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0. 11. 30. 17:28

 

《바나나》, 댄 쾨펠 지음, 김세진 옮김, 이마고, 2010.

 

맛과 향이 그만인 바나나. 참 좋은 음식이다. 섬유소가 풍부하고 당분도 적당해 고기로 몸이 망가진 이에게 더없이 좋다. 1980년대 초 거금을 주고 바나나를 먹던 날이 기억난다. 당시 제주도는 온실에서 바나나를 재배했다. 생태조사를 떠난 대학원생은 신혼부부를 상대로 파는 바나나가 그렇게 먹고 싶어 지갑과 상의한 뒤 한 송이 구입했다. 당시 500원. 대학등록금이 20만 원이었으니 지금이라면 한 송이에 만원은 되었으리라. 그걸 반으로 쪼개 후배와 나눠 먹었다.

 

그로부터 10년 뒤 세미나를 위해 미국에 가서 호텔에 여장을 푸는데, 로비에 바나나 다발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마음껏 갖고 올라가라는 게 아닌가. 재빨리 커다란 다발 하나를 챙겼는데, 그 호텔을 나올 때까지 절반 이상을 남겨야 했다. 20년이 더 지난 요즘, 우리는 야구 글러브 두개 포갠 크기의 바나나 다발을 고속도로 접속도로에서 오전 3000원, 오후 2000원에 살 수 있다. 기다란 바나나는 맛이 없다고 외면하는 사람도 많을 만큼 바나나는 흔해졌다.

 

바나나가 멸종위기라고? 미국의 과학저널리스트 댄 쾨펠이 “세계를 바꾼 과일의 운명”이라는 부재를 단 《바나나》를 펴내면서 그렇게 주장한다. 쌓여도 곁눈도 주지 않을 정도로 널린 세계 곳곳의 바나나들은 유전자가 모두 같아 환경변화에 무척 취약하다는 거다. 사실 바나나 업계는 곰팡이가 매개하는 몇 가지 질병에 속수무책이라고 밝힌다. 질병이 창궐하는 순간 죽어 널브러지는 나무들만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된 원인은 다수확품종의 바나나를 획일적으로 심은 사람이 저지른 일이라고 지적한다.

 

우리가 먹는 바나나에는 씨가 없다. 아주 작아 보이지 않거나 입에서 느낄 수 없는 게 아니라, 어떤 원인인지 모르지만 씨를 갖지 않는 바나나가 우연히 생겼고, 농장은 그 바나나 나무에서 장미 꺾꽂이와 비슷하게 똑같은 나무를 수만, 수억 그루 만들어냈다고 한다. 물론 야생의 바나나까지 한 가지는 아니다. 세계적으로 1000종이 넘고 한입 덥석 물면 이가 부러질 정도로 단단한 씨가 가득한 새끼손가락 크기의 야생종도 수십 종류에 이르지만 욕심 사나운 사람들은 오로지 상품성 있는 바나나만 심은 것이다. 19세기 말부터 2차대전 전까지 그로-미셀 품종을, 그로-미셀이 곰팡이 병으로 사라진 이후 캐번디시 품종만 심는다고 댄 쾨펠을 전한다.

 

밀, 쌀, 옥수수 다음으로 생산량이 많은 바나나는 우리에게 꽤 괜찮은 간식이지만 많은 지역에서 기아를 해결해주는 절대 식품이다. 그러므로 판매량은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는데, 많은 지역은 자급자족을 위해 심는다. 한데 열대성 바나나를 온대지방에 심을 수 없는 노릇이니 미국을 비롯해 유럽, 그리고 일본과 한국에서 소비하는 양은 막대할 것이다. 그 수출량을 차지하기 위한 대기업의 각축은 무시무시하다. 피비린내난다. 소문에 의해 어느 정도 짐작하는 그 잔인무도한 역사를 댄 쾨펠은 소상하게 밝힌다. 그래서 《바나나》는 읽을 가치가 크다.

 

바나나는 나무가 아니라 다년생 풀에서 재배한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먹은 과일은 사과가 아니라 바나나라는 주장을 소개하면서, 이스라엘의 기후조건은 사과보다 바나나를 재배하기에 적당하다는 걸 귀띔하는 댄 쾨펠은 인도가 그 원산지라고 말한다. 인도에서 스리랑카를 스치며 순다만을 따르다 동남아시아와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바나나 모양의 지역에서 자생하는 바나나를 처음 알줄기를 먹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다 돌연변이가 일어나 단단한 씨가 사라진 열매가 맺혔고, 수많은 시행착오 과정을 거치며 지금과 같은 과일이 되었을 거라 짐작한다.

 

도미니카 수도회의 한 수사가 1516년 산토도밍고에 들여놓자 기독교인 정착민에 의해 카리브 일원의 중남미로 퍼져나간 바나나는 150년 전부터 비극을 잉태하기 시작했다. 금방 상하니 운송이 어렵고, 그 만큼 가격이 비싼 바나나는 남북전쟁 당시만 해도 미국에서 사치품이었지만 줄기차게 운송 방법을 개선한 기업들의 경쟁으로 가격이 낮아질 수 있었다. 지금은 ‘돌'(Dole)로 회사명을 바꾼 ‘스탠더드 프루트’가 창안한 냉장운송은 중남미를 기반으로 수출하는 바나나 회사를 막대한 규모로 성장하게 했고, 관련 기업들은 지금도 막대한 권력을 휘두른다. 치키타와 돌이 그 대표다.

 

노벨상을 받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에서 바나나 농장 파업 노동자 3000명을 기관총으로 사살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는데, 1929년의 ‘콜롬비아 대학살’이 그 모델이었다. 바나나 가격을 더욱 낮추려는 미국 회사는 노동자에게 가혹한 대우로 일관했다. 그러자 의료 서비스와 화장실도 없이 일하던 노동자는 임금을 현금으로 달라는 당연한 요구로 파업에 돌입하자 콜롬비아 정부는 파업 노동자를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역자로 몰아 사살하고 만 것이다. 미국의 바나나 기업과 미 정부의 이익에 충성하던 중남미의 국가들을 이후 ‘바나나 공화국’으로 불렀다.

 

유전자가 동일한 단일 다수확 품종으로 획일화된 바나나에 내일이 있을까. 이대로 가면 바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댄 쾨펠은 유전자 조작을 조심스레 검토한다. 어쩌다 씨앗을 갖고 열리는 열매로 품종을 개선하는 방법은 무척 까다롭고 긴 시간이 필요하니 진달레나 무 유전자를 넣어 곰팡이에 견딜 수 있는 품종을 개발할 수 있다는 건데, 댄 쾨펠은 조작된 유전자의 수평이동에 의한 생태계 오염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유전자 조작된 바나나 역시 유전자가 획일적이며 다른 질병에 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안타깝게도 생각하지 않았다. 《바나나》의 유일하지만 큰 ‘옥에 티’다.

 

독재정권과 밀약하는 바나나 기업의 횡포는 현재진행형이다. 기아를 해결하는 바나나의 자급과 공정무역의 확산을 제안하는 댄 쾨펠은 유전자 조작 방법 이외 바나나의 내일을 비관하는데, 그럴까. 힘들더라도 야생종에서 다양성을 확보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우리와다음, 2011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