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7. 11. 20. 06:54
 


《슬픈 미나마타》, 이시무레 미치코 지음, 김경인 옮김, 달팽이, 2007년




2000년 4월 29일은 ‘검은 민들레’ 박길래 여사가 58세로 세상을 떠난 날이다. 서울 상봉동에서 작은 가게를 하던 그는 길 건너 연탄공장의 저탄장에서 날아온 무연탄가루로 인한 진폐증을 앓다가 결국 숨을 거두었다. 1986년 국립의료원의 판정을 근거로 박길래 여사는 1988년 문제의 연탄공장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나 당시 그 공장은 진폐증이 도시에서 발생할 리 없다며 난색을 표명했을 뿐 아니라 회유와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1년 여 동안의 공방 끝에 1989년 1월 법원은 박길래 여사의 손을 들어주었고 그 사이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박길래 여사는 손해배상으로 받은 천만 원의 일부를 환경운동단체에 기증하며 진폐증 규명운동에 나섰다.

 

2007년 11월 7일. 낙동강의 발원지인 태백 ‘황지 연못’ 공원에서 ‘한국진폐재해자협회’ 회원들이 모였다. “정부는 ‘폭동’을 원하는가?”, “우리를 더 이상 막다른 길로 내몰지 말라”는 펼침막을 든 노인 1천 명이 힘든 몸을 끌고 ‘재가 진폐환자 생존권 확보 총궐기대회’에 나선 것이다. 막장의 고충을 재현하며 ‘갱목 시위’에 나선 재가 진폐환자들은 한 푼의 생계비도 받지 못한다. 활동성 폐결핵과 폐암에 이르기까지 9가지 합병증 중 하나 이상을 가져야 입원 요양이 가능하고 산재보험 급여를 받지만 해당되지 않는 이른바 ‘재가 환자’는 노동력을 상실한 채 죽는 날만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와병 중에 악화돼 합병증이 나타나면 동료들이 축하하는 어처구니없는 역설이 벌어진다.

 

거침 숨을 몰아쉬며 태백의 아스팔트 바닥으로 궐기대회에 나선 재가 환자에 비해 손해배상이라도 받은 박길래 여사나 합병증 진단을 받고 요양한 환자는 그나마 다행일까. 산재보험 급여를 받는 합병증의 지위는 고통 속에 생을 마감해야 하는 전조에 지나지 않는데. 정확한 진단과 관계없이 사망에 이르는 산업재해는 진폐증만이 아니다. ‘괴질’이라는 무책임한 진단명으로 사망한 1980년에서 1990년에 걸친 온산과 여천 공업단지의 환자들도 마찬가지다.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스러진 원진레이온의 환자들은 어떨까. 1993년 중국으로 이전하기로 된 공장이 폐쇄된 이후에도 수백의 환자들을 고통에 몰아넣은 원진레이온 자본은 공장 터를 팔아 천억 원이 넘는 이윤을 챙겼지만 환자들은 죽음의 문턱을 오르내려야 했다.

 

인과관계를 알 수 없고, 고통스런 환자들의 노력으로 인과관계를 어렵게 알아낸다 해도 권력을 쥔 원인 제공자가 그 사실을 부정하고, 길고 험난한 소송을 끝에 손해배상을 받을 때가 되면 이미 많은 환자들이 희생된 뒤인 산업재해는 20세기에서 그 사례를 멈추지 않는다. 2007 한해에 노동자 15명의 목숨을 앗아간 한국타이어는 여전히 인과관계 규명에 소극적이다.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시민단체와 노동자의 거센 목소리를 들었는지 노동부는 역학조사를 다짐한다. 두고 볼 일이다. 이를 계기로 유기용매를 사용하는 한국타이어 작업장의 환경은 개선될 테지만, 스러진 이는 일어서 가정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런 일로 오리발 내밀던 공장이 문을 닫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극히 드물다.

 

《슬픈 미나마타》. 1969년 출간된 이시무레 미치코의 《고해정토(苦海淨土)》를 얼마 전에 번역 출간한 달팽이 출판사는 제목을 그렇게 고쳐 달았다. 저자가 제목을 그리 정한 데 무슨 이유가 있을 거고, 출판사도 사정이 있을 테지만, 우리에게 제목이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다. ‘진혼 문학’의 걸작이라는 절찬 속에 세계 언어로 번역된 《슬픈 미나마타》를 출간된 지 거의 50년 만에 만났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돈이 될 만하다 싶으면 질을 따지지 않고 경쟁적으로 번역하는 마당에 《슬픈 미나마타》를 이제야 읽게 되다니, 불가사이다. 그래서 그런가. 우리 공장의 작업장 환경은 여전히 개선되지 못한다.

 

환자 가족들이 새댁으로 불렀던 이시무레 미치코는 자식 키우는 어머니이자 미나마타 만과 가까운 어촌마을에서 태어나 자랐기에 《슬픈 미나마타》를 쓸 수 있었을지 모른다. 몸이 오그라드는 환자와 그런 환자를 돌보는 사람의 가슴을 오롯이 보듬는 이시무레 미치코는 빛이 차단된 반 평 공간에서 한 쪽 시력을 잃으면서도 고통 속에 원고를 메워야 했던 것이다. 인과관계가 선명해짐에 따라 더는 빠져나갈 수 없었던 공장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손해배상에 임한 건 한참 나중이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낯선 이를 유난히 경계하는 큐헤이는 5년 째 야구연습을 반복한다. 가벼운 감기가 원인이 되어 죽은 아비도 미나마타병이었을 것이다. 미나마타병으로 누나마저 죽은 작은 집에서 초로의 어미와 사는 큐헤이는 구부정하고 엉거주춤하다. 미나마타병으로 뒤틀린 16살 소년의 모습은 영락없는 노인이지만 벌어진 어깨는 건장한 어촌의 청년임을 증명한다. 눈이 보이지 않는 큐헤이는 왼손에 쥔 돌을 어렵게 허공으로 던지고 양팔로 나무토막을 휘둘렀다. 돌은 엉뚱하게 날아갔고 나무토막을 휘둘렀을 때 이미 땅바닥에 떨어졌어도 5년 동안 포기하지 않았다. 마을에 아무도 없는 오후, 땅을 더듬어 돌멩이를 찾는 큐헤이의 목덜미는 땀으로 흥건하다. 흐물흐물 병원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는 다른 환자들과 달리 큐헤이는 정기검진을 완강하게 거부한다. 감염에 의한 질병으로 오인하고 환자를 격리했던 병원에서 누나와 사촌들이 죽어 돌아오지 않았던가. 벌써 10년째, 큐헤이는 암흑을 지킨다.

 

어중이떠중이는 뽑아가지도 않던 시절에 러일전쟁을 선발돼 나간 걸 자랑하는 센스케 노인도 미나마타병에 걸렸다. 정오에 밥해 먹고 오후 4시 반이면 3홉들이 소주를 사러 가는 노인은 소금을 치지 않은 생선회로 저녁을 들었다. 아내를 먼저 보낸 10년 세월을 한결같이. 저만치 걸어오는 한 사람을 세 사람으로 보더니 돌도 없는 데에서 허망하게 고꾸라진 노인은 즐겨 읽던 무협지를 손에서 놓고 자리에 누었다. 중천의 해가 서쪽으로 기우는데 가게로 나가지 않는다. “워, 싱, 턴, 이라고 말해보세요!” 주문하는 젊은 의사의 말을 따라하지 못하고 죽었다. 센스케 노인이 죽고 20일, 이시무레 미치코는 면회 온 아내조차 기억하지 못하던 아라키 타츠오의 장례행렬과 만난다. 원인 불명의 발광 상태로 정신병원에 갇혔다 죽은 그이는 남편 없이 죽어라 일만 하던 아내를 슬프게 했다.

 

첫 남편을 먼저 보낸 유키도 미나마타병에 걸렸다. 쉰을 바라보는 두 번째 남편과 마흔 가까운 나이에 중매로 만난 유키는 억척스런 어부였다. 앞에서 노를 젓는 남편의 뒤에서 측면 노를 저으며 오징어와 숭어를 잡던 유키는 혼자 옷을 못 입는다. 옷뿐이 아니다. 달거리 뒤처리도 새 남편에 의존해야 한다. 병에 걸리고 병원에 갔을 때 세상이 와르르 무너지는 거 같았다.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방화용 수로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아야 했던 것이다. 그런 자신이 너무 슬펐던 유키는 병원에서 아이를 유산시켰다. 선천성 미나마타병일 가능성 때문이었을까. 병원에서 받은 식사 쟁반에 담긴 생선이 꼭 아기 같아서, 내 피 묻은 아기가 너무 가여워서, 빨리 치우려고 버둥거리다 쟁반과 함께 그만 병상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병원 복도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주우려는데, 의지와 관계없이 다다다 뒤뚱거리며 제멋대로 뛰어가는 제 모습에 울컥 화가 치미며 속 뒤집힐 경련에 끔찍해하던 유키는 죽지 않았다. 다만 간병에 지친 남편이 이혼하고 떠났을 따름이다.

 

마을을 잘 살게 해준다는 그 회사에서 뭘 만들고 있었던 걸까. 생각만 해도 기분 나쁘게 껄쭉해진 바다. 무슨 기름 덩어리 같은 게 밤마다 배수구 근처에 나타난 이후로 항구에 선충도 사라지고 굴도 붙지 않았다. 그물에 푸른색을 띈 암갈색 이물질이 악취를 풍기며 달라붙으면서 초여름에 시작되던 숭어가 사라졌다. 그러더니 고양이가 죽었다. 춤을 추거나 마구 달리다가 바다로 뛰어들어 죽었다. 앞다리는 고정한 채 뒷다리로 지면을 차니 코를 박고 춤을 추는 것 같았고, 이쪽으로 뛰다 벽을 들이박고 다시 저쪽으로 뛰다 벽을 들이받더니 바다로 뛰어들어 죽고 만 것이다. 그물에 든 정어리가 직방으로 죽더니 그놈을 먹은 고양이가 데굴데굴 날뛰다 죽고, 때려죽여도 안 죽을 것 같던 건장한 사내가 금방 죽었다. 제일 앞장서서 회사 정문을 타고 올라 데모하던 사람이었는데, 갓난애처럼 말한 지 딱 2주 만에 죽어버렸다.

 

유기수은이었다. 북한 흥남비료공장을 세운 신일본질소비료 자본이 구마모토 현 미나마타 만에 대규모 공장을 짓고 아세트알데히드를 생산했는데, 그 공장에서 메틸수은이 섞인 폐수를 정화하지 않은 채 배수구로 버려 벌어진 현상이었다. 손가락 마비로 시작돼 청력과 언어와 보행과 의식 장애를 지나 광분 상태가 되는 28세 여성을 초기에 진단한 의사는 “얼굴은 노인 같고, 입을 크게 벌려 마치 개처럼 울부짖는데 도저히 사람의 말이라고 할 수 없었다.”면서 몸이 활처럼 휘다 죽은 원인을 짐작하지 못했다. 이후 선충으로 인한 감염이거나 바이러스에 의한 급성 전염병으로 짐작하다 망간 중독을 의심하기도 했다. 결국 유기수은 중독 가능성이 드러났지만 공장 측은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나중에 인정할 때까지 미나마타에서 잡힌 고기는 팔리지 않았고, 병에 걸리지 않은 주민은 병에 걸린 식구와 함께 살 길이 막연했다.

 

물가와 연동하기로 했다지만 아이의 생명을 연간 3만 엔, 어른은 10만 엔, 사망자에게 30만 엔 지불하겠다는 위로금. 이시무레 미치코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워해야 할 ‘생명의 계약서’라며 분개한다. 공장폐수가 원인인 다른 질병이 다시 나타나도 보상 요구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회사 측은 요구한 것이다. 시민단체와 정의감을 잃지 않은 학자들이 힘을 합쳐 결국 사과와 보상을 받아냈지만 그땐 세월이 지난 뒤다. 순박한 어민의 생명을 돈 몇 푼으로 사려 했던 당시 자본은 유기수은 폐수 100만 톤을 한국에 수출하려 했다가 노동조합의 저지로 포기했다고 이시무레 미치코는 고발한다. 1968년, 그때 그 폐수를 누가 수입하려 했을까.

 

미나마타병을 말하면 질소비료공장이 망하고 공장이 망하면 미나마타시도 없어진다며 쉬쉬하던 관료와 달리, 회사의 잘난 사람에게 줄줄이 유기수은을 마시라고 분노하던 환자들은 공장의 박해와 무시 속에 죽음으로 떠밀려갔어도, 교훈은 남았다. 요즘 일본은 환경오염에 매우 민감하다. 유기수은 중독인 미나마타병과 카드뮴 중독인 이타이이타이병, 포름알데히드와 이산화황에 의한 욧가이치 천식으로 곤혹을 치룬 만큼, 일본은 환경호르몬이나 아토피성 질환에 대한 시민들의 경각심이 높고 대책 마련에 대한 전문가의 관심이 크다. 남의 일로 여기는 우리와 달리 발간되었거나 발간되는 책은 수를 헤아리지 못할 정도다.

 

이시무레 미치코는 《슬픈 미나마타》의 목차에 앞서, 이윤에 눈이 먼 과학기술의 문제를 지적한다. “진보하는 과학문명이란, 보다 복잡한 합법적인 야만세계로 역행하는 폭력의 지배를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동양의 덕성, 그 체질 속에 숨겨져 있는 전제주의와 서구 근대가 기술의 역사 속에 관철시켜온 합리주의가 가장 황폐하게 결합해 일본 근대 화학산업이 발전했고, 이 열도의 골수까지 파고든 종양덩어리의 전모를 미나마타병 사건은 보여주고 있다.”라고. 한국의 미나마타병과 한국의 이타이이타이병이 이따금 출몰하는 우리가 새겨야 할 내용인데, 세계는 시방 생명공학이라는 미나마타병을 잔뜩 경계해야 할지 모른다.


 

 

세계에서 해마다 생산하는 의약품과 유기화합물의 종류는 줄 잡아 수천 가지. 그들의 안전성은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다. 동물실험으로 안전성을 확보했다는 주장은 믿을만하지 못하다. 동물 실험결과를 그대로 사람에게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험동물을 무참하게 희생시켜 얻은 결과도 주먹구구일 경우가 대부분인 까닭이다. 더구나 실험에 사용한 동물의 절반이 죽는 순간까지 사용된 시료의 양으로 계산한 이른바 ‘기준치’는 경제 여건에 따라 들쑥날쑥 변동한다. 개발자가 제출한 서류를 근거로 판단하는 안전성은 상호관계에 무지하다. 약품과 약품 사이의 상승관계, 유기화합물과 환경의 연관관계는 전혀 검토되지 않았다. 유전자는 나이, 성별, 건강,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현된다. 유전자조작 농산물도 마찬가지다. 그 농작물을 가공해 만든 식품이나 약품이 환경과 인체에 안전하다 자신할 수 없건만 국제 이동이 거의 자유롭다.

 

미나마타병이나 이타이이타이병도 원진레이온 질병이나 온산의 괴질처럼 결국 인과관계를 밝혀냈고, 지금도 보상과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인과관계를 밝혀낼 즈음이면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이후이고, 희생자는 더는 행동할 수 없다. 이미 죽은 것이다. 주민과 소비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시민단체는 ‘실질적 동등성 원칙’을 주장하는 자본과 달리 ‘사전예방원칙’을 요구한다. 건강과 환경에 문제가 발생될 상당한 이유를 가진 제품일 경우,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 시판을 보류하라는 거다. 한데 자본은 일단 팔고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 더 발전할 과학기술이 해결해줄 수 있다는 견해를 내세운다. 문제는 사전예방원칙도 한계를 가진다는 점이다. 찬란해 보이는 과학기술도 얼마 지나지 않아 부정되는 게 과학계의 실상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제 동생보다 체구가 작고 지능이 떨어지는 9살 모쿠타로는 영혼이 깊었다. 막대기처럼 깡마른 몸을 데굴데굴 굴려 할아버지와 이시무레 미치코의 품에 안기던 모쿠타로의 아비도 미나마타병이고 어미는 달아났는데, 할아버지에 의지하던 모쿠타로는 아직 살아 있을까. 살아 있다면 필자와 갑장일 모쿠타로는 그때 밥을 거부하기 시작했다니 지금은 이미 죽은 뒤일 가능성이 큰데, 모쿠타로는 여전히 태어나고 있다. 공업단지에서 태어나는 남자아이의 생식기 장애가 다른 곳의 30배에 달한다고 한다. 담배를 주는 게 더 낫다고 전직 과자회사 간부는 주장한다. 티 없이 맑은 눈동자로 제 어미의 슬픔을 받아들이는 아이의 아픈 모습은 병원의 24시를 보여주는 텔레비전에 흔하다. 모두 이윤에 눈이 먼 자본이 만들어낸 미나마타병이다.

 

방사선과 전자파, 온갖 첨가물과 항생제가 온실가스처럼 누적되는 지구촌 환경에서 자동차와 작업장 사고는 줄어들 기미가 없다. 꿀벌이 줄어드는 가운데 석유는 정점을 지난다지만 에어컨과 가공식품으로 젖은 사회는 자본의 유혹에 길들어진 관성을 제어하지 못한다. 그래서 《슬픈 미나마타》는 아직 유효하다. 그러니 슬프다. (ECO, 2007년 하반기)

미나마타.... 미나마타.... 미나마타....미나마타....

 
 
 

서평·추억

디딤돌 2007. 7. 8. 15:43
 


《슬픈 미나마타》, 이시무레 미치코 지음, 김경인 옮김, 달팽이, 2007




일본의 지명 ‘미나마타’라는 이제 보통명사가 되었다. 그것도 세계적으로. 지명이 아닌 ‘이타이이타이’도 비슷하다. 이타이는 일본어로 ‘아프다’는 뜻이다. 미나마타와 이타이이타이. 일본에서 기원한 중금속 중독의 대명사다. 굳이 설명하자면, 이타이이타이병은 카드뮴, 미나마타병은 유기수은 중독이다.

 

아연 제련공장의 폐수가 강을 오염시켜 발생한 이타이이타이병과 질소비료공장의 폐수가 바다를 오염시켜 발생한 미나마타병.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먹은 주민은 이타이이타이병을,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먹은 주민은 미나마타병을 끌어안았는데, 원인을 초기에 찾아내기 어려웠고 원인이 드러나자 원인 제공자가 발뺌했으며 문제가 불거지자 원인을 제거하기보다 돈으로 무마하려 했다는 점이 한결같았다. 고압적인 자본이 순박한 주민을 대하는 방식의 전형이다.

 

《슬픈 미나마타》는 미나마타병에 대한 르포다. 초판이 발행된 지 벌써 50년 가까워 일본에서 이젠 고전에 속한다. 《슬픈 미나마타》로 일약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 이시무레 미치코는 좁은 방에서 《슬픈 미나마타》를 쓰면서 한쪽 눈의 시력을 잃고 말았다. 그만큼 치열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슬픈 미나마타》를 진혼문학으로 평한다. 그런 《슬픈 미나마타》가 이제야 우리말로 옮겨졌다. 우리에게 뒤늦게 선보인 까닭은 무엇일까. 출판을 미루어야 할 무슨 곡절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질환이 나타난 지 6년인 1959년. 숱한 주민이 죽어나간 뒤 환자를 만난 원인 제공자 신일본질소는 이시무레 미치코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워해야 할 한 장의 고전적 계약서’로 규정한 ‘생명의 계약서’를 들이댔다. 나중에 물가상승에 따른 조정이 있었지만, 해마다 아이 3만 엔과 어른 10만 엔을 주고, 사망자는 30만 엔, 장례비는 2만 엔으로 마무리하자고 계약서는 다그쳤다. 공장배수가 원인인 병이 다시 나타나도 보상요구를 하지 않겠다는 조건까지 붙이고. 초기 대학원생이었던 우이 준 동경대학교 교수를 비롯하여 구마모토 의과대학의 교수들과 시민단체, 그리고 주민들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신일본질소의 사과와 법적 보상을 받아냈지만, 자본은 순박한 어민의 무지를 이용, 돈 몇 푼에 생명을 사려했다.

 

미나마타 만 사람들은 이시무레 미치코를 새댁이라며 호의적으로 대했다. 눈이 먼 16살 큐헤이는 혼자 야구를 연습한다. 구부정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왼손으로 올린 돌을 막대기로 휘두르는 치는 일을 5년 째 되풀이한다. 엉뚱한 방향으로 올라간 돌멩이는 막대기를 휘두를 때면 벌써 땅에 떨어졌다. 깡마른 큐헤이의 누나 사츠키. 여장부였던 그의 누나는 어부였다. 배 위에서 벌이는 춤사위와 노래가 기막혔던 사츠키는 생선 먹고 죽어가는 고양이처럼 격리병동 침대에서 버둥거리다 죽었다. 사츠키와 동갑인 이시무레 미치코는 아들 나이와 비슷한 큐헤이를 모성의 눈으로 바라본다.

 

어중이떠중이와 달리 선발된 군인으로 러일전쟁에 다녀왔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가던 센스케 노인은 100살까지 너끈할 것으로 믿었다. 시계처럼 12시에 밥 지어 먹고 4시 반 소주 사러 나갔던 팔순 노인이 돌도 없는 데서 허망하게 고꾸라진다. 저녁이면 안주삼아 먹은 생선 때문이었다. 기꺼이 술 취해 무협소설을 읽던 노인은 책을 손에서 놓더니 젊은 의사가 “워, 싱, 턴!” 하는 소리도 제대로 따라하지 못하더니 죽고 말았다.

 

손발이 저리다 물건을 쥐지 못하고, 걷지 못하고, 걸으려다 고꾸라지고, 말 하려면 어린양 부리듯 늘어지다 눈도 귀도 혀도 마비되고, 남정네 두 사람도 진정시킬 수 없는 경련을 일으키다 밥도 뒤도 스스로 할 수 없게 되고, 급기야 척추가 활처럼 휘어 죽는 미나마타병. 처음에는 감염성 질환이라 믿었지만 나중에 생선 때문이라는 걸 알았고, 미나마타만의 생선은 어디 내놔도 팔리지 않았다. 신일본질소는 폐수가 근본 원인이라는 연구진의 움직일 수 없는 결과를 무시했고.

 

죽은 자는 그래도 나았다. 등이 굽은 채 살아남은 자는 증상이 덜한 식구의 평생 부담으로 남았다. 늦은 나이에 홀아비 어부와 재혼한 유키. 격렬한 안면 경련 중간에 의식이 돌아오면 뒤틀리는 입과 눈으로 이시무레 미치코와 이야기를 나눈다. 억척스럽던 어부 유키는 말 수 적은 남편 앞에서 알절부절 애가 탄다. 금방 숭어 철이고, 보리를 갈고 거름도 내야 할 텐데 남편에게 달거리 뒤처리까지 맡겨야 하다니. 병원을 떠나지 못한 유키는 나중에 이혼 당했다. 9살 모쿠타로는 제 동생보다 체구만 작은 게 아니라 지능도 떨어진다. 막대기처럼 깡마른 모쿠다로는 몸을 데굴데굴 굴려 할아버지와 이시무레 미치코의 품에 안기지만 영혼은 깊다. 아비도 미나마타병이고 어미는 달아났다. 언제 돌아갈지 모르는 할아버지에 의지하는 모쿠타로. 나무로 깎은 부처님 같던 그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미나마타병은 가난한 어부의 집에서 대물림되었다. 생선을 먹지 않은 아기에게 나타난 것이다. 40년이 지나야 모두 환자로 인정되었지만 그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공장의 박해와 무시 속에 죽음으로 떠밀려가던 환자들은 회사의 잘난 사람에서 분노의 말을 토했다. 줄줄이 유기수은을 마시라고. 태아성 미나마타병 환자가 나타날 때까지 그들의 부인들도 마셔야 한다고. 책 뒷부분에서 이시무레 미치코는 폭로한다. 1968년 신일본질소는 유기수은 폐수 100톤을 한국에 수출하려다 노동조합에 들켜 저지당했다고. 그 폐수 당시 누가 수입하려 했을까.

 

일본인은 현재 환경오염에 민감하다. 자본이 아니다. 시민의 각성 때문이다. 원진레이온과 고엽제 환자에 미온적인 우리는 어떤가. 온산 괴질은 여천으로 이어지건만 인과관계 규명은커녕 보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민의 고통을 외면하는 산업화는 내일을 위해 꼭 필요한가. 《슬픈 미나마타》는 사실을 건조하게 전하지 않는다. 절제된 언어로 독자의 감성을 자극한다. 미나마타병의 원인과 결과, 법정 투쟁에 이은 보상의 전말을 파악하려면 그 과정에 참여한 구마모토 의과대학 하라다 마사즈미 교수의 《끝나지 않은 아픔 미나마타병》(한울, 2006)을 참조하면 좋겠다.

 

이시무레 미치코는 《슬픈 미나마타》를 막 펼친 독자에게 전한다. “진보하는 과학문명이란, 보다 복잡한 합법적인 야만세계로 역행하는 폭력의 지배를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동양의 덕성, 그 체질 속에 숨겨져 있는 전제주의와 서구 근대가 기술의 역사 속에 관철시켜온 합리주의가 가장 황폐하게 결합해 일본 근대 화학산업이 발전했고, 이 열도의 골수까지 파고든 종양덩어리의 전모를 미나마타병 사건은 보여주고 있다.”라고. 우리가 새겨야 할 말이다. (출판저널, 2007년 8월호)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