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5. 18. 01:33

 

재작년 황사 발원지의 실상을 눈으로 확인하고자 인천환경원탁회의 일원으로 찾은 이래 올해가 두 번째 몽골 방문이다. 유기질을 거의 잃어 모래나 다름없는 땅에 뿌리가 들뜬 풀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모습, 그 땅으로 몰려가 발로 모래를 긁어 풀을 뿌리까지 먹어대는 양과 염소 떼를 재작년에 보았다. 이윽고 작년, 재작년 방문을 계기로 인천환경원탁회의는 노도와 같은 물줄기가 모래땅을 뒤엎듯 초원을 파헤치며 종으로 횡으로 사람의 삶터까지 파고드는 사막화를 어떡해든 막아보자는 행동에 인천시민도 동참하게 되었다. 이른바 ‘몽골 인천 희망의 숲 식림행사’였다.

 

나무를 심는 첫해는 참석하지 못했다. 시간강사 주제에 수업을 도저히 뺄 수 없었던 건데 이번 학기에는 학생들의 양해를 얻어 다녀올 수 있었다. 다만 빠듯한 일정이 방문 전에 더 촘촘해졌고 집에 돌아오자 마감을 기다리는 원고가 꼬리를 물고 있다는 사실을 통감해야 했다. 일상에서 비웠던 일주일은 내일의 생각과 행동을 풍부하게 할 게 분명한데, 성큼 앞당겨진 마감시간으로 몸과 마음이 당장 조급해진 것이다. 적막 속에서 천천히 흐르던 몽골의 시간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잠들 틈 주지 않으며 물수건과 땅콩과 기내식과 커피를 종용하고, 비행기 바퀴 내리기 직전까지 면세품 팔던 승무원들은 새벽에 내려 며칠 푹 쉴 틈이 보장되겠지. 공항에서 첫 지하철로 집에 도착해 아침 먹고, 쌓인 우편물 정리하고, 메일 확인한 후 답장 보내고, 씻자마자 오밤중까지 편집회의에 참석해 지쳤어도 몸을 추슬러 책방에 들려야 했다. 황사의 원인을 분석하기보다 몽골 사막을 몸으로 체험한 이의 감성을 호흡하고 싶었다. 이틀 나무심고 하루 시내를 돌아다닌 우리가 도저히 느낄 수 없는 몽골의 진면목을 늦게라도 공유하고 싶었다.

 

2007년 여름, 오후에 당도한 울란바타르는 우리의 완연한 봄처럼 싱그러웠는데,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코를 자극하는 매캐한 공기는 화력발전소가 원인이었다. 이번엔 그 정도가 더 심해진 느낌이다.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중고 트럭과 버스는 여전히 한국산이 대부분이지만 승용차는 2년 전과 달리 일제가 훨씬 많아 보인다.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도 눈에 띄게 늘었다. 해외 송금이 아무리 많아도 아직 그답지 않을 텐데, 말 타던 사람에게 자동차에 대한 욕구는 어쩔 수 없는 건가. 가축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시내는 언제나 막힌다.

 

80명이 넘는 인원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건 아무래도 복잡했다. 출발에서 도착까지, 공항과 호텔과 게르와 식당과 상점을 들고나거나 버스를 오르내릴 때마다 반복하는 인원파악은 베테랑 가이드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일행의 절반 이상은 마음보다 몸이 먼저인 중고등학생이 아닌가. 여비를 감당한 집안 덕을 본 그들은 애초 높은 자원봉사 점수에 마음이 빼앗겼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몽골 또래와 벅차고 뿌듯했던 작년의 체험을 돌이키고 싶었고, 몽골 다녀온 뒤 한층 진지해진 자녀가 제 성적을 쑥쑥 끌어올리는 걸 본 부모도 선뜻 동의했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행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재작년에 묵었던 한국 자본의 선진호텔은 여러모로 안정된 느낌이었다. 규모도 투숙객도 늘었고 늦은 시간의 스낵바에 손님이 남아 있었지만 무엇보다 특급호텔답게 눈과 코를 찌르던 새집증후군이 사라져 좋았다. 피곤한 가운데 회의실에 모여 인사 나누고 잠자리에 든 시간이 새벽 2시. 행사 주체인 인천환경원탁회의를 비롯해 진행을 맡은 인천지역환경기술센터, 그리고 인천시 공무원과 연관 연구기관, 또한 언론사에서 30여 명의 어른이 참여했는데 한나라당 조진형 의원도 시간을 냈다. 아무래도 어른보다 수원과 광명에서 온 학생과 40여 명의 인천 중고등학생이 많은 나무를 심을 것이다.

 

회랑처럼 좁다란 3500킬로미터의 숲으로 진전되는 사막화를 차단하려는 그린벨트 사업은 몽골 정부에서 능동적으로 수행하는데 한계가 있다. 부족한 건 정부예산만이 아니다. 나무를 심으려는 의지가 유목에 익숙한 몽골인에게 그리 절박하지 않고 무엇보다 동원할 인원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유목문화를 수천년 지켜온 몽골인에게 더욱 심각해지는 최근의 황사는 재앙에 가깝다. 목축에 방해가 되더라도 이제 사막화를 막기 위해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데 동의할 정도가 되었지만 인구 280만 중에 120만이 수도 울란바타르에 몰려 있는 몽골은 그린벨트가 필요한 지역에 사람이 몹시 드물다.

 

울란바타르 인근 성긴 지역과 서쪽으로 200여 킬로미터 떨어진 바양노르솜의 ‘한몽 희망의 숲’은 희망대로 숲이 완연해져도 그린벨트 3500킬로미터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겠지만, 시작은 반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2만 그루 심고 내년에도 행사가 이어진다면 제법 우거진 숲을 보게 될지 모른다. 사막화는 그 숲을 뚫지 못할 것이다. 인천에서 분 나무심기 바람이 인천 이외의 지역을 넘어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면 몽골 그린벨트의 녹색 띠는 더욱 길고 두툼해져 그냥 두면 국토의 90퍼센트 이상 사막으로 변할지 모를 몽골의 초원을 푸르게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 시작을 열었는데, 아주 반갑고 다행인 것은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행사가 시민들의 모금 덕분에 힘을 입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나무를 심는다고 숲이 저절로 조성되는 건 아니다. 일교차가 심할 뿐 아니라 건조한 몽골 사막에서 뿌리가 깊게 내리기 전까지 보살피지 않으면 나무는 말라죽고 만다. 적어도 3년 동안 1주일에 두 차례 물을 주어야하고 양이나 염소와 같은 가축이 나무를 갉아먹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몽골의 시민들, 그 중에 학생들의 관심과 역할이 중요하다. 사실 사막화의 책임은 몽골과 거의 무관하다. 지구온난화의 원인과 같은 맥락으로 상당 부분 우리와 일본을 비롯한 동북아와 세계가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 우리의 나무심기는 그런 반성의 자세로 비롯되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행사를 계기로 몽골과 진한 우정이 이어지기를 희망해야한다.

 

이번 행사를 인천환경원탁회의와 공동으로 주관하는 ‘푸른아시아’는 몽골에 나무 심는 시민운동의 시원을 마련했고, 어렵사리 노하우를 개척한 우리나라의 시민단체다. 몽골 정부에서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는 푸른아시아가 나무를 심는 노하우를 우리에게 아낌없이 전수했기에 ‘인천 희망의 숲’은 나무를 건강하게 채워나갈 수 있었다. 더구나 푸른아시아는 우리에게 묘목을 알선하고 장비를 마련해주었을 뿐 아니라 몽골과 우리 학생들이 함께 나무를 심도록 주선해주었다. 그 또한 두 나라의 내일을 위한 나무심기가 아닐 수 없었다.

 

성긴에서 첫날 나무 심는 일은 쉬웠다. 누구였을까. 구덩이도 미리 파놓았고 모래땅에 부을 물과 거름이 벌써 준비해두었다. 몽골과 우리 학생들은 비록 말이 통하지 않아도 손짓발짓과 즐거운 표정으로 의사소통이 활발했고, 손잡고 나무를 심었다. 가는 나무를 50센티미터 깊이의 구덩이에 넣고 흙과 거름을 덮어 발로 밟고 그 위에 두 양동이의 물을 붓는 일련의 과정을 뙤약볕에서 함께 해나가며 우정을 나눴다. 그 와중에 이름을 교환한 학생들은 간단한 말은 물론이고 춤과 노래까지 서로 배워, 준비한 나무를 다 심도록 격이 없이 가까워졌다.

 

좁은 포장도로와 초원을 이리저리 누비는 비포장도로를 먼지 일으키는 좁은 버스에서 6시간이나 견뎌야 도착하는 바양노르에서 학생들은 처음 잡는 삽으로 땅을 파면서도 힘들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몽골학생들과 어찌나 잘 어울리며 나무를 심는지 뒤에서 어정대던 어른 중의 한 사람이던 내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뙤약볕에서 어울려 땀 흘리다 헤어질 때 미리 준비한 선물을 교환하면서 서로 주소를 적는 모습에서 희망을 느꼈다. 작년에 참석한 학생은 다시 만난 몽골 학생과 반가움을 나누고, 처음 만났어도 기념사진 찍고 헤어지면서 눈물을 머금었다. 집에서 정성껏 준비한 장신구를 남몰래 가지고와 버스 앞에서 전하는 몽골 학생들의 눈매에서 진한 아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몽골에 나무를 성공적으로 심은 것이다. 몽골 학생들은 나무들을 잘 보살필 것이다. 1주일에 두 번 물을 주고 한국 학생들과 편지를 주고받을 것이다.

 

이틀 동안 나무를 심은 일행은 울란바타르 인근의 테를지국립공원을 다녀온 뒤 시내에서 자연사박물관과 수흐바타르 혁명광장을 둘러보고 국립민속극단의 수준 높은 공연을 보았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테를지국립공원에 한국인의 흔적은 완연했다. 골프장도 한국인 소유였지만 자질구레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은 한국어를 알아듣고 호객에 여념이 없었다. 관광버스가 서자마자 어디선가 나타나는 몽골인들은 매사냥용 매를 잡아들거나 쌍봉낙타를 타라며 조르고 있었다. 물론 2달러를 반드시 받았고. 토끼를 잡던 매와 고비사막에 사는 쌍봉낙타가 앵벌이가 된 셈이었다.

 

울란바타르 시내는 재작년에 없던 건물이 속속 들어섰고, 또 올라가고 있었다. 일본과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도와준 구소련에 의해 고유 키릴문자와 존댓말과 젓가락 문화를 잃은 젊은 몽골인들은 행동과 표정이 자유분방했지만, 소련 멸망 후 자리 잡은 자본주의는 빈부격차를 벌려놓았고 시민들의 마음에 자신의 국가가 후진국이라는 인식이 스며들고 말았다. 그래서 외국인 소유의 빌딩이 솟는 걸 자랑스러워하고, 수입한 고물차로 거리가 막혀 매연이 매캐해도 참아내는 것 같았다. 2년 만에 다시 찾은 사막화되는 초원은 아직 그대로인데 몽골 수도의 강산은 변했다. 이미 우리가 겪었고 앞으로 피할 수 없을 환경재난이 몽골에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건만 확신하기 어렵다.

 

‘몽골’은 용감하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아름답고 순박하며 자신의 문화에 자존심을 잃지 않던 모습을 보전하길 바란다고 당부한다면, 그들은 우리의 당부를 어떻게 생각할까. 알 수 없지만, 경제학자 칼 폴라니는 일찍이 이윤을 앞세우는 개발은 내일을 어둡게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화로 인한 환경오염만이 내일에 대한 걱정의 전부가 아니다. 지각없는 개발로 식량기지를 없애버린 오늘, 내일을 기준으로 우리는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버림받지 않았던가. 우리는 앞으로 몽골의 도움을 애타게 청하는 신세가 될지 모른다.

 

작년부터 ‘희망의 숲’을 몽골에 가꾸고 있는 우리는 후손의 건강한 내일을 위해 두 나라의 우정이 지금보다 깊어져야 한다는 인식에 동의할 필요가 있다. 이제 그 시작의 큰 걸음은 내딛었다. (작가들, 2009년 여름호)

큰 일 하고 오셨군요, 심은 나무가 울창한 숲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

 
 
 

생태계·동물

디딤돌 2007. 10. 5. 20:56
 


모처럼 하늘이 파랗다. 애국가 3절로 반기는 우리 가을하늘은 그동안 어디에 있었나. 높고 구름 없이 파란 하늘의 따사로운 햇살과 시원한 바람은 수많은 곡식과 과일을 갈무리하는 농부의 구슬땀을 식혀주었건만 요사이 통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 전통의 가을하늘이 실종되는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조금 늦었어도 자신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6월 말 장마철부터 100일 가까이 지루했던 비는 우기가 본격화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구름이 물러간 가을부터 내년 장마철까지 건기가 계속되려나. 두고 보아야 알겠지만, 눅눅한 하늘이 쾌청해지니 마음도 맑아졌다. 황금색으로 물든 벌판에 이어 강산도 단풍으로 물들어가겠지. 바야흐로 밖으로 나갈 계절이다. 베란다부터 활짝 열자. 내린 비로 깨끗해진 하늘은 더욱 깊고, 부는 바람은 모처럼 상쾌하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 사막화가 걱정스런 몽골에 다녀왔다. 중국과 함께 중요한 황사 발원지 중의 한 곳이다. 확산되는 사막화를 막지 못하면 가을에도 황사가 극성일 가능성이 예고되는 가운데, 황사가 잠잠해진 초여름에 사막화 실상을 파악하고 황사를 대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을 찾아보려고 인천환경원탁회의에서 몽골 답사 일정을 마련한 것이다.


해마다 심화되는 황사. 해마다 제주도 1.3배의 사막화가 확산된다니 실감이 난다. 몽골보다 중국에서 기원하는 황사가 두 배 이상 많지만 중국은 사막화가 조금씩 진정된다니 걱정이 덜하다. 대규모 동원이 가능한 인구를 가진 중국은 막대한 자금력으로 나무와 풀을 심기 때문인데, 문제는 몽골이다. 넓은 국토에 인구는 적고 국가예산이 무척 제한되지만 오랜 세월 목축으로 살아온 몽골 사람에게 나무는 살갑지 않은 까닭이다. 방목에 방해되는 나무를 베어내는 게 아니라 심으라니. 심화되는 사막화와 참기 어려운 황사에도 불구하고 초원의 몽골인에게 나무심기는 쉽게 와닿는 상식이 아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150킬로미터 떨어진 바가노르 시에서 진전되는 사막을 보았다. 발로 툭 건드리기만 해도 뿌리가 드러나는 풀이 모래벌판 위에 아무렇게나 흩어진 구릉지는 붉은 황토를 드러내고 누웠고 세로로 깊게 패는 초원은 모래언덕으로 덮여나가고 있었다. 드러난 목초의 뿌리를 갉아먹는 쥐가 걱정인 지역 관료는 주민 소득을 고려해 유실수 식재를 희망하는데, 심어 놓은 유실수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바싹 마른 구덩이에 꽂힌 나무는 강렬한 태양 아래 살아남을 가망이 거의 없었다.


몽골의 중앙 정부는 염소가 걱정이다. 캐시미어 제품이 잘 팔리자 목동은 너나 할 것 없이 염소를 늘였는데 잎을 뜯는 소와 달리 염소는 발로 뿌리까지 파내 먹는다는 거다. 3700킬로미터의 초원에 그린벨트를 지정한 몽골 정부는 그린벨트 내에 녹지축을 조성해 사막화를 차단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만 필요한 30억 달러를 조달하지 못해 애를 태운다. 150억 달러를 동원하는 중국에 비해 턱없이 열악한 몽골은 진행되는 사막화를 막지 못할 경우 국토의 90퍼센트 이상을 버림받게 될 것으로 예측하며 걱정한다.


바가노르 시 인근의 ‘한몽 행복의 숲’은 비교적 건강했다. 우리 민간단체의 인적 물적 지원으로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까닭이다. 사막화를 차단하는 그 숲은 황사를 잠재우는 것은 물론, 몽골의 목축문화를 위해서 나무를 심고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웅변한다. 몽골의 관료는 사막화의 주요한 원인으로 주변국가의 개발과 온실가스 배출을 지적한다. 맞다. 일인당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월등한 우리는 몽골의 사막화와 무관하다고 자부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당위성을 가지고 몽골의 사막화를 진정시킬 책임이 있다. 주변보다 온난화가 심한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행동이기도 하다.


사막화의 실상을 파악한 인천원탁회의는 문제를 공유하는 몽골인과 함께 몽골에 나무를 심고 관리하려 한다. 봄철이면 가장 먼저 황사에 시달리는 인천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린다. 몽골의 하늘이 맑아야 우리 하늘도 청명할 터이므로. (인천신문, 2007년 10월 9일)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지 알려 주시기를 지구촌에서 그가 아프면 우리도 아픈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됨을 감사하며.....
환경원탁회의에서 그 실천방안을 한참 모색하고 있습니다. 방안이 나오는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docs.google.com/forms/d/1LFNW3kYrldqlIITBjBuNACQjqn8qU1Ai7_4VjpQLdYo/viewform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유학중 몽골 학생입니다. 논문 설문지를 하고 있습니다. 부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평·추억

디딤돌 2007. 7. 29. 21:20
 


이번에는 몽골이다. 벌써 세 번째를 맞은 인천환경원탁회의 해외연수는 지구온난화 시대에 점차 그 빈도와 강도가 거세지는 황사의 발원지를 찾아가 실상을 보자는 취지였고 그 대상지로 몽골을 택한 것이다. 수천 년 유목문화의 전통을 이어온 산악 초원지대, 몽골. 중국에서 발생하는 황사도 심각하지만 몽골도 만만치 않다. 교통 사정이 나으니 중국은 기회를 만들기 쉬울 터. 봄마다 우리를 어김없이 괴롭히는 황사의 발원지 중에 심각한 지역으로 꼽히는 몽골 고비사막의 현황을 눈으로 파악하고자 했던 거였다. 곁들여 개발 소용돌이에 빠져 있다는 수도 울란바타르의 실태도 둘러보고 싶었다.

 

6월 19일. 리무진버스 대신 공항철도에 몸을 실었다. 비용 절감보다 시간이 정확하리라 계산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시계를 보니 집에서 한 시간 20분 걸린다. 이 정도라면 리무진 버스를 외면해도 좋겠다. 에어컨으로 시원한 넓은 청사를 이리저리 걸으며 출국장으로 올랐다. 에어컨 전기료가 한 달에 수십억 원에 달한다는 뉴스를 들은 적 있는데, 출국장으로 통하는 긴 회랑에 이용객은 거의 보이지 않건만 무빙워크는 열심히 돈다. 세계 최대 크기인 인천공항 청사는 길이가 1킬로미터나 된다. 세계 두 번째로 큰 시카고 오헤어 공항의 두 배에 달하는 인천공항은 일 년 이용객이 2000만 명에 이른다고 자랑하던데, 계획할 때 1억 명을 지향한다고 발표했다. 수지를 맞추고 있을까.

 

탑승구에 몽골항공의 작은 비행기가 계류장에 다가온다. 하루 한 차례, 대한항공과 몽골항공이 번갈아 취항하는 인천과 울란바타르 노선은 편수가 적어서 그런지 가격이 높은 편이다. 4박5일 여행비용이 일본보다 높다. 22명 단체인데 일인당 150만 원 정도. 일인당 소득이 470달러이고 인구가 270만인 몽골에서 항공사를 꾸려가기 쉽지 않을 것이다. 몽골항공은 대한항공에 많은 부분 의지한다는데, 가격이 그래서 비싼 건 아닐까.

 

12시 5분 출발. 몽골은 우리와 한 시간 차이다. 푸짐한 닭고기가 점심으로 나오고 달라는 만큼 주는 이탈리아 산 포도주는 작은 맥주병 크기다. 백포도주와 적포도주를 거푸 마시고 얼큰해하는 승객의 대부분은 우리나라 사람이다. 빈자리가 없는 비행기. 편수를 늘여도 좋을 것 같은데, 그러면 몽골에 가는 한국인들은 더 늘어나겠지. 아까 출국장에서 펼침막 펴고 떠들썩하게 사진 찍던 기독교 관련 대학 팀들은 소명의식이 분명해 보인다. 결의에 찬 모습이 역력하다.

 

몽골과 우리말은 어순이 거의 일치한다. 같은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한다. 몽골인과 우리의 생김새도 거의 비슷하다. 학생 중에 몽골인이 있었는데, 이름이 특이할 뿐 전혀 구별되지 않았다. 한데 몽골인은 골격이 단단해 보인다. 키는 비슷한데 기골이 당당하다. 광대뼈와 각진 턱이 조금 더 두드러진 외모는 북방계의 특징인가. 단단하고 거친 음식을 즐겨먹기 때문일까. 최근 갸름해진 우리의 턱은 사실 치아 건강에 좋지 않다. 부드러운 음식만 넘기면서 부정교합이 늘어난 현상을 생각해보라.

 

비행기가 대륙으로 들어오면서 흔들린다. 몽골을 다녀온 이의 귀띔을 들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다른 승객들의 작은 소요가 인다. 대한항공 비행기도 마찬가지일 텐데, 낡은 비행기나 몽골 기장의 실력을 의심하는 걸까. 비행기가 떨어질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리던 한국 승객들은 공항 활주로에 바퀴가 닿자 느닷없이 박수를 친다. 동승한 몽골인에게 미안하고 창피스럽다.


 

 

비행 시간 3시간 반. 입국장에서 보는 울란바타르공항은 규모나 시설이 우리 중소도시 버스종합터미널처럼 소박하다. 한국인 현지 가이드를 만나 오른 관광버스는 한국에서 건너간 중고 버스다. 그러고 보니 눈에 띄는 자동차가 대부분 한국 중고차다. 중형 승용차의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한국 자동차다. 일본차는 운전대가 오른편에 있다.

 

공항을 나와 바라본 몽골의 하늘은 티 없이 맑고 높았다. 파란 하늘에 부는 바람은 더 없이 상쾌한데 무슨 매캐한 냄새가 난다. 자동차 매연은 아닌데, 어디에서 플라스틱을 태우나. 시내로 들어가면서 그 궁금증은 풀렸다. 울란바타르는 고원의 넓은 분지다. 그 가운데 위치한 화력발전소가 냄새의 진원이었다. 툴강 변에 자리한 화력발전소에 오염저감장치는 없다는 것이다. 두 곳의 화력발전소에서 대기오염 물질을 거리낌 없이 배출하지만 시계는 넓다. 한국과 같은 스모그는 전혀 없다. 그래서 그런가. 몽골에서 안경을 쓴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노면이 고르지 않은 2차선 포장도로를 달리며 시내로 들어가는데 주변 구릉에서 방목하는 가축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드문드문 광고탑에 한국어도 보이는데, 이런! 로또를 광고한다. 한국인의 행태가 짐작되는 순간이다. 깨끗한 고급주택이 시내의 길가에 이어지고, 멀리 구릉에 판잣집들이 빼곡하다. 일종의 달동네인데, 유목을 포기하고 도시로 파고들어와 팍팍하게 사는 저들은 건설경기 붐을 타고 막노동에 종사하겠지. 겨울이 혹독한 몽골에서 그들은 움막에 석탄을 태우는데 대기오염의 주요 원인이라고 가이드는 이야기한다.

 

강변에 한 줄기 숲이 이어진다. 툴강이다. 벌거숭이 아이들이 첨벙거리는 모습이 차창으로 들어온다. 울란바타르의 식수원인 툴강은 바이칼 호수로 들어가 흑해로 빠져나간다는데, 강폭은 넓지 않아 50미터 내외다. 툴강은 아직 차고 깨끗하지만 울란바타르의 개발 열풍을 언제까지 견뎌낼지. 우리의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좋겠다. 목초로 둘러싸인 산비탈에 칭기즈칸 초상과 국가휘장이 보이기 시작하면 울란바타르 시내다. 울란바타르를 감싸는 산에도 나무가 거의 없다. 가로수로 은사시나무를 심었다는데, 6월 중순에 꽃가루가 날린다. 날씨가 건조해 알레르기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가이드는 말한다.

 

‘울란’은 붉다는 의미이고 ‘바타르’는 영웅이다. 몽골인의 이름에 바타르가 많단다. 공산주의 시절의 유산인가. 100만이 몰려 사는 울란바타르. 과밀 대책을 세워야할 텐데, 몽골 당국은 거기까지 신경 쓰지 못하는 것 같다. 인구 집중을 반영하듯, 여기 저기 신축되는 건물과 주택들. 경관을 가로막는다. 건물들이 완공되면 자동차와 사람은 도로에서 옴짝달싹도 못하겠다. 건물부터 지어놓고 허가는 나중에 받는다는데, 나중에 고통스러울 교통을 어이할꼬. 울란바타르에 10만 대의 자동차가 다닌다고 한다. 10명 당 한 대꼴이다. 말 타던 습관이 자동차를 타게 한다고 가이드는 해석한다.

 

국가가 소유하고 개인은 장기 임대를 해왔던 땅이 최근에 내국인에게 판매되기 시작했다고 가이드는 전하는데, 땅을 소유한 사람은 나무 울타리를 둘러놓았다. 자신의 재산을 과시하는 모습이다. 건조한 날씨에서 불이 나지 않아야 할 텐데.


 

 

우리를 태운 관광버스는 몽골 통과의례를 수행한다. 이차대전 때 일제와 싸워 이긴 기념으로 축조한 자이승승전탑을 오른다. ‘신성한 산’ 정상에 자리잡은 승전탑에 오르면 울란바타르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한데 승전탑 여기저기에 낙서가 빼곡하다. 몽골어가 대부부니지만 한글도 보인다. 낙서는 우랄알타이어족의 특징인가. 승전탑 뒤 돌무덤에 성황당을 연상하게 하는 원색의 천이 늘어져 있다. 그 역시 우리와 유사하다. 자이승승전탑과 완만하게 이어진 산 위에 나무들이 보이고 그 주변은 온통 초원인데 그 초원에 몽골의 전통 이동주택, ‘게르’가 줄 맞추어 배열돼 있다. 시선을 돌리니 한국 종단에서 세워주었다는 커다란 금빛 불상이 도드라진다.

 

한국 관광객 사이로 몽골과 독일과 일본인이 눈에 띄고 러시아인도 보인다. 중국인은 찾기 어렵다고 한다. 몽골과 국경선을 공유하는 중국 내몽고에 사는 몽골인은 스스로 중국인으로 생각한다니, 놀라운 중국의 흡수력이다. 그래서 몽골인은 중국을 경계하는 걸까. 몽골인은 외국인이 자국을 중국식으로 ‘몽고’로 말하는 걸 몹시 싫어한다는데, 그럴만하겠다. 관광객을 상대로 음료수와 과자들, 그리고 기념 배지와 엽서들을 늘어놓고 파는 허름한 상인들이 계단 주변에 한가롭게 앉아 있고, 남루한 어이들이 애원하듯 과자를 판다.

 

자이승승전탑 아래 위치한 이태준 열사 기념관을 찾았다. 한일합방 이후 몽골에서 의료 활동을 하며 독립운동을 도운 한국인 의사였다. 몽골은 그를 기려 울란바타르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에 땅을 내주었고, 이태준 열사를 배출한 연세대학교에서 2001년 기념공원을 조성했다고 한글 안내전단은 전한다. 38세에 몽골 땅에서 세상을 떠난 이태준 열사는 몽골 최고훈장을 받았다. 그의 행적을 알리는 게르를 관람하고 나오니 몽골 청춘남녀가 나무 사이에서 밀어를 속삭인다.

 

울란바타르 시내는 활기찬 젊은이로 넘친다.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그런지 노출에 거리낌이 없고 애정행각에 거침이 없다. 몽골 전통의상 차림의 중장년도 거리에 섞였다. 1994년 울란바타르에 개원한 연세친선병원 주변이 그렇다. 몽골인은 한국인을 아주 우호적으로 생각한다. 무지개를 뜻하는 ‘솔롱고스’로 한국인을 부른다는데, 고마운 일이다. 같은 언어권이고 생김새가 비슷해 친밀감을 느끼는데, 개중에 불미스러운 일을 벌이는 한국인이 없는지 불안하다. 거리에 한국인에게 유효한 한글 간판이 보인다. ‘대리운전.’

 

호텔로 가는 길에 지상에 가설된 커다란 난방용 배관과 유럽까지 이어지는 철도를 보았다. 북경까지 24시간, 이르쿠츠크까지 20시간이 걸린단다. 우리 호텔은 막히지 않는다면 시내에서 10여 분이면 도착할 외곽에 자리잡았다. 한국 자본이 지은 ‘선진호텔’이다. 공항에서 들어오는 길에 광고판도 있었다. 5월 27일에 문을 열었으니 완공한지 한 달이 안 된 시설이다. 몽골 최고라는데, 과연 로비에 칭기즈칸이 앉을 법한 소파가 배치되었고 몽골 최고의 화가들이 그린 그림이 품격을 더한다. 한데, 호텔방에 들어서니 코와 눈이 맵다. 이른바 ‘새집증후군’이다. 기후가 건조해 모기가 없다니 창문을 활짝 열었다.

 

위도가 높은 몽골은 여름에 해 지는 시간이 늦다. 요즘은 10시나 되어야 어두워진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중식당에서 한낮에 저녁을 먹었다. 시내 복판에 씨름경기장이 있다. 몽골에서 씨름은 열기가 대단한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몽골은 올림픽에서 레슬링에 강한 면모를 보인단다. 국회의사당과 정부 종합청사가 모인 지역에 큰 광장이 있다. 수호바타르 광장. 1920년 독립영웅인 수호바타르의 동상이 광장 한가운데 서 있다. 광장을 바라보는 거대한 구조물이 얼마 전 완공되었는데, 그 한가운데 칭기즈칸이 웅장하게 앉아 있고 칭기즈칸 좌우에 원정을 함께 한 장수의 동상이 버티고 있다. 공산권권이 지배할 적에 몽골은 칭기즈칸의 역사를 철저하게 외면했다고 한다. 민주화 이후 다시 칭기즈칸을 부각하려고 애를 쓰는데, 일본 자금이 많이 지원된단다.

 

노점에서 2만 원 정도로 과일 한보따리를 사서 호텔로 돌아와 마당에서 맥주를 마셨다. 200억 원을 투자해 지은 선진호텔의 지배인이 동석해 몽골의 투자 가능성을 확신한다. 맥주 마시며 하늘을 보니 별이 총총하다. 초원의 게르에서 묵을 내일을 기대하며 잠자리로 들었다. 고비사막에 가려했지만 비행기 사정으로 행선지가 사막화가 다가오는 울란바타르 인근으로 바뀌었다. 덕분에 몸은 편해지고 시간 여유도 생겼지만 사막 한 가운데의 실상을 체험하는 건 포기해야 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 YTN의 뉴스를 잠시 보았다. 선교방송을 포함해 한국 텔레비전 방송채널이 4개나 된다.


 

 

아침에 커튼을 여니 맑은 하늘에 구름이 얇다. 몽골의 별은 기막히다는데, 저 구름, 밤엔 사라졌으면 좋겠다. 1970년대 초, 대부도에서 본 별은 기막혔다. 여름밤 하늘 높이 누가 하얀 솜이불을 덮어놓은 듯, 우유 한 초롱을 부은 듯 은하수가 포근했고, 잠시 헤어도 쏟아지는 별똥별을 십여 개를 셀 수 있었다. 몽골의 별을 아침부터 기약하며 호텔 로비 밖으로 나가니 현대 스타렉스 승합차 4대가 대기하고 있다. 좁고 울퉁불퉁한 초원의 비포장을 다니려면 대형버스는 곤란하다고 한다.

 

끝없는 초원에 이리저리 이어지는 길은 이정표는 물론 방향도 없다. 말 달리는 초원에 딱히 개설된 길은 없다. 차가 밟아 목초가 벗겨지면 길이 되고, 그 길이 패이면 그 옆에 새 길이 생긴다. 비슷해 보이는 초원과 구릉에 양 떼, 양과 섞인 염소 떼, 말 떼, 소 떼, 가끔 쌍봉낙타로 끝없이 이어진다. 초원을 한 시간 정도 달린 승합차는 칭기즈칸의 고향이라는 에르덴솜에 닿았다.

 

에르덴솜은 사막화가 확산돼 스며드는 곳이다. 태양이 강한 몽골 초원에서 육식에 의존하는 주민들은 대개 나이 들어 보이는데, 20여 동의 게르가 관광객을 맞는 이흐더트 휴양소에서 만난 땅땅한 체구의 촌장은 60대 전후일까. 84만 에이커의 초원에 11만 두의 가축을 방목하는 에르덴솜의 인구는 6개 면에 4200여 명. 휴양소의 휴게소에 우리와 둘러앉은 촌장은 사막화를 막기 위해 69퍼센트의 지역을 그린벨트로 지정 보호한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모래와 돌로 형성된 에르덴솜의 그린벨트에 목축까지 제한하는 건 아니다. 개발과 사냥과 주거를 금지하는 정도다.

 

칭기즈칸의 고향을 관광 자원화 하려는 몽골에서 사막화는 심각한 징후다. 휴양소를 만들어 외국 관광객을 받고 있지만 사막을 찾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터. 촌장은 나무 심기를 원하지만 몽골인은 나무 심는데 익숙하지 못하다. 나무는 목축에 방해되는 존재로 생각한다. 주민들의 경제 사정을 먼저 생각하는 촌장은 방목보다 목초의 뿌리를 먹는 들쥐가 급속히 늘어나는 걸 사막화의 원인으로 분석한다.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방목에 경각심이 없는 건 문제다. 주변 국가의 지나친 개발도 언급하길 바랐는데, 그는 한국인의 근면성을 배우겠다고 한다. 새마을운동을 도입하고 있다면서.

 

에르덴솜으로 오는 길에 살펴본 몽골의 토질은 기름져 보인다. 곡물과 채소를 재배하는 농촌으로 정착해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우리 측은 그 점을 지적했는데 촌장은 농업 정착에 관심이 없다. 과거 공산권 시절 나무를 심었지만 초기 생존율이 40퍼센트 이하로 낮고, 그나마 방치해 대부분 죽고 말았다며 유실수 심을 궁리를 하는데 그친다. 지하 60미터로 내려가면 질이 세계 최고인 물이 나온다며 자랑하지만 그 물을 퍼올리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까. 대한항공에서 해마다 찾아와 나무를 심고, 강원도와 결연해 지원을 받는다지만 사막화 속도에 비하면 미미할 것이다. 몽골인의 경각심이 우선되지 않는다면 외국의 지원만으로 사막화를 막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휴양소와 이어진 구릉에서 사막화의 실체를 보았다. 목초라 하기 민망한 작은 풀이 모래땅에 얕게 뿌리를 박았는데, 발로 살짝 건드려도 뿌리가 드러난다. 바람에 깊게 패어나간 대지가 구릉 위에서 아래로, 좌에서 우로 길게 진행되고, 그 사이 여기저기에 가축의 배설물이 흩어져 있다. 들쥐들이 배설물 주변에 몸을 숨긴다. 이런 지역에서 목축은 가능할 것 같지 않건만 몽골인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게르 주변에 구덩이가 보인다. 자세히 들어다보니 나무 한 그루 앙상하게 꽂혀 있다. 그런 상태로 제대로 생육할 성 싶지 않다.

 

휴양소 휴게실에서 도시락을 먹고, 1970년대에 심었다는 나무를 보러 차에 올랐다. 공산정권이 1000그루의 일본잎갈나무를 심었는데 현재 30그루 남은 지역이다. 운전기사는 모래땅에서 차가 빠지지 않은 길을 찾느라 무척 애를 먹는다. 뜨거운 태양 아래 서 있는 30그루의 나무는 사막화되는 초원에서 한 점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나무들이 넓게 띠를 이루며 배열되어야 사막화를 막을 텐데, 갈 길이 멀다. 지표에 풀이나 나무가 태부족해 강수량이 적고, 지하수는 더욱 깊어진다. 게다가 인력은 물론 인식도 부족하다.

 

울란바타르에서 동쪽으로 15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바가노르구는 울란바타르에 편입되기 전에는 독립된 시였다고 한다. 석탄 광산으로 유명한 바가노르구도 사막화에 직면한다. 이흐더트 휴양소에서 나와 바가노르구로 이어지는 2차선 도로로 막 들어서니 말을 탄 칭기즈칸을 형상화한 거대한 스테인리스 구조물이 완공을 서두른다. 원정을 마친 칭기즈칸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모습이라는데, 69미터에 달한다. 엘리베이터로 구조물 내부에 들어갈 수 있다는데, 가이드는 일본 자본의 지원되었다고 귀띔한다. 자본은 이윤을 노릴 터. 다시 태어난 칭기크칸은 일본 자본의 앵벌이가 되었다. 멀리 구릉 기슭에서 작은 회오리바람이 일고 먼지가 소용돌이치며 오른다. 황사는 저런 식으로 거대해지겠지. 올해 2월부터 발생한 황사는 앞으로 연중행사가 될 거라던데 갑갑해진다.

 

탄광지대에서 퍼올린 흙더미가 산처럼 싸여있는 지점을 지나 바가노르구로 들어서자  ‘한몽 평화의 숲’이 나타난다. 폭 46미터 길이 380미터의 땅 4군데에 철조망 울타리를 치고 그 가운데 3년생 은사시나무 1만 그루를 2년 전에 심은 한몽 평화의 숲은 대한항공의 지원을 받아 한국의 ‘시민정보미디어센터’에서 조성한 사막화방지 그린벨트다. 지하 70미터에서 퍼올리는 우물을 설치하고 관리인을 고용해서 그런지 나무들이 가냘프지만 살아있다. 구청에서 담당자가 마중을 나와 설명한다. 몽골의 적십자회원들이 일주일에 한 차례 이상 찾아와 나무에 물을 준단다. 해마다 방문해 생육을 점검하고 나무를 심는 한국에서 그루 당 5천원의 비용을 지원한다고 한다. 98퍼센트의 나무가 살아있다고 말하는 담당 관료는 한국이 지원한 나무를 꼭 살려내겠다고 다짐했다.

 

담당자는 양묘장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바가노르구 외곽에 위치한 양묘장은 물이 늘 흐르고 땅은 기름졌다. 양묘장에서 발아시켜 3년생까지 생육시킨 후 그린벨트에 심는다는데, 중국의 사막화 방지용 나무도 도입했다고 한다. 한국과 중국 기술이 도움이 되겠지만 몽골 현지에 잘 자라는 나무를 심어야 잘 살아날 것이다. 몽골 전문가와 당국과 주민들의 노력이 전제될 때 국제사회의 지원이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방목 중인 가축이 들어갈 수 없게 관리인을 두고 관리하는 한몽 평화의 숲과 양묘장을 방문한 일행은 구청사로 들어가 구청장, 관광농축산국장, 자연보호국장, 실무 과장과 마주 앉았다. 구청장은 나무가 잘 자라는 한국의 환경에 부러움을 표시하며 나무를 심지만 관리가 어렵다는 걸 토로한다. 강수량이 적어 심은 나무들이 잘 죽는다는 거다. 국가 차원의 대책을 물었으나 시원한 답은 없고, 한국에서 지원하는 식목사업이 현재 가장 크고 활발하다면서 고마워하는 구청장은 도와주고 싶으니 함께 노력하자는 우리의 제안에 감사해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자며 자리를 일어선다.

 

숙소인 뭉근머리트 캠프로 향했다. 가도 가도 초원과 초원, 가끔 말 탄 목동 한두 명, 파란 하늘에 흰 구름, 가축 가축들이다. 한 시간 반 정도를 그렇게 달려 게르가 30여 동 있는 캠프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6시. 해가 중천이다. 칭기즈칸의 숨결이 밴 핼랜강은 우리 독립운동가와 관계있는 중국 용정의 해란강으로 흐른다. 그 핼랜강을 끼고 있는 넓은 초원에 자리하는 뭉근머리트 지역은 몽골의 명마가 자라는 곳이라고 한다. 캠프장 측은 아까부터 소 한 마리를 묶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며 우리를 채근한다. 소 잡는 모습을 보라는 거다. 비록 고기를 먹지 않지만 지켜보기로 했다.

 

소 한 마리 잡는 데 인건비 포함해서 미화 800달러다. 2년 반 된 암소는 아직 수태 경험이 없고 우리의 비육우와 달리 덩치가 작다. 인부가 묶은 끈을 기둥에서 풀자 어린 소는 본능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것 같았다. 달아나려 기를 쓰지만 끈을 쥔 인부는 소를 제압해 도살 공간으로 끌고 온다. 그러자 5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외날 도끼를 인부에게 전해주고, 인부에 제압된 소는 마지막 순간, 운명에 순종한다. 도끼 뒷면을 정수리에 내리치자 소는 기절해 넘어지고, 긴 칼로 심장을 뚫자 뜨거운 피가 대야로 쏟아져 나온다. 그렇게 두 번 반 피를 받을 때까지 소는 몸부림을 쳤고, 조용해지자 가죽을 벗겨낸다. 검은 가죽을 벗겨내고, 장기를 드러낼 즈음, 식당은 준비를 마쳤다. 상추에 양념장과 김치와 미역국들. 얼마나 많은 한국인이 방문할까 짐작하게 한다. 같은 캠프장을 찾은 제주도 박물관 팀도 우리 덕분에 고기를 실컷 맛본다. 콩팥과 비장과 간을 먼저 제공하더니 여기저기 부위를 잘라내 내어주고, 갈비를 연실 구워 내놓는데, 일행은 배가 불러 더는 고기를 먹지 못한다.

 

고기가 질기다고? 한국에서 먹는 쇠고기는 평생 움직이지 못한 비육우다. 단백질보다 지방이 많아 부드러워진 고기에 익숙한 우리는 자연스런 쇠고기를 질기다고 오해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수입하는 쇠고기는 생후 30개월 이하의 소를 도살했다. 그 고기도 부드럽지만 광우병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육질이 포함된 사료만 먹고 자라 영양분도 적다. 몽골 쇠고기는 광우병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은 물론 먹는 이의 치아 건강에도 좋을 텐데, 우리는 어느새 자연스러움을 잊고 말았다.

 

우리가 묵을 게르는 4인용이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일인용 침대 4개가 가장자리에 둘러 놓여있고 가운데 장작으로 불 지피는 난로가 놓여있다. 게르 밖은 흰 천으로 덮였는데, 전에는 양가죽이었을 것 같다. 우산살 같은 구조로 지붕을 만들어 놓은 게르는 한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울 듯 한데 어찌 견딜까. 여름에는 밖에서 가축과 함께 지내다 해가 져 시원해져야 게르에 들어오니 괜찮고, 겨울에는 온 식구들이 모여 살아 추운 걸 모른다고 가이드는 이야기한다.

 

주민들의 게르 연료는 장작보다 말 배설물이라고 한다. 장작은 4시간 타면 그만인데 말 배설물은 10시간 정도나 열을 발산한다는 거다. 가을에 말 배설물 모으는 일이 겨울나기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며 가이드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겨우내 한 게르에서 생활한 가족은 새싹이 돋는 봄에 부부만 남긴 채 가축을 몰고 일제히 초원으로 나가 며칠을 머문다. 그때는 말의 번식 시기. 말과 사람은 임신 기간이 비슷하니 태어나는 시기도 비슷하단다.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제 망아지를 얻고, 아장아장 걸을 무렵이면 스스로 말을 탄다. 말갈기를 잡고 뛰어오른다는 거다. 주민들을 보니 겨우 걷는 아이들을 앞에 앉혀놓고 말을 탄다. 아기를 안고 말을 타는 여인네도 있다. 여기에서 말은 생활의 일부다.

 

저녁 먹고 잠시 쉬노라니 모이란다. 동네 학교의 학생들의 공연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관광 상품이겠지만 공연은 좋았다. 초등학교 저학년에 해당하는 꼬마부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녀 청년들 십여 명. 그리고 지도교사가 춤과 노래와 악기연주와 체조를 보여주는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예쁘고 제법 수준급이다. 밤이 이슥해지면서 공연은 끝나고, 밖으로 나가니 별이 총총하다. 은하수와 별똥별 떨어지는 모습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거의 40년 만에 보는 광경이다. 몽근머리트는 세계 3대 별 관측지로 유명하다는데, 사실 얇은 구름에 가려 진면목과 거리가 멀다고 가이드는 아쉬워한다. 하지만 일행은 넋을 잃는다. 캠프파이어가 밝혀지자 지역 주민들은 우리와 어울리고, 옛 노래에 취한 일행이 몽골의 밤하늘을 즐기는 사이, 게르로 돌아가 잠에 빠졌다. 내일 밤에 구름 한 점 없기를 바라면서.


 

 

상쾌한 공기를 맞으며 게르를 나오자 먼저 일어난 일행들이 어떤 풀을 놓고 재미있는 일감을 벌인다. 언뜻 쑥갓처럼 보이는데 쐐기가 있어 만지는 순간 뜨거운 통증을 유발하는 풀이다. 미리 귀띔을 받아 손에 대지 않았지만 다른 일행은 호기심을 유발하는 꾐에 속아 건드렸다 깜짝 놀란다. 짓궂게 웃어젖히는 일행들. 가축이 먹지 않는다는 그 풀을 자세히 보니 보통 날카로운 게 아니다. 갈비찜과 고깃국으로 아침을 마친 일행은 주민들과 함께 말을 타고 그들의 나담축제를 가까이에서 보았다. 공식 일정이 없는 오늘은 몽골 여행의 진수, 유목 문화를 체험할 것이다.

 

말 경주와 씨름 지역 예선이 벌어지기 전에 주민들이 이끄는 말을 탔다. 몽골어로 “호땅”은 빨리 가자는 의미이고 느리게 “오-땅”은 천천히 가지는 뜻이란다. “추-!”는 우리말로 “이랴!”에 해당하고. 일행은 시종일관 “오-땅”만 주문하는데 말은 관광객의 고삐를 완전히 무시한다. 오로지 옆 말에 타고 앉은 주민의 고삐에 반응할 따름이다. 천천히 가는 데에도 말 탄 관광객의 엉덩이는 말안장 위에서 괴롭다. 40여 마리의 말이 차갑고 맑은 핼랜강을 건너자 일제히 상기되는 일행.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 게르로 돌아가는 말이 속도를 내자 안장에서 말과 박자를 맞추지 못하는 관광객의 엉덩이는 비명을 울린다.

 

말을 몰아준 주민들은 우리에게 나담축제의 하나인 말 경주를 보여준다. 멀리서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경주마가 우리가 서 있는 곳을 골인점으로 차례로 통과했고, 우리는 1등부터 5등까지 상금을 수여했다. 지역예선에 통과한 말과 기수는 더 큰 대회에 나설 예정이란다. 상금은 관광객이 제공하는 대신 관광객 앞에서 경주를 벌인다고 한다. 이어 씨름대회가 열린다. 샅바는 없다. 관중과 분리된 모래판도 없이 말 배설물이 흩어진 초원에서 말과 사람이 뒤엉킨 가운데 씨름에 돌입, 체구가 건장한 사내가 우승했다. 역시 우리가 상금을 수여했다.

 

엉덩이가 아파 어기적거리며 캠프로 걸어간 일행이 한국식 불고기로 점심을 먹고 잠시 쉬는데 아까부터 초원 저편에서 번개를 치며 다가오던 먹구름이 드디어 주위를 감싸면서 본격적으로 비를 뿌린다. 한 30분 동안 거센 바람 속에 비와 우박을 쏟아내던 먹구름이 언제 그랬냐는 듯 물러가자 초원은 이내 생기가 돈다. 이게 스텝의 진면목인가 보다. 오늘 숙식은 울란바타르에서 가까운 테를지국립공원의 한 게르 캠프에서 맞을 예정이다. 넓은 초원에 구불거리며 흐르는 핼랜강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다시 아스팔트로 올라왔다. 한몽 행복의 숲을 지나가는데, 일단의 학생들이 나무에 물을 주고 있다. 신뢰감이 생긴다.

 

돌무더기가 테를지국립공원 입구에 있다. 사람들이 성황당처럼 예를 올린다.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테를지국립공원 입장료는 운전기사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툴강을 가르는 낡은 나무다리를 건너 바위와 자작나무가 아름답게 펼쳐지는 골짜기를 들어가 집을 풀고 명승지 거북바위를 구경하고, 게르로 돌아와 양고기 스테이크 저녁상을 받은 일행은 맥주를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몽골의 석양이 대단하다는데, 어제도 오늘도 예외다. 구름이 어제보다도 많아 별이 많이 줄었다. 먼저 다녀온 사람들이 말 젖으로 만든 순한 술을 우리 식으로 ‘마유주’라고 하며 마셔보라던데, 마유주는 이제 담기 시작해 한 달 뒤에나 맛볼 수 있다고 한다. 한 달 뒤에 다시 올 기회가 있으려나. 여러모로 아쉽다.


 

 

새벽에 게르가 거세게 흔들리는 걸 느꼈다. 낮에 �근머리트 캠프에서 보았던 돌풍과 우박이 테를지국립공원으로 몰려와 게르를 뒤흔드는 모양이다. 한 30분 게르의 기둥을 사정없이 흔드는 와중에 밖에서는 놀라 소리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며 잠시 어수선해진다. 잠결에 게르가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수천 년 사용해온 게르가 이 정도 비바람에 부셔질 리 없다 생각을 고치고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하늘은 쾌청하고 고요한데 게르의 중앙 기둥이 받힘돌과 어긋나 있다. 일행이 머문 게르 한 동의 지붕이 내려앉았다는데, 우리 게르도 무너질 뻔 했다.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사진으로 보았던 야크가 떼를 지어 목초지로 이동한다. 이럴 때 카메라가 없다.

 

흰죽이 나온 아침을 먹고 울란바타르 시내로 들어간다. 승합차는 물러나고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포장도로를 이용하므로 승합차를 보냈다고 한다. 노선 표시가 남아 있는 관광버스는 얼마 전에 서울을 달리는 시내버스였을 텐데, 낡았어도 불편하지 않다. 에어컨도 시원하다. 시내로 들어서니 도로가 꽉 막힌다. 신호가 없거나 있어도 지키지 않아 요령껏 피해 다녀야 한다. 약속 시간에 5분 정도 늦는 게 이 나라 예의라는 가이드 설명에 충실하게, 교육부와 통계청이 함께 사용하는 환경부 건물에 15분 늦게 도착했다.

 

몽골 자연환경부의 그린벨트 담당 바야바르바트 국장은 40대 후반의 학자 같은 모습이다. 담당 공무원을 배석하고 우리와 마주 앉아 자국의 사막화 현황을 담담한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내고 주장하지 않았지만 그는 방문자의 뇌리에 깃들었을지 모르는 편견, 다시 말해 몽골 사막화의 원인을 몽골 내부에서 찾는 걸 경계하는 듯 보인다. 지구온난화와 주변국의 산업화로 인한 자원 낭비로 내륙국가 몽골에 사막화가 진행된다고 운을 띄우고, 현재 사막화를 막으려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책임자다운 이야기를 펼친다.

 

가축 밀도가 높은 걸 인정하면서 민주화 이후 자율에 맡기는데 목초지 잠식을 막는데 한계가 있다고 고백하는 그는 방목하는 염소의 수가 늘어나는 현상을 걱정한다. 몽골의 캐시미어 제품이 고가로 수출되는데, 양 떼와 섞여 10퍼센트 정도 사육하던 염소가 최근 50퍼센트까지 늘어나는 추세하는 것이다. 염소는 먹을 게 없으면 발로 흙을 파 풀뿌리까지 먹는다. 정부는 광업을 육성해 유목의 비율을 줄이려 계획하고, 차량 이동으로 파괴되지 않도록 초원에 도로를 개설할 예정이라고 한다. 강우량을 늘이기 위해 곡식과 채소를 경작하고 물을 공급해 나무를 심고 보전하려 노력한다면서 비닐하우스와 유실수 식재를 병행할 생각인데, 한국 농업기술의 전수를 희망한다.

 

황사 원인이 국제적이기도 하므로 인접국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강조하는 그는 사막화를 차단하기 위한 그린벨트를 2035년까지 수천 킬로미터 조성하려 한다며 한국의 산림청에서 나무 식재를 위해 950만 달러를 지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아울러 유네스코와 독일과 일본에서 지원하여 몽골 정부는 한 해 5000에이커의 땅에 나무를 심는다며 유목문화에 젖은 몽골인의 낮은 인식과 심은 나무를 관리할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토로한다. 현재 44.7퍼센트의 땅에 사막화가 진행 중인 몽골은 이런 추세를 막지 못하면 90퍼센트가 사막화될 것으로 UNCP가 경고했다고 밝히는 국장은 지하수는 아직 충분하지만 의존율이 80퍼센트에 달해 고갈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자기 말을 마쳤다. 이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어떤 식의 국제협력에 나설 수 있는지를.

 

우리는 사막화 방지를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을 보고 감복했다면서 협의를 거처 구체적인 지역을 정해 기술과 자본을 지원할 생각을 전했다. 한국 민단단체의 지원에 거듭 감사를 표한 국장은 정부가 창구 역할을 맡을 테니 사막화가 진행되는 지방과 협의해 도움을 주길 바란다며 우리의 실천 의지에 고마워한다. 동행한 기자의 질문에 국장은 해마다 4에서 5억 투그릭의 예산을 나무 심는데 사용한다며, 몽골 환경부 예산의 1퍼센트에 해당한다고 답한다. 몽골 전체 예산 중 4에서 5퍼센트가 환경부에 배정된다고 덧붙인다. 노력하는 모습이다. 참고로 1원은 1.24투그릭에 해당한다.

 

황사 관련된 일정은 모두 끝났다. 몽골국립자연사박물관을 찾았다. 작지 않은 박물관에는 공룡 화석이 많다. 학술적 가치가 높은 공룡 화석을 좋은 자리에 전시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자료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외국 관람객이 몇 명 보인다. 국립박물관은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반영한다. 비록 오래되어 수리가 필요해 보이는 건물이지만 자연환경에 대한 몽골의 의식은 우리보다 높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없지 않은가.

 

소매치기 조심하라는 가이드의 주의를 듣고 몽골 최대의 백화점에 올라가 티셔츠와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 기념품을 샀다. 싸구려 티셔츠는 집에서 세탁하고 나니 염색이 얼룩얼룩 빠졌고, 더 나쁜 것은 멀쩡한 옷을 망치게 했다는 거다. 가난한 몽골 아이들이 관광객 호주머니를 노린다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것 참! 몽골 아이와 청소년이 근처에 다가오면 공연히 신경 쓰인다. 식당에서 싱가포르의 타이거 맥주를 마시고 노천카페에서 몽골 맥주를 마셨다. 첫맛은 단데 끝맛이 씁쓸한 몽골 맥주 맛보다 어두워지는 밤하늘에 서너 마리가 날아다니는 박쥐를 본 것이 좋았다.

 

양고기 고치를 주문해 놓고 느긋하게 맥주를 즐기는데, 몽골 환경에 관심이 많은 한국인 자원활동가 한 분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소명의식으로 충만된 그는 무지몽매한 몽골을 개화시킬 책임감에 젖어 한가롭게 맥주를 마실 시간이 없는 듯 부산하다. 몽골의 한인 사회에서는 똑똑한 한국인 만 명만 들어가면 몽골을 접수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한몽연합’ 따위의 용어가 거침없이 회자된다는데, 언제부터 한국인들이 그렇게 교만해졌나. 소득의 다소보다 문화의 폭과 깊이에 감동해야 하거늘, 왜 이리 천박해졌나. 교회에서 선교 목적으로 온 한국인들이 특히 유난스럽다고 하는데, 몽골인이 우리 교회에 포교를 의뢰했을까.


 

 

6월 23일.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창밖이 화창하다. 호텔에서 볶음밥으로 아침을 먹은 일행은 모여 앉았다. 어떻게 몽골과 국제협력 관계를 가지면 좋을지 의견을 모으고, 구체적인 일정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인천환경원탁회의의 역할이 소중해지는 순간이다.

 

짐을 관광버스에 싣고, 몽골 라마불교의 총본산인 간등사원을 찾았다. 금으로 도금한 26미터 청동불상이 모셔진 곳이다. 구소련이 탄피를 위해 녹여 없앤 불상을 1994년 국민성금으로 복원했다고 가이드는 전한다. 간등사원의 종정은 국무총리, 국회의장, 대법원장과 더불어 몽골의 4대 요인에 들어갈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데, 사원 자체는 소박하다. 주변에 3층 이상의 건물을 불허하는 간등사원의 입장료는 3달러. 외국인에게만 받는다.

 

한국 관광객을 따라다니며 “사지! 십구 달러!”하며 출토품 비슷한 물건을 내미는 인파를 피해 관광버스에 올라, 울란바타르공항으로 갔다. 현지 가이드와 헤어져 청사 안에 들어와 대부분이 한국인인 탑승객 사이에서 한국산 컵라면을 먹고, 면세점에서 파는 캐시미어 제품을 골랐다. 한국은 장마가 시작되었지만 겨울용 모자와 장갑과 목도리와 스웨터를 구입했다. 그러고 보니 몽골의 사막화에 다소 기여한 셈이다.

 

비행기 옆 자리에 인천공항에서 본 신학대학 관계자들이 앉았다. 시종일관 나누는 그들의 대화는 기독교 교리다. 그들은 4박5일 동안 몽골에서 어떤 일정을 소화했을까. (환경과생명, 2007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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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유학중 몽골 학생입니다. 논문 설문지를 하고 있습니다. 부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