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1. 5. 11. 02:20

 

소복을 입은 귀신은 왜 월하의 공동묘지에 나타날까. 요즘 공원묘지는 야밤에도 데이트 코스가 되었지만 예전에는 아무도 다가갈 수 없게 으스스했다. 보름달이 뜬 날이면 긴 머리를 풀어헤친 귀신이 한줄기 바람과 함께 나타나, “서방님!” 하며 건장한 남정네를 찾는다고 했다. 한을 품고 죽은 젊은 여성이 묻혔는지 몰라도 <전설의 고향>은 그렇게 말을 꺼냈지만, 사실 귀신은 보름보다 그믐날에 나왔겠지. 흩어진 시신들에 뿌리를 두고 높이 솟은 나무가 벼락을 맞으면 가운데가 시커멓게 타서 여기저기 볼품없게 서있을 터. 달이 없는 야심한 밤, 한낮의 햇빛을 머금은 고목은 인광을 스멀스멀 내놓을 테고, 담력을 으스대던 사내도 그만 겁에 질리고 말았을 게다.

 

인공위성도 눈부시게 할 요사이의 조명은 공원묘지는 물론이고 웬만한 시골길까지 밝혀 월하든 그믐이든 머리 풀어헤친 귀신은 알현하기 어려운데, 이번엔 대낮에, 그것도 바다에서, 사람 귀신이 아니라 귀신고래를 찾겠다고 과학자들이 나섰다. 올해로 벌써 9년째다. 여름철 오호츠크해에서 먹이를 충분히 먹은 귀신고래들이 출산과 육아를 위해 한반도 남쪽으로 이동하는 12월에서 1월 사이, 동해안으로 탐사를 나가는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의 과학자들은 꼭 관찰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 단단하다. 그 귀신고래는 울산에서 연구한 1912년 미국의 박물학자 로이 앤드루가 일찌감치 학술적으로 기록한 한국계라고 하지 않던가. 귀신고래가 지나는 걸 확인하면 일본해로 인식된 동해를 세계만방에 알랄 수 있으리라.

 

휴식을 취하는 듯, 명상에 잠긴 듯, 따개비들이 덕지덕지한 머리를 물 밖에 내민 채 가만있다가 포경선이 나타나면 귀신처럼 사라졌던 귀신고래가 19771월 울산 방어진 앞바다에서 발견한 뒤로 최근까지 목격되지 않아 멸종을 염려했는데, 소식통에 따르자니 아직 생존해 있다고 한다. 오호츠크해와 연하는 사할린 북동부 해역에서 무려 100여 마리나 관찰되었다는 게 아닌가. 그래서 초조한 나머지 국립수산과학원은 2008년부터 포상금을 걸었다. 동해에서 유영하는 귀신고래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가져오면 500만 원을 내놓겠다고. 하지만 야속한 귀신고래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수명이 사람과 비슷한 귀신고래는 울산의 포경선을 여태 기억하는 걸까.

 

해안의 바닥에 갯지렁이나 작은 새우들이 풍부한 오호츠크해에서 여름철을 보내며 먹이를 실컷 먹는 것으로 알려진 한국계 귀신고래는 새끼를 낳으러 깊지 않은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자마자 위기에 부딪힌다고 한다. 거의 제 자리에 있는 가스전은 일단 경험한 뒤에 피할 수 있다지만 유정은 바다 밑의 생태계를 변질시킨다. 더 큰 방해꾼은 번질나게 오가는 선박들과 길을 미로처럼 차단하는 온갖 그물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무리 학수고대를 해도 2009년 고래 암각화가 있는 울산광역시의 길촌마을 입구에 귀신고래를 닮은 바위가 발견되는 게 고작이더니, 웬걸! 2010710, 왕년에 고래잡이로 뼈가 굳은 일군의 어부들이 동해에서 드디어 귀신고래를, 얼씨구나! 두 마리나 보았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뜻하지 않게 꽁치그물에도 걸리는 밍크고래를 제외하면 우리 연안에는 대부분 돌고래 종류에 그쳤지만 이제 귀신고래도 당당하게 추가할 수 있게 된 것인데, 정작 논문으로 세계만방에 그 사실을 고하려는 과학자들이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몸길이가 16미터, 무게가 45톤까지 자라는 귀신고래는 덩치 큰 다른 고래와 달리 바닷가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해안에서 자맥질하며 이동하는 까닭에 새해 첫날 해맞이 인파가 모이는 울산의 간절곶에서 충분히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기다려보자. 어쩌면 5미터 쯤 되는 새끼에게 지방이 잔뜩 포함된 젖을 먹이며 미역을 뜯는 어미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조상은 일찍이 울주군 반구대에 귀신고래의 암각화를 남기지 않았던가.

 

일제가 우리 땅과 바다를 강점하기 전에만 해도 참고래와 함께 가장 흔했다는 귀신고래는 소문을 들은 서양의 포경선의 무차별 남획과 뒤를 이은 일제의 싹쓸이가 성행하면서 급격히 사라졌고, 일제가 물러난 뒤에 우리도 해마다 수십 마리나 잡았다고 한다. 이제 반성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물에 걸리거나 대형 선박과 충돌하곤 하니 간신히 살아남은 귀신고래가 얼씬하고 싶기나 할 것인가. 그래도 다시 가까이에서 만날 희망은 버리지 말자. 한때 수천마리로 줄었던 북아메리카 연안의 귀신고래는 미국이 체계적으로 보호하자 2만 마리 이상 늘었고, 다가가 피부를 쓰다듬을 수 있을 정도로 반갑게 맞게 되면서 관광산업이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지 않나. 뒤늦은 안타까운 마음에 1962년 귀신고래가 회유하는 울산 앞바다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건만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바닥에 수 미터의 흔적을 남길 정도로 커다란 입을 벌려 먹이를 먹고 찌꺼기를 뱉어내는 귀신고래 덕분에 바다생물들을 모여들어 어장은 이내 풍성해졌다 하고, 출산 뒤 우리 동해안에서 미역을 뜯어먹는 귀신고래의 행동은 한국인에게 출산 뒤 미역국을 먹는 풍습을 귀띔해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고마운 귀신고래는 우리 남해안 연안으로 내려와 보통 한 마리의 새끼를 낳고 여름 전까지 오호츠크해로 돌아간다는데, 현재 130여 마리가 남았고, 해마다 3퍼센트 정도 늘어난다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다행히 17세기에 멸종시키고 만 대서양의 귀신고래보다 신세가 나은 편이지만, 아직 심각한 멸종위기 등급을 유지하는 실정이다.

 

회유하던 귀신고래가 그물에 걸려 5마리가 죽자 미국은 이동 경로의 그물을 규제하고 선박과 충돌을 막기 위해 위성추적까지 나선다. 그물에 걸린 귀신고래를 즉각 놓아주면 25천 달러의 포상금을 지원할 정도다. 귀신고래를 잃은 뒤 공허했는지 울산시는 8억 원의 예산을 들여 정자항 인근의 방파제 등대 2기를 귀신고래가 수면으로 떠오르는 형상으로 개조했다. 그러니 귀신고래가 우리의 참회를 이제라도 귀신같이 알아채고 노여움을 풀 것인가. 해마다 5월이면 울산에서 열리는 고래축제 현장에서 제발 고래고기는 치우고,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울산 앞바다를 으스스하게 여기지 않고 귀신고래들이 서방님 찾듯 따뜻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배려하려는 마음의 준비라도 진정성 있게 했으면 좋겠다. (전원생활, 2011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