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6. 5. 3. 10:52
 

“방울새야 방울새야 쪼로롱 방울새야, 간밤에 고 방울 어디서 사왔니, 쪼로롱 고 방울 어디서 사왔니” 지금 어른들이 초등학교 시절 배웠던 동요는 방울새를 쪼로롱 방울새라고 노래했다. 방울처럼 쪼로롱 울어 그런 이름을 받은 방울새는 전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텃새라고 조류도감은 건조하게 기록한다, 그런데, 야생조류동호회 회원 외에 방울새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요즘 초등학교에서 방울새 동요를 배우지 않기 때문일까. 햇살이 따사로운 늦가을, 탈곡 때 떨어진 낱알이 흩어져 있는 마른 논에 ‘쪼로롱, 쪼로롱’ 옹기종기 모여 나직하게 울던 방울새는 인가에서 멀리 떠난 까닭일 게다.


방울새는 거의 채식주의자에 가깝다. 그렇다면 농작물을 먹을 테니 해로울까. 방울새보다 늦게 진화해 세상에 나왔을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자연의 생물을 이분법으로 구별하는 못된 버릇이 생겼다. 그런 다분히 사람 위주의 편의적 기준으로 보아도 방울새는 이롭다. 되새과 조류들이 대개 그렇듯이 묵직하고 단단한 부리를 가진 방울새는 인적 없이 방치된 가을철의 잘 익은 곡식과 봄철의 새싹도 가끔 마다하지 않지만 껍질이 두꺼운 들풀의 씨앗을 주로 으깨 먹기 때문이다. 못된 이분법으로 ‘잡초’라고 규정한 풀의 종자를 축내지 않는가. 하지만 아니다. 방울새는 사람에게 이롭지도 해롭지도 않다.


들풀은 방울새에게 내줄 것을 감안해 씨를 맺는다. 우리가 특별 대우하는 곡식도 알고 보면 들풀의 일종이다. 아직 들풀일 적에 방울새는 물론 수렵채취하는 사람에게 빼앗겨도 남을 정도의 알곡을 생산했다. 하지만, 곡식이라며 한 군데 모야 심기 시작하면서 사람은 한 톨의 낱알도 방울새에게 주지 않으려 눈을 부라린다. 예전의 농부는 힘찬 발로 구른 탈곡기로 벼를 털어 낱알을 마른 논바닥에 남기기도 했지만 콤바인이라는 괴물이 등장하면서 그런 일은 없어졌다. 볏짚 채 싹 쓸어가 버리고 그나마 낱알 달린 볏짚은 기계로 둘둘 말려 축사로 팔려나간다. 그러자 방울새는 떠났다. 어디 그뿐인가. 논둑에 콩도 심지 않는 요즘 농부는 풀만 돋아나면 제초제를 뿌리니 잘 익은 들풀의 열매는 구경조차 어렵게 되었다. 방울새는 저를 부르는 동요마저 사라진 인가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4월에서 8월, 부화한 새끼에게 줄 먹이가 많으면 한 해 두 번까지 번식하는 방울새는 번식기가 지나고 새끼들이 독립할 때면 드디어 단체생활로 들어간다. 겨울철 지리산 쌍계사 주변 대숲에 수십만 마리로 몰려드는 되새와 달리 방울새의 단체는 소담하다. 30여 마리로 무리지어 생활하는데, 이때 사람의 눈에 잘 띈다. 숲 가장자리에서 양지바른 곳으로 낮게 날아다닐 때 노란 날개깃이 활짝 펴져 부챗살처럼 팔랑거리는 까닭이다. 그러면서 제가 방울새 아니랄까봐 쪼로롱, 쪼로롱, 운다.


“채식을 하면 힘이 없다면서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영양분을 먹일 수 없다던데…” 그리 묻는 사람에게 방울새는 뭐라 할까. 뭐라 하긴, 쪼로롱 한다. 뽀로통한 것은 아닐까. 평상시 채식에 의존하는 방울새지만 번식기를 전후해 가끔 육식도 즐긴다. 밥주발 모양의 둥지에 4개 내외의 청백색 알을 낳을 때 약간의 곤충을 먹고, 2주가 채 못돼 부화된 새끼에게 먹이를 먹을 때 이따금 곤충을 물어 나를 정도다. 안간힘을 다해 노오란 주둥이를 벌리는 새끼들도 거의 채식단을 받는다. 어미는 반쯤 소화시켜 토해내거나 더 자랐을 땐 물고 온 풀씨를 뭉뚝한 부리로 잘게 부수어 새끼에게 준다.


날씨가 찬 북부 유럽에 번식하다 겨울을 나러 우리나라에 날아오는 검은머리방울새는 텃새인 방울새와 사촌간이고 방울새처럼 채식에 의존하지만 먼 거리를 이동한다. 올림픽 4관왕에 빛나는 단거리 육상선수 칼 루이스가 채식주의자라는 걸 방울새나 검은머리방울새는 관심 없어 하겠지만, 채식으로 얼마든지 힘을 쓸 수 있다는 걸 증명한다. 동물성 식단에 국한되는 비타민 비12를 어찌하느냐고 다그친다면, 채식주의자는 젓갈로 담근 김치로 해결하자고 제안한다. 쪼로롱 우는 방울새는? 그야 곤충을 조금 먹자고 할 테지. 육식으로 쉽게 보충할 수 있는 단백질을 위한다면 송곳니 대 어금니의 비율인 1:4 정도로 유기 육식단을 고려할 수 있으리. 방울새의 의견은 여전히 뽀로통일까.


방울새는 내륙지방보다 해안에서 자주 눈에 띄는데, 조류학자들은 경작지가 밀집된 내륙은 살충제와 제초제에 절었기 때문으로 것으로 추측한다. 경작지로 연결되는 내륙의 숲 가장자리는 농약 농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방울새가 좋아하는 소나무 숲은 솔잎혹파리와 소나무 에이즈라 칭하는 재선충이 활개친다며 방제를 서두르고, 해충이 몰려나오는 숲에서 잡초 씨가 날아온다며 주변 경작지에 살충제와 제초제를 흥건히 뿌리지 않던가. 먹이가 좀 부족하더라도 방울새는 해안을 찾을 수밖에. 그걸 짐작한 것일까. 산탄총으로 무장한 포수는 방울새의 길목을 노린다. 화본과식물의 종자를 즐겨먹어 그런지 울음소리가 예뻐 애완용으로 각광받기도 하는 검은머리방울새는 맛도 좋아 알량한 몸집은 식용으로 그만이라 한다. 한때 곡식을 축낸다며 수렵조로 지정된 적 있던 방울새는 자비심 없는 사람 앞에서 무력할 따름이다.


20대 청년인 다윈은 남미 에콰도르 서쪽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핀치라는 방울새 무리를 잔뜩 잡아와 ‘자연선택에 의하는 진화’에 대한 이론을 이끌어냈다. 사람을 처음 만나는 갈라파고스 군도의 핀치들은 가만히 다가가 손으로 잡으려 해도 달아나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하늘에 매가 뜨면 조사 나온 과학자들의 옷깃에 몸을 숨긴다고 한다. 핀치 종류를 손쉽게 잡은 다윈은 진화론으로 위인 반열에 올랐는데, 오늘날, 우리의 방울새는 내일을 걱정해야 한다. 흔한 텃새에서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기 직전이다.


얼마 전, 포항의 한 경찰서 앞마당에서 방울새 부모의 눈물겨운 자식 사랑이 연출돼 세간의 흥미를 끌어냈다. 이틀간 몰아친 강풍으로 둥지를 잃은 방울새 어미가 눈도 채 뜨지 않은 새끼 두 마리에게 먹이를 물어주는 걸 텔레비전 화면으로 전국의 시청자에게 보여준 것이다. 아스팔트에 떨어진 새끼 방울새를 나뭇가지에 올려준 경찰은 어조원에서 짚으로 만든 둥지를 구해 매달아주었다는데, 방울새 부모는 제 새끼들을 구해주고 둥지까지 선사한 경찰이 못내 고마워 쪼로롱 인사했을 것이다.


강풍이 몰아치고 기온이 오르내렸던 4월은 그렇게 지나갔고, 따뜻한 5월이 시작됐다. 포항의 방울새는 구출된 새끼를 잘 키우고 있을 것인데, 자비심 있는 사람도 이따금 나타난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는 좀 곁을 주려나. 방울새가 파란 하늘 아래 노란 깃 펄럭거려 더욱 따뜻한 봄을 자주 만끽했으면 좋겠다. (물푸레골에서, 2006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