 수확하는 기쁨은 기다린 보람을 안겨준다. 어찌 마다할 수 있으랴. 유치원이나 학교에 텃밭이 필요한 이유가 그렇다. 자연이 아니라도 텃밭을 경험하는 아이들은 건강하다. 피부 박테리아와 비타민A가 풍부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성도 커진다.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의 시민은 출퇴근 시간에 자동차가 빠르게 달리는 도로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건물의 높이를 자랑하지 않는다. 텃밭이 얼마나 가까운 곳에 조성돼 있는지 관심이 크다. 원하는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크지만, 가족과 이웃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인 까닭이다. 텃밭이 부족한 도시는 스트레스가 많다. 시민들은 다른 도시로 떠나고 싶다. 다음 선거에서 시장 자리를 지키려면 어떻게든 텃밭을 확보해야 한다. 독일 뮌헨은 시내의 낡은 아파트단지를 더 높게 재개발하지 않았다. 텃밭으로 바꿨다.

 

흙은 도시를 건강하게 만든다. 빗물을 땅으로 스며들게 하는 텃밭과 생태공간이 보전되는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 코로나19에 움츠러들 리 없다. 예로부터 아이와 간장독은 겨우내 밖에 내놓아도 얼지 않는다고 했다. 다채로운 토양 미생물을 보전하는 흙이 있기 때문이리라.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생물 다양성을 제거한 도시는 겉보기 휘황찬란해도 허약하기 짝이 없다. 코로나19에 속수무책인 이유가 그렇다.

 

온난화되는 영구동토에 얼어붙었던 바이러스들이 깨어날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생물 다양성을 잃은 회색도시는 바이러스의 창궐을 차단하지 못한다. 추위가 예고된 올겨울에도 콧물 흘리지 않고 뛰어놀 아이를 위해 흙이 건강한 놀이터를 도시 곳곳에 마련하면 어떨까? 기후변화가 심해지는 시대, 코로나19보다 무서운 질병에도 걱정하지 않을 수 있도록. (작은책, 202012월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5. 6. 9. 19:15


메르스, 메르스, 메르스. 사바세계의 이야기를 메르스가 평정했다. 장안의 분위기를 메르스가 압도한다. 오호통제라! 지하철 맞은편에 나란히 앉은 젊은이들은 아리땁게 화장한 얼굴의 절반 이상을 마스크로 가렸다. 그러자고 공들여 화장하지 않았겠지. 마스크가 주변인의 체액을 어느 정도 막아주겠지만 공허해 보인다. 자신이 감염되었다는 걸 충분히 의심할 위치에 있던 서울의 한 대형 병원 의사가 1500명이 모인 장소에 참석하는 현실이 아닌가.


남부럽지 않게 드디어 강연 하나가 연기되었다. 한꺼번에 취소돼 수입을 걱정하는 강사에 비하면 다행일 테지. 초기 대응은 외면했으면서 3차감염을 막겠다던 정부의 호언이 여지없이 빗나갔으니 병원 이외에서 감염된 사례가 없다는 당국의 자료를 믿고 마스크를 벗을 시민은 아마 드물 것이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자택에 머물러야 할 이가 골프장에서 땀 흘리는 형국이므로. 건강한 이에게 감염되지 않을 거라 의사들이 방송 카메라 앞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강연은 연기 또는 취소된다. 메르스가 감기 정도라고 서울 강남보건소장이 목청을 높여도 소용없을 것이다.


메르스 확진 환자를 격리 병동에서 치료한다는 소문이 돌았던 병원의 장례식장에 모친을 모시려 했던 선배는 서둘러 장례식장을 바꿨다. 이튿날 조간신문은 확진환자 입원 여부로 병원끼리 다투는 실태를 보도한다. 격리병동에서 치료하는 환자가 메르스 확진이든 아니든, 다른 질병의 환자나 보호자, 의료인이나 방문자들이 동요할 일이 아니지만, 현실은 아비규환에 가깝다. 메르스 확진환자가 있다는 소문이 돌기만 해도 내왕하는 환자가 크게 줄어드는 현실에서 고소고발이 춤을 추는 모양이지만,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는 시민들은 좌불안석이다.


메르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치사율이 얼마? 무시무시하게 이야기하는 통계수치는 언론마다 제각각이다. 분명한 건, 평소 건강한 사람은 감염되지 않거나 감염되어도 완치된다는 사실일 게다. 하지만 더욱 분명한 건, 메르스로 사망하거나 치료받은 이에 비해 교통사고나 작업장사고로 사망하거나 다친 이가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물론 스스로 조심하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교통사고나 작업장사고에 비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감염될 수 있고, 게다가 치사율까지 높다고 하니 메르스를 조심해야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어떤가? 시방 사바세계는 소문에 휘둘린다. 교통사고나 작업장사고 역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게 대부분이고.


메르스 바이러스는 내부 유전자가 DNA로 구성된 보통의 바이러스와 달리 RNA라고 한다. 조류독감 바이러스도 RNA로 구성되었다. DNA와 달리 복제가 부정확한 바이러스의 RNA는 다양한 변이가 발생하는 관계로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이 어렵다는데, 그간 메르스로 사망한 사람은 조류독감의 일종인 2009년 신종플루보다 훨씬 적었다. 닭이나 철새에서 기원한다고 알려진 조류독감처럼 낙타에서 기원한다는 메르스 역시 어제오늘 발생한 바이러스 질환은 아닐 텐데, 왜 하필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아우성일까? 일각에서 염려하듯, 우리나라 사람의 면역력이 유별나게 약하기 때문은 아닐 듯한데.


영어로 메르스(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는 중동호흡기질환으로 해석해야 옳을 텐데, 낙타의 사육 환경이 궁금하다. 낙타의 살코기를 먹는다고 하니 혹시 공장식으로 키우는 건 아닐까? 발생하기만 하면 생매장에 가까운 끔찍한 살처분으로 대응하는 조류독감은 2003년부터 언론이 주목했지만 그 이전에 없었을 리 없다. 메르스도 마찬가지일 텐데, 중동의 국가들이 덩치가 큰 낙타를 구제역에 속수무책으로 변한 소와 돼지처럼 밀집시켜 사육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메르스 바이러스가 변이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 전파된 바이러스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아무래도 초기 대응이 문제였나본데, 부실한 공공의료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숙주를 달리하면 바이러스는 갑자기 무서워질 수 있다. 변이가 빠르고 다양할수록 위험해질 가능성도 높다. 조류독감이 그렇다. 하지만 닭과 오리가 떼로 죽는 아유는 따로 있다. 과다하게 밀집해 사육하는 가축은 유전적 다양성을 잃었다. 한꺼번에 도살해 포장하는 공장의 대형 기계의 오차범위를 만족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육종한 결과, 면역력까지 덩달아 약화되었다. 그런 가축에 변이된 바이러스가 전파된다면? 정부는 안전반경을 설정해 살처분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효율성을 고려해 극단적으로 육종한 돼지와 소도 마찬가지다. 구제역이 창궐하면 살처분에 들어가는데 메르스 바이러스는 사람을 공격했다. 사람은 유전적 다양성을 잃지 않았지만 도시에 밀집돼 아웅다웅 살아간다.


닭과 오리, 돼지와 소뿐이 아니다. 사라지면 인간은 4년을 버틸 수 없다고 흔히 말하는 꿀벌도 타고난 유전적 다양성의 대부분을 잃었다. 더 빨리 더 많은 꿀을 모으는 품종으로 단순화했기 때문이다. 농작물도 사정은 비슷하다. 유전자가 단순해진 다수확품종은 엄격한 경작환경을 요구한다.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특히 그렇다. 그런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들의 면역력은 괜찮을까? 농사지은 농작물로 밥을 지어 식구나 이웃과 나누던 시절에 몰랐던 질병의 목록은 길어지기만 한다. 약과 건강보조식품이 늘어날수록 병원은 커진다.


정부의 부실한 대응은 세계만방에 씻을 수 없는 망신과 걱정을 안겼다. 선정성에 눈이 어두운 언론이 차분하지 못하니 시민들은 허둥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메르스의 경우 좀 지나치다. 바셀린을 코에 바르면 안전해진다는 뜬소문으로 약국의 재고가 바닥났고 먼지 많은 작업장에 적합한 마스크가 품귀를 빚었다. 감염자가 있다는 소문으로 병원과 학원이 곤혹을 치루고 법적 대응하는 사례가 늘어난다. 요즘 사람들의 귀가 얇아서 그럴까? 귀가 얇아졌다기보다 소문의 합리성과 진위를 가려내는 능력이 허약해졌기 때문은 아닐까? 면역력이 약해진 사회의 서글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지금여기, 2015.6.8)

 
 
 

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3. 5. 12. 23:50

     어려서 기억. 외할머니가 오면 늘 허리를 밟아야 했다. 누나도 동생도 있는데 언제나 어깨에서 발목까지 골고루 밟았다. 내가 밟아야 시원하다고 하니 귀찮더라도 응했지만, 그때마다 할머니 허리 시원하게 하는 약은 어디 없나 생각했다.


관절염은 우리나라의 나이든 여성에게 왜 유난히 많은 걸까. 그 방면에 상식이 없으니 알 길이 없는데, 한 연구자가 우리나라 여성에게 많은 관절염 유전자를 찾겠다고 연구기관에 적지 않은 연구비를 신청했고, 부작용 없는 관절염 치료약 개발을 장담하던 연구자는 심사위원의 질문에 당황했다. 남성에게 그 유전자는 없는 건지, 왜 어린 여성에게 관절염이 나타나지 않는지 물었던 거다. 그 이후 지금까지, 묘약은 시판되지 않고 있다.


눈부신 생명공학 기술은 마침내 유방암 유전자를 밝혀냈다. 그러자 어떤 생명공학 벤처기업에서 개개인이 보유한 유방암 유전자를 찾아준다며 딸 가진 엄마를 유혹한 적 있다. 벤처기업이 그 유전자를 찾아낸다면, 장차 그 딸은 유방암 환자가 되는 걸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라 했다. 유전자가 있는 만큼, 유방암 발생 가능성이 높고, 유방암 발생을 억제하는 방식의 삶을 조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고마운 충고일까. 유방암 유전자의 98퍼센트는 정상 여성에서 나타난다던데, 유방암 유전자가 있는 딸을 가진 부모는 마음을 놓아도 좋을까.


최근 미국 언론은 딸에게 자궁경부암 백신 접종을 원치 않는 부모가 는다고 보도했다. 5년 전에 비해 4퍼센트 늘어, 부모의 44퍼센트가 접종을 거부한다는 건데, 그 백신은 남성도 맞아야 하는 모양이다. 2차성징이 시작될 12세 전후에 접종하지 않는다면 여성은 26세 남성은 21세 이전에 맞아야 한단다. 자궁경부암은 바이러스가 매개하는 질병일까. 자궁경부암을 앓거나 앓은 적 있는 여성은 대부분 나이가 많던데. 그 바이러스는 나이 든 여성만 공격할까. 궁금증은 이어진다. 어려서 맞은 백신은 나이 든 후에도 효과를 유지할까.


미국의 국립질병통제예방센터는 가다실이란 상품명을 가진 그 백신의 접종을 권한다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접종하면 암 발생을 99퍼센트까지 예방할 것으로 제약회사는 광고하지만, ‘가다실은 사실 시판된 지 몇 년 되지 않았다. 전 세계 16세에서 26세 여성을 대상으로 3에서 4년 동안 임상시험한 결과는 절대 불변일까. 나이 들어 발생하는 자궁경부암까지 99퍼센트를 막을 것으로 믿어도 되나. 우리 돈으로 수십만 원에 이르는 백신을 12세 전후의 모든 여아와 남아가 접종한다면 누가 가장 기쁠까. 적어도 미국 부모 44퍼센트는 아닐 것이다.


접종을 거부하는 부모는 딸이 성생활을 할 나이가 아닐뿐더러 백신의 안전성을 확신하지 못한다는데, 우리의 한 과학사회학자는 논란 없이 수용하기만 하는 우리의 실태를 걱정한다. 상당한 연구비를 투자한 제약회사가 나름대로 안전성을 검증했을 테니 당장 부작용이나 해약은 나타나지 않을 거라 믿지만, 거기에서 그칠 수 없다는 거다. “의료 공공성의 문제, 질병을 대하는 자세의 문제, 예방의 문제, 섹슈얼리티의 문제, 형평성의 문제, 국가와 개인의 문제, 공중보건의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고 효능만 강조하기 때문이다.


바이러스가 자궁경부암을 옮긴다고 제약회사의 전문가는 주장한다. 그러므로 남성도 그 비싼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고 덧붙이지만, 나이 든 여성에게 대부분 발생하는 이유를 질병통제예방센터의 전문가도 따지지 않았다. 관절염도 나이 든 여성에게 많이 나타나는데, 진정 유전자 때문일까. 육식이 늘어나면서 증가한 유방암 역시 나이 들어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유전자가 원인일까. 생명공학이 장차 문제의 유전자를 바꿀 수 있다면 관절염과 유방암은 사라질까.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어릴 적 접종한 백신이 노환을 발본색원할 수 있을까. 그렇다지만 어딘가 미심쩍다.


백신을 맞으면 99퍼센트 예방할 수 있고, 유전자를 확인하면 피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주장하는 전문가의 권위는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려는 부모들의 의지를 좌지우지한다. 사회적 논쟁이 충분하게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은 전문가의 권유에 이끌릴 수밖에 없는데, 대부분의 그 방면 전문가는 편향돼 있다. 유전자는 환경이 형성되지 않으면 발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소비자에게 왜 꺼내지 않는 걸까. 관절은 보통 나이 들면 약해지는데, 관절이 약해져야 관절염 유전자가 발현한다는 사실을 왜 감추는가. 면역력이 높으면 바이러스는 몸에 들어와 활동하지 못한다. 면역이 떨어진 노인에게 대부분 발생하는 질병을 유전자나 바이러스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누적되는 피로와 스트레스는 면역을 떨어뜨린다. 요즘 음식은 필요 이상의 지방과 단백질을 섭취하게 만드는데 그치지 않는다. 몸에 부작용이 생기게 하는 첨가물이 가공식품에 잔뜩 섞였다. 그 뿐인가. 숨 쉬는 공간에 오염물질이 전에 없이 많고 대기와 바다를 떠도는 방사성 물질이 늘어나기만 하니 면역력은 감소한다. 나이와 관계없이 성인병이나 암 환자의 수가 최근 늘고 발병 시기가 전에 비해 앞당겨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퇴행성 질환이 늘어난 건 노인은 물론 청장년층의 면역력이 떨어진 결과와 무관하지 않는데, 유전자 검사와 백신으로 질병을 퇴치하겠다는 호언장담은 장삿속을 넘어 문제를 증폭시킬 수 있다.


백신 홍보보다 훨씬 중요한 일은 면역력을 높이는 삶의 방식일 것이다. 일자리를 나눠 피로와 스트레스를 덜면서 이웃 사이가 돈독해지면 질병은 그만큼 줄어든다. 이웃과 어울리며 즐겁게 이야기 나누고 적당히 운동한다면 암이나 관절염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노인도 줄어들 것이다. 그런즉, 유전자가 악성으로 발현하거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환경을 개선하려 하지 않고 유전자 검사를 유혹하고 백신의 효능만 강조하는 태도는 마뜩치 않다. 장담했던 안전이 오래 유지되는 신약은 그리 없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백신 접종을 권유하는 전문가들은 대부분, 제약회사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제약회사와 연구비를 주고받는 관계를 청산하지 못하는 질병통제예방 전문가 역시 사정이 비슷하다. 만일 보험회사가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아 발생하는 암에 보험료를 제공할 수 없다는 약관을 수정하고 유전자가 있다는 걸 미리 확인하지 않아 질병이 생겼으니 보상하지 않겠다고 외면한다면 장차 어떤 묵시록이 펼쳐질까. 불길하다. (작은책, 2013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