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2. 6. 28. 12:55

   믿음과 과학이라는 다른 영역

 

부모가 정한 배필과 얼굴을 모르는 채 결혼하는 젊은이는 요즘 없을 텐데, 중매는 더러 남았을까. 좀 진부하지만, 연애결혼과 중매결혼, 어느 쪽 부부가 돈독한 관계를 오래 이어갈까. 연애도 믿지 못해 동거부터 했다는 부부가 있는 세상이다. 그래서 그런가. 대학가에 새로운 풍속도가 생겼다는 이야길 몇 해 전에 들었다. 학기 마무리할 즈음, 과외교사 아르바이트로 돈 버는 학생이 많은 대학가에 가면 멀쩡한 가전제품이 중고로 나온다는 게 아닌가. 방학이 시작될 때 헤어지며 내놓는 가전제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자기야, 나 사랑해?” 변치 않는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연인 중에서 주로 여성들이 그런 질문을 던질 텐데, 이어지는 남자 친구의 대답, 과연 믿을 만할까? 팔을 양쪽으로 한껏 펼치며 하늘만큼 땅만큼!” 아무리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해도, 남녀의 사랑은 말 뜻대로 믿기 어려운 게 동서고금의 사실이다. 만약 여자 친구가, “증명해봐!” 하고 요구한다면 남자 친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선물 공세? ? 여자 친구와 관련된 이에게 온갖 친절과 배려? 하지만 그래도 소용없다. 어느 한 쪽이 싸늘해지면 온갖 약속들은 그 순간 시들해진다. 예나 지금이나, 남녀 사이의 사랑은 당사자가 서로 믿어야 오래 이어진다. 증명은 그저 신기루일 뿐이다.


종교는 믿음이다. 거리를 지나갈 때, 은근히 다가와 도를 믿습니까?” 하는 종파도 있고, 목사의 독특한 억양, “믿쑵니까?”로 유명한 교회가 있다. 종교는 믿느냐고 묻는다. 종교의 교리마다 큰 가르침이 되는 말씀이 많지만, 기본적으로 종교는 믿어야 순조롭게 출발할 수 있다. 기독교를 보자. 창세기든 신약전서든, 상식을 벗어나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걸 의심하고 증명하자고 대들면, 신학자는 참 난감하리라. 갈릴리 호수 근처의 빈들에 운집한 인파를 배불리 먹은 건, 오병이어라고 성경은 주장한다.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여성과 아이를 제외하고도 5천 명을 먹였고, 또 잔뜩 남았다는 주장, 누가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믿음과 달리 과학은 증명이 가능해야 한다. 당장 명확한 증명이 어렵더라도 증명이 가능한 이론을 납득할 수 있도록 제시할 수 있어야 과학은 성립한다. 증명이 확실할 뿐 아니라 다른 과학자들이 반복 증명할 수 있어야 최초 연구자는 논문을 쓸 자격이 있다. 기독교가 과학을 압도했던 시절, 당시 사회통념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학설도 증명이 가능했기에 과학이 되었고, 이제 과학 교과서에 당연하게 실린다. 교리에 맞지 않아 가설이 부정되거나 심지어 가설을 제시한 과학자가 목숨까지 내놓아야 했지만, 과거 역사였다. 지금 교계는 당시의 무지와 횡포를 사과했다. 믿음의 영역인 종교와 증명의 영역인 과학은 충돌할 이유가 없다는 걸 인식한 이후의 일이었다.


최근 우리나라 과학 교과서가 대폭 손질될 거라는 소문이 돈다. 한 종교단체의 청원을 받아들여 파충류에서 조류로 진화하는 중단 모습을 가진 시조새 화석의 내용을 빼겠다는 건데, 그 소식을 들은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카>세계적으로 개인의 지적 수준이 제일 높다고 알려진 나라에서 벌어진 이번 일은 무척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뿐인가. 과학자라면 논문을 기고하고 싶어 하는 과학저널 <네이처>한국, 창조론자들 요구에 항복하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고 한다. 그 잡지들은 특정 종교 집단의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이려 하는 시대착오적 비상식에 주목한 것이다.


     특정 종교를 갖는 과학자 모임인 창조과학회에서 세미나를 주최할 때, 고릴라 수컷을 청중에게 보여주면서 진화론자들은 이 동물이 인류의 어머니라고 주장합니다!”하며 선동한 적 있다. 한데 어떤 진화학자도 고릴라를 포함한 현재의 유인원을 인류의 조상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시조새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있지만, 그게 곧 진화를 부정하는 증거일 수 없다. 증명 과정에서 빚어지는 논란을 이유로 진화라는 과학을 부정하는 태도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믿음으로 사실을 전복하려는 일부 종교인의 태도는 큰 가르침인 종교에 대한 모독이며 반교육이다. 부끄러움을 넘어 안타깝다. (요즘세상, 201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