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10. 8. 17. 15:39

 

사실 이번 인천 5차 지방선거 결과의 가장 큰 걱정거리 중의 하나는 수돗물불소화 논쟁이 재현될 것인가 여부였다. 더구나 신동근 정무부시장이 수돗물불소화를 추진하는 측에 서있었기에 더욱 불안했는데 정말 지겹고 지겨운 논쟁이 재현되려나. 논쟁 초기 멋모르고 수돗물불소화를 찬성했던 시민들은 내용을 소상하게 알고 나면 반대로 돌아선다. 또 그 꼴을 반복해야 하나 싶어 답답했는데, 이번 인천 정부 하에서 그도 아닐까 싶어 덜컥 겁이 난다. 강제로 실사하겠다는 호언이 부시장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어떻게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지방정부에서 수돗물에 독극물인 불소를 그것도 강제로라도 반드시 넣을 궁리를 그것도 수돗물불소화를 추진했던 사람끼리 모여서 결정한다는 건가. 어떤 책임 있는 유권자가 그런 행위를 승인해주었는가! 시장의 공약이라고? 그 공약을 언제 누구와 협의해서 만들었는지, 몹시 궁금하다. 왜 유권자의 대부분은 그 공약을 사전에 몰라야 했을까. 누가 왜 선거 기간에 논쟁점으로 부각되지 않도록 어떻게 애를 썼는지, 또 궁금해진다. 수돗물불소화를 반대하는 자식 키우는 대다수의 시민 앞에서 시장은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공약이라. 현 대통령은 한반도 대운하를 공약이라며 추진하려 했다. 유권자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자 ‘살리기’라는 단어를 넣고 강제로 추진하는 ‘4대강 사업’은 운하의 모습과 거의 다르지 않은 것으로 거듭 밝혀지고 있다. 앞으로 ‘4대강 사업’ 이후 요동칠 민의는 어떤 정치적 지형을 요구할지, 현 정치권은 긴장해야 할지 모른다. 현 대통령이 오로지 운하나 4대강 사업만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출마했다면 당선되었을 리 없다. 마찬가지다. 현 인천시장의 중요한 공약이 수돗물불소화라는 사실을 유권자들이 알고 투표에 임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수돗물불소화를 중단시킨 우리나라의 많은 도시의 선례를 미루어볼 때, 자식 키우는 시민 대부분이 수돗물에 독극물인 불소를 첨가하는 걸 한사코 반대하기 때문이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이미 몇 차례 여론조사를 해왔다. 모든 시민들이 관심을 갖게 더 필요하다면 인천에서 여론조사를 다시 공개적으로 실시하면 된다. 밀실 여론조사가 아니다. 누구라도 합리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민주적인 과정을 투명하게 거쳐 명명백백하게 독립적이고 공신력이 있는 기관에서 실시하면 된다. 물론 그 전에 모든 시민들이 관심을 갖도록 충분한 논의가 공개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민감한 사항일수록, 갈등이 예상될수록 거쳐야 하는 행정의 민주주의 상식이 아닌가. 한데, 왜 그런 상식에 부합하지 않게 강제로 수돗물에 불소를 넣겠다고 주권자인 시민들을 공포에 몰아넣는가. 지난 8월 5일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회장 고승석), 그리고 인천지역 보건의료단체 대표자들과 인천 시청 부근 중식당에서 모여 간담회를 가진 신동근 인천시 정무부시장과 길민수 보건정책과장은 대답해야 한다.

 

그 모임에 참석한 신동근 부시장은 “수불사업의 안전성 등의 문제는 이미 타 지역에서 검증이 끝난 걸로 알고 있다”고 사실과 다른 주장을 늘어놓으면서 “때문에 안전성 검증 등을 위한 연구나 시범사업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수돗물불소화를 추진하는 측에서 발간하는 매체인 <건치신문> 8월 6일자는 전했다. 또한 그는 “수불사업은 찬반여부 문제를 떠나 송영길 시장의 공약사항이기 때문에 반드시 관철하겠다.”면서 “수불사업은 의지의 문제다. 시장님이나 나나 강력한 의지가 있기 때문에 걱정 안 해도 된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지방 독재가 아니라면 상상할 수 없는 폭거가 아닐 수 없다. 진정 유권자를 속이고 밀어붙일 참인가.

 

입이 닳도록 말하는 것이고, 이미 과학적으로 재론할 가치가 없는 일이지만, 불소는 강력한 독극물이다. 4대강에 나와 발암여부로 논란이 심했던 비소보다 독성이 강한 물질이라는데 무기화학을 전공하는 과학자들은 동의한다. 더구나 수돗물에 넣는 불소는 공장 폐기물인 불소화합물이다. 자연의 불소화합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독성이 강한 물질이다. 수돗물불소화 추진 측은 농도를 희석하면 안전하다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새롭게 설득력을 가진다. 불소로 인한 인체의 문제는 수돗물불소화가 한참 진행된 이후 발생하는 게 통례이기 때문이다. 농도가 강하면 당장 드러나겠지만 약하면 몸에 축적된 이후에 발생하는 것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도노라 계곡의 불소 오염 사건은 하룻밤에 수천 명이 목숨을 잃고 훨씬 더 많은 이를 평생 치명적인 질병으로 고생하게 했다. 공장굴뚝에서 급격한 화학반응을 하는 불소가 배출되었기 때문이었다. 2006년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은 불소농도가 11.4피피엠인 지하수를 마신 마을 주민에게 심각한 치아 결손이 생겼다. 부서지거나 구멍이 뚫리고 검게 변색된 것이다. 수돗물불소화를 주장하는 이의 주장처럼 0.8피피엠 이하로 낮추면 안전할까. 그렇지 않다는 사례가 불소를 수돗물에 넣는 지역에서 속속 발생하고 있다. 사람에 따라 민감성이 다르고 몸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용량이 다른데, 독극물이라도 0.8피피엠 이하이므로 안전하다는 말은 불가능하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수돗물불소화의 치명적인 부작용이다. 일단 불소화를 하면 돌이킬 수 없다.

 

문제는 불소는 몸에 축적된다는 것이다. 점점 농축돼 높은 농도로 축적돼 비정상적으로 다단해진 뼈가 골절되는 부상이 나이가 든 이에 발생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나이 들면 골격에 금이 생겨도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데 불소가 축적된 뼈에 골절이 발생한다면 여간해서 붙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심각한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강력한 독극물답게 발암의 가능성도 걱정하는 논문이 최근에 발표되기도 했다. 번역되지 않았을 뿐 미국에는 책도 여러 권 발간돼 있다. 논문과 책의 수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떤 연구 과정을 거쳐 나왔는지 살펴야 한다. 숱한 과학사를 들추지 않더라도, 선행 연구는 양이 많다고 방어되어야 하는 게 아니다. 새롭게 제기되는 합리성이 중요한 잣대가 된다. 수돗물불소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의 주장처럼 그 책과 논문의 내용이 거짓이나 약한 근거를 바탕으로 출간했다면 수돗물불소화를 추진하는 미국의 정부와 관련 기관에서 그냥 둘리 만무하지만 전혀 고소와 고발을 당한 적이 없다. 부정할 수 없는 과학적 근거에 의하기 때문이다.

 

수돗물불소화를 추진하는 측은 7세 이하의 어린이 중에서 규칙적인 양치질이 어려운 저소득계층을 위한 보건 의료 정책인 듯 주장하는데, 7세 이하 어린이에게 충치가 많이 발생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 과자나 음료를 먹고 양치를 제때 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그런 비슷한 현상이 발생하는지 인천시는 연구했는지 알 수 없으나, 수돗물이 편리하게 보급되면서 그와 같은 현상은 미국이나 유럽이나 줄어들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과자나 음료수가 충치의 원인이라면 그런 음식의 당분을 단속하거나 양치질을 장려해야 보건정책이 된다. 과학적으로 엄밀한 판단 근거도 없이 엉뚱하게 독극물을 넣으며 보건 정책을 참칭할 수 없는 노릇이다.

 

백보 양보하여 수돗물에 불소를 0.8피피엠에 맞게 넣자 7세 이하 아동의 충치 발생이 낮아졌다는 과학적 연구가 독립적인 기관에서 투명하게 도출했다고 치자. 그를 위해 인천시민 모두 마시는 수돗물에 불소를 넣어야 하나. 그렇게 하면 불소에 민감한 체질을 가진 이, 약한 농도에도 앞니에 반점이 생기는 젊은 여인, 불소를 피해야 할 환자, 더구나 독극물에 매우 민감한 아기들도 피할 수 없다. ‘무차별적’이기 때문이다. 수돗물불소화를 찬성하는 측은 예방주사에 비유하지만, 예방주사도 원치 않는 이는 피할 수 있다. 비타민C가 몸에 좋으므로 수돗물에 넣지 않는다. 더구나 비소보다 강한 독극물을 수돗물에 왜 넣어야 하는가. 오히려 빼야 할 물질이 아닌가.

 

충치를 예방하는 효과는 물론이고 몸과 뼈에 절대 안전하다는 과학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전재해야 할 테지만, 정 가난한 계층의 어린이를 위한 조치라고 주장한다면, 현재 통용되는 대안이 여러 가지 있다. 불소를 첨가한 소금이나 불소 양치액을 무상으로 공급할 수 있다. 몸에 마셔야 하는 물에 탈 이유가 없다. 불소가 이를 단단하게 한다는 주장은 음용효과와 무관하다. 그저 불소 성분이 스치며 나타난다. 따라서 농도와 관계없이 위험천만한 독극물을 굳이 들이마실 이유가 없다. 어처구니없더라도 다시 양보해 마셔야 한다면, 원치 않는 이가 피할 수 있도록 0.8피피엠 이하로 불소화합물이 녹은 수돗물을 페트병에 넣어 선택적으로 공급하는 방법도 있다. 독재를 지향하겠다면 모를까, 반드시, 여론도 묻지 않고,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파악하기도 전에, 수돗물에 불소를 넣는 만행을 저질러야 할 하등의 이유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번 인천시 정부는 소통을 유난히 강조했다. 내용을 뒤늦게 파악한 많은 유권자들의 분노를 살 수돗물불소화는 예외인가. (가칭)시민건강위원회를 구성, 보건의료 및 시민사회단체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인천시 정무부시장은 수돗물불소화에 유별나게 집요한 2000년 건치 12대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인천을 구강건강 행복도시로 만들겠다.”고 강조한 치과의사 출신인 부시장은 수돗물불소화를 적극 챙기겠다고 말했다는데, 독극물을 넣으면 그가 주장한 대로 인천이 ‘구강건강 행복도시’가 되는지 불소화를 추진하기 전에 그 납득할 수 있는 증거를 시민사회에 제출해야 할 것이다. (인천in, 2010.8.18)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5. 13. 23:06

 

거의 주말마다 ‘낙동강 순례’를 떠나는 지율스님이 50페이지가 되지 않는 책자를 세상에 내놓았다. 지난 3월 녹색평론사에서 발간한 《낙동강 before and after》가 그것이다. 그는 체험으로 구한 감성적 언어로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행동이 필요하다는 각오를 억누를 수 없게 만든다.

 

“때때로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강에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만일 내개 본 것이 답이 될 수 있다면 눈이라도 빼서 보여주고 싶다.”고 한 지율스님은 “무엇보다 어둠에 잠기기 직전 강가에 물드는 보랏빛 낙조를 보여주고 싶다. 굽이굽이 산을 넘어 휘돌아 가는 물길, 물길을 거슬러 오는 바람, 저문 강에 떨어지는 달빛, 새벽 강가에 하얗게 오르는 물안개, 물가에 그림자를 놓는 수변의 숲들, 그곳에 깃들고 둥지를 트는 생명들, 흰 모래사장에 꼬리를 끌고 지나간 수달의 발자국, 허리 굽은 농부의 깊은 한숨, 그곳을 배회하는 외로움 맘까지 모두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지난 3월 4일, 서울시청 근처의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불교환경연대와 에코붓다의 공동주최로 열린 “4대강 개발, 다른 대안은 없는가?” 라는 제목의 공개 심포지엄에서 신경림 시인은 “정부가 대운하를 포기하고 4대강 살리기를 한다고 했을 때 나는 안도했다. 그러나 현장을 가보고 나는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를 깨달았다. 지금 4대강 유역에는 천벌을 받을 짓이 행해지고 있다. 이 전면적인 자연파괴를 추진하는 것은 물론, 이것을 막지 않고 방관하고 있는 것도 천벌받을 일임을 나는 확신한다.” 고 말했다. 흉포한 독재정권과 온몸으로 맞섰던 작은 체구의 연로한 시인은 생명을 받은 자의 의무를 절절하게 전했다.

 

터널로 산을 뚫어야 한다면 가장 짧아야 최선이라는 건 상식이다. 지하수를 포함한 물의 흐름이 교란되는 걸 최소화할 수 있고 생태계의 충격도 그만큼 작다. 한데 경부고속전철은 천성산을 가장 길게 뚫고 지나간다. 공사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목적으로 실시하는 환경영향평가는 천성산에 터널공사가 시작되기 10년 전에 조사했다. 그렇다면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실시해야 한다. 법에 그리 규정돼 있다. 새로운 기술과 이론으로 다시 평가한다면 영향을 더욱 줄일 수 있기 때문인데 철도공단은 벌금 몇 푼으로 법 정신을 외면했다. 정진 중에 천성산 생명들의 두려움을 인식한 지율스님은 하는 수 없이 다섯 차례에 걸쳐 무려 300일이 넘는 단식을 수행해야 했다. 이제 그이는 ‘4대강 사업’의 낙동강 공사현장에 와서 물려받은 금수강산의 경관과 자연의 이웃들이 어떻게 파괴되며 살해되는지 우리에게 보라고 당부한다.

 

양심을 깨우는 시어로 서슬이 퍼런 군사정권을 물러가게 하는데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았던 시인은 진작 ‘살리기’라는 정부의 말을 막연히 기대했지만 현장에 와서 보니 기막혔다고 토로했다. 그래서 행동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고 분노했다. 녹색평론의 발행인 김종철은 "언어가 철저히 뒤집혀진 세상을 상상하는 것은 너무도 두렵다"고 최근에 발간된 《녹색평론》 112호 서문에 썼다. 흐르는 물을 정화할 뿐 아니라 숱한 생명가치들의 삶터이자 산란장이 모래와 자갈이다. 그 모래와 자갈을 강바닥에서 6미터 이상 퍼내고 10미터가 넘은 콘크리트 보로 영겁을 이어온 흐름을 계단처럼 열여섯 번 차단하며 제방을 틀어막는 전대미문의 토목공사를 ‘살리기’라니, 시인이 아니라도 좋다. 찾아가서 눈으로 본다면 누구라도 분노할 게 틀림없다. 백문이 불여일견 아닌가.

 

서슬이 퍼런 독재정권일수록 정부와 그 하수인은 시민들의 사회참여를 방해한다. 그래야 자신의 의도대로 예산을 집행하며 집권할 수 있지 않은가. 그를 위해, 불의를 보면 피가 끓는 젊은이들이 현실을 인식할 수 없게 만들 필요가 있다. 다짜고짜 물리적일 필요는 없다. 이른바 ‘3S’ 정책, 다시 말해 스포츠, 섹스, 스크린과 같은 말초적인 자극으로 관심사를 현실에서 멀어지게 하면 되는데, 이따금 소용없는 녀석이 나타나면 그때 무시무시한 공권력을 동원해야겠지. 그리 멀지 않았던 과거, 우리 군사독재 정권이 그랬다. 당시 많은 젊은이들이 모진 고문을 당하며 양심에 어긋나는 굴종을 강요당했다. 이제 군사정권은 물러갔다. 피가 끓는 젊은이의 멈추지 않은 행동을 물리적으로 도저히 막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행동하는 젊은이가 이 땅에 드문 건 불의가 사라진 까닭인가.

 

더글러스 러미스는 “민주주의의 반대는 경제성장”이라 했다. 경제성장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야한다는 소명의식, 뒤쳐지면 낙오되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돈벌이에 몰두하라는 위기 조장이 시민들의 양심을 짓누르는 시대가 되었다. 자본이 독재를 대신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거다. 군홧발보다 한층 교활한 자본 역시 시민들의 사회참여를 방해한다. 표준화한 시험으로 서열화하면서 저항을 포기하도록 길들인다. 자본의 하수인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말을 잘 들으면 성공할 것이고 아니면 국물도 없다는 걸 각인시킨다. 거기에 언어의 마술이 동원된다. ‘4대강 사업’을 모독된 언어로 강행하는 현 정권은 그 전범이다. 자본에 포섭된 언론의 간계로 시민의 눈과 귀를 막고, 이따금 저항하는 시민을 공권력으로 억압한다. 지방선거가 다가오자 선거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시민들의 의견 표명을 제한한다. 어떤가. 유권자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선거가 민주사회에서 의미를 가질까. 유권자의 행동을 억압하는 정권을 민주적이라고 평가할 역사는 없을 것이다.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이어 ‘4대강 사업’에 대한 젊은이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현 정부의 태도는 선거철마다 북한 위협설을 유포시켰던 과거 독재정권의 태도와 다르다고 확신하기 어렵다. 조계사 앞에서 수천 명이 모여 ‘4대강 사업’의 문제를 지적하는 수륙제를 수행해도, 명동성당 앞에서 만여 명이 모여 같은 목적의 시국미사를 거행해도 언론은 침묵했다. 일제고사와 토익 점수에 매달리다 심신이 지친 젊은이는 틈나는 대로 영상문화에 몰입하는데, 연예인들의 시시덕거림을 쏟아내는 건 손바닥 안의 전화기도 예외가 아니다. ‘4대강 사업’은 쉬지 않고 문제점도 드러내지만 이 땅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피가 뜨겁다는 걸 경험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4대강 사업’으로 토목 자본에 막대한 세금을 몰아주는 정부는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에 이어 섬진강까지. 이 땅의 혈관이자 젖줄을 오염시킬 뿐 아니라 정체시킨다. 문화와 역사를 간직해온 4대강이 유구했던 흐름을 멈춘다면 이 땅에 생명을 의탁할 젊은이는 내일은 기약할 없다. 대학입시와 취업과 승진을 위한 표준화된 시험에 주눅이 든 젊은이를 뒤집힌 언어로 회유하면 피를 식게 해 행동을 차단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지, 정부는 2년 전 촛불집회에 참여한 젊은이에게 반성을 요구했다. 자본이 지휘하는 돈바람과 화려한 영상문화에 길든 젊은이를 굴종시킬 절호의 기회로 삼는 것인가.

 

자신에게 덤벼드는 매를 보는 순간 꿩은 낙엽 더미에 대가리를 박는다. 그런다고 매가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 내장까지 파고드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너무나도 쉽게 허리춤을 낚아채는 매는 칼날 같은 부리로 살점을 뜯어낼 것이다. ‘4대강 사업’을 외면한다고 추악한 본질과 드러난 환경 폐해가 사라질 리 없다. 뒤집힌 언어로 젊은이의 눈귀를 교란하며 행동을 막는다고 다음 세대의 생태계가 보전되는 게 아니다. 연예인의 이름과 취향은 두루 꿰지만 내 지역 선량 후보의 이름과 그 됨됨이를 전혀 모르고 관심도 없는 젊은이들이여! 차분히 생각해보라. 누구의 말에 자신의 내일을 맡길 것인가. 뒤집힌 언어에 굴종하며 자신의 피가 맥없이 식어가도 좋은가.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지율스님은 저항의식을 잃지 않은 젊은이들과 낙동강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순례를 멈추지 않는다. 신경림 시인은 현장에 가서 강이 처참하게 살해되는 현장을 부릅뜬 눈으로 지켜보라고 당부했다. 행동을 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을 거라면서. 그렇다. 우선 알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행동에 힘이 생긴다. 거기에 하나 더. 백문이 불여일견이지만 백견이 불여일행이다. 백번 본다고 ‘4대강 사업’이 중단되는 건 아니다. 실상을 알았으니 피가 끓을 터. 양심이 이끄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 행동이 이 땅을 독재로부터 다시 구해낼 수 있다. 행동은 여러 가지다. 민의를 반영해야 마땅한 선거도 그 중의 하나인데, 지방선거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요즘세상, 201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