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1. 8. 28. 03:00

 

가을이다. 여름에 부지런히 탄소동화작용을 한 곡식과 과일나무들이 가지 끝에 결실을 탐스럽게 매단 가을은 내일을 갈무리하는 계절이다. 농작물과 과일만이 아니다. 산과 들의 수목마다 열매를 소담하게 내놓으니 겨울을 준비하는 동물들은 토실토실 살이 오르고 한해 농사를 마무리한 농부들은 기름진 땅을 물려준 조상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우리의 추석과 서양의 추수감사가 그 행사일 터.

 

그런데 우리 추석인 좀 이른 듯하다. 대개의 햇곡식은 추석 전에 갈무리되지 않고 과일도 익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우리는 왜 음력 815일을 추석으로 삼은 걸까. 중국 남부의 풍습에 맞춘 동아시아 문화권의 성급함이었을지 모르는데, 추석이 다가오면 커다란 햇과일들이 가게마다 켜켜이 쌓이긴 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조상이 먹던 과일과 같지 않다. 조상은 식물 성장호르몬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과일을 전혀 알지 못했다. 차례상에 오르는 밤도 사정이 비슷할 텐데, 거무튀튀한 바다의 밤송이는 어떨까. 바다의 밤송이는 육지와 달리 추석이 다가와야 알 낳을 채비에 들어간다. 내일을 위해.

 

바다의 밤송이는 성게다. 학자들이 관족이라고 하는 발로 주춤주춤 움직이는 성게는 천적의 공격을 쉽게 막아낼 것으로 짐작케 하지만 언제나 그런 건 아니다. 바위에 제 알을 붙인 물고기는 다가오는 성게를 냉큼 물고 저 멀리 내버리다 관족에 찔려 고통스러워하지만, 가제와 게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은근슬쩍 다가가 배 쪽의 관족 사이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불가사리와 달리, 쥐치는 물을 내뿜고 주둥이가 단단한 돌돔은 무식하게 들이받아 곧추세운 가시들이 무력하게 넘어뜨린 뒤, 관족이 성긴 배부터 공격한다. 그래서 성게들은 육지의 밤송이들처럼 여러 마리가 들러붙는다. 경험이 빚은 생존전략이다.

 

엉덩이로 밤송이를 뜯는 징벌로 졸병 겁주는 선임이 군대에 있더라도 엄포에 지나지 않을 텐데, 바늘과 관족이 제아무리 날카로워도 육지든 바다든, 밤송이들은 도구를 손에 쥔 사람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숨 꾹 참고 30미터나 물질하는 해녀의 장갑 낀 손에 사뿐히 들려 바구니에 들어가면 그뿐. 많은 발로 버둥거려도 소용없다. 성게의 관족들은 제거돼 속살이 드러날 것이다. 육지의 밤송이가 그렇듯.

 

우리는 흔히 알이라 말하는 성게의 생식선을 먹는다. 구멍이 숭숭 뚫린 럭비공 모양의 3에서 4센티미터 정도 칼슘 골격 안에 암컷은 황갈색 알을, 수컷은 연한 갈색 정소를 잔뜩 품고 때를 기다리는데, 사람 역시 쥐치나 불가사리처럼 성게의 생식선을 노리는 거다. 정약전이 맛이 달아 날로 먹어도 좋고 국에 넣고 끓여 먹어도 좋다고 자산어보에 상찬한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초밥에 얹는 일본인이 그렇듯, 세계인은 800여 성게들을 별미로 소비한다. 바다의 다른 생물처럼 남획과 멸종위기를 충분히 짐작케 하겠는데, 그 반대에 가까운 경우도 이따금 발생한다. ‘바다의 사막화라 말하는 백화현상의 주범으로 몰려, 대대적 소탕령이 발동하지 않던가.

 

천적의 활동이 잠잠해지는 밤에 바위틈에서 나와 미역이나 다시마와 같은 커다란 해조류를 뜯어먹는 성게는 양식장의 전복과 같은 식성을 갖기에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여객선이 다니기 어려울 지경으로 과밀한 전복 양식장이 필요로 하는 미역과 다시마는 엄청난데, 물질해 들어가니 성게만 바글거리는 게 아닌가. 해조류의 뿌리가 붙어야 할 바위가 온통 하얗게 드러난 모습에 울화가 치민 어민은 민원을 제기하고, 예산을 거하게 편성한 지방자치단체는 소탕작전에 돌입하는데, 사람은 성게가 알량한 해조류에 달라붙는 이유를 헤아리지 않는다. 쥐치의 남획과 바다부터 데우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반성은 아예 없다.

 

바다가 더워지자 해조류가 잘 붙지 않고, 붙는 시기도 달라졌다. 일본 수출을 위해 보이는 족족 잡아들일 적에 고마운 존재였지만 값싼 중국산이 대신하니 사정이 바꿨다. 이제 우리 바다에 터 잡은 성게는 생존을 위해 남은 미역과 다시마를 축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한꺼번에 수백만 개의 알을 낳는 성게는 욕심 사나운 사람에게 천덕꾸러기로 몰렸지만 해녀가 바다를 떠나지 않은 제주도에서 여전히 반가운 존재다. 미역과 함께 끓여 손님상에 올리는 제주도의 인심은 성게에서 나온다고 말할 정도다.

 

담백하면서 짭조름한 바다 향까지 상큼하게 전하는 성게는 회로 먹기에 좋은데, 상인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적잖게 이롭다며 호들갑이다. 그도 그럴 게, 단백질과 비타민이 풍부하고 칼슘과 철분이 많을 뿐 아니라 아연까지 포함하지 않던가. 정력을 강화할 뿐 아니라 불임에 효과를 가져 바다의 호르몬이라 불린다는 성게는 빈혈에 도움을 주고 노화를 예방하며 피부에 좋다고 애호가들은 쌍수를 든다. 하지만 성게는 약이 아니다. 체력과 면역을 높이는 성분이 아무리 많아도 맛이 없다면 인기가 높지 않으리.

 

식성을 돌아오게 만든다는 성게의 생식선을 꺼내보자. 신선한 성게의 칼슘 골격에 칼집을 내어 조심스레 반으로 쪼개면 알이나 정소가 오롯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작은 숟가락으로 떼어내 깨끗한 물로 닦아내면 다양한 요리가 기다릴 터. 일본인들은 김으로 감싼 초밥 위에 얹어놓길 희망하겠지만 우리는 대개 끓였다. 미역과 끓인 성게국, 밥에 섞어 끓인 성게죽이 밥상의 주역이라면 삭지 않은 정도로 담가 냉장고에 넣은 뒤 여러 날 먹는 성게젓은 안주로 일품이다. 해독작용이 뛰어나다니 숙취로 밥상 물리는 술꾼에게 제격일 텐데, 마음 급한 이는 따뜻한 밥사발에 듬뿍 넣고 마구 비벼도 좋겠다.

 

단단한 칼슘 골격을 모으면 산성 토양을 개선하는 비료로 활용할 수 있는 성게가 바다에 아무리 많아도 남획을 보장할 정도는 아니다. 지구온난화에 의한 해조류 변화로 나타나는 백화현상은 양식하는 전복이 아니라 성게에 치명적이다. 미역과 다시마를 거덜내는 것으로 보이던 성게마저 한순간에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 해양경찰은 9월에서 10, 산란기를 맞아 성게의 포획을 금지하고 특별 단속에 나선다고 했으니 다행인데, 지구온난화를 부추긴 사람들이 자신의 탐욕을 자제하지 않는다면 바다의 밤송이도 내일을 갈무리할 수 없다. 이래저래 10월은 성게가 마음 급한 때다. (전원생활, 201110월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11. 3. 23:46

 

이번 여름, 서해안 피서지는 해파리로 몸살을 앓았다. 한결 따뜻해진 해류를 타고 들어온 무게 1톤 날개 2미터의 노무라입깃해파리만이 아니다. 멸치어장의 그물을 대신 차지한 크고 작은 해파리들은 멀지 않은 과거에 볼 수 없었다. 피해자는 어민에서 그치지 않았다. 해수욕장까지 파고드는 해파리가 젊은 여성의 다리를 볼썽사납게 휘감자 피서객들이 해수욕을 기피하게 되었고, 김장철을 앞둔 주부들은 멸치젓의 가격을 걱정해야 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아열대 지역의 해파리가 우리 해역에 출몰하는 원인으로 지구온난화를 꼽았다. 내년이 걱정이다. 지구온난화 속도가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올해보다 시원해지지 않는다면 피해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지 않은가. 이 와중에도 정부나 시민, 어부나 농부, 모두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하다. 우리 해역으로 들어오는 해파리는 앞으로도 많은 그물을 선점해 어획고를 위축시키겠지만, 해양학자들은 그 해파리들이 아예 우리 바다에서 번식할 가능성을 주목한다. 유생이 바위에 붙지 못하면 성체로 성장할 수 없는 해파리는 서해안의 갯벌이 보전되어 있다면 부착할 곳을 찾지 못하니 줄어들겠지만 시방 우리 서해안에서 갯벌은 전 같지 않다. 해파리들은 갯벌을 메운 자리에 높게 올린 제방에 부착할 거로 학자들은 경고한다. 게다가 서해안 곳곳에 자리하는 화력발전소와 핵발전소마다 터빈을 식힌 막대한 온배수를 연실 배출하면서 수온을 경쟁적으로 높이지 않던가.

 

호주나 남아프리카 연안에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무게가 300킬로그램에 몸길이가 5미터에 달하는 초대형 가오리가 잡히더니 아열대 해역에 분포하는 보라문어가 동해안의 그물에 걸리는 일이 작년과 올해 거푸 발생했다. 소화기관을 해부해 조사한 연구원은 따뜻해진 동해안으로 먹이를 따라온 것으로 추측했다. 올해 초에는 동해안에서 예년의 배가 넘는 복어가 잡혔다. 독성이 매우 강해 먹을 수 없는 ‘돌돔’으로 추정하는 전문가는 역시 따뜻한 바다에 분포하는 먹이의 이동을 따라 들어왔을 것으로 분석한다. 전에 없었던 현상이다.

 

그뿐이 아니다. 미역과 다시마, 모자반을 비롯한 온갖 해조류가 너울너울 춤을 추고 수많은 산호가 울긋불긋하던 바다가 하얀 바위만 드러낸 채 사막처럼 버림받는 섬뜩한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학자들이 ‘갯녹음’이라고 말하는 ‘백화현상’이다. 바다가 따뜻해지면서 늘어나는 미생물이 원인이라고 학자들은 지목하는데, 백화현상의 원인은 물론 지구온난화지만 사람의 욕심도 한몫했다. 과밀하게 양식하는 전복과 성게의 먹이를 위해 미역과 다시마를 마구잡이로 뜯어내자 햇볕을 차단하지 못하는 바다는 더욱 뜨거워졌고, 발전소가 내놓는 막대한 온배수로 인해 여름이 지나도록 수온이 떨어지지 않자 미역과 다시마가 뿌리를 제때 내릴 수 없게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양식장을 빠져나온 전복과 성게가 얼마 안 되는 미역과 다시마마저 먹어치우니 백화현상을 일으키는 미생물이 극성을 부리게 되었다는 게 아닌가. 바다의 생태계는 그 결과 절망스럽게 황폐화될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그 상황에서 화물선을 따라 우리 바다에 들어온 아무르불가사리는 해조류를 잃은 바닥에서 몸을 피하지 못하는 성게를 쉬 잡아먹으며 개체수를 늘렸고, 엉겁결에 어부의 그물에 걸려들었다. 어부들은 아무르불가사리를 백화현상의 주범으로 오인하지만 그물에 걸렸다 선창가에서 맥없이 말라죽어가는 아무르불가사리는 성게의 천적인 돌돔을 남획한 어부들은 원망해야 할지 모른다. 돌돔이 줄자 성게 늘었고, 늘어난 성계가 해조류를 마구 먹어치우자 바다가 뜨거워졌으며, 백화현상이 가속되면서 어획고가 고갈되지 않았던가.

 

우리 바다에서 우울한 소식만 전해지는 건 아니다. 더워진 우리 바다의 로또, 다시 말해 참치가 떼로 잡히는 일이 간혹 벌어지고, 동해와 서해안에 고등어를 비롯해 오징어와 멸치가 전에 없이 풍년이라고 어부들이 환호한다고 한다. 한데 그런 호사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잠시 혼란스러워진 우리의 해양 생태계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라면? 이후의 대안은 점치기 어려워진다. 인공어초를 집어넣고 치어를 아무리 방생해도 먹이사슬에 치명적 변화가 생긴 바다는 생태계를 회복하는데 오래 걸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음식문화는 여전히 보수적이기만 하다. 노무라입깃해파리나 보라문어를 먹으려 들지 않는다.

 

바다가 먼저 아열대화 되었지만 육지의 온난화도 만만치 않다. 대나무와 감의 북방한계선이 나날이 올라가면서 사과 재배지도 강원도까지 북상했다. 1997년과 2007년의 농작물 재배 면적을 조사한 농촌진흥청은 전통적으로 제주도와 남도에 많았던 감이 중부지방으로 확산되고 사과와 포도와 배 재배 지역이 점차 경기도와 강원도 일원으로 옮겨가는 현상을 주목했다. ‘경북 능금’은 옛말이 되어 가는데, 과일 만이 아니다. 밀과 보리의 재배 지역도 점차 북상하고 있으며 감자와 녹차 역시 마찬가지 현상을 보인다. 학자들은 기온 상승과 더불어 강수량 증가를 그 원인으로 분석하는데, 강수량 증가의 원인은 기온 상승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전통 농작물의 재배지가 북상하는 과정이 순조로운 건 물론 아니다. 새로 재배하는 지역이나 여전히 철수하지 않은 지역 모두 전에 없던 병충해로 시달린다. 온난화된 기후로 인해 면역력이 약해진 농작물에 해충은 늘어나는데 살상가상으로 중국에서 기원하는 병해충까지 몰려오는 일이 빈발한다. 생태계의 오랜 조화가 무너졌기 때문일 텐데, 다행이라 해야 하나. 농촌진흥청은 높은 온도에도 잘 견디는 품종의 보급을 연구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벼와 옥수수, 사과와 배처럼 우리 농토에 심어오는 농작물과 과일도 있지만 외래 과일인 참다래도 연구 대상에 들어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 시대를 앞두고 이채롭다 여길 수만은 없다. 천진난만한 희망사항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전통 농작물과 과일의 재배 면적이 줄어드는 전라남도는 새로운 작물의 발굴에 심혈을 기울인다는데, 그 대상도 망고와 파파야와 같은 열대과일이다. 이미 재배하고 있는 참다래와 무화과도 추워 걱정이 없어지는 만큼 경작지를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시험 재배 후에 구아바와 블루베리의 경작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는데, 한결같이 농가 소득의 증대를 목적으로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온난화되는 기후는 예측 가능하지 않다. 보일러를 가동하면 방이 조금씩 따뜻해지듯 재배 환경의 변화가 서서히 진행되는 건 아니다. 이미 해마다 경험하듯, 그 과정에서 종잡을 수 없는 기상이변이 거듭될 텐데, 기상이변은 외래 농작물에 특히 치명적이지 않던가. 한데 자신이 먹어오던 음식의 종류를 갑자기 바꾸고 싶지 않을 게 분명한 연구자들이 내 고장 음식문화의 보수적 측면을 먼저 염두에 두지 않는 것 같으니 씁쓸하기 짝이 없다. (사이언스올, 2009년 11월)

 
 
 

생태계·동물

디딤돌 2008. 4. 11. 11:07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뉴스 화면이 섬뜩하다. 사막과 같이 바위가 온통 하얗게 변한 바닥에 성게 몇 마리가 흩어졌는데 그 성게마저 먹어치우려고 불가사리가 슬금슬금 다가가는 모습, 당하는 성게야 물론이겠지만 어부들도 고개를 젓고 싶은 끔찍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까지 미역과 다시마로 가득했다고 전하는 담당기자는 쓸쓸한 바다의 무서운 내일을 예고한다.


이른바 ‘백화현상’이다. 바다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갯녹음’이라고 말하는 백화현상이 오면 바다는 사막이 되고 만다. 하얀 바닥에 생물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생물이 없으니 어업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뉴스를 보며 당장 걱정이 앞선다. 앞으로 무얼 먹고 살지? 바다보다 자신의 먹을거리를 더 걱정하는 우리는 삼면에 바다라서 옛날부터 많은 먹을거리를 바다에서 건져 올렸는데, 쇠고기나 돼지고기로 육식 메뉴를 줄여야할 지 모른다. 하지만 적막해진 바다에 겨우 남은 생물은 무얼 먹고 살아야 하나. 섬뜩한 바다를 뉴스로 본 사람들은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는다.


불가사리는 사람들이 자신을 미워하는 것에 대해 어이없어할지 모른다. 백화현상이 불가사리 때문에 생긴 건 아니지 않은가. 불가사리 때문에 잡히는 게 없어졌다고 믿는 어부들은 그물에 딸려온 불가사리들을 선창가에 쌓아둔다. 불가사리가 말라죽거나 썩으면서 나오는 악취는 회 먹으러 온 손님들을 불쾌하게 만들지만, 백화현상은 불가사리와 큰 관련이 없다. 백화현상이 생기자 눈에 띄었을 따름이다. 백화현상이 더 심해지면 불가사리마저 드물어질 텐데, 사람들은 백화현상 자체보다 불가사리를 혐오한다. 죽일 수 없는 불가살이(不可殺伊)라 그런가.


만화영화로 보는 바다 속은 다채롭고 아름답다. 햇빛이 닿는 바위는 울긋불긋한 산호와 말미잘로 덮였고, 그 사이에서 자태를 과시하던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은 천적이 다가오면 잽싸게 몸을 숨긴다. 잠수부가 등장하는 전문 다큐멘터리는 미역, 다시마, 모자반과 같은 해조류가 우거진 바다에 물고기 떼가 끝도 없이 이동하고, 그 물고기를 노리는 돌고래나 물개가 상어의 공격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역시 바다는 그처럼 풍요로워야 하는데, 왜 백화현상으로 버림받은 것일까. 학자들은 원인을 여러 가지로 설명한다. 육지에서 쏟아지는 오염물질과 전복과 성계의 지나친 양식도 원인의 하나이고, 지구온난화도 빼놓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결국 사람 때문인 셈이다. 


전복과 성게는 미역이나 다시마와 같이 잎이 두툼하고 넓은 해조류를 즐겨 먹는다. 그런 해조류는 사람이 씨를 뿌려 재배하지 않는다. 바위에 붙어 무성하게 자란 해조류의 잎을 뜯어 양식장에 넣어준다. 양식장이 커지고 경쟁이 심할수록 필요한 해조류의 양이 늘어날 것이다. 정도가 심하면 바다가 황량해질 수 있다. 전라남도 앞바다의 전복 양식장은 지나치게 빼곡하다. 허가의 대여섯 배나 모여 있을 정도다. 태풍이 몰아치면 주변 해변에는 부서진 양식장 잔해가 쓰레기로 넘치고, 바다 속에는 양식장에서 퍼져나간 전복과 성게가 해조류의 뿌리까지 먹어치울 것이다.


지구온난화의 주요 원인은 이산화탄소다. 자동차나 공장 굴뚝에서 쏟아져나가는 이산화탄소가 지구를 뜨겁게 하면 바다의 온도도 천천히 올라갈 것이다. 커지며 높아진 아파트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도 양이 엄청나다. 그런데 공기와 달리 물의 온도는 쉽게 오르지 않고 빨리 떨어지지 않는다.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을 켜고 추워도 보일러를 뜨겁게 커는 요즘, 사람들은 계절을 잊었다. 여름이 겨울 같고 겨울이 여름 같다. 에너지의 소비에 비례해 지구는 더욱 더워지고 바다의 수온도 내려갈 줄 모른다. 사람들의 씀씀이가 늘어날수록 지구는 더워지지만 돈벌이가 늘어나고, 비싸서 먹지 못했던 전복을 찾는 사람이 많아진다.


우리나라는 독일이나 프랑스보다 일인 평균 전기 소비량이 많다. 그러니 발전소가 더 크고 많아야 한다. 발전소는 주로 바닷가에 자리 잡는다. 거대한 화물선으로 수입하는 석탄을 내리기 쉽고, 무엇보다 차가운 바닷물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발전소는 발전 터빈을 아주 뜨거운 수증기로 돌린다. 터빈을 돌린 수증기는 식혀야 다시 터빈을 돌릴 수 있는데, 그때 차가운 바닷물을 이용한다. 발전소마다 터빈 식혀 뜨거워진 바닷물을 바다로 보내는데 그 양이 막대하다. 바다는 더 따뜻해지고 해조류는 뿌리내리기 어려워진다.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곳을 ‘개’라고, 바닷가를 ‘갯가’라고 말한다. 학자들이 말하는 갯녹음은 백화현상으로 해조류가 사라진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육지에서 적당한 민물이 흘러들어야 바다의 건강은 유지된다. 미역이나 다시마, 그리고 모자반도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높게 자라 오른다. 덕분에 아주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바다생물들이 어우러져 살아왔고 사람도 후손을 먹이며 이어올 수 있었다. 갯녹음은 하얀 생물로 바다가 단순해진 것이다. 색소가 있는 미생물과 공생하기 때문에 산호는 울긋불긋한 색을 발하는데, 색소 없이 석회질을 갖는 미생물만이 가득 퍼져 해조류가 뿌리내릴 수 없게 된 상태를 백화현상으로 학자들은 설명한다.


한겨울에 잎이 자라기 시작하는 해조류는 이른 여름에 커졌다가 한창 바닷물이 뜨거울 때 녹아 사라진다. 그때 먹이 찾는 성게와 불가사리가 쉽게 눈에 띄지만 백화현상이 온 건 아니다. 그런데 바다가 더워지면 그런 현상이 자주 일어나고 기간도 늘어난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해조류가 사라져 수온이 더욱 높아지면서 백화현상을 일으키는 미생물이 퍼지는 것이다. 해조류가 울창했던 바다에 성게와 불가사리만이 더러 보이는 이유가 대개 그렇다. 그래서 어부들은 불안해지고 텔레비전은 섬뜩한 뉴스 화면을 보여주게 된 것인데, 성계를 즐겨 먹는 우리는 불가사리만 탓한다.


백화현상의 원인으로 오해하는 그 불가사리는 우리나라에 살던 종류가 아니다. 바닥이 뾰족한 화물선은 바닷물을 담아 중심을 잡고, 화물을 내리면서 그 물도 버린다. 그 과정에서 캄차카 일원의 아무르불가사리가 따라와 우리 바다에 정착했다. 한 지역에 오래 살면 천적이 생기기 마련인데 우리 바다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까닭에 이렇다 할 천적이 없다. 그래서 연분홍색 발을 펼치는 아무르불가사리는 어민들이 뿌려놓은 양식 성게와 전복을 축내며 무섭게 늘어난다. 어부들은 분노하지만 불가사리로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지난 100년 동안 지구는 섭씨 0.7도 더워졌는데 우리 바다의 온도는 그보다 더 따뜻해졌다. 동해수산연구소의 학자는 지난 40년 동안 강원 동해안의 겨울철 평균 수온이 2도 정도 높아졌다고 전한다. 우리나라의 산업화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일본의 산업도 확대되었지만 중국의 산업화는 우리 바다가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급속히 커졌다. 얼마 전, 우리 남해안에서 더운 바다의 참치가 떼로 잡혔는데, 마냥 좋아할 수는 없다. 더워진 바다에서 참치마저 떠날지 모른다. 제주도에서 발견되던 백화현상이 남해안에서 서해안과 동해안으로 퍼지자 식탁에 올라오던 해조류와 물고기들이 드물어지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못 보던 해파리가 늘어난다. 더운 바다의 해파리가 화물선을 타고 들어왔을 텐데 어느덧 우리바다에 익숙해진 것이다. 넙치와 우럭 양식장 주변을 맴돌거나 여름철 해수욕장에서 관광객들을 놀라게 하는 해파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쇄기를 무수히 숨긴다. 건드리면 따갑다. 따가워진 손으로 눈을 비비면 크게 고생할 수도 있다. 쐐기에 독이 있는 종류도 있다. 양식장에는 해파리의 먹이가 많다. 빠른 많은 물고기로 큰돈을 벌고 싶은 사람이 사료를 듬뿍 뿌릴 때 양식장 밖으로 빠져나가는 사료를 해파리가 먹는다. 양식 물고기의 배설물도 먹이가 되니 못 보던 해파리는 더욱 늘어난다. 어부들도 해파리를 싫어한다. 크고 무거워 그물을 올릴 때 힘겹지만 그만큼 물고기가 덜 잡힌다. 그물에 걸린 해파리를 끌어내려다 쏘일 테고, 바다에 버리면 다시 살아난다.


바다 바닥의 아무르불가사리, 물속의 못 보던 해파리는 우리에게 어떤 경고를 보내는 게 틀림없는데, 최근 동해안에 성게가 늘어 말썽이라고 한다. 수출을 위해 뿌린 양식용 성게가 해조류를 마구 먹자 백화현상이 확산되고, 그래서 물고기가 줄어들자 어부들의 수입이 크게 감소했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많은 성게를 양식하다 수출이 막히자 방치하고, 성게의 천적인 돌돔과 같은 물고기를 너무 잡아들이자 나타난 부메랑 현상이다.


정부는 10센티미터 정도 크기의 해조류를 붙인 밧줄이나 콘크리트 인공어초를 바다에 넣어 해조류 숲을 늘이겠다고 한다. 선창가에 버리는 불가사리를 비료로 가공하거나 약품으로 개발하는 찾고 있다고 한다. 일본은 말린 해파리를 비료로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한다고 한다. 여러 대안 중의 하나일 텐데, 중요한 게 빠졌다.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계속 녹아내리거나, 육지에서 나무를 많이 베어내어 흘러드는 강물이 부족해지면 질소와 인과 같은 영양성분이 줄어든다고 과학자들은 주장한다. 백화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바다의 영양성분을 늘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해조류를 아무리 넣어도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는 한, 백화현상을 막지 못할 것이다. 경쟁적으로 양식을 확대하자 불가사리와 해파리가 늘어났다. 어민은 큰 손해를 입고 소비자는 식탁의 메뉴를 잃었지만,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해조류가 햇볕을 흡수하지 못하면서 수온이 오르자 백화현상이 퍼지고, 바다의 생태계 균형이 무너지지 않았던가. 이제 성게와 전복이 해조류를 충분히 먹어도, 아무르불가사리가 성게를 축내도, 우리 바다의 생태계가 풍요로울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지구온난화를 막아야 한다는 거다. 바다 생태계의 균형이 유지되어야 사람도 부메랑을 피할 수 있다.


그를 위해 욕심을 반성하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행동에 들어가야 한다. 북미 원주민은 7세대 이후를 생각하며 행동한다는데, 더욱 심해지는 지구온난화는 그때까지 우리를 기다려 줄 것 같지 않다. 서둘러야 하지만 그에 앞서, 섬뜩한 경고를 보낸 불가사리에게 고마워할 필요가 있다. 불가사리마저 사라진 바다에서 후손은 결코 건강할 수 없을 테니. (뉴스메이커, 2008년 4월 22일, ‘지구의 날’ 특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