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8. 7. 4. 12:36
 

장마철을 앞둔 오이밭. 주렁주렁 매달린 오이를 연상하고 흐뭇하게 다가가니 보이는 건 진딧물이다. 이거 여간 약 오르는 게 아니다. 농약을 확! 뿌릴 수도 없고. 어디 무당벌레 없나. 남의 밭을 기웃거린다. 장마철에 입맛 돋우는 오이지의 천적은 진딧물이고, 무당벌레는 오이지 서포터즈다. 그런데 서포터즈가 통 보이지 않는다. 옆집 텃밭에서 농약을 뿌렸나. 거기 진딧물이 보이지 않는 게 영 수상하다. 두 주 전엔 심상치 않았는데.

 

무당벌레라. 왜 무당벌렐까. 1947년 조선생물학회에서 그리 확정했다지만 무슨 사연이 있을 터. 어디, 무당개구리와 무당거미를 비교하며 유추해 볼까나. 시퍼런 등에 검은깨 같은 점이 도드라지는 무당개구리는 어딘가 혐오스럽다. 그래도 잡자고 덤비면 위기에 몰린 녀석은 몸을 뒤집어 검은 점이 뚜렷한 붉은 배를 쑥 내밀고는 꿈틀대며 바들바들 떤다. 섬뜩하다. 더는 만지기 싫어진다. 노랑과 검은 띠가 교대로 배열되는 무당거미는 어떤가. “잡아볼 텨?” 하며 경고하는 뜻, 무늬가 화려하고 또 선명하다.

 

잡으려 하면 냄새가 고약한 노란 액체를 내뿜는 무당벌레도 붉은 바탕에 검은 점이 도드라진 등딱지를 가진다. 천적에게 경계색을 드러내는 것이리라. 멋모르는 도마뱀이나 작은 새가 덥석 물었다간 쓰디쓴 액체에 혼비백산, 그냥 토해내고 다신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다. 짝짓기 할 때 흔들어대는 요란한 몸짓을 보라. 마치 고깔 뒤집어쓰고 덩실덩실 춤추는 무당과 비슷하지 않던가. 요란하게 춤을 추다, 넋을 잃고 접근하는 구경꾼의 얼굴에 입에 문 쌀알을 후 부는 무당에 누가 감히 가까이 가겠나. 무당벌레의 모습과 행동을 보고 무당을 연상했는지 모른다.

 

서양에서는 무당벌레를 ‘레이디버드 비틀’, 다시 말해 ‘성모마리아 벌레’라 한다던데. 왜 우리와 달리 이름으로 무당벌레를 기릴까. 뒤주에 곡식 퍼담는 됫박처럼 생겨 농민들이 ‘됫박벌레’라 하기도 하고, 북한은 최근 ‘점벌레’로 바꿨다는 무당벌레는 명실상부한 진딧물의 천적이다. 세계적으로 4천 여 종이 있는 무당벌레는 역시 4천 여 종의 진딧물을 세계 곳곳에서 먹어치울 것이다. 다 자란 애벌레 한 마리가 하루에 80마리, 애벌레에서 성체까지 진딧물 500마리를 너끈히 먹어댄다고 하니 농민에게 무당벌레는 여간 고맙지 않을 터. 영어를 쓰는 농민들은 레이디버드 비틀로 경의를 표했나보다.

 

진딧물을 즐겨먹는 곤충은 무당벌레 말고도 많다. 무당벌레가 유난히 눈에 띄지만 풀잠자리와 꽃등애 애벌레도 진딧물을 탐하고 기생벌도 진딧물을 찾는다. 오이가 탐스러워질 무렵, 줄기에 다닥다닥 달라붙는 진딧물은 그렇듯 곤충의 먹이사슬에 더없이 중요하다. 주변 환경이 좋으면 암컷의 단성생식으로 부지런히 개체를 늘이니 곤충의 세계는 채소밭 주변으로 다채로울 수 있다. 그렇다면 진딧물은 해충이 아닌가. 해충이니 익충이니 하는 기준은 오로지 인간 세계에만 존재한다. 그래도 무당벌레는 익충인가. 무당벌레는 그런 기준을 사람에게 의뢰하지 않았다. 진딧물이 거기 있으니 도톰한 등껍질 속의 작은 날개를 분주하게 펄럭이며 날아왔을 따름이다.

 

햇살이 따사로운 봄부터 한낮 더위가 아직 뜨거운 가을까지 진딧물을 먹으며 네댓 번 알을 낳으니 자연에 드물지 않은 무당벌레는 등딱지 무늬처럼 크기도 2밀리미터에서 10밀리미터까지 다양하다.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91종 중 7개의 검은 무늬가 선명한 칠성무당벌레가 유명세를 차지했지만 아무래도 대표는 무당벌레다. 머리에서 꼬리까지 18개의 작은 점이 4줄로 퍼진 무늬가 정상이지만 무당벌레의 무늬는 다양하다. 점이 없거나 좌우에 커다란 점이 한개 씩 있는 경우도 있다. 남생이무당벌레도 빼놓을 수 없다. 납작한 주홍 바탕 등딱지에 검은 색 굵은 띠무늬가 위엄을 자랑하는 남생이무당벌레는 우리나라 무당벌레 중에서 가장 몸집이 크지 않던가. 무려 10밀리미터나 되는 몸을 뒤척이며 과일나무에 붙은 진딧물을 소탕한다. 무당벌레라고 다 반가운 건 아니다. 밤색 등딱지에 28개의 점이 있는 큰이십팔점무당벌레는 이십팔점무당벌레와 같이 감자와 가지 잎을 갉아먹는다.

 

잎 뒷면에 붙여 낳은 20에서 30여 개의 알에서 봄이면 9일, 여름이면 4일 만에 애벌레가 나오고, 그때부터 애벌레는 진딧물을 탐식하지만, 진딧물이 주변에 없으면 아직 부화하지 않은 한배의 알을 먹어치운다. 진딧물을 먹으며 부쩍부쩍 자라는 이른 여름의 애벌레는 껍질을 4번 벗으며 20여일 후 성체가 되는데, 햇살 환한 잎사귀에서 등딱지 아래의 작은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이는 녀석은 귀엽기 그지없다. 살짝 잡아 손바닥에 놓으면 부지런히 손가락으로 기어오른다. 높은 곳으로 가서 등딱지를 활짝 연 다음 속 날개를 펴고 날아오를 참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손가락을 내리면? 무당벌레는 손바닥 쪽으로 방향을 바꿔 오른다. 손가락으로 다시 잡아 손바닥에 놓으면? 그땐 짧은 다리를 오므리고 죽은 체하다 땅으로 굴러 떨어질지 모른다.

 

무당벌레도 겨울잠을 잔다. 햇살 받아 바싹 마른 나뭇잎이나 따뜻한 바위 아래로 모여드는데, 잘 때 낯을 가리지 않는다. 여러 종의 무당벌레 수백 마리가 웅크리는 경우도 있으니. 애벌레 때 먹이를 놓고 경쟁이 치열하더라도 일단 성체가 되면 너그러워진다. 그렇다고 잎벌레까지 받아들이는 건 아니다. 입에 넣었다 진저리친 기억이 있는 새들이 기피한다는 걸 착안했는지 무당벌레와 빼닮은 게 잎벌레이지만, 나무 수액을 빨아먹는 잎벌레 애벌레를 잡아먹는 무당벌레 처지에서, 성체가 된 잎벌레까지 겨울밤 잠자리에 초청하는 건 아니다.

 

자동차를 무당벌레처럼 만들어 도시를 누비는 사람도 텃밭을 일굴 수 있다. 텃밭을 일구는 사람은 자신이 먹을 채소에 농약을 뿌리지 않는 게 보통인데, 장마철 지나 김장용 배추와 무가 자랄 때까지 진딧물을 조심해야 하는 텃밭에서 무당벌레는 단연 인기 짱이다. 하지만 무당벌레는 진딧물이 전혀 없으면 다가오지 않는다. 진딧물이 싫어 농약을 친다면 오이야 말쑥하니 길어지겠지만 식구와 함께 먹기 게름직하다. 역시 오이는 오이지 서포터즈가 보살펴야 제격이다. 장마철 오이지가 맛있는 건, 어쩌면 진딧물 덕분이다. 그래서 무당벌레가 사람에게 대우받는 게지. 무당벌레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전원생활, 2008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