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16. 5. 23. 00:52

 

독일 베를린에 특별한 공원이 생겼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분단된 베를린에서 사용할 수 없었던 철도 부지였다. 우리 비무장지대처럼 반백년의 세월 동안 사람의 간섭 없이 방치되자 수많은 동식물이 뿌리를 내렸고 터전을 잡은 곳인데, 베를린 당국은 고속도로와 최첨단 고속전철이 지나가는 역사로 개발하려 했다. 하지만 주변 시민들은 저절로 조성된 생태공간을 보전하자고 제안했고, 시민의 제안을 받아들여 조성된 공원이다.


논의 과정은 길고 진지했다. 개발의 당위성과 보전의 진정성은 아무도 무시하지 않았다. 사적 이익이나 권력에 편승하지 않았기에 상대에 대한 비난과 충돌은 불필요했다. 열린 논의에 참여한 시민과 전문가들은 개발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 보전하는 방안, 녹지의 가치와 생물다양성을 지키며 개발하는 방안을 찾으려 다양한 토론을 거듭했고 최후에 마련한 두 가지 안을 놓고 다수결을 결의하게 되었다. 참여자 모두 납득할 만큼 투명하고 공정한 논의를 충분히 펼친 만큼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자는 합의로 이어질 수 있었고, 결과는 보전이었다.


2000년대 초반 베를린과 달리 2000년대 후반 우리 용산은 어떠했던가. 6명의 사망자를 낳은 용산의 철도 부지를 시민을 위한 공원으로 개발하자고 누군가 제안했다면 우리는 그 취지를 옹호하고 공개적으로 논의하려 했을까? 한국전쟁 피난민들이 모여들어 노곤한 몸을 뉘며 형성된 부산 물만골은 부산시의 일방적 개발 계획에 처절하게 저항하고 있다. 가난해도 공동체를 감동적으로 가꿔가던 물만골은 시방 누구의 어떤 의지에 의해 강제로 개발되려 하는가? 주민의 처지에서 파괴와 무엇이 다른가?


통영의 동피랑과 서피랑도 가난한 달동네였지만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똑똑한 단체장의 강력한 추진력이 아니었다. 한 시민운동가의 제안을 받아들인 주민들의 협력과 노력으로 산비탈의 골목을 화사한 공간으로 가꾼 이후의 일이다. 결과보다 논의 과정이 아름다웠기에 주민들은 카메라 들고 서성이는 관광객들을 선뜻 반갑게 맞으며 누추한 자신의 생활공간을 기꺼이 공개할 수 있었는데, 인천 중구의 동화마을은 과정이 달랐다. 단체장의 독단으로 느닷없이 낯설게 치장되었고 그 골목을 드나드는 관광객은 주민에게 불쾌감을 선사한다.


주민 요구로 고속도로 계획이 중지된 베를린 철도부지는 참여를 적극 유도하면서 공원이 조성되었다. 생물을 위한 공간에 사람의 출입을 제한하고 이용을 위한 공간에서 시민들은 휴식과 운동을 즐길 수 있다. 텃밭과 숲은 폐선로를 활용한 산책로가 이어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과거 철도역사는 철도 역사 전시실과 카페로 변모했고 젊은 음악미술인과 연극인의 연습장과 작업장으로 활용되면서 공연과 전시가 가능한 공간으로 꾸며놓았다. 시민 참여로 조성된 공원이므로 공원은 베를린의 자랑이 되었다는데 우리는 아직도 그런 공간을 가질 수 없어야 하는 걸까?


인천시는 내년 7월 관리가 이양될 경인고속도로 일부 구간 10여 킬로미터를 일반화하려고 한다. 50년 가까이 인천을 남북으로 나눴던 고속도로가 일반화되면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분리되었던 지역이 이어지겠지만 그 도로를 고속으로 이용하던 시민들은 새로운 통행 방법을 찾아야할 것으로 그에 대비한 방안을 인천시는 마련해야 하겠지. 이미 연구기관에 용역을 맡겼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그 결과와 무관하게 과정에서 어떤 논의를 어떻게 펼칠지 관심 있는 인천의 각계 시민들은 촉각을 세우고 있다.


다행히 인천시는 일반화 과정에 시민참여를 보장할 것이라 한다. 일반화가 교차로가 있는 일반도로로 귀착되기보다 나무와 산책로, 휴식과 운동이 가능한 녹지로 변모하기를 희망하는 시민들은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한다. 전문가들이 작성한 계획안을 놓고 개최하는 몇 차례 공청회에서 의견을 제시하는 차원이 아니다. 예산이나 시간의 경직성에 구애되지 않고 충분한 시간 동안 다양한 의견이 공평하고 투명하게 논의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고속도로의 일반화의 가치와 희망, 문제와 대안을 공유하면서 인천시민이 자랑스러워할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란다.


똑똑한 행정가의 현명한 판단, 또는 추진력으로 만드는 정책은 빠르고 예산도 절감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시민과 정책결정자 사이에 신뢰는 싹트지 않는다. 참여를 불편하게 여기는 단체장이 믿고 따르면 좋아질 것이라는 홍보를 서슴지 않을 때 불신은 걷잡을 수 없게 이어질 수 있고 우리는 그런 사례를 지겨울 정도로 보아왔다. 갈등과 대립으로 이어지면 불신은 깊어지고 정책이행 과정의 시간과 예산낭비는 극에 달할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경인고속도로 일반화를 구상하고 있는 인천시는 주권자인 시민과 공유하는 신뢰를 전에 없이 키울 절호의 기회와 마주하고 있다. 물만골 개발을 앞둔 부산시도 얼마든지 시민 관계를 긍정적으로 회복할 계기로 만들 수 있다. 신뢰의 과정은 언뜻 길고 복잡해 보이지만 신뢰가 쌓이면 쌓일수록 과정은 간단해질 수 있다. 민주주의가 성숙한 국가에서 우리는 그 예를 누차 확인하며 부러워하지 않은가. (지금여기, 2016.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