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기 없이 무더위 견디기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흐른다. 찾아간 회의실에는 에어컨이 없어 장소를 바꿨다는데, 선풍기로 식힌 땀을 다시 흘리며 들어간 찻집. 과연 시원했지만 이내 더워졌다. 공기마저 답답해 얼음물을 연실 마셔도 소용이 없었다. 선풍기가 돌아가는 그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잘 견디므로, 외부인을 위한 에어컨 배려는 없어도 그만이었다. 모두 더우니 땀 흘리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회의에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또 다른 회의장. 에어컨이 훌륭한 실내를 나와 예약한 삼계탕 집으로 나갔다. 낮은 온도로 에어컨을 켜도 펄펄 끓는 삼계탕 도가니를 끊임없이 내오는 식당은 더웠다. 먹는 이는 말할 것도 없을 텐데, 비 오듯 땀을 쏟는 일행은 차라리 밖이 더 시원할 거라 생각했다. 이열치열인가. 삼계탕 먹은 일행은 늦은 시간까지 회의를 강행했는데, 삼계탕 효과는 아니었다. 일행은 삼계탕과 관계없이 긴 회의 시간을 견뎌냈다. 에어컨은 몰라도 평소 고기를 많이 먹기 때문은 아니었다. 과한 육식으로 몸이 부푼 이가 적지 않았으므로.
삼계탕이나 개고기를 먹지 않고 무더위를 보내면 몸이 허해질까. 에어컨 없는 공간에서 삼계탕과 개고기를 피해도 몸이 허하지 않은 처지라서 뭐라 할 말이 없는데, 복날과 관계없이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면서 더 더워졌다. 체온 가까운 기온이 계속되므로 일을 집중하기 어렵다. 원고를 쓰거나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회의장에서 특히 버겁다. 그러므로 에어컨은 필수일까. 그런 것 같지 않다. 에어컨 없던 시절, 중요한 결정이 여름이면 미루어지고 문사의 집필은 중단되었다는 말은 일찍이 듣지 못했다. 다만 더위 피한 밤을 기다렸겠지.
비교적 잘 먹고, 대낮에 쉴 수 있는 도회지의 문사들이야 그렇다 치고, 장마가 와야 천수답에 물이 고이니 삼복더위에 모내기했던 농부들은 몸이 허해졌을지 모른다. 저장해둔 잡곡까지 바닥을 보이던 시기에 몸을 잔뜩 구부리며 며칠을 일해야 했으니 오죽했으랴. 그때 닭을 잡고 싶지만 내 논일을 같이 한 이웃에게 두루 대접할 정도로 덩치가 큰 건 아니다. 소나 돼지는 살림밑천이니 참고, 비슷한 처지의 농부들은 자기 집의 개를 번갈아 내놓았을 테지. 강아지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므로.
지금은 고기가 지천이다. 닭고기는 물론 쇠고기와 돼지고기도 널렸다. 해산물은 또 얼마나 많은가. 농민들의 몸도 삼복더위에 허해지지 않는다. 이양기 때문만이 아니다. 양수기와 보온 못자리 덕분에 장마철 이전에 대부분의 논은 모내기를 마친다. 천수답도 거의 사라졌다. 지독한 가뭄이 아니라면 양수기가 불필요한데, 온갖 농기계 덕분에 농번기에도 일손이 전처럼 많아야 하는 게 아니다. 초고령화된 농촌에 일 부탁할 이웃이 드문 까닭에 주로 도시의 아들이나 친지와 농사를 짓는데, 저녁마다 고기반찬이 올라왔으니 남의 집 개를 잡을 일도 없다.
도시나 농촌이나 허할 기회조차 없지만, 삼복더위가 오면 반가운 듯 개고기와 닭고기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저 의례적이거나 맛과 재미 때문이다. 손님이 북적이는 식당의 수와 크기로 볼 때, 개고기보다 닭고기 먹는 이가 훨씬 많을 텐데, 개와 달리, 지금은 시장에서 닭을 구하는 시대가 아니다. 누가 무슨 사료를 주고 어떻게 키웠는지 전혀 알 수 없고, 알려고 들지 않는 대기업 제품의 닭고기를 먹는다. 손님 대부분은 얼마나 위생적으로 처리했는지 모르면서 대기업 제품이므로 막연히 믿는다. 하지만 개의 경우는 확신하지 못한다.
사육에서 도축과 포장까지, 하루 수십 만 마리를 처리하는 대기업 제품의 닭이 과연 위생적인지 여부는 예서 따지지 말자. 근교 허름한 곳에서 고기용으로 사육하는 개 농장은 겉보기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하지만 농장 주인은 그런 지적에 펄쩍 뛴다. 의심스러우면 와서 보라고 강변한다. 과일장수에게 파는 사과 맛있느냐 물을 수 없는 법. 개 농장 주인의 말을 신뢰할 수 없는 이는 대체로 소비자가 아니다. 소비자보다 행정가, 언론인, 시의원이나 국회의원 들은 삼복 시기가 되면 개고기 도축 합법화를 논의하자고 나선다. 펄쩍 뛰던 개 농장 주인은 떳떳해질 테니 반대하지 않는 눈치다.
생각해보자. 사위 와야 잡는 닭이야말로 가장 위생적이다. 자신의 딸과 사위,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손주들이 먹을 고기가 아닌가. 내 집 일 도와준 이웃과 같이 먹으려고 시장에서 서너 마리 사거나 닭장에서 가져온 닭도 위생적이다. 하지만 누가 키웠는지 모르는 닭을 시장에서 잡아서 팔 때 문제가 된다. 식중독이 발생한 거다. 그렇다면 비교해보자. 손님 보는 앞에서 한두 마리 잡던 예전과 대기업에서 한꺼번에 처리해 냉동하는 요즘, 식중독은 언제 더 발생했는가. 마찬가지 맥락인데, 개의 사육과 도축을 제도화하면 안심할 수 있을까. 공장식으로 사육해 냉동한 개를 대형 상가의 식품매장에서 팔면 위생적이 될까.
위생만이 쟁점의 전부일 수 없다. 밀집 사육하는 닭은 서로 쪼아 상처를 입히므로, 상품성을 위해 부리 끝을 미리 자른다. 닭고기가 그렇듯, 개고기도 이윤의 극대화를 노리는 대기업에서 독점할 텐데, 두 마리만 가둬도 무섭게 으르렁거리며 죽어라 물어뜯는 개는 어떻게 사육하려 들까. 지금도 귀청을 미리 뚫고 이 몇 개를 뽑는다던데, 혹시 양처럼 순하고 돼지처럼 살찌는 개를 육종하는 건 아닐까. 수육과 전골로 구별해 부위별로 포장하거나, 핫도그가 아닌 도그버거가 떠들썩한 광고를 등에 업고 출현하는 건 아닐까. 합법화가 되면 ‘3분 보신탕’을 내놓겠다고 벼르는 업자가 있는 마당이다.
문화상대주의는 온당치 않으니 개고기 조롱하는 이에 대항해 그네의 음식문화를 비난하지 말자. 한데 개고기가 지켜야 할 우리의 고유 식문화는 아니다. 그러므로 고기가 지천인 세상에서, 사람과 눈 맞추며 정 나누는 개까지 고기용으로 사육할 당위성은 없다. 입맛을 위해 생명을 끊을 명분도 약하다. 소와 돼지도, 닭과 오리도, 심지어 연어도 유전자를 조작한 옥수수와 콩을 먹인다는데, 개는 아니 그럴까. 소비자의 눈을 피해 미국산 쇠고기의 도축부산물은 수입하는 건 아닐까.
에어컨 때문에 여름 감기가 흔한 요즘, 사육과 도축 합법화로 얻는 고기가 지나치게 많다. 그래서 지구온난화는 심해진다. 그렇다면 견과류나 제발 제철 제고장의 콩 단백질을 먹으면 어떨까. 고깃살도 절로 줄 텐데. (작은책, 2012년 9월호)
2001년 12월 28일, 한나라당 김홍신 전 국회의원을 포함한 20명의 여야 의원은 개고기 식용의 합법화를 전제로 하는 ‘축산물가공처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개고기를 축산물가공처리법에서 관리하는 가축의 범위에 포함해, 개 도살, 개고기 유통과 가공을 위생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취지였다. 김홍신 전 의원은 법 개정안을 상정하면서 “개고기 식용에 대한 외국의 비난은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비난이자 모독”이므로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국회는 충분한 논의도 없이 16대 회기를 마치고 말았다.
작년 여름, 삼복더위에 앞서 즉석 개고기를 판매하던 업자가 동물보호단체의 강력한 항의에 굴복하면서 우리 사회에 논란이 발생한 적 있는데, 올해 여름에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인터넷으로 개고기를 판매하려던 업자가 누리꾼의 거센 반대로 계획을 보류하게 된 것이다. 올해도 개고기 관련 논란은 언론의 전파를 타고 어김없이 진행되었지만 특별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외국인의 비난에 민감해하는 문화상대주의 논쟁으로 본질을 놓쳤다. 어쩌면 내년 이후에도 같은 논란이 벌어질지 모른다. 개고기 논쟁의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 개고기보다 개고기 합법화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영화배우 김부선은 2004년 10월, “대마초는 마약 아닙니다.”라고 쓴 티셔츠를 입고 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화제에 올랐다. 그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대마초가 마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나 국내 암 관련 전문의들도 담배가 대마초보다 더 독한 마약이라고 한다.”고 주장하며 대마초를 마약으로 규정한 현행법의 위헌제청에 나설 예정임을 밝혔다.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기소되어 항소심을 진행 중이던 김부선은 대마초를 금지하는 것은 헌법의 행복추구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공공에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개개인의 행복을 법률로 제한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대마초의 독성이나 습관성이 지금의 담배보다 더한지 아닌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대마초가 합법화되어 상업적으로 업체들의 경쟁 상태로 판매된다면 현재 판매하고 있는 담배보다 나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담배의 독성과 습관성이 심해진 것은 특히 첨가물 때문이다. 역한 냄새나 변성을 막기 위한 첨가물만이 아니다. 맛이나 습관성을 강화하기 위해 넣는 조미료나 설탕 따위가 문제를 일으킨다. 대마초에 첨가물을 경쟁적으로 넣는다면 판매되는 담배보다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옛날 할아버지들이 피우던 곰방대는 지금의 담배보다 위험하지 않았다. 또한 개인의 건강은 사회의 행복과 무관하지 않다. 합법화된 대마초가 담배 이상 가족과 공동체에 슬픔이나 피해를 안겨줄 가능성은 충분하다. 유명인의 주장과 행동은 파급력이 크다. 독성과 습관성을 염려했다면 김부선은 대마초보다 담배의 합법화를 반대해야 옳았다.
개고기를 합법화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경쟁적으로 공장식 사육, 도축, 가공, 폐기되는 요즘의 가축을 생각해보자. 축산학과는 품종개량으로 적은 사료를 먹고 금방 성장하는 개를 축산업자에게 선보일 테고, 식품회사는 언론매체 광고를 벌여 개고기 패스트푸드 생산경쟁에 돌입하지 않겠는가. 개고기 3분 요리와 통조림이 시장에 앞 다투며 나오고, 전화 주문이 쇄도할지 모른다. 합법화가 안 된 지금도 해마다 200만 마리의 개가 고기용으로 도살된다는데, 앞으로 얼마나 많은 개가 죽어나갈 것인가.
모름지기 개는 소나 돼지나 닭처럼 먹기 위해 가축이 된 동물이 아니다. 생김새를 보라. 날카로운 이와 발톱, 날렵한 몸매는 고기용으로 사육될 대상이 아니라는 걸 입증한다. 개를 다른 가축처럼 집단으로 밀집해 사육할 경우 주도권을 놓고 무섭게 싸운다. 제대로 생장할 수 없다. 교외 후미진 곳에서 개를 대량 사육하는 업자는 철창에 한 마리씩 넣어 심각한 스트레스를 유발시킨다. 도축업자에 제 값 받고 팔기 위해 업자는 사료에 항생제를 넣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개고기 합법화가 되면 사육환경이 지금보다 나아질까.
위생도축을 주장하지만, 지금도 비위생적으로 도축하는 건 아니라고 업자들은 발끈한다. 한데 위생적이라는 소, 돼지, 닭의 도축은 비윤리적이다. 이윤을 기준으로 고기의 빠른 생산량을 고려, 너무 이른 나이에 대규모로 도축한다. 소는 20개월, 돼지는 1년 미만, 삼계탕 닭은 35일이면 죽인다. 전기충격이나 마취로 먼저 기절시킨다지만 어린 가축의 처지에서 터무니없이 일찍 죽는다. 개까지 그렇게 죽여야 할까.
요즘 고기용 가축은 곡물 사료를 준다. 한데 요즘 그런 곡물은 석유를 가공한 화학비료와 농약 없이 재배하지 못한다. 곡물 1칼로리 생산을 위해 석유 에너지 12칼로리가 들어가고, 곡물사료 16킬로그램을 먹여야 쇠고기 1킬로그램을 얻을 수 있다. 돼지는 9킬로그램, 닭은 4킬로그램의 사료를 먹는다. 개는 어떨까. 사료가 아까워 사육하다 죽은 가축을 준다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죽은 소를 사료로 가공해 소에게 주면서 광우병이 발생되었다. 광우병 걸린 쇠고기를 쥐와 밍크에 주자 광우병이 옮겨졌다. 사람은 아니 그렇던가. 개고기 합법화 이후 개고기로 광우병이 옮겨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겠나.
사위 왔을 때 닭 잡아주는 장모에게 요리사 자격증이나 위생도축을 요구하지 않는다. 모내기 마치고 몸이 허해진 청년들이 동네의 개를 잡아먹던 시절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지금은 육식이 지나쳐 탈이 나는 시대다. 과도한 사육으로 고기와 낙농제품의 가격이 낮아질수록 농부의 소득은 낮아지고 자본의 이윤은 늘어난다. 그럴수록 가축의 고통은 커지고, 육식의 가공 과정에서 항생제나 첨가물이 늘어나 먹는 이의 건강에 악영향을 키운다. 값이 싸면 먹는 양이 늘어 육식으로 인한 질병은 더욱 심화된다. 그런 마당에 개고기마저 합법화를 추진해야 할까.
개는 개 본성이 있다. 닭도 돼지도 소도 마찬가지다. 본성을 억제한 가축을 과다하게 먹어 건강이 날로 악화되는 이때, 개고기 합법화는 어처구니없다. 음식문화에 대한 상대주의와 관계없다. 외국인의 비난 때문에 먹지 말자는 의미가 아니다. 개는 공개적으로 잡아먹을 대상이 아니다. 지금은 본성을 존중하며 사육한 육식도 자제할 때가 아닌가. 개는 개답고, 사람은 사람답자는 뜻이다. (인권오름, 2007년 8월 6일)
또 온다는데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