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3. 20. 17:08

논란의 추이가 꽤나 부담스러웠나보다. 야당 정치권을 중심으로 불기 시작한 초중등학생 무상급식에 관한 논의가 설득력을 얻어가자 정부와 여당이 농촌, 어촌, 산촌을 포함하여 도시 저소득 계층의 초중등학교 학생에게 무상급식을 전면 실시하겠다고 서둘러 발표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정부의 발표가 나오기 몇 시간 전, 교육과학부 장관은 무상급식을 위해 추가되는 1조5천억 원의 예산을 다른 교육복지에 사용하는 편이 더 많은 학생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며 “잘 사는 가정의 자녀들에게 무상급식을 실시할 만큼 우리나라가 부유한지도 의문”이라고 언론 앞에서 난색을 표했다. 그런데 교육과학부 차관이 포함된 정부와 여당은 장관의 발언을 번복하는 보도 자료를 부랴부랴 뿌린 것인데, 장관의 발언을 차관이 즉각 번복하다니, 실세 차관에 밀린다는 소문이 가뜩이나 파다한 교육과학부 장관, 참 머쓱했겠다.

 

그보다 앞서 여당 대표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이들에게 급식비까지 다 대줄 만큼 우리 정부가 한가하거나 여유가 있지 않다”며 교육과학부 장관의 발언을 선도한 적 있다. 그러자 여당 내 어떤 돈 많은 국회의원보다 40배가 넘는 재산을 가진 한나라당 대표가 오히려 세금을 덜 내는 우리의 상황을 꼬집은 민주노동당 대표는 부자가 제 몫의 세금을 제대로 내는 세상이라면 무상급식을 물론 무상 교육과 의료까지 가능하다고 주장해 여론의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그러자 정부와 여당이 당황하기 시작한 걸까. 야당의 전면 무상급식 분위기에 슬며시 편승하는 촌극을 연출하지 않았던가.

 

부자들의 세금을 90조 원이나 깎아주고 22조 원이 들어가는 ‘4대강 사업’을 강행하는 정부에 대한 민의가 들끓어도 꿈쩍 않던 여당이므로 무상급식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래야 일관성이 있는 것이므로 야당의 구를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이라며 비난했을 텐데, 왜 갑자기 변명 한마디 없이 포퓰리즘에 동승한 걸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중의 여론을 귀담아 들으며 논의를 투명하게 전개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건가. 그렇다면 다행인데, 일부 무상급식을 뒤늦게 외치는 여당처럼 야당 역시 성큼 다가온 6월 2일의 지방선거를 의식했기 때문일 터. 무상급식 예산을 거부한 경기도의회 의원들도 6월 선거에 다시 도전하려면 자신의 논리와 태도를 뒤집을 게 틀림없다.

 

‘친환경무상급식 풀뿌리 국민연대’를 포함한 전국의 시민단체에서 전면 무상급식을 요구하는 가운데 야당의원들이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황이 이어지던 어떤 날, 시민단체 회원과 모인 5개 야당은 “친환경 무상급식 법안처리 촉구 결의대회”를 국회 앞에서 열었다. 심상치 않은 유권자의 분위기를 감지한 건가. 정부와 여당은 ‘사회복지 통합전산망’을 참고로 무상급식 대상자를 현 97만에서 200만으로 확대해도 해마다 4천억 원이면 충분하다고 계산하면서 방학과 공휴일에도 학생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배려하겠다는 의지를 덧붙였다. 이제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친구도 없는 학교를 오로지 점심 먹으러 가야 할 판이다. 반면 야당 의원은 국회 예산정책처 분석 결과를 참고로, 2011년 무상급식을 실시하는데 1조559억 원, 2015년까지 전면 확대하는데 8조83억 원 추가되지만 부자 감세와 4대강 사업만 중단하면 예산확보가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추산했다.

 

야당은 잘 사는 집이든 아니든, 의무교육 대상자인 초중등학교 학생 모두에게 급식비 없는 점심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지를 내세우는데, 정부와 여당은 농어촌과 산촌, 그리고 보건복지부의 전산망에 파악된 도시 저소득 계층의 초중등학교 학생 200만 명에게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선심을 쓴다. 나머지는 돈 내고 먹으라는 건데, 시민단체의 요구는 정치권과 좀 다르다. 의무교육 대상인 우리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점심을 제공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건강한 농산물, 다시 말해, 내 땅에서 재배한 유기농산물을 재료로 사용해야 한다는 데 방점을 찍는다.

 

아이들의 건강도 물론이지만 우리 땅을 살리는 농사꾼의 살림살이도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논리는 아직 정치권에서 명확하게 수용하지 않고 있다. 아직 핵심을 놓치고 있는 건데, 시민단체의 요구조차 고등학생은 제외된다. 의무교육 대상자가 아니기 때문일 텐데, 그렇다고 고등학생의 무상급식은 불가능해야 할까. 부자들의 세금을 듬뿍 감해주며 알량한 급식비가 많다고 난색을 표하는 이 나라의 교육당국은 대부분의 중학생이 진학하는 고등학교 과정을 의무교육 대상에 포함시키는 걸 한사코 망설인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이자 소득 2만 달러를 넘긴 국가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의무교육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것, 다른 국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이 알까 두렵다.

 

비만 퇴치 운동 ‘레츠 무브’를 주창하는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셀 오바마는 비만을 초래하는 ‘정크 푸드’, 다시 말해 쓰레기 음식, 칼로리는 넘치지만 영양분이 드문 패스트푸드 철저히 배제하고 지역에서 생산한 유기농산물로 학교 급식을 공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자 그에 호응한 미 상원은 학교 내에서 정크 푸드의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했다고 언론은 전한다. 우리의 사정은 어떤가. 학교 매점에 출처도 명확하지 않은 패스트푸드가 쌓이고 반장선거가 있을 때마다 그런 쓰레기 음식이 교실에 넘치는 분위기에서 급식은 어떤 의미로 학생들에게 다가가는가. 교육인가 때우는 끼니인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균형 잡힌 영양분을 충분히 제공하는 것을 넘어 안전한 농산물의 안정된 생산과 공급을 위해 내 땅의 농부들이 얼마나 수고하는지 학생들이 깨달을 기회를 우리 교육당국은 급식 교육으로 제공하고 있는가.

 

교육과 농업은 내일의 생명을 건강하게 키워낸다는 점에서 공통이다. 선조가 넘겨주는 땅에서 제 스스로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을 때까지 아이들을 교육하는 건 국가의 책무일 텐데, 국가의 재정이 전면적으로 뒷받침되는 의무교육을 중학교까지 제한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가의 예산이 부족하니 학부모의 관심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핑계는 더는 통할 수 없다. 아이들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적극 도모해야 할 정부가 급식비를 여전히 학부모에게 의존하려는 고집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아이들이 살아가야 하는 땅을 건강하게 지켜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를 위해 ‘친환경무상급식 풀뿌리 국민연대’를 표방하는 시민단체들은 내 땅에서 제철에 생산한 유기농산물을 모든 학생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라고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다.

 

급식은 교육이다. 정치가들의 약삭빠른 정치행위로 좌지우지될 수 없는 분야다. 자식 키우는 시민 대부분이 강력하게 반대하는 토목공사에 막대한 예산을 퍼부으면서 아이들에게 제공할 고작 하루 한 끼의 밥에 인색한 정부를 유권자는 어떻게 평가할지 정치인들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겠지만, 급식과 교육은 백년대계를 위한 어른의 의무라는 거. 자식 키우는 자는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작은책, 2010년 5월호)

우리가 무엇에 주목해야하는지 잘 짚어주셨네요. 생협게시판으로 퍼가도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