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생명공학

디딤돌 2011. 10. 26. 10:34

 

1980년대 초였을 거다. 아파트로 처음 옮긴 뒤, 여름에 모기를 만나지 못했다. 4층이었을 텐데, 모기는 거기까지 올라가지 못한다고 했다. 그랬던 모기가 이젠 고층아파트 꼭대기 층도 마다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계절도 가리지 않는다. 가을이 완연하건만 모기는 노곤해진 귓전을 여전히 괴롭히며 단잠을 깨운다.

 

겨울에도 수온이 영상인 아파트의 정화조에 알을 낳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미꾸라지들을 들이붓지만 그런다고 모기가 줄어드는 것 같지 않다. 불쌍한 미꾸라지가 분뇨가 가득한 정화조에서 모기의 유충인 장죽벌레를 잡아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는 것 같지도 않다. 사람과 같은 정온동물의 피를 빨아야 알을 낳는 모기는 수컷을 만나야 알을 수정시킬 수 있는데, 요즘처럼 쌀쌀한 날씨에 수컷을 만나는 공간은 어디일까. 연구가 필요할 텐데, 사람 곁을 고집하던 모기는 가을에도 따뜻한 사람의 날씨에 적응한 겐가.

 

모기가 옮기는 질병이 무섭기보다 일단 물리면 참기 어렵게 가렵기 때문에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대책을 세웠다. 조상은 마른 쑥대를 마당에 태워 모기를 쫓아냈는데, 모기향으로 접근을 차단하는데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살충제를 함유한 모기향과 분무기까지 동원했다. 하지만 세대의 길이가 짧고 많은 알을 낳는 모기는 오래지 않아 살충제에 내성을 가졌다. 눈에 띄는 효과를 바라는 사람은 살충제의 독성을 강화했건만 모기는 기다렸다는 듯 다시 내성을 높였고, 이제 모기약은 사람의 건강까지 위협할 지경이 되었다. 보드라운 아기의 피부를 물어 괘씸한 모기를 잡으려다 그만 아기를 잡게 생긴 꼴이다.

 

모기 박멸은 인간의 오랜 꿈인가. 지난여름, 영국과 이탈리아 과학자들이 씨 없는 모기를 만들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유전자조작으로 개발한 정자가 없는 모기 수컷을 방생하면 짝짓기를 한 암컷이 알을 낳을 수 없어 모기가 사라질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덧붙였는데, 정자를 만드는데 에너지를 쏟지 않는 수컷은 짝짓기 경쟁력이 높다 주장하면서, 유전자조작 모기의 방생으로 해마다 3억 명이 감염돼 그 중 80만 명이 사망하는 말라리아의 퇴치를 전망했다.

 

그뿐이 아니다. 미국 연구팀은 유전자조작으로 날지 못하는 모기 암컷을 개발했고, 말라리아 원충이 목 침샘으로 들어가지 않게 유전자를 조작해 사람에게 감염되는 걸 차단했다고 성과를 발표한 연구팀도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장구벌레가 자라다 스스로 죽게 만드는 유전자조작도 선보인 모양이다. 그런 획기적인 연구결과들은 과연 모기 집단을 박멸로 이끌 것인가. 한 가지 가정을 침소봉대하는 시나리오는 그럴싸하지만, 자연 현상은 그리 간단치 않다. 아직 섣불리 자연에 방생하지 않았지만 예기치 않은 문제가 걷잡을 수 없게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삼라만상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생태계에 사람보다 먼저 등장한 모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쉽사리 무시될 수 없다. 모기를 먹고사는 거미와 박쥐, 장구벌레를 먹어치우는 미꾸라지와 송사리가 줄어들면 어떤 생태적 변화가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로 연결될 것인가. 유전자조작 모기를 개발한 과학자는 물론이고, 어떤 생태학자도 예상하지 못한다. 생태계 안정이 흔들릴 때 발생하는 변화가 사람에게 영향을 주지 않으리라 절대 단정할 수 없다. 더욱 걱정스러운 일은 조작된 유전자의 수평이동이다. 날지 못하게 조작한 유전자, 장구벌레를 죽이는 유전자, 정자를 없애는 유전자가 모기에서 다른 동물로 옮겨갈 수 있다는 거다. 그런 현상이 발생한 뒤, 과연 과학자는 어떤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인가.

 

원래 제철이 아리라 그런가, 이맘때 모기는 힘이 없다. 신문지를 둘둘 말아 휘두르면 연약한 생명은 영락없이 무너진다. 왱왱 귓전을 괴롭히는 소리를 무시하고 잠든 대가로 물린 곳이 가렵긴 해도 여름처럼 크게 부풀지 않고 가려움도 금세 사라진다. 조금 쌀쌀하다고 보일러 크게 틀어놓고 잠든 뒤 이불 걷어차면 알을 가진 모기는 사람의 배려에 화답할 터. 가을다운 쌀쌀한 기온을 즐기며 약간 두꺼워진 이불을 잘 덮으면 별 탈이 없다. 마음 급한 모기는 더운 실내를 찾아 떠날 게 분명하다. (요즘세상, 2011.10.23)

ㅎ...요즘은 잠 자기 전에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방안의 모기를 잡는 것이 작은 습관이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