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3. 4. 30. 19:05


인간 이력서, 볼프 슈나이더 지음, 이정모 옮김, 을류문화사, 2013.

 

지구에 몇 종의 생물이 분포할까. 학자들은 대략 3000만종이라고 추정하지만 정확한 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을 포함한다면 그 몇 백 배가 넘는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미생물은 일단 제외하자. 46억년 지나는 동안 지구에 과연 몇 종이나 명멸했을까. 역시 대략 30억 종으로 추정하는데, 지구에 첫 생명체가 출한한 시기를 35억년 정도로 잡으므로, 단순하게 생각해 1년에 한 종이 탄생하면 한 종이 사라졌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겠다. 그렇게 따지면 한 종의 수명은 대략 100만년이다. 사람은 언제 진화되었을까.


두발로 걸을 때부터 인간인가 도구를 사용해야 인간인가. 따지자면 기준은 한없다. 두발로 거닌 흔적을 아프리카에 최초로 남긴 루시는 300만 년 전이고 도구는 180만 년 전 그 흔적을 보인다고 학자들은 연구했다. 많지 않은 화석에서 분석했으니 자료가 추가되면서 해석이 바뀔 가능성은 충분하다. 현재까지 연구된 결과가 그렇다는 거다. 송아지에게 먹일 만큼 우유를 분비하던 소를 유치원생 45명이 날마다 마실 만큼 짜내지 않으면 울부짖도록 품종개량하는 사람은 두뇌가 유난히 크다. 도대체 언제부터 사람이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누구도 자신 있게 주장하지 않는데, 대략 100만년 전후 뇌 용량이 지금과 비슷해졌다고 한다.


70억을 돌파한 인간. 전부 모아봐야 독일의 보덴 호수의 물을 50센티미터 높일 정도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는 볼프 슈나이더는 독일어를 가장 잘 구사하는 독일의 대표적인 언론인이자 저술가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아프리카에서 진화한 뒤 유럽을 지나 아시아, 아메리카와 태평양 일원으로 퍼진 인간 중에 유럽에 남은 무리를 그는 주목한다. 그 인종은 어떤 과정으로 제국주의와 산업혁명을 지나 지금까지 생태계와 타 인종을 착취하며 살아오다 궁지에 몰렸는가. 볼프 슈나이더는 재치가 번득이는 문장으로 인간 이력서를 펴냈고, 역시 재치가 번득이는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이 번역해 서점가에 내놓았다.


대략 4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1년에 500미터 정도 이동하며 1천 년 전 뉴질랜드까지 퍼진 사람은 기원 전 9천 년 전 경작을 시작했다고 볼프 슈나이더는 본다. 이후 농부 한 사람이 도시인 40명을 먹이는 현재 인구는 급증해 70억으로 늘었지만 그 사이 수많은 굴곡을 겪었다. 수렵채취 시절 일을 도우며 평등했던 사람은 잉여가 만든 인구증가에서 그치지 않고 증가하는 인구는 분업에 이은 편견으로 얼룩졌고, 인간 사이의 편견은 갈등과 폭력을 낳았다. 경작은 가축화를 불렀고 가축화는 질병을 안겼다. 그뿐인가. 여기저기에서 창안된 과학과 기술은 무기를 만들어 동족 사이의 착취와 전쟁으로 이어졌다.


바다로 가로막혀 경작과 가축화가 전파되지 않았던 남아메리카에 먼저 들어간 원주민들은 편견이 심하지 않았고 무기도 보잘것없었다. 총칼을 앞세우고 나중에 남아메리카에 들어간 유럽의 백인은 어떤 일을 저질렀을까. 철기와 바퀴와 말을 동원해 잉카를 유린하고 번쩍번쩍 노출된 은을 거덜내는데 그치지 않았다. 심심풀이로 원주민을 죽였다. 알다시피 그런 폭력과 착취는 남아메리카에서 한정되지 않았다. 아프리카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주민을 노예로 잡아들이고, 북아메리카에서 노예를 거부하는 원주민을 학살했다. 질병을 퍼뜨려 내성이 없는 원주민들은 속절없이 죽어나갔고 자연자원이든 지하자원이든 마구 탈취했다.


유럽 백인 남성은 아시아로 손을 뻗었다. “우리와 피부색이 다르거나 코가 납작한 놈들을 없애는 것이 지구 정복이라 믿고 유럽에 없는 지식과 지하자원과 자연자원을 제멋대로 착취하고 착복하며 함부로 탕진했다. 무기가 없는 원주민을 노예로 착취하던 백인은 철도를 깔아 자원을 강탈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비행기를 만들어 폭탄을 떨어뜨렸으며 온갖 기술을 개발해 지구 곳곳에서 우주까지 치명적 쓰레기를 펼쳐놓았다. 이제 그들이 정복한 지구에 나무 한 그루 겨우 남아 있다. 지구는 온난화되었고, 70억 인구는 80억을 바라보는데 콘크리트와 핵폐기물이 도처에 넘친다.


안심하고 마실 물도, 몸을 덥힐 에너지도 바닥이 났다. 이제와 어떻게 할 것인가. 편견과 탐욕을 거두고 호혜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 자원은 바닥이 드러났는데, 늘어나는 인구를 먹여살리며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꿈이라도 꿀 수 있을까. 꼭 서양 백인에게 모든 혐의를 뒤집어씌울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 원죄를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는 그들은 아직 충분히 반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점에서 볼프 슈나이더도 비슷해 보인다. 방사능이 사라진 뒤에 진화된 거의 생명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유럽 출신 남성 지식인들이 개발해 퍼뜨린 핵발전을 두둔하지 않은가. 미국 드리마일에 이어 구소련의 체르노빌, 그리고 얼마 전 일본의 후쿠시마에서 방사능은 생태계의 근본을 흔든다.


진화 태엽을 다시 감으면 인간이 다시 출현할까. 그럴 가능성은 단연코 없다. 유럽의 백인 남성이 다시 득세할 가능성도 당연히 없는데, 이미 저질러진 일은 어떻게 한담. 볼프 슈나이더가 유럽 백인 남성을 대표하는 건 아니지만, 그는 오만불손한 지배자의 역사로 부제를 단 인간 이력서에서 반성문을 쓰고 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데 망가뜨렸지만 생태계 안에서 대략 100만 년 전에 진화한 인간도 가치가 있는 생명이다. 이제와 공허해진 반성문일지라도 인간 이력서는 반추할 가치가 있다. 어제를 반성해야 다만 얼마만이라도 다음 세대들이 아름다운 지구에 더 머무를 수 있도록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in, 2013. 4.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