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1. 1. 7. 14:31

, 재레드 다이아몬드지음, 김진준 옮김, 문학사상사, 2005.

 

우연인가 필연인가.” 자크 모노의 생물철학을 들먹이려는 게 아니다. 그토록 칭송하는 소위 선진국이라 칭하는 나라들에 비해 우리가 쳐지는 이유가 과학기술을 비롯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수준이 낮기 때문일까. 그럴지 모르지만, 우리의 과학기술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수준이 낮은 이유는 영어를 못해서 일까. 그렇다면 우리가 영어를 못하는 이유는 뭘까. 우연일까, 아니면 필연일까. 그걸 알아보고 싶어 던진 화두일 뿐이다.

 

영어를 못해서 공부가 신통치 않은 건가, 공부를 못했으므로 영어 실력이 형편없는 것일까. 내 자신은 후자에 가깝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지만, 그 잘난 노벨상 수상 경력이 유난히도 빈약하다고 애통해하는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떤가. 복거일과 같은 문인은 한 때, ‘영어를 제1외국어가 아니라 제2국어로!’ 외치고, 어떤 과학사학자는 영어를 늦게 개방한 탓에 과학기술이 일본보다 수준 낮다고 단정한다. 현 정권의 인수위원장은 자신의 오렌지 발음을 놓고 자학했는데, 영어를 제2국어로 지정하면 우리나라에 노벨상 수상자가 단숨에 쏟아지고, 과학기술을 비롯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수준이 이른바 선진국처럼 급상승할까.

 

NGO들의 국제 포럼에 어쩌다 참석할 때 느꼈던 서러움, 이 땅에서 기고 날아봤자 영어가 모국어를 압도하는 자리에 가면 졸지에 왜소해져야 하는 현실, 평소 두드러진 활동이 없었어도 오로지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한다는 점 때문에 대표선수가 되어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면 내 땅에서 내 언어에 충실한 게 민폐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는 걸 온몸으로 느낀다. 남들이 영어 공부 열심히 할 때 딴청 부린 게 후회되는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것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리송하다면 핑계일까.

 

3의 침팬지에서 사람이 뭐 특별한 만물의 영장인지 아느냐고 냉소했던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퓰리처상을 받은 를 통해 우리가 추앙하는 선진문명을 독점하는 백인이 황인이나 흑인을 사실상 지배하게 된 현실은 다분히 우연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 원인으로 다이아몬드는 배타적으로 소유한 강력한 무기와 병균 그리고 금속문명을 꼽고 있는데, 그 무기와 병균 그리고 금속문명을 백인들이 손에 먼저 쥐게 된 것은 필연이 아니라 다분히 우연이라는 거다.

 

한글의 과학적 우수성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는 다이아몬드는 문명과 언어가 어떻게 이동 전파되었는지 살펴보면서 지리적 장벽과 문화의 차이에 의해 다변화되는 언어에 우열이 없음을 명쾌하게 설파한다. 따라서 영어를 공용어로 채용한 나라의 시민들이 구사하는 어휘나 발음이 영국과 미국의 그것과 다른 것은 토착문화와 섞이는 과정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해석한다. 오히려 영어로 인해 토착 언어가 오염되고 경우에 따라 억눌려 사라지는 현상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문명의 시작을 경작으로 보는 저자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1500년 전,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라 칭하는 지금의 시리아 주변인 중동과 근동 지방에서 연유한 경작과 이어 도입한 가축화가 인간의 부와 편견을 가져왔다고 전제하며, 수만 어쩌면 수십만 년 이상 수렵채취사회에서 자연과 합일하며 살아왔던 인간에게 경작과 가축화는 문명과 질병을 동시에 선사했다는 것을 여러 가지 증거를 제시하며 주장한다. 기나긴 세월, 수렵과 채취에 의존했던 인간들이 경작을 배우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일단 정착된 기술이 퍼져나가는 시간이 매우 짧았음을 밝힌다. 종자 보전과 농사법, 가축화와 문명이 지리적 장벽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비옥한 초승달에서 중앙아시아로, 중국과 동아시아로, 그리고 우리가 있는 극동아시아로 전파되는데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고, 마찬가지로 금속기술, 활자기술, 화학기술 들이 짧은 시간 유럽으로 퍼졌음을 확인한다.

 

아프리카의 흑인이나 아메리카 원주민, 그리고 태평양상에 흩어진 폴리네시아인에게 경작기술과 문명이 전파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이아몬드는 대양이나 사막이 가로막은 지리적 격리가 주요 원인임을 간파한다. 그 덕분에 그들은 독자적이며 독창적인 문명을 발달시켰거나 풍부한 자연자원에 안주해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철기문명이 없었고 무엇보다 병균에 대한 면역이 없었다. 경작과 가축화가 전파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현대의 최첨단 과학기술도 풀어낼 엄두를 못 내는 잉카나 마야문명의 정교함이 단순 무식한 총칼과 병균 앞에 무참히 쓰러지고 만 것이다. 아프리카나 폴리네시아인에게 문명이 없었던 것은 문명이란 존재가 전혀 불편할 정도로 풍요로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럽인들은 동양에서 전해온 과학문명을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변모시켰다. 좁은 영토에 다민족이 엉켜 우월을 다투는 환경에서 쳐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당시는 신에게 억눌렸던 인성이 들썩거리던 르네상스였다. 반면 인문적 사유의 가치가 숭상되던 동양에서 기술은 하찮기만 했고 기술자는 천덕꾸러기였다. 수백 년이 흐르자 상황이 뒤집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서구 문명을 잽싸게 받아들인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강해질지 누가 예측이나 했겠는가. 총과 균과 쇠를 들고 그것이 없는 지역에 몰려가, 자원을 약탈하고 문화를 겁탈하던 백인들은 자신들이 최고로 우수한 것으로 세뇌하며 인종의 순서를 정했다. 심지어 호주 남부 태즈메이니아 섬과 중남미에서 원주민을 동물로 취급, 재미로 학살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모든 건 우연이었다는 주장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농락하게 된 것도 우연일 뿐, 그런데 우연의 결과는 참으로 혹독하기만 하다.

 

넓은 의미에서 문화는 삶의 방식이다. 삶의 방식에는 우열이 있을 수 없다. ‘불행이라는 뜻을 몰랐던 라다크 민족, 하나 둘 다음에는 많다고 말했다던 아프리카 종족들은 무지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그런 단어를 알 필요조차 없는 환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는 서구문명의 획일적 잣대에 길들여진 독자에게 다양한 문화의 가치와 차이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이끌어준다. 쓸데없는 민족적 열등의식이나 돼먹지 않은 우월 의식도 근원을 모색하자면 다 하찮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그래서 참 좋은 책이다. 읽은 만큼 교양의 깊이를 독자에 심어준다.

 

2005년에 번역 출판한 개정판은 특별 증보면에서 일본인이 어디에서 왔는지 살펴보고 아울러 초판이 발간된 이후 새롭게 떠오른 학술적 주제와 논의를 추적했다. 언어나 생김새 그리고 유전자를 미루어볼 때 일본인은 기원전 400년 경 고구려인이 들어와 당시 주류를 이루던 조몬인을 몰아내며 번성했을 것으로 짐작하는 다이아몬드는 같은 피를 나누었으면서 오랜 시간 서로 적의를 키워온 한국과 일본인은 성장기를 함께 보낸 쌍둥이 형제와 같으니 과거의 유대를 발판으로 사이좋게 지낼 것을 당부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본문만 700페이지 가깝게 두툼하지만 내용이 충실하고 난해하지 않아 쉽게 읽힐 는 많은 지식인들이 문명을 이야기할 때 예외 없이 언급하는 중요한 책으로 자리잡았다. 따라서 바람직한 국제 감각으로 활동하려는 시민운동가를 비롯한 이 땅의 지성인들과 지성인 입문자들의 필독서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또한 유학 가서 서양바이러스에 맥없이 감염된 지식인이 꼭 읽어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인천in, 2011.1.11)<증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