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4. 9. 30. 23:04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운동의 열기가 거셌던 1995.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직후 독일에서 핵화학으로 학위를 받은 이항규 박사는 활동가들과 자주 자리를 같이 했다. 잘 나가던 독일 생활을 접고 굳이 고국을 찾은 그는 반핵활동가를 돕고자 했다. 핵의 위험성을 전공했고 핵을 어떻게 관리해야 한다는 걸 잘 알기에 반핵운동을 지원했지만 그를 고국으로 향하게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항규 박사는 우리만 모르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해주었다.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폭발하자 낙진이 많이 떨어진 북유럽의 여성에게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구소련에서 폭발사고를 숨겼기에 대처할 기회가 없었으니 임신하라는 소문이었는데 그 소문은 낙태를 권했다. 몸에 들어온 방사성 물질이 태아에 집중될 테니 낙태해 제거하라는 끔찍한 조언이었는데, 독일은 방목해 생산한 우유가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 우유를 소비자들이 거부하자 당국은 바다로 버리려했다고 전하는 이항규 박사는 우리를 당혹하게 했다.


체르노빌 발 방사성 물질에 오염되었을지 모를 우유를 바다에 버린다니! 환경단체에서 들고 일어나자 당국은 분유로 가공해 아프리카에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수정했지만 환경단체는 더욱 분노했다고 한다. 생색내려면 멀쩡한 분유로 보내라면서. 지하수 오염을 염려하는 환경단체의 반대로 땅에 파묻지 못한 독일 식품당국은 화물열차의 탱크로리에 실은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는데, 어느 날 이항규 박사는 같이 공부하던 독일 동료로부터 그 분유가 몽땅 팔려나갔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황급히 그를 찾던 동료가 듣지 못했느냐며 전하는 정보는 황당했는데, 문제의 분유를 한국의 제과업체에서 쓸어갔다는 게 아닌가. 그 이후 반핵운동가가 된 이항규 박사는 굳이 한국지사를 자청해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운동에 동참한 것인데, 그는 당시의 기억을 담은 책 환경에 관한 오해와 거짓말우리만 모르고 전 세계가 다 아는 비하인드 스토리두 권을 남기고 독일로 돌아갔다. 지금 이 땅은 그를 그리워해야 한다.


서울에서 춘천을 연결하는 고속도로의 한 터널에 기준치를 크게 초월하는 방사능 수치가 나온다는 사실을 고발한 최병성 목사는 방사능 계측기를 여간해서 들고 집을 나서지 않는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이후 우리 사회에 방사성 물질에 대한 경각심을 전하려 한동안 들고 나섰지만, 포기한 이유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아니 걱정스럽게 한다. 분노해야 하는 걸까? 시도 때도 없이 호주머니에서 진동하는 계측기는 여느 건물이나 거리에서, 심지어 지하철까지, 피할 곳이 없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아스팔트는 석유를 증류하고 남은 시커먼 퇴적물이다. 거기에 도로포장용 골재를 섞으면 아스콘이 된다. 물을 싫어하는 아스팔트는 녹슬지 않아야 옳지만 수많은 아스콘 포장도로에서 녹물이 스미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병성 목사는 아스콘에 습관적으로 섞는 수입 고철의 용광로 쓰레기를 의심한다. 한데 문제는 아스콘의 녹물이 아니다. 그런 아스콘에 방사능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데 있다. 도대체 어떤 고철을 수입하기에 천지사방의 아스팔트 도로에서 방사능이 검출되는 걸까?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고철의 절반 이상을 취급하는 인천항에 방사선 감시기가 태부족하다는 뉴스가 나오는데, 최병성 목사는 우리나라의 시멘트 공장에서 처리하는 쓰레기 더미를 주목해왔다. 일본에서 버리는 산업폐기물이 아닌가! 석회석과 연료를 뒤섞어 소성로에 넣어 태워 생산하는 건축자재가 시멘트다. 시멘트 소성로에 일본산 폐타이어 조각까지 집어넣는 자본은 2011311일 동일본의 쓰나미 이후 막대하게 발생한 쓰레기는 수입하지 않았을까? 감시한 이 거의 없었다. 일본의 폐기물 수입을 쉽게 만든 환경부는 고개를 돌린 지 오래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이후 일본 맥주의 수입이 늘었고 대형 양판점마다 할인 경쟁에 나선 적 있는데, 후쿠시마에서 생산한 쌀로 만든 일본 술 사케가 국내로 꾸준하게 수입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후쿠시마 주변 근해에서 머물다 12월 제주도 남쪽 해안으로 회유하는 방어를 일본 어선들이 외면하자 요사이 겨울철마다 늘어난 방어 어획고에 제주도는 신바람이 난다던데, 우리는 방어회에 후쿠시마 쌀로 빚은 사케 마시기에 여념이 없었나보다. 2013311일 이후 수입이 급증한 일본 맥주는 어디에서 무슨 재료로 생산했을까?


최병성 목사는 지하철 안의 어떤 승객 앞에서 요동치는 방사능 계측기에 당혹해한다. 그 승객은 병원에서 방사성 물질을 몸에 넣는 진료를 받았을지 모른다. 치료와 진단을 위한 조치는 양해할 수 있더라도 환자에 최대한 국한시켜야 하는데, 우리는 대체로 무심하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방사성 물질은 반감기가 짧다. 주위 사람에게 전하는 방사능이 오래 지속되지 않지만 고철에나 시멘트, 그리고 아스콘 포장에서 나오는 방사능은 다르다. 포함된 방사성 물질의 반감기가 길면 아무리 약한 방사능이라도 주변에 머무는 이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


우리 환경부에서 묵인하지 않는다면 일본 산업폐기물이 시멘트 소성로에 들어갈 수 없다. 아직은 일본 정부의 압력을 무시하며 8개 현에서 수산물을 수입하지 않지만 나머지 현의 수산물은 거리낌 없다.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를 수입 금지된 8개 이외의 현에서 수출하더라도 문제 제기할 수 없다는 건데, 수산물이 아니라면 일본 어디에서든 수입이 가능하다. 후쿠시마 쌀로 제조한 맥주와 사케 뿐이 아니다. 주민들도 외면하는 후쿠시마 쌀과 그 가공식품도 얼마든지 가능할 텐데, 그리 방임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방사능에 자유롭게 노출되는 국민들은 암에 많이 걸릴 게 분명하다. 그러면 병원은 더욱 활기를 맞겠지. 그때를 대비해 영리병원을 허가하려는 걸까? 지나친 비약이다. 그리 치밀하지 않은 우리 정부가 거기까지 생각하고 방사능 물질이 포함된 분유의 수입부터 방임했을 리 없다. 그저 기업의 이윤을 위해 앞뒤 따지지 않고 묵인했을 것이다. 방사성 물질 포함 여부를 규제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런 정부를 믿으면 우리는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다 암 치료를 전담하는 영리병원이 문을 열고 말겠지. (작은책, 2014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