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1. 4. 8. 09:27

 

41일 만우절에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악의 없는 거짓말들이 넘쳤다. 거짓말은 3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흔히 말한다. 만우절 때 꾸며내는 식의 악의 없는 거짓말이 하나라면 남을 궁지에 몰아넣고 이익을 챙기려는 악의 있는 거짓말이 둘이고 마지막으로 통계가 있다고 한다. 통계는 악의를 가진 어떤 거짓말보다 위험하다는 의미를 담은 말이다. 피해자에게 적용하는 확률론은 그런 통계를 여지없이 반영한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발생 가능성을 토론하는 텔레비전 방송에서 어떤 경제학자는 로또복권에 당첨돼 은행으로 찾으러가다 벼락 맞아 죽을 확률에 비유하며 빈정댔다 구설수에 오른 적 있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는 인구와 그 중 광우병에 걸린 수를 비교하면 그 확률에 그친다는 주장이었지만 광우병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는 그 따위 확률론에 어떠한 위로도 받지 못할 것이다. 식중독으로 사망하는 이는 O157대장균에 오염된 쇠고기를 먹은 인구보다 훨씬 적지만 당국은 문제의 쇠고기를 전량 폐기하며 거액을 쓴다. 확률보다 소비자의 안심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확률론으로 떠들썩하다. 쉽게 발음하기 어려운 단위를 앞세우는 확률론은 방사능에 오염된 물을 하루 씩 2년 반 동안 마셔도 엑스레이 한 번 촬영하는 정도에 그친다는 정부의 주장에서 백미를 보여주었다.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날아온 방사능이 빗물에 섞여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 내놓은 발언은 안심해도 좋을 정도로 작은 양이라는 통계적 지적이었지만 어떨까. 그러므로 마냥 안심해도 좋은 것일까.

 

정부는 걸핏하면 엑스레이 촬영에 비교하지만, 엑스레이도 천차만별이다. 가슴 한 번 찰칵 찍고 마는 엑스레이가 있는가 하면 전신을 누비듯 찍어대는 엑스레이도 있다. 정부가 운운하는 엑스레이는 어느 수준인지 궁금한데, 엑스레이 촬영 때 노출되는 방사선량도 누적되면 위험하다. 그래서 관련 전문의와 종사자는 절대 자신의 몸을 방사선에 노출되지 않으려 애를 쓰지 않던가. 진단을 위해 피할 수 없는 환자라 해도 불필요한 부위에 방사선이 노출될까 걱정하는데, 멀쩡한 이가 공연히 엑스레이 촬영에 임할 리가 있는가. 방사선이 세포 속의 유전자를 건드릴 경우 암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데.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우리나라로 직접 날아오든, 북극권을 우회해 날아오든, 아니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아주 작은 농도로 날아오든, 시간이 지날수록 대기에 농축되는 이번 방사능은 엑스레이와 같이 몸을 투과하는 성분이 아니라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요오드나 세슘과 같은 방사성 물질이 호흡이나 음식을 타고 몸에 흡수될 수 있다는 거다. 비록 낮은 확률일지언정 일단 몸에 방사성 물질이 흡입된다면 반감기가 거듭 이어져 안전한 물질로 변하기 전까지 방사선에 직접 노출될 수밖에 없으므로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방사성 요오드의 반감기는 7일이지만 세슘은 30년이다. 먹이사슬로 지구를 돌아 우리는 물론 후손의 몸에 흡수될 확률은 그만큼 높아진다.

 

요오드와 세슘에서 반감기가 24천년이고 치명적인 방사선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진 플루토늄까지 기준치의 수천에서 수만 배 오염된 수증기가 대기로 방출되고 수천만 배에서, 심지어 1억 배 이상 검출된 물이 바다로 버려지는 이때, 안심하고 비를 맞고 일상생활에 임하라는 정부의 권유는 시민 모두에게 러시안룰렛에 도전하라는 의미로 들린다. 1만분의1 확률이므로 안전하다는 말은 만 명이 들어간 체육관의 관중석에 총 딱 한 발을 쏠 테니 걱정 말라는 주장과 같다. 그런 말에 위안을 받을 이 드물 것이다.

 

이번 방사는 오염은 일시적 현상으로 그칠 리 없다. 상황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을 전문가들이 걱정되는 가운데 오늘도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방사능을 유출하고, 이미 유출된 방사능이 지구촌 곳곳에 확산되는 실정이 아닌가. 일시적 노출량으로 분석하는 확률론은 대안일 수 없다. 핵발전소 조속한 폐쇄와 확산방지를 전제로 하는 대안과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와 후손은 비로소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세상, 2011.4.24.)

 
 
 

자원·에너지

디딤돌 2011. 4. 8. 02:17

 

어젯밤부터 내리던 비가 하루 종일 이어진다. 어제 수도권의 한 시민단체에서 활동가들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내일 아이들 등교를 막아야 하는 게 아닌가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정부와 관련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이야기, 기준치 이하이므로 괜찮다, 엑스레이 한번보다 몇 분의 일에 불과하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고, 그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걸 알아도 아이들의 등교를 막아야 한다고 활동가들은 반응했다. 핵에 대한 경각심을 사회적으로 높여야 하기 때문이라면서.

 

아닌 게 아니라 제주도를 비롯한 전국에 방사능이 섞인 비가 내렸다. 전문가들이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고 여전히 강조했지만 제주도의 경우 이틀 전에 비해 농도가 7배 이상 높아진 방사성 요오드와 세슘이 검출되었다고 언론은 보도했다. 엑스레이 한번 촬영할 때 받는 선량의 44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였지만, 우리는 공연히 엑스레이에 노출되고 싶지 않다. 교장 재량으로 휴교를 한 학교가 120여 군데가 되고,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모인 학부모들로 초등학교 앞이 북새통인 와중에, 시민들은 하루에 2리터 씩 2년 반을 마시면 엑스레이 한 번 촬영하는 정도가 검출되었을 뿐이라는 정부의 발표에도 마음을 놓지 못한다.

 

기준치라. 안전을 누누이 강조하는 정부는 언제나 기준치를 앞세우는데, 기준치는 과연 안전을 담보하는 걸까. 새로 개발한 의약품이나 화학물질의 독성과 그 기준치는 보통 동물실험으로 얻는데 방사능의 기준치는 어떻게 구한 것일까. 동물실험? 아니면 경험? 어떤 동물을 희생시킨 실험으로 수치를 얻었는지 알 수 없지만, 많은 학자들은 동물에서 구한 기준치흫 사람에게 적용하기 어렵다는 데 동의한다. 그런데 희한하다. 공개하지 않아 그렇지, 핵발전소마다 겪는 크고 작은 사고로 경험이 축적된 마당임에도 방사능의 기준치는 세계보건기구 권고치가 다르고 유럽과 일본이 또 다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배출되는 방사능이 기준치를 수백에서 수천, 수천만에서 억 배를 초과해서 그런지, 기준치보다 약간 높으면 별 게 아닌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위험의 경계를 알리는 한계 수치로 이해하지 못한다.

 

엑스레이 촬영에서 받는 방사선량과 비교하길 좋아하는 정부가 안전을 마냥 읊을 때,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우리나라는 이미 위험한 수준으로 방사능에 오염되었으니 서둘러 국민 방사능 대응 행동지침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안해하는 시민들의 생활이 안정될 수 있도록 상황에 따라 야외활동과 농수산물 구입에 대한 대응 지침을 제시할 것을 촉구한 그는 순간 방사능 피폭량만 고려하는 정부의 안일한 자세를 질타했다. 47일 시간 당 0.3마이크로시버트로 검출된 우리나라의 방사능이 계속 유지된다면 연간 암환자가 12천 명 발생할 정도인 2.628밀리시버트에 해당한다는 오스트리아 기상연구소의 자료를 그 근거로 들면서.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태평양 방향으로 배출된 방사능은 비록 희석될지언정 지구 곳곳으로 퍼진다. 가끔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북극으로 올라가 우리나라 상공으로 덜 희석된 상태로 내려갈 테고 태풍이라도 만나면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일본 정부와 후쿠시마 발전소를 운영하는 동경전력은 최선을 다해 방사능 유출을 막으려 애를 쓰고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많은 핵전문가들은 쉽지 않을 거라고 걱정한다. 숫자에 무감각할 정도로 기준치를 초과하는 방사능이 쉼 없이 분출되는 상황에서, 핵연료가 담긴 노심이 녹을 경우, 지금부터 꼭 25년 전인 1986426일의 구소련의 체르노빌 핵발전소처럼 폭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문가는 전한다. 그땐 방사능 재앙이 우리나라에 엄습할 것이다.

 

한 의사는 낮은 수치의 방사능이라도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주장했다. 엑스레이처럼 몸을 순간적으로 투과하는 방사선도 누적되면 위험할 수 있지만 미량이라도 방사능 동위원소가 몸에 흡수될 경우 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한 것인데, 결국 기준치가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빗물이나 바람을 타고 옷이나 피부에 닿은 방사성 물질은 세탁이나 목욕으로 씻겨낼 수 있다지만 호흡이나 음식으로 폐나 장기에 흡수될 경우 사뭇 사정이 달라진다. 갑상선암을 유발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요오드는 반감기가 7일이지만 암 치료에도 사용하는 세슘은 반감기가 30년이다. 수 백 년 이상 방사선을 내뿜는 만큼 화장한 사체의 재에도 남아 방사능을 내보내는 세슘이 바다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타고 사람에게 이어질 가능성은 후손 대대로 이어질 텐데, 일본은 기준치의 수천에서 억 배 이상 오염된 물을 바다에 쏟아버렸다.

 

체르노빌 핵발전소 인근 토양과 하천은 심각하게 오염돼 지금도 방사능을 내놓지만 30킬로미터 밖의 민중 대부분은 일상을 살아갈 뿐이다. 달리 피할 공간도 없다. 32년 전의 미국 드리마일 핵발전소의 노심 용융 사고 이후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거푸 사고를 일으킨 핵발전소는 지구촌에 400기가 넘는다. 일본인들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방사능 유출이 획기적으로 차단된다고 해도 이미 내보낸 방사성 물질은 남아있을 게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갈 텐데, 핵발전소에 둘러싸인 우리는 앞으로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 있을 수밖에 없다. 일본 55기에 이어 우리나라는 21, 중국은 13기의 핵발전소가 가동되지만 현재 동아시아 삼국은 100기 이상을 추가할 예정이 아닌가.

 

최근 동아시아의 안전을 위해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모인 일본대지진핵사고 피해 지원 및 핵발전 정책 전환 공동행동은 핵발전소 확대를 중단하라는 성명서를 채택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그나마 분별없는 핵발전소 확산과 핵폐기물에 의한 방사능 오염을 경계하며 행동하는 시민단체가 있지만 중국은 그렇지 못하다. 신뢰를 주지 못하더라도 우리와 일본의 정부는 핵발전소의 운영과 사고의 실태를 공개한다. 제 나라 동해안에 핵발전소를 집중하는 중국에서 후쿠시마 핵발전소에 버금가는 사고가 발생한다면? 방사능은 편서풍을 타고 우리나라로 몰려들 것이다. 지진이 잦은 중국에 세운 핵발전소는 시방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나. 공개되지 않을수록 사고의 확률은 높아지는데, 우리는 그저 정부가 발표하는 기준치에 내내 안심안 채 일상생활에 젖어야 하나.

 

지진에 이은 쓰나미, 그리고 핵발전소의 연이은 사고로 누구보다 큰 고통을 겪는 일본인들을 위로하고 조속한 사고의 수습과 복구를 희망하면서, 이 불안한 위기는 기준치 타령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거론하고자 한다. 수 주일이면 지구촌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방사능을 피할 도리가 없는 우리와 후손을 조금이라도 더 안심시키려면 동아시아를 포함한 세계 모든 국가의 정부는 당장 핵발전을 멈추고 핵폐기물의 안전한 관리 방안을 찾아야 한다. 30년 흥청망청 전기 쓰자고 수만 세대의 후손을 위험에 빠뜨릴 핵발전은 기준치 따위로 위안을 얻는 사고뭉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여기, 2011.4.?)

 
 
 

서평·추억

디딤돌 2011. 4. 4. 23:33

동네에너지가 희망이다, 이유진 지음, 이매진, 2008.

 

오래된 할리우드 영화 황태자의 첫 사랑을 촬영한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선술집을 몇 년 전에 찾았다. 일정을 마친 일행이 느긋한 마음으로 예약된 시간에 문을 열고 들어서자 고맙게도 아리랑을 들려준 선술집은 실내가 어둑했다. 돈 많은 나라의 유명한 선술집답지 않아 궁금해 하는 우리에게 하이델베르크의 유적을 보전하기 위해 지역에 화력발전을 도입하지 않은 관계로 전기를 아껴 쓰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이델베르크 대학과 연구소는 인근 도시에서 전기를 끌어오지만 주민들은 작은 하천과 지붕에서 생산하는 전기에 만족한다는 거였다. 그날 그 선술집의 맥주는 기막혔다.

 

세계는 시방 방사능 비상이다. 예기치 못한 규모의 지진에 이은 쓰나미로 일본 동북부, 세계 최고의 안전관리를 자부하던 동경전력의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침수되어 전원이 차단되자 사고는 걷잡을 수 없게 이어졌다. 수천도의 핵연료를 식히며 증기를 발생시켜 발전터빈을 돌리던 냉각수가 보충되지 못하자 수증기는 수소와 산소로 유리돼 발전소 실내에 밀집되었고 이어 발전소 외벽을 깨뜨리는 수소 폭발로 이어지며 다량의 방사능이 유출되었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냉각수 대신 소방차와 헬기로 바닷물을 냉각수를 퍼부어도 분열되는 핵연료의 열을 이기지 못한 연료봉과 격납용기가 파괴되면서 미증유의 막대한 방사능이 편서풍을 타고 대기와 태평양으로 유출된 거다. 사람의 힘으로 제어하기 어려운 일련의 사고는 동경을 비롯한 일본은 물론이고 세계를 바싹 긴장시키고 있다. 미국의 관련 전문가는 냉정하게 후쿠시마 핵발전소 반경 50킬로미터 이내의 주민을 소외시켜야 한다고 참견하기에 이르렀는데, 1986426일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사고 이후 설정한 안전반경보다 넓은 면적이다.

 

주지하다시피 이번 사고의 여파는 후쿠시마에 그치지 않고 있다. 중국은 안전한 소금의 확보를 위한 사재기가 아비규환으로 연출되었고 미국과 유럽에 후쿠시마 발 방사능이 감지된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와중에 일본에서 수입한 물고기가 잘 팔리지 않는 우리나라도 편서풍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세계 400기가 넘는 핵발전소 중 수명이 다해가는 시설이 많고 그중 보도되지 않아 그렇지 아찔한 사고를 모면한 발전소도 더러 있을 것이다. 한결같이 시설이나 운영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확신했을 터. 하지만 어느 곳의 어떤 핵발전소라도 사고가 나면 세계가 아연실색 긴장한다. 설계 시효가 끝나 연장 운영하는 고리의 우리 핵발전소는 안전하다 확신할 수 있을까. 일본도 설계를 믿고 방심하다 당했는데.

 

양수발전이란 게 있다. 해발고 400미터 이상 차이가 나는 두 곳에 거대한 저수지를 만들어 위 저수지에서 아래로 물을 흘려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의 발전소다. 한두 시간 전기를 생산한 뒤 다시 아래 저수지의 물을 위로 끌어올리느라 기껏 생산한 전기의 1.5배 가까이 소비해야 하는 양수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는 수력이라고 애써 강조하지만 독일의 한국계 에너지 전문가는 핵발전소의 사생아라고 혹평했다. 소비량이 작은 밤에도 끌 수 없는 핵발전 때문에 전기는 남아돌고, 그 전기를 활용해 아래 저수지의 물을 끌어올린 뒤 소비량이 급격히 올라가는 낮에 전기를 생산하는 양수발전은 핵발전소가 없다면 만들 까닭이 없기 때문인데, 양수발전소는 우리의 수려한 자연 생태계를 여기저기에서 파괴한다.

 

생태계만이 아니다. 핵발전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사용 후 핵연료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자손손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 거의 영구적으로, 사용 후 핵연료에 우라늄이 분열할 때 생기는 플루토늄이 포함되는데, 반감기가 24천년에 달하는 플루토늄은 1그램으로 100만 명을 폐암에 걸리게 할 정도의 맹독성 방사능이 분출한다. 수명 30년 안팎에 불과한 핵발전의 열매는 현 세대가 독점하는 대신 그 치명적인 쓰레기를 수백세대의 후손에게 떠넘기는 발전 방식은 누가 뭐래도 친환경도 아니다. 후손을 위한 발전은 더욱 아니다. 그런 핵발전소가 일본과 우리나라에 곧 100기 이상 가동될 모양인데 현재 10여 기 가동하는 중국도 70여 기를 계획한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중국의 핵발전소에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피해는 당대와 후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나. 화력은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수력은 생태계를 파괴하며 우리나라에서 조력은 해양생태계를 돌이킬 수 없게 훼손하는데, 전기 없이 하루도 편히 살 수 없는 우리는 어떤 대안을 찾아야 하나.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을 발굴하자는 이야기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진지하게 나오지만 태양과 바람으로 핵이나 화력만큼 막대한 에너지를 생산할 것 같지 않다. 그런 에너지를 태양과 바람으로 얻으려면 막대한 면적의 땅과 바다를 확보해야 하고 엄청난 자본이 필요할 게 틀림없다. 전기가 모자라면 우리의 에너지 집약산업 뿐 아니라 가정이나 사무용 건물, 어려 종교 시설이나 시장과 농어촌도 지금과 같은 삶을 유지하지 못한다. 인구에 비해 국토가 좁은 우리 땅에서 얻는 태양이나 바람 에너지로 지금과 같은 생활을 보장할 수 있을까. 그와 같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는 핵이나 화력발전보다 생산비가 월등하게 높다는데,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대표적 환경단체 중의 하나인 녹색연합에서 젊음을 바친 이유진은 그런 답답한 마음을 가진 보통 시민들에게 희망의 대안을 제시한다. “동네 에너지가 희망이라는 거다. 돈이나 권력을 추구하는 중앙에서 집중적으로 생산해 비용을 지불하는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공급 체제가 아니라 동네에서 생산해 얼굴을 마주하는 이웃과 논의해 전기를 생산해서 나누는 지역 자급 체제를 주장하는 거다. 100만 킬로와트 급 발전소 한 기를 만드는데 대략 1조 원 이상의 자금이 들어가는데 동네에서 어떻게 그런 막대한 돈을 어떻게 염출해 전기를 생산하고 나눌 수 있겠는가 많은 이는 의심하겠지만 동네에너지가 희망이다를 쓴 이유진의 설명은 명쾌하다. 동네 규모에 따라 소박하게 마련하자는 거다. 다음 세대의 생명까지 생각한다면 그 이외의 방법은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많은 국가와 도시에서 이미 실현하는 사례를 들면서 우리도 당연히 가능하다는 걸 전하려 노력한다.

 

태양과 바람만이 재생 가능한 에너지의 전부는 아니지만, 일단 그 두 가지를 생각하면, 태양과 바람은 소비자에게 영수증을 요구하지 않는다. 시설을 갖추는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지만, 발전 이후 발생하는 온실가스나 방사능과 같은 치명적 환경문제는 거의 없다. 사실 핵과 화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의 가격이 싼 건 환경과 후손에 미치는 피해를 원가에 가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자손손과 생태계에 미칠 영향까지 고려한다면 화석연료나 핵을 사용하는 발전의 비용은 지금보다 현저히 높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50년 이후 사용하는 전기의 전부를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 원대한 목표를 착착 진행하고 있는 덴마크와 독일과 같은 국가들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의 생산 단가가 오히려 가장 저렴하다고 산정했다. 후손의 생명을 염두에 둔 조상이 편중되지 않게 계산한 결과였다.

 

바다에 풍력발전 단지가 거대한 덴마크, 생태주거 단지의 거의 모든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붙인 독일, 민간기업과 관료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재생 가능한 에너지의 메카를 꿈꾸는 중국 더저우에서 세계는 많은 경험을 공유하지만, 비록 규모는 작더러도 우리나라에서 시작한 동네는 많다. 이유진은 충남 홍성군의 여러 사례를 들며 그 동네 사람의 의견을 밝게 전한다. 광주와 제주에도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을 찾는 동네가 있다. 유채와 가축의 배설물과 같은 훌륭한 에너지원도 찾아내는 동네가 우리나라에 있다는 걸 확인한다. 하지만 아직 초보단체에 지나지 않는다. 국회의사당과 청와대의 넓은 지붕을 능동적으로 활용할 수 없을까 묻는 이유진은 해외에서 시도하는 적극적인 시민의 자세를 눈여기며 우리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새삼 다짐한다. 생각해보라. 독일의 바람이 삼면이 바다이자 산악국가인 우리보다 강할까. 우중충한 날씨가 많은 유럽의 태양이 우리보다 밝을까.

 

일본의 경제평론가 우치하시 가츠토(內橋克人)식량(Food)과 에너지(Energy)와 돌봄(Care)은 자유무역의 대상에서 제외시켜 각 나라와 지역사회의 자급 능력이나 자주적 선택에 맡겨야 한다.”고 이른바 ‘FEC 자급권을 제창했다. 먹을거리를 나누는 일, 노인과 아이와 병약자를 보살피는 일은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돈을 주고 맡기기보다 평소 얼굴을 마주 대하며 희로애락을 나누는 이웃과 의논해서 해결해야 지속가능하고 바람직하다는 의미의 주장인데, 그거에 하나 더. 에너지도 다르지 않다는 게 경제평론가의 주장이다. 논밭 일을 서로 땀 흘려 거들고 땔나무를 나누는 일은 이웃 사이에 허물없이 지내는 동네에서 자연스럽다. 춥고 헐벗은 이를 따뜻한 품에 안을 수 있는 이는 동네에 있다. 두터운 가죽과 털을 잃고 사나운 인상과 억센 근육도 없으며 손톱과 발톱과 이빨이 작고 보잘것없는 사람은 가깝게 지내는 이웃이 서로 돕지 않았다면 이제까지 생존했을 리 없다.

 

싫든 좋든 외부의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가여운 존재가 바로 사람이다. 지구온난화에 이은 석유위기 시대, 그리고 핵발전과 방사능 위기 시대의 대안은 환경이나 생명보다 돈과 권력을 추앙하는 중앙 집중의 자본에 맡길 수 없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 역시 마찬가지다. 동네에너지가 희망이다에서 이유진은 독자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을 것인데, 핵산업에 관련하는 자본을 배려하려는지, 우리와 중국 정부는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여전히 선언한다. 그 점에서 매우 애석하게도 미국 오바마 행정부도 마찬가지인데 독일을 비롯한 유럽은 사뭇 달라 보인다. 핵에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던 독일의 메르켈 정권은 실각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고 해외 언론들은 전한다.

 

이론적으로 태양과 바람과 지열만으로 우리는 원하는 에너지를 충분히 충족할 수 있다고 전문가는 확신하지만 재생 가능한 에너지 역시 중앙 권력과 자본에 의해 머나먼 사막에서 집중적으로 가져온다거나 막대한 자본을 끌어들여 일방적으로 발굴해야 한다면 의미가 없다. 지역과 동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 에너지 정책은 의존과 불신, 그리고 낭비와 사고를 낳을 수 있다. 하이델베르크의 주민들처럼 지역에서 소박하게 생산한 에너지에 맞게 삶의 방식을 관리할 필요가 있겠다.

 

우리는 시방 전기를 비롯한 에너지를 지나치게 낭비하고 있다. 낮은 밝고 밤은 어두워야 하듯,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더워야 정상이건만, 지구온난화와 방사능 위기를 자초한 사람들은 지독한 에너지 낭비로 겨울 같은 여름, 여름 같은 겨울을 만끽하다 자신의 건강마저 잃었다. 이제 위기는 흉흉한 내일을 거듭 경고한다. 이제 더 늦기 전에 이웃과 후손의 건강한 내일을 위해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지역에서 자급할 희망을 모색해야 할 텐데, 동네에너지가 희망이다는 그 빛을 비춰줄 것이다. (인천in, 2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