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07. 12. 5. 04:02
 


언제나 그렇지만, 황우석 사기극이 터졌을 때에도 특히 그랬다. 98대2라는 놀라운 열광을 등에 업은 연구자가 제 사기극을 애국으로 위장할 때, 답답한 마음은 어디 문학인이 없나 두리번거려야 했다. 당시, 마사여구를 총동원하며 상식 부족한 독자들을 깊숙한 미혹으로 밀어넣은 중견시인은 있었지만 미혹에 빠진 시민들을 구해내는 문학인은 찾기 어려웠다. 감성적 언어로 생명공학의 생태적 문제를 속 시원하게 까발리는 시나 소설이 그리웠다.

 

환경위기 시대에 이대로 안 된다는 데 동의한다면, 이공계든 인문계든 생태적일 수밖에 없다. 대안찾기에 고민한다면 문학도 생태적이어야 할 터. 두리번거릴 때, 《달려라 냇물아》가 환하게 다가왔다. 녹색평론사에서 발행한 최성각 산문집이다. 세계를 지배하는 신자유주의에 의해 능욕당하는 자연과 민중의 편에서 행동하는 그는 숨이 긴 소설을 쓸 여유를 차마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자연과 민중에 폭력을 일삼는 탐욕스런 정치와 자본의 권력자에 맞서 원고를 뜨겁게 채우며 진실을 드러내야 했을 것이다.

 

달려라, 냇물아! 맞다. 냇물은 당연히 달려야 한다. 산기슭에서 모여 강으로, 그리고 바다로 생명을 담고 달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시방 냇물은 달리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복개돼 눈 밖으로 사라졌거나 정체돼 오염되었다. 흐르지 않는 냇물에 어떠한 자연도 깃들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나섰다. 문제는 자연에 대한 존경심이다. 개발 미망으로 잊은 감성을 흔들어 깨워야 했다. 그래서 풀꽃세상과 풀꽃평화연구소에서 문학인의 목소리를 냈다. 그 언어가 《달려라 냇물아》에 오롯이 담겼다.

 

대안이 거기에 있기에 결국 책더미를 이고 시골로 들어간 그는 비록 서툴어도 작은 돌밭을 일군다. 고구마를 심으며 사람이 송아지를 만드는 생명공학의 내일을 걱정한다. 고추씨를 뿌려야 고추를 따고, 소가 송아지를 잉태하는 게 자연의 엄연한 흐름 아니겠는가. 젖꼭지 수보다 더 태어나 남대천에 던져진 새끼 돼지를 찾아 칠흑 같은 밤을 헤맸던 소년은 환경운동하는 소설가가 되었다. 강둑에서 아무렇게나 흔들리는 코스모스를 노래하는 그는 히말라야에서 산사람들을 만나며 배운 생태적 감수성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의 말대로 길 위에서 깊어져야 한다. 《달려라 냇물아》를 읽고, 깊게 고민하며 행동하자는 거다. (시사in, 2007년 12월 일)

온국민이 다 미혹에 빠졌던 것은 아니었어요. 제 주변의 평벙한 사람들도 최성각선생처럼 미혹으로부터 자유로웠던 분들이 아주 많았어요. 그래서 전 알았죠. 동요풀님이 옳다는 것을...... 제가 병원에 있어 제 자식들을 아직 보내드리지 못했어요. 죄송...
전 선생님의 책을 읽고 진실에 눈을 떠 다행히 미혹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되지요.
정말 오랫만에 좋은 블로그를 만났네요.
좋은 서평 잘 읽고 갑니다.
자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