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0. 6. 27. 16:24

 

산림이 우거진 계절, 깊은 계곡은 대낮에도 어둡고 서늘하다. 카메라 조리개를 활짝 열어도 셔터 속도가 느려 기념촬영 모드로 들어간 피사체들은 잠시 숨을 멈춰야 한다. 한여름의 햇살이 뜨거워도 산바람이 이마의 땀을 식혀줄 무렵, 인적이 드문 등산로를 천천히 걷다보면 어쩌다 보이는 자귀나무의 화사한 분홍 꽃이 그렇게 예쁠 수 없다. 사진 한 컷! 하지만 그늘이 깊은 계곡에서 촬영은 쉽지 않다. 꽃에 맞추면 얼굴이 검고, 얼굴에 맞추면 자귀나무는 꽃의 아름다움을 멀겋게 잃는다.

 

고개를 돌려 무당개구리가 어기적거리는 계곡을 바라보자. 가로 눕고 세로로 얹힌 바위마다 영겁의 세월 동안 두툼한 이끼를 허락하고, 사방에 물방울을 터뜨리며 내려가는 물은 맑고 차갑기 이를 데 없다. 잠시 계곡으로 내려가 배낭에 매달린 컵으로 떠 한 모금을 축이면 남은 산행에 기운이 솟는다. 가족과 함께라면 그늘에 앉아 과일을 깎아 먹고 일어서도 좋겠지. 잠깐. 과일껍질은 다시 배낭에 넣어야할 테지만, 가만히 물속을 들여다보자. 티 없이 맑은 물이지만 계곡은 수많은 곤충들을 거느린다. 자잘한 돌로 몸을 감싼 수서곤충들이 여기저기에서 고물거릴 것이다.

 

우리는 대개 거기까지다. 꼭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야 직성이 풀리니 어여차! 몸을 일으키지만, 때는 삼라만상의 생명이 만개하는 계절이 아닌가. 등산화에 파헤쳐지는 산길을 굳이 더 밟으며 꾸역꾸역 등 떠밀려 올라갈 의무라도 있나. 기왕 인적 드문 산길을 택했다면 서어나무나 까치박달나무 그늘에 앉아 일행과 도란도란 정담을 나눠도 나쁘지 않으리. 키 큰 나무 사이를 이리저리 나는 흰눈썹황금새의 자태를 감상하고 어느 골짜기에서 공명하는지 모를 흰배지빠귀의 노래를 청아하게 들으며 자연을 음미해도 본전은 뽑는다. 술콰한 고성방가와 시도 때도 없는 호연지기, “야-호-” 소리 지르지 않는다면 자연의 친구들은 원색의 등산복과 화장품 냄새가 성가신 인간을 대놓고 외면하지 않는다.

 

인간들이 등산로마다 얼마나 시끄럽든, 계곡의 물까마귀는 상관하지 않는다. 계곡 그늘에 앉은 인간들이 조용하기만 하다면 거리끼지 않는 물까마귀는 햇살 드문 계곡을 자그마하게 지배한다. 햇살 비추는 바위에 앉아 굴뚝새처럼 꼬리를 까딱까딱 올렸다 내리길 몇 차례, 이윽고 수면을 스치듯 어두운 계곡을 날며 맑은 물속 곤충의 동태를 살피는 물까마귀는 맨발을 담그고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인간에 곁을 주지 않은 채 부지런을 떤다. 이야기를 멈추고 시선을 가무잡잡한 물까마귀의 동선을 따라가 보자. 수서곤충과 이따금 작은 물고기를 부리로 앙 물고 바위에 앉았다가 계곡 물을 차며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물까마귀는 어쩌면 다 자란 새끼들의 먹성을 채우고 있을지 모른다.

 

넙적한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는 계곡물의 뒤쪽. 어두운 둥지를 빠져나온 어린 물까마귀들은 아직 물속이 낯선지 햇살이 비치는 바위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어미와 아비가 연실 건네주는 강도래와 민도래의 애벌레와 버들치들을 게걸스레 먹어치우지만 머지않아 스스로 해결해야한다는 걸 눈치 채고 있을 것이다. 물가로 조심스레 내려앉아 작은 부리로 모래를 뒤져본다. 부화한 지 20여 일. 배와 가슴은 비늘과 같은 흰 무늬가 산재한 녀석들의 덩치는 어미 못지않아도 아직 어리다. 몸을 움츠린 채 바싹 붙어 앉은 새끼들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늘에서 더욱 검게 보이는 진한 갈색의 제 어미 아비가 다가와야 비로소 날갯짓하는 녀석들은 아직 돌진하듯 수면을 스치거나 물속에 뛰어들어 버들치를 낚지 못한다.

 

곧 독립하면 어디로 가야 하나. 다 자라야 20센티미터 조금 넘는 물까마귀는 낯선 계곡으로 들어가야 할 텐데, 어쩌면 치열한 경쟁에 치여 물러서야 할지 모른다. 그뿐이 아니다. 해마다 더워지는 계곡에서 2월부터 둥지를 치는 물까마귀에게 먹이와 건축자재가 점점 희귀해진다. 이끼를 두툼하게 모아야 둥지가 뽀송뽀송할 텐데 오염과 햇살에 유난히 약한 이끼가 전 같지 않다. 금수강산을 바둑판처럼 파헤치는 고속도로와 산허리를 휘감는 임도가 크고 작은 나무를 밀어내자 토사가 밀려든 계곡의 온도를 뜨거운 햇살이 거침없이 높였다. 솔잎혹파리와 재선충 핑계 삼은 방제액까지 스며들자 수서곤충이 나자빠진 계곡에 이끼가 뿌리를 잃고 있는데, 더욱 가관인 것은 장뇌삼 찾는 심마니마다 이끼를 가마니로 뜯어간다는 거다.

 

저연의 여느 동물과 마찬가지로 계곡의 먹이를 택한 물까마귀도 먹이가 가장 많을 때 제 새끼를 낳았다. 겨울을 보낸 강도래와 민도래의 애벌레들이 눈이 녹아 늘어나는 유기물을 먹고 토실토실 자랐을 때 알을 부화시켰는데, 오염에 약한 수서곤충들이 사라지면 물까마귀도 품었던 너덧 마리의 새끼들을 건사하기 버겁다. 그렇다고 옆 계곡을 기웃거릴 수 없는 일. 수면을 스치듯 쏜살같이 돌진하는 이웃의 텃세에 혼비백산 달아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곤충이 동면에 들어가는 겨울이라면 동작이 둔한 버들치를 살얼음을 깨고 잡아먹으며 버틸 수 있지만 온갖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에 굶주리다니. 굴삭기 굉음이 다가오는 계곡의 물까마귀는 내일이 두렵기만 하다.

 

사실 물까마귀는 계곡을 지배하는 게 아닐지 모른다. 새매나 솔부엉이와 같은 천적이 가까이 오지 않는 깊은 계곡에서 온몸을 어두침침하게 칠한 채 그저 수서곤충이나 만족하며 사계절을 은둔하는 건지 모른다. 산사에 오르내리는 스님들이야 지나치는 정물이니 걱정할 게 아니다. 이따금 기웃거리는 족제비와 누룩뱀의 눈을 피해 바위틈이나 폭포 뒤에 둥지를 치거나 천적이 접근하기 어려운 응달진 물가의 바위벽에 잘라진 옹기 모양으로 둥지를 붙이는데, 언제부턴가 인간이 돌이킬 수 없는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다. 요란하던 굴삭기가 사라지자마자 늘어난 인간들은 족제비와 누룩뱀이 달아난 계곡을 떠나가라 지배한다. 새매와 솔부엉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서.

 

물까마귀는 높은 산의 까마귀처럼 그 수가 줄어들기는 해도 아직 드물 정도는 아니다. 경쟁이 치열해졌을지언정 어둡고 깊은 계곡에서 자신의 지위를 잃지 않았다. 곧 어미 곁을 떠날 어린 물까마귀, 자연의 품이 아직 건강하다면 내년에 다시 만날 수 있겠지. 그때까지 용케 은둔하기를 계곡 밖에서 학수고대한다. (전원생활, 2010년 8월호)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