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5. 12. 12. 22:59

 

억세게 재수 없는 일이다. 배고파 기웃거리다 그만 문어통발에 걸려들었으니 고래의 체통이 이만저만 구겨진 게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다. 문어가 늘어난 것도 아닌데 문어통발의 수는 왜 갑자기 증가했을까. 혹시 밍크고래를 잡으려 쳐둔 것은 아닐까. 다른 목적의 그물에 우연히 잡히는 이른바 ‘혼획고래’가 2003년 세계적으로 226마리에 불과했는데, 왜 그중 84마리가 한국에 집중되었을까. 112마리인 일본보다 적다지만 일본은 해안이 우리보다 훨씬 길다. 남아프리카는 그물에 걸린 4마리 고래를 모두 풀어주었다는데, 왜 한국과 일본은 풀어주지 않을까.


바다의 로또! 요즘 우리 어부들은 고래를 그렇게 비유하는 모양이다. 작고 맛이 떨어지는 돌고래 종류를 제외하고, 밍크고래는 혼획이 드물었던 시절, 1억 원을 호가했다니 문어통발이나 까나리 안강망을 설치한 어민들은 가슴이 설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혼획고래가 잦은 요즘, 경매 값이 삼분의 일로 떨어졌다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어족자원 보호 차원에서 자제하자는 국제사회의 권고와 무관하게 정치망을 쳐둔 어민들은 돼지꿈보다 “우와! 로또가 당첨되었다!”는 밍크고래꿈을 선호할 것이 틀림없다.


언론은 바다의 로또로 횡재한 어민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한다. 20여일 전 설치한 문어통발을 옮기려다 밧줄에 주둥이가 걸려 죽은 밍크고래 한 쌍을 5천여 만 원에 경매에 넘긴 포항시 어민, 새우통발에 밍크고래가 두 번이나 혼획돼 이웃들에게 한턱 쏜 양양군 어민, 삼년 연속 밍크고래를 혼획해 짭짤한 수입을 챙긴 울산 어민, 죽어 떠다니던 밍크고래를 건져 5600만원을 짜릿하게 나눈 선원들, 어획부진으로 자식 교육시키기 힘겨웠는데 혼획한 밍크고래로 말할 수 없이 기쁘다는 삼척 어부, 어획량이 줄어 생활이 어려운 두 선원 아들을 둔 태안의 한 선주는 까나리 안강망에 걸려죽은 밍크고래로 3800만원을 받고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고, 언론은 흐뭇해한다.


세계적으로 분포하는 80여 종의 고래 중에서 35종이 지나가거나 서식하는 우리 연안은 돌고래 종류를 제외하고 밍크고래가 연안에 흔히 나타나고 향고래를 비롯한 나머지는 어쩌다 관찰될 정도라고 한다. 일본의 싹쓸이 포경으로 동해에서 자취를 감춘 귀신고래도 1977년 이후 오호츠크해 이외에는 모습을 일체 드러내지 않는다는데, 환경단체들은 귀신고래의 귀환을 애타게 기다린다. 출몰하는 고래의 다양성과 개체수는 그 나라 해양 생태계의 건강을 웅변하는데, 귀신고래는 그 바로미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귀신고래는 고사하고, “심봤다!”로 고래를 맞이하는 우리 분위기에서 2500마리 정도 서식하는 밍크고래조차 제대로 보호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청동기부터 고래잡이에 나선 민족답게 울주군 언양읍과 장생포항에 고래 사냥하는 모습이 암각화로 바위에 남아있는 국가의 어민들은 현재 불만이다. 상업용 가치가 높은 꽁치와 대구까지 먹어치우는 고래의 식성으로 연근해어업이 위기에 처했다고, 포경 금지 이후 개체수가 꽤 회복됐으니 수산자원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적정 개체수 이내로 솎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년 6월 울산에서 열린 국제포경위원회 총회에서 우리나라는 한반도 주변 수역의 밍크고래 공동조사를 일본과 중국과 러시아에 제의했다. 개과천선하기 이전 지독한 포경국가였던 영국과 네덜란드가 한국과 일본의 혼획 의도에 잠시 위혹을 제기했지만 한국의 성실한 조사 약속을 믿고 만장일치로 가결했다고 소식통은 전한다. 플랑크톤을 주로 먹는 것으로 알려진 밍크고래가 문어와 오징어, 꽁치와 까나리를 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사해보아야 알겠지만, 식성이 변했기보다 온난화된 바다에 즐기던 동물성플랑크톤이 그만큼 줄었기 때문이 아닐까. 오죽 허기졌으면 통발과 그물로 범벅인 연근해까지 접근할까.


7미터 전후에 12톤에 달하는 몸집이 유연한 밍크고래는 회색을 띈 검은 등에서 은회색 배까지 우아한 색체가 눈부시게 이어지고, 11월 이후 번식해 10달 만에 한두 마리의 새끼를 낳는 체온 따뜻한 포유동물이다. 일부일처의 가족단위로 움직이고 새끼를 극진히 보살피는 행동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기 충분한데, 1970년 이후 대서양에서 잡히는 밍크고래의 번식현황을 분석하니 최근 들어서면서 13살 이후였던 최초 번식시기가 7년이나 당겨졌다고 전문가는 전한다. 코끼리와 참치에서 흔히 나타나듯, 인간들의 포획이 늘어나면서 어린 나이에 번식에 나선다는 것이다. 한데, 혼획고래 고기가 없어서 팔지 못하는 우리나라에서, 사람의 결혼연령은 점점 늦어진다. 어떤 대조인가.


『지구 끝의 사람들』에서 루이스 세풀베다는 고래의 살신성인을 감동적으로 묘사한다. ‘과학포경’을 빌미로 남태평양에서 고래들을 닥치는대로 잡아들이는 일본의 대형 포경선 니신마루 호를 환경운동가는 작은 보트로 추격한다. 니신마루 선원들은 접근하는 보트에 고래 피를 호스로 내뿜고, 죽음을 각오한 환경운동가는 낡은 보트와 함께 바다 밑으로 가라앉을 찰나였다. 어떤 선체에 실린 듯 갑자기 물 위로 떠오른 보트는 바닷가로 인도되고, 환경운동가를 안전한 곳에 내려놓은 거대한 고래는 있는 힘을 다해 니신마루의 이물에 돌진한다. 쿵! 그 충격에 이물이 뒤틀린 니신마루 호는 엔진이 멈추고, 고래는 숨을 거둔다.


인간 이외에 천적이 없는 고래들은 전생에 무슨 미련이 남아있기에 인간에게 아직 관대할까. 저보다 늦게 진화돼 나타난 인간에게 청동기부터 숱한 작살 세례를 받았건만, 조난당한 사람들을 아직도 챙겨주고, 구조될 때까지 동정어린 시선을 보낸다. 앵벌이로 생포돼 입장료 수입을 챙겨주는 돌고래도, 의심스런 혼획으로 속절없이 건져 올라오는 밍크고래도, 인간의 욕심으로 생존이 경각이건만, 사람들은 솎아내기 포경을 제안하고 나선다.


지나친 포경은 동물성 플랑크톤의 폭발적 증가로 이어지고, 늘어난 동물성플랑크톤이 식물성플랑크톤을 과하게 포식하자 바다의 산소공급능력이 그만 위축되었다. ‘고래는 바다 생태계의 균형자’인데, 지구온난화에 이은 난폭한 포경은 지구 환경에 대한 러시아 룰렛이라고 환경전문가는 걱정한다. 지금은 솎아내기를 운운할 정도로 고래의 서식 현황과 생태계가 한가롭지 않다고 포경업자들에게 자제를 당부한다.


고래를 먹지 않아도, 고래 기름으로 잉크와 화장품을 만들지 않아도, 사람들의 건강이나 영양이나 문화나 교양은 거의 위축되지 않는다. 고래를 잡지 않아 생기는 손해는 생명이 달린 고래에 비해 사소하다. 넉넉함의 상징인 고래마저 먹어치워야 할까. 사람은 언제 편협한 욕심을 접을지, 위기의 밍크고래에게 물어야 하나. (물푸레골에서, 2006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