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9. 2. 26. 16:35

 

1992년 파주군에 골프장 건설이 추진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크고 작은 군대가 주둔하는 법원리의 건국대학교 목장이었다. 시민단체가 막 맹아를 터뜨렸지만 행동반경이 좁았고 군사정권이 물러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집회와 시위가 극히 조심스러웠던 시절, 군대 차량이 질주하는 거리에 머리띠와 피켓을 들고 나온 주민들의 의지는 결연했다. 농토를 오염시키는 골프장은 절대 반대라는 거였다.

 

막 태동한 환경단체의 부탁으로 골프장 예정지의 동물 분포를 조사했다. 물이 졸졸 흐르는 작은 계곡의 넓적한 돌을 들추자 이런! 꼬리치레도롱뇽이 무리지어 나타났다. 저 돌은? 뒤집으니 갑자기 햇빛을 받은 꼬리치레도롱뇽 서너 마리가 달아나느라 부산을 떨었다. 상류로 오르며 들춘 돌에는 어김없이 꼬리치레도롱뇽이 숨었고, 깊은 산중에서 어쩌다 들을 수 있는 새소리가 숲속에 넘치고 있었다.

 

우리나라 깊은 계곡에 분포하는 꼬리치레도롱뇽은 그때에도 멸종이 걱정스러울 정도로 드물어지는 야생동물이었다. 산에 임도가 부설되면서 계곡에 흙탕물이 들어오고, 도로를 따라 들어오는 사람이 흘리는 유기물질로 오염되면 자취를 감췄다. 이따금 발견되지만 그 수는 매우 적고, 발견 장소도 협소해지기에 환경부에서 보호야생동물로 지정한 꼬리치레도롱뇽이 무리지어 나타난다는 건 극히 예외적이었다. 생태학적으로 볼 때, 그 지역은 재론의 여지가 없이 골프장은 들어설 수 없었다.

 

이후 꼬리치레도롱뇽은 더욱 자취를 감춰갔지만 환경부는 보호야생동물 명단에서 제외했다. 짐작 가는 데는 있다. 지율스님의 거듭된 단식으로 경부고속전철 천성산 터널 구간의 공사가 착공을 미루던 시절에 보호야생동물을 재조정하던 환경부는 환경단체와 생태학자의 강력한 주장을 백안시한 것이다. 주민들의 결연한 의지 덕분인지 건국대학교는 골프장을 포기했지만 파주의 다른 지역 두어 군데에 골프장이 들어섰고 주민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진행이 중단돼 곳도 두어 군데 있으며 10여 군데에서 추진하려고 은근히 움직인다는 소문이 들린다.

 

국토의 65퍼센트가 경사가 심한 산악인 우리나라는 비가 여름 한철에 집중되고 좁은 평야에 많은 인구가 밀집돼 있어도 오랜 세월 자급자족했던 금수강산이다. 보전된 백두대간에서 사시사철 흐르는 크고 작은 강이 들을 적시고, 갯벌이 보전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갯벌은 매립돼 거듭 사라지고, 백두대간은 도로와 광산으로 끊어지거나 파헤쳐졌다. 백두대간과 이어지는 1정간과 13정맥의 사정도 비슷하다. 전국을 바둑판처럼 난폭하게 끊는 고속도로와 국도는 물론이고, 산을 이리저리 휘감는 임도와 더불어 스키장과 골프장으로 이어지는 아스팔트가 가세하면서 생태계의 연결은 맥없이 끊어졌다. 잇따라 들어서는 야릇한 숙박시설과 정체불명의 가든, 펜션과 식당으로 계곡은 버림받았다.

 

시로 승격한 파주는 차라리 약과다. 대도시와 이어지는 경기도 일원의 생태계는 가히 골프장 천국이다. 들일하는 농부 사이로 무리 짓는 고급승용차가 위화감을 뿌리는 건 이제 일상이 되었다. 골프장이 들어설 때마다 들썩이는 땅값으로 오랜 공동체가 해체되기 일쑤인데, 건국대학교는 다시 자신의 목장 터에 골프장을 짓겠다며 나섰다. 비즈니스프렌들리 정권이 들어서자 다시 추진했을지 모른다. 뒤통수를 맞은 주민들은 격앙돼 있었지만 찬성주민도 적지 않게 등장했다. 골프장이 들어서면 저수지 주변의 식당이 더 잘 될 거라는 감언이설에 넘어간 것이다.

 

지난 1월 말, 17년 만에 다시 찾은 파주시 법원리 건국대학교 목장부지의 꼬리치레도롱뇽은 고맙게도 그대로였다. 천연기념물인 수리부엉이와 솔부엉이가 분포했고, 2005년 환경부에서 멸종위기 야생동물로 지정한 무산쇠족제비나 대륙목도리담비로 추정되는 동물이 출현한다는 주민들의 증언이 쏟아졌다. 그런 희귀 야생동물이 분포하는 게 사실이라면 다른 곳에서 찾아왔을 텐데, 오래 훼손된 목장에 야생동물이 모여드는 데에 필시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다. 소를 보호하려고 외곽의 숲을 철저히 보전했다지만 그렇다고 사람의 냄새를 극도로 경계하는 야생동물이 모여들지 않는다. 어쩌면 길이 끊긴 야생동물에게 달리 대안이 없었는지 모른다.

 

사업자 측은 학교법인답게 주민의 요구에 응한 공청회를 전향적으로 개최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는데, 공청회장에서 어떤 청년이 엽총을 난사하는 사진을 보여준 지역 환경단체는 희귀동물을 쫓아내려는 사주가 아닌지 추궁하면서 골프장 예정지의 생태계를 고의적으로 낮게 평가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골프장 입지가 가능한 녹지자연도 7등급 이하라는 사업자 측의 주장과 달리 환경단체를 도운 다른 연구진의 조사 결과 보전녹지로 규정된 8등급이 대부분이라고 반론을 펼친 것이다.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을 작성한 업체는 꼬리치레도롱뇽과 보호대상 야생동물의 분포를 확인하지 못한 실수를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골프장 입지로 문제가 없다는 기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평소에도 물이 부족한 까닭에 건국대학교 목장 주변의 농민들은 30미터 이하의 관정으로 농사를 짓는데 사업계획대로 골프장에서 지하 200미터의 관정을 뚫는다면 어떻게 될까. 농사용 관정에 물이 마르면 저수지의 물을 대규모로 끌어와야 할 텐데, 식당을 운영하는 주민과 갈등이 예견된다. 골프장도 물을 끌어간다면 저수지가 마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공청회에서 제기되었지만 사업자 측은 문제없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전문가의 주장이 대립될 경우 공동조사가 필요하다. 양측이 민주적으로 공정하게 참여하는 가운데 투명하고 독립적인 조사를 충분하게 실시해 합의에 의한 결론을 내야한다. 갈등을 신뢰로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조치라고 생각한다.

 

경기도의 지방도시마다 골프장이 포화되어 파산이 속출하는 마당인데, 학교법인에서 골프장을 고집해야 할까. 물이 부족해 안 그래도 고통스러운데, 농촌 공동체의 뿌리를 더욱 흔들 골프장이어야 할까. 영국 원산인 골프장 잔디를 유지하기 위해 골프장 운영자가 반드시 퍼부어야 하는 물과 농약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유기농을 추구하려는 농업에 치명적이다. 골프장을 둘러싼 지역의 갈등은 골프장이 들어서든 그렇지 못하든 좀처럼 풀리지 못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양심을 버리지 않아야 할 학교법인과 골프장은 어울릴 수 없다.

 

학교법인에서 앞장서서 희귀 야생동물이 분포하는 생태계로 보전하는 건 어떨까. 중부 식생을 보전하는 수목원을 목장부지에 조성하면 주민의 소득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지역의 각 급 학교 학생에게 교육의 장소로 활용될 수 있고, 건국대학교의 긍정적 이미지를 대외에 천명할 수 있지 않을까. 백두대산에서 한북정맥으로 겨우 연결된 생태계에 가녀리게 보전된 희귀 야생동물에게 마지막 안식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작은책, 2009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