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3. 5. 12. 23:50

     어려서 기억. 외할머니가 오면 늘 허리를 밟아야 했다. 누나도 동생도 있는데 언제나 어깨에서 발목까지 골고루 밟았다. 내가 밟아야 시원하다고 하니 귀찮더라도 응했지만, 그때마다 할머니 허리 시원하게 하는 약은 어디 없나 생각했다.


관절염은 우리나라의 나이든 여성에게 왜 유난히 많은 걸까. 그 방면에 상식이 없으니 알 길이 없는데, 한 연구자가 우리나라 여성에게 많은 관절염 유전자를 찾겠다고 연구기관에 적지 않은 연구비를 신청했고, 부작용 없는 관절염 치료약 개발을 장담하던 연구자는 심사위원의 질문에 당황했다. 남성에게 그 유전자는 없는 건지, 왜 어린 여성에게 관절염이 나타나지 않는지 물었던 거다. 그 이후 지금까지, 묘약은 시판되지 않고 있다.


눈부신 생명공학 기술은 마침내 유방암 유전자를 밝혀냈다. 그러자 어떤 생명공학 벤처기업에서 개개인이 보유한 유방암 유전자를 찾아준다며 딸 가진 엄마를 유혹한 적 있다. 벤처기업이 그 유전자를 찾아낸다면, 장차 그 딸은 유방암 환자가 되는 걸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라 했다. 유전자가 있는 만큼, 유방암 발생 가능성이 높고, 유방암 발생을 억제하는 방식의 삶을 조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고마운 충고일까. 유방암 유전자의 98퍼센트는 정상 여성에서 나타난다던데, 유방암 유전자가 있는 딸을 가진 부모는 마음을 놓아도 좋을까.


최근 미국 언론은 딸에게 자궁경부암 백신 접종을 원치 않는 부모가 는다고 보도했다. 5년 전에 비해 4퍼센트 늘어, 부모의 44퍼센트가 접종을 거부한다는 건데, 그 백신은 남성도 맞아야 하는 모양이다. 2차성징이 시작될 12세 전후에 접종하지 않는다면 여성은 26세 남성은 21세 이전에 맞아야 한단다. 자궁경부암은 바이러스가 매개하는 질병일까. 자궁경부암을 앓거나 앓은 적 있는 여성은 대부분 나이가 많던데. 그 바이러스는 나이 든 여성만 공격할까. 궁금증은 이어진다. 어려서 맞은 백신은 나이 든 후에도 효과를 유지할까.


미국의 국립질병통제예방센터는 가다실이란 상품명을 가진 그 백신의 접종을 권한다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접종하면 암 발생을 99퍼센트까지 예방할 것으로 제약회사는 광고하지만, ‘가다실은 사실 시판된 지 몇 년 되지 않았다. 전 세계 16세에서 26세 여성을 대상으로 3에서 4년 동안 임상시험한 결과는 절대 불변일까. 나이 들어 발생하는 자궁경부암까지 99퍼센트를 막을 것으로 믿어도 되나. 우리 돈으로 수십만 원에 이르는 백신을 12세 전후의 모든 여아와 남아가 접종한다면 누가 가장 기쁠까. 적어도 미국 부모 44퍼센트는 아닐 것이다.


접종을 거부하는 부모는 딸이 성생활을 할 나이가 아닐뿐더러 백신의 안전성을 확신하지 못한다는데, 우리의 한 과학사회학자는 논란 없이 수용하기만 하는 우리의 실태를 걱정한다. 상당한 연구비를 투자한 제약회사가 나름대로 안전성을 검증했을 테니 당장 부작용이나 해약은 나타나지 않을 거라 믿지만, 거기에서 그칠 수 없다는 거다. “의료 공공성의 문제, 질병을 대하는 자세의 문제, 예방의 문제, 섹슈얼리티의 문제, 형평성의 문제, 국가와 개인의 문제, 공중보건의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고 효능만 강조하기 때문이다.


바이러스가 자궁경부암을 옮긴다고 제약회사의 전문가는 주장한다. 그러므로 남성도 그 비싼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고 덧붙이지만, 나이 든 여성에게 대부분 발생하는 이유를 질병통제예방센터의 전문가도 따지지 않았다. 관절염도 나이 든 여성에게 많이 나타나는데, 진정 유전자 때문일까. 육식이 늘어나면서 증가한 유방암 역시 나이 들어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유전자가 원인일까. 생명공학이 장차 문제의 유전자를 바꿀 수 있다면 관절염과 유방암은 사라질까.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어릴 적 접종한 백신이 노환을 발본색원할 수 있을까. 그렇다지만 어딘가 미심쩍다.


백신을 맞으면 99퍼센트 예방할 수 있고, 유전자를 확인하면 피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주장하는 전문가의 권위는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려는 부모들의 의지를 좌지우지한다. 사회적 논쟁이 충분하게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은 전문가의 권유에 이끌릴 수밖에 없는데, 대부분의 그 방면 전문가는 편향돼 있다. 유전자는 환경이 형성되지 않으면 발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소비자에게 왜 꺼내지 않는 걸까. 관절은 보통 나이 들면 약해지는데, 관절이 약해져야 관절염 유전자가 발현한다는 사실을 왜 감추는가. 면역력이 높으면 바이러스는 몸에 들어와 활동하지 못한다. 면역이 떨어진 노인에게 대부분 발생하는 질병을 유전자나 바이러스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누적되는 피로와 스트레스는 면역을 떨어뜨린다. 요즘 음식은 필요 이상의 지방과 단백질을 섭취하게 만드는데 그치지 않는다. 몸에 부작용이 생기게 하는 첨가물이 가공식품에 잔뜩 섞였다. 그 뿐인가. 숨 쉬는 공간에 오염물질이 전에 없이 많고 대기와 바다를 떠도는 방사성 물질이 늘어나기만 하니 면역력은 감소한다. 나이와 관계없이 성인병이나 암 환자의 수가 최근 늘고 발병 시기가 전에 비해 앞당겨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퇴행성 질환이 늘어난 건 노인은 물론 청장년층의 면역력이 떨어진 결과와 무관하지 않는데, 유전자 검사와 백신으로 질병을 퇴치하겠다는 호언장담은 장삿속을 넘어 문제를 증폭시킬 수 있다.


백신 홍보보다 훨씬 중요한 일은 면역력을 높이는 삶의 방식일 것이다. 일자리를 나눠 피로와 스트레스를 덜면서 이웃 사이가 돈독해지면 질병은 그만큼 줄어든다. 이웃과 어울리며 즐겁게 이야기 나누고 적당히 운동한다면 암이나 관절염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노인도 줄어들 것이다. 그런즉, 유전자가 악성으로 발현하거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환경을 개선하려 하지 않고 유전자 검사를 유혹하고 백신의 효능만 강조하는 태도는 마뜩치 않다. 장담했던 안전이 오래 유지되는 신약은 그리 없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백신 접종을 권유하는 전문가들은 대부분, 제약회사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제약회사와 연구비를 주고받는 관계를 청산하지 못하는 질병통제예방 전문가 역시 사정이 비슷하다. 만일 보험회사가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아 발생하는 암에 보험료를 제공할 수 없다는 약관을 수정하고 유전자가 있다는 걸 미리 확인하지 않아 질병이 생겼으니 보상하지 않겠다고 외면한다면 장차 어떤 묵시록이 펼쳐질까. 불길하다. (작은책, 2013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