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6. 10. 20. 01:59
 


더러운 곤충의 대명사, 파리. 파리야 관심 없겠지만, 왜 그런 불명예를 뒤집어쓰게 되었을까. 그야 당연하다. 온 동네 개똥, 쇠똥, 사람의 똥 가리지 않고 꾀 앉았다가, 밥상머리 쌀밥 위에 앉고자 집요하지 않던가. 손으로 휘젓다 벌떡 일어나 파리채 불끈 쥐게 만드는데, 누가 더럽다 하지 않으리. 습성을 그리 타고난 파리야 억울하겠지만 사람들은 단정해버린다. 그래서 그런가. 더러운 돈 있는 곳에 모리배 몰리는 현상을 어른들은 ‘파리 떼 덤비듯 한다.’ 며 눈살 찌푸렸다.


인심 좋은 시골 식당엔 파리가 많다. 인심 때문이라기보다 파리가 좋아하는 환경이 주변에 널렸기 까닭일 텐데, 그런 식당의 주방은 파리가 덕지덕지 달라붙은 끈끈이와 더불어 물 채운 주방용 비닐장갑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는다. 제 모습이 확장돼 보이는 비닐장갑을 보고 파리가 달아난다나 뭐라나.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끈끈이보다 확실히 인간적이다. 파리약을 확 뿌리는 것보다 훨씬 환경 친화적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음식 찌꺼기 눌어붙은 식탁에 앉기만 하만 영락없이 내리꽂히는 파리채. 시골 식당의 바닥은 목숨 사라진 파리들이 즐비하다. 그래서 ‘파리 목숨’이라고 하나.


파리가 날아들어 밥상머리에 손을 자주 휘저으니 할머니께서 그랬다던데. “예야, 파리가 먹어야 얼마나 먹는다고 그러냐!” 누가 그런 우스개를 퍼뜨렸는지 알 수 없으나 파리채 휘두르다 과일가게 접은 옛 동네 할머니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것 같다. 노인네 드리라며 숨겨두었던 연시 슬쩍 꺼내주던 할머니는 대형 양판점에 정든 가게를 빼앗기기 전까지 이웃을 각별하게 배려했는데, 파리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양판점의 식품매장은 겉보기 친절해도 이웃을 기억하지 않는다. 파리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생산자 닦달해 값싸게 내놓은 상품을 과소비로 인계하는 양판점은 지불능력 없는 고객에게 더없이 차갑다.


산간 국도 변의 뱀닭집은 성가신 파리를 가끔 반긴다. 사업상 구더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뱀을 때려죽여 배를 갈라놓으면 파리가 달라붙어 알을 넣을 터, 알에서 나온 구더기가 무럭무럭 자라면 식당주인은 닭을 풀고, 구더기를 쪼아 털이 벗겨진 닭은 드디어 ‘뱀닭’의 반열에 올라 주인의 소득을 보장할 것이 아닌가. 뱀닭집은 그렇게 파리와 공생하는데, 뱀 내장에 내려앉길 주저하지 않는 파리는 도시 어린이가 눈 똥을 애써 외면한다. 각종 방부제와 착색제를 두루 함유하는 똥엔 농약성분이 뒤섞인 까닭이다. 어디 그뿐인가. 항생제와 환경호르몬까지 골고루 버무려지지 않았던가. 적어도 파리는 무엇이 제 새끼의 생명을 위협하는지 잘 안다.


밤샘회의가 깊어져 능률이 오르지 않자 주변 가게에서 사온 포도. 시커먼 게 어딘가 수상쩍다. 발색제를 처리한 듯싶다. 껍질 속 과즙이 가장 맛있는 게 포도지만, 주위 눈치 보며 먹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진동하는 포도 냄새를 찾아 갈라진 방충망 틈으로 들어온 파리가 내 판단이 옳았음을 고맙게 실증한다. 초대받지 않은 파리는 회의 테이블에 흩어진 포도송이와 소복이 쌓인 포도 껍질을 철저히 외면하는 게 아닌가. 파리는 곤히 잠든 사람을 겹눈으로 보며 뭐라고 생각할까. 우습다고? 아니 대단하다 여길 것이다. 진열되는 동안 상하지 않도록 방부 처리된 시커먼 포도는 사람의 장을 거쳐 곧 똥이 된다.


파리는 왜 앞발을 비빌까. 유치원에 나비 반은 있어도 파리 반은 없다. 식품위생을 교육하는 재롱잔치는 파리를 어김없이 등장시키는데, 꼬마 배우는 꼭 앞발을 비빈다. 왜 비빌까. 참새와 싸우다 들켜 까치의 벌을 받게 된 파리는 싹싹 빌어 벌을 모면했는데, 그때부터 종아리를 맞은 참새는 톡톡 뛰어다니고 파리는 앞발을 비볐다고 구전 설화는 전한다. 사람의 음식을 먼저 시식한 데 따른 괘씸죄를 그렇게 그려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사실 빨판을 비벼 닦는 습성이다. 빨판에 먼지가 끼면 천장이나 유리면에 앉기 어렵고 냄새도 잘 맡을 수 없다. 물론 먹이도 잘 빨리지 않는다. 파리는 위생에 철저한 셈이다.


호주 원주민은 사막을 횡단하다 파리 떼를 만나면 몸을 맡긴다. 손을 아무리 휘둘러도 소용없던 백인 의사는 달려드는 파리 떼로 괴로웠는데 몸을 맡긴 원주민은 어떠했나. 귀와 콧구멍까지 들어간 파리들이 찌든 땀을 모조리 핥아 먹자 몸은 깨끗해지고, 더 먹을 게 없는 파리는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게 아닌가. 약품과 수술도구가 모자라면 군의관은 부상부위에 구더기를 처방하기도 하는데 상처가 오히려 잘 아문다고 한다. 곪은 부위를 먹어치울 뿐 아니라 새살이 돋도록 자극한다는 것이다. 비닐장갑에 끈끈이도 모자라 파리채를 휘두르는 사람을 치료해주는 파리, 그래도 더러운가.


하마는 덩치에 비해 꼬리가 짧다. 그런 하마 꼬리는 탄력이 좋은가보다. 파이프 재떨이를 위해 고릴라 발바닥을 밀렵꾼에게 사들이는 백인은 파리채를 잘라내기 위해 하마를 쏘아 죽였다던데, 파리만 보면 살충제를 마구 뿌려대는 사람은 몇 안 되는 초파리 종류에 더 없이 관대하다. 유전학자는 구더기를 더러워하지 않을 게 분명한데, 첨단으로 치달아가는 생명공학은 초파리에 신세진 바 크다. 초파리와 해파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긍정적으로 기대하는 생명공학은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 초파리가 돕지 않았다면 유전자 조작의 위험성도 생명복제의 비윤리성도 없었을 것을.


인가로 스며드는 악취를 없애자고 항공방제를 서두르자 평소 바글거리던 파리 대신 못 보던 파리가 쓰레기 매립장 주변에 나타났다. 그 파리는 살충제에 끄떡없고 방제액을 뒤집어 쓴 개 목장은 기형 송아지 낳은 목장과 함께 망하고 말았는데, 아직 파리가 많은 시골은 밀가루가 요긴하다고 한다. 빵을 빚기 위한 용도는 물론 아니다. 구더기가 기어 올라오는 바깥 변소에 뿌려야 하기 때문이란다. 구더기를 죽이는 밀가루는 기계로 반죽돼 빵으로 대량 생산된다. 밀가루 반죽이 자동기계에 들어붙으면 차질 생기는 자본은 빵에 향료와 색소만 첨가하는 게 아니다. 그런 빵을 먹는 사람은 자식에게 아토피를 물려주는데, 사람의 요즘 똥과 시커먼 포도를 외면하는 파리는 밀가루에 속수무책이다. 파리는 밀가루가 두렵다. (물푸레골에서, 2006년 11월호)

어릴 때 파리나 모기가 싫어 펄펄 뛰는 나에게 외할머니께서 그러셨죠.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아무리 하잘 것 없는 것이라도 다 있게 된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요. 음, 파리도...우리 사는 세상의 일원으로서 맡은 역할이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 것들 거스르는 건 사람밖에 없을 듯하군요. 스스로 거스르기만 할 뿐 아니라 다른 것도 거스르게끔 고쳐놓고 의기양양하기까지...ㅡ.ㅡ
그래서 수입밀가루를 먹으려면 참 억울한 생각이 들더군요. 돈 주고 독이 가득한 것을 사먹다니.. 다른 나쁜 음식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아이들 아토피를 가장 많이 일으키는 것이 달걀, 밀가루, 우유의 순이라고 하더군요. 수입 밀가루 때문이겠지요?
음....밀가루....진즉 그런음식인줄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가끔은 빵집을 들러 한아름 빵을 들고 나온다.
미안하다 아그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