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2. 10. 24. 16:30

     건강한 길은 곡선이다

 

올 추석 연휴는 직장에 따라 길거나 짧다. 징검다리 휴일 사이의 평일까지 쉬면 길지만 아니면 짧은데, 귀경길 고속도로는 역시나 막혔다. 우리가 기억하는 고속도로는 늘 막힌다. 추석이나 설날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상황이 언제나 그랬다. 어디 명절뿐인가. 수도권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는 사시사철 막히고 요즘은 한낮이나 오밤중에도 예외가 없다. 고속도로는 막히려고 만든 느낌이 들 정도다.


고속도로만 막히는 건 아니다. 수도권으로 가까워질수록 국도든 지방도든 막힌다. 주말이 마무리될 즈음 서울로 이어지는 도로에 올라서면 가속페달에 발 올려놓을 일이 없을 정도인데, 저렇게 많은 차를 둘 공간이 서울 어디엔가 있다는 게 신기하다. 주말이면 도로를 막으며 빠져나가는 차들은 도시에 녹지 공간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걸 반영한다. 녹지가 도시 면적의 30퍼센트보다 좁으면 시민들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한다고 학자들은 진단한다. 그래서 유럽의 많은 도시들은 도시의 절반 가까이 녹지를 조성하려 애쓴다.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쉴 공간이 도시에 많다면 도로는 그만큼 한가해질 테고, 에너지는 절약되며 시민들의 건강도 나아질 게 아닌가.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 도로는 대부분이 막힐까. 우리는 출퇴근 시간의 수도권 도로들, 그리고 명절을 맞은 귀성과 귀경 장면이 눈에 익어 그렇지 사실 전국의 도로는 거의 뻥 뚫려 있다. 명절 때에도 전국을 사통오달 이은 고속도로들 대부분은 한가했다. 새로 뚫린 도로를 평상시 달려보라. 왕복 4차선 또는 6차선 도로에 오로지 내 차만 질주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시원하게 뚫린 도로의 비용 대비 효용성은 그렇듯 낮은데, 둘러보면 나란히 달리는 도로가 더 있다. 그 도로 역시 한산하기는 마찬가지다. 도로는 자동차를 위한 것인가 도로 만드는 자본을 위한 것인지 헷갈린다.


미국에는 주간고속도로가 바둑판처럼 배열돼 있다. 워낙에 땅이 넓은 미국에 비상사태가 발생해도 쉽게 대피할 수 있도록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었다는 그 고속도로는 건설 과정에서 적지 않은 환경문제를 일으켰다. 현재 주간 고속도로 좌우에는 일반 도로가 나란히 이어지고 그 도로 옆의 드넓은 평지에는 낮지만 면적이 거대한 상자 같은 건물이 줄지어 서 있다. 주변에 다닥다닥 붙은 승용차들을 거느리는 그 건물들은 쇼핑몰이다. 주택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지니 승용차 없으면 이동이 불가능한 미국은 값 싼 물건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파는 쇼핑몰이 지천이다. 덕분에 자원은 낭비되고 환경오염은 심화된다.


우리는 미국과 여러모로 다르다. 드넓은 평지가 없고 승용차 없이 불편할 정도로 주거지역과 생활공간이 분리된 것도 아니다. 산이 깊고 경사가 급해 고속도로를 만들려면 터널이나 절개지가 많이 발생하고 수많은 계곡을 메우거나 높다란 철근콘크리트 교각으로 경관을 망쳐야 한다. 그뿐인가. 평야지대를 가르는 고속도로는 작은 동산처럼 높이는 까닭에 오래 전부터 단란하게 지내온 마을과 마을 사이는 단절되고 만다. 멀쩡했던 마을 사이를 성벽처럼 가르는 경우도 다반사다. 소통을 단절하는 고속도로만이 아니다. 국도까지 고속화되면서 직선으로 높아지는데, 요즘은 지방도로까지 고속도로를 흉내내려 든다.


산은 강을 가로막지 못하고 강은 산을 넘지 않는다. 국토의 65퍼센트가 경가 깊은 산악지형이고 내리는 빗물의 절반 이상이 여름 한 철에 쏟아지는 특성 상, 우리의 강은 커다란 바위를 감돌며 굽이굽이 흐르다 평야지대를 유장하게 흐른다. 오랜 세월 그렇게 흐르는 강물에 기댄 온갖 생물들이 둥지를 틀었고 맨 마지막에 사람도 찾아와 삶을 얹었다.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길은 작은 시내로 이어졌고 고을과 고을을 이어주는 길은 강과 나란히 구부러졌다. 그 길에 사람만 오고가지 않았다. 토산품은 물론, 전설과 문화가 번져나갔다.


고갯마루를 넘어야 하는 가파른 길, 나룻배가 이어주는 뱃길은 문화라고 일컫는 삶의 방식을 구별하게 했지만 삶의 방식은 주어진 환경에 따라 좌우되는 법. 어떤 방식의 삶이 더 우월한 건 아니었다. 산간의 음식과 평야지대의 음식은 맛이 다를 뿐이다. 언어도 마찬가지고, 삶터의 구조와 제사상의 차림에 장단점이 따로 있지 않았다. 하지만 중앙과 지방을 구별하는 도로가 생기면서 지역에 어우러지던 삶의 방식에 우열이 생겼다. 도로가 커지고 빨라지면서 지방의 중앙 예속화는 시작되었고 고속도로는 심화시켰다. 백두대간을 따라 문화와 역사를 굽이굽이 이어오던 길을 바둑판같은 고속도로로 난폭하게 짓밟은 이후 지방은 어떻게 되었는가. 지방의 문화는 뿌리가 뽑혔고 학교와 병원은 숨결을 잃어간다.


전국을 바둑판처럼 잇겠다는 고속도로는 아직 당초 제시된 그림대로 전국을 토막 내지 않았지만, 지금도 산을 뚫고 계곡을 메운 대부분의 고속도로는 한산하기 그지없다. 이제 지방의 문화를 지우며 수도권 집중 현상을 심화하는 고속도로의 개설은 자제해야 한다. 아예 일부 고속도로는 폐쇄하는 게 낫다. 고속도로로 서울과 가까워진다는 게 지방 선량들의 치적이 될 수 없어야 한다. 김구 선생의 언설처럼, 지방은 그 지방이 갖는 고유 역사와 문화를 살리며 아름답고 평화롭게 사는 것이 당대는 물론 후손에게 행복하다는 걸 깨달을 때가 되었다. 숱하게 경험해왔듯, 예속된 삶은 행복하지 않다.


요사이 가설하는 많은 고속도로는 국가나 지방단체는 물론이고 도로공사도 배제된 상태에서 민간 건설회사가 맡고 있다. 이윤이 창출되지 않으면 접근하지 않는 민간 기업이 고속도로를 지으며 챙기는 세금은 실로 막대하다. 해마다 10조 가까운 세금이 도로의 개설과 유지에 들어간다. 그를 위해 지방은 소외되고 마을을 단절되며 후손이 누려야 할 생태적 자원의 혜택은 파괴된다. 그뿐인가. 우리의 삶과 문화도 획일화되어 중앙에 예속된다. 예속된 자들은 중앙의 기준에 의해 분류되어 우열이 구별될 것이다.


     지방화 시대는 고속도로를 거부하는 데에서 출발할 수 있다. 명절이면 귀성과 귀경 인파와 차량이 일부 고속도로에 아직 넘치지만, 머지않아 수도권에 몰려 살던 젊은이가 나이 들면 사정이 바뀔지 모른다. 지방의 문화가 살아 있던 시절, 길은 곡선이었다. 그때 하늘은 맑았고 물은 깨끗했다. 길이 곡선일 때, 사람도 생태계도 건강했다. (작은책, 2012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