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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돌 2005. 3. 16. 21:56
 

“그려, 새만금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잡아버리는 거나 마찬가지여!”


이미 폐업 보상을 받았기에 집회나 시위 현장에 잘 나서지 않던 어민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모였다. 보상이라고 받긴 받았지만 외지에서 새 일감을 찾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나마 찔끔찔끔 내주는 통에 생활비로 다 써버렸다. 바다가 어지간하니 물고기와 백합 잡아 식솔 먹여 살렸는데, 4공구 제방마저 턱 막히니 얘기가 달라졌다. 잡던 고기들의 간데없이 사라지고 갯벌에 백합이 말라버린 것이다. 보상은 더 없다는 공무원들 밉살스러워도 어업보상이라 믿고 간간이 내다판 면세기름이 발목잡는다. 이제까지 묵인하던 공무원들이 불법 운운하며 으름장놓기 때문이다. 그래 잠자코 있었는데, 이젠 굶어죽게 생겼다. 보상을 더 받든지 제방을 트던지 양단간에 무슨 수를 써야 한다. 가자! 국회의원이 있는 여의도로! 죽어가는 어민의 목소리를 그들은 반드시 들어야 하지 않은가.


동진강과 만경강이 밀고나는 바닷물과 섞이며 하루 두 차례 자유롭게 유통되는 새만금 간척사업 일원의 드넓은 조간대는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그것도 수천 년 이상. 그런데 2.7킬로미터 병목만큼 남긴 33킬로미터의 제방이 물길을 차단하자 갯벌과 인근 바다가 제 모습을 잃어간다. 그래서 여의도에 간 것인데, 저벅저벅 군화소리 내며 압박하는 전투경찰의 위세에 눌려 텔레비전에서 보던 싸움도 못해보고, 소리 한번 크게 지르지도 못한 어부들은 상당수 고향을 등졌다. 떠나지 못한 어민들도 마음은 이미 떠났다. 며칠 째 집 비워놓고 공사판을 전전한다. 먹고살 길이 막막한데 예서 죽어야 하나.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망연자실한 어민들을 다시 궐기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움직여야 한다. 아직 바다가 죽은 건 아니지 않은가. 4공구 제방만 트면 갯벌도 바다도 다시 예전처럼 되살아날 수 있다.


‘바닷길 걷기’는 그래서 시작됐다. 뜻을 함께하는 환경단체와 같이 새만금 간척사업 대상 바닷가를 일주일 동안 걸으며 바다와 갯벌이 얼마나 풍요롭고 아름다운지, 그래서 얼마나 서럽고 안타까운지 몸과 마음으로 체험해야 한다. 어떻게든 바다를 다시 살려야한다는 의지를 어민은 물론 시민들의 가슴에 불지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엔 설 지난 이른 봄을 맞아 걸었다. “4공구 제방을 터라!” 외치는 깃발을 높이 들고 주먹밥을 챙겨 오전 오후로 걷고 걸었다. 돌이킬  수 없게 썩은 만경강 하구를 지나 동진강 하구로 접어든 일행은 모처럼 건강한 갯벌을 눈물겹게 보았다. “매립목적이 불분명한 새만금 간척사업을 중단하라!”는 서울행정법원 강영호 부장판사의 판결에 따라 축조가 중단된 제방 사이로 해수와 강물이 병목처럼 유통되는 덕분에 조상의 성장 터를 찾아오는 실뱀장어를 맞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작황이 전 같지 않은 요즘은 1킬로그램에 700만원을 호가하니 과연 실뱀장어는 어부에게 황금이다. 그래서 동진강 하구는 자릿그물 드리운 작은 배들이 갯고랑을 삼삼오오 지킨다. 2월 하순에서 5월 초순까지 동진강에서 만나는 실뱀장어는 십여 년 전을 돌이켜야 한다. 그 옛날 이맘 때, 동진강을 거슬러 올라간 조상이 칠팔 년을 뒹굴뒹굴, 수서곤충이나 죽은 물고기들을 먹으며 길이나 대구리가 70센티미터 정도 클대로 커지면, 식음을 전폐한 조상은 알을 낳으려 바다로 향했다. 6천 킬로미터 떨어진 아열대 심해로 천만 개 내외의 알을 낳으려. 따뜻한 바다에서 어미가 알 낳고 죽으면 알은 댓잎처럼 납작하게 부화하고, 이때 뱀장어는 하구의 냄새를 기억하는 것일까. 각고의 2년여 세월을 쿠로시오 난류를 타고 동진강 하구에 본능처럼 당도한다. 5센티미터 정도 성장한 이른바 댓잎뱀장어는 투명한 실뱀장어로 변태하여 뻘 밑에서 동면하고, 날씨가 풀리면 야음을 틈타 밀물에 몸을 맡기며 조상이 놀던 동진강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때를 기다려 어부들은 넓은 자릿그물을 갯고랑에 펼쳐 놓는다. 한 마리에 7백에서 천원이나 되니 실뱀장어는 가히 황금이다. 소주잔에 넣어 완샷! 하는 몬도가네를 만나면 한 마리에 2천원도 부를 수 있다. 얼빠진 몬도가네는 잊고, 모기장으로 만든 자릿그물로 잡은 실뱀장어는 양식장으로 간다. 인공부화가 불가능한 탓에 실뱀장어로 양식하는데, 장어구이집에서 만나는 뱀장어가 대개 그들이다. 다져 익힌 고기로 1년 만에 5년 자랄 몸집으로 키운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실뱀장어가 점점 드물어진다. 강에서 자라 바다로 알 낳으러 가는 성체들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 점을 고민할 겨를이 없는 어부들은 사생결단이다. 한두 달 죽어라 일하면 한해가 편하니 뼈빠진들 마다하랴. 작년에 누가 5천만 원 올렸다 ‘카더라 통신’에 운을 걸고 자릿그물 걸고 몰려드니 실뱀장어가 줄어들밖에.


실뱀장어 감소 원인은 남획만이 아니다. 지역 어부들의 욕심은 차라리 애교다. 바닷물의 흐름을 가로막는 연육교도 문제지만 강 하구를 통째로 틀어막는 하구언은 치명적이다. 어떤 어부는 강물이 배어나오는 갑문 사이에 몰려들어 죽어가는 회유성 어류들을 보며 안타까워한다. 갯벌은 어떤가. 동면 자체가 매립되지 않던가. 강물과 바닷물이 들고나는 동진강은 자연의 축복을 아직 간직한다. 실뱀장어가 찾아올 수 있을 뿐 아니라 갯고랑 너머 드넓은 갯벌이 아직 고즈넉하고, 타는 듯 넘어가는 석양도 찾는 이의 가슴을 벅차게 한다. 풍천장어가 잡히는 고창군의 인천강도 제 모습을 잃지 않았다. 선운사의 동백처럼.


근육이 발달되어 쫄깃쫄깃하고 비타민 에이와 이가 많아 정력에 그만이라는 풍천장어! 풍천장어는 인천강이 독점하지 않는다. 육지바람 맞아가며 강에서 자란 뱀장어는 모두 풍천장어이므로. 속된 말로, “안 하고는 못 배긴다!” 는 ‘아나고’는 또 무언가. 강으로 올라가지 않고 하구에 남아있는 뱀장어의 일본말이다. 암컷과 달리 수컷은 해안에서 오매불망 짝을 기다린다는 속설이 있다. 아무리 움켜줘도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지며 빠져나가는 뱀장어는 디에이치에이와 레시틴이 많아 노화예방, 피부미용, 고혈압, 시력보호에 좋으며 유방암, 폐암, 췌장암, 치매 예방에 효과가 크다고 들리는데, 그래서 그런가, 동의보감은 폐병에 그만이라고 귀띔한다. 한방은 뱀장어가 들어간 환을 처방하기도 한다.


제주도 천지연에는 무태장어가 든다. 황갈색 바탕에 검은 반점이 흩어진 무태장어는 몸길이가 2미터에 달하는 천연기념물 258호다. 아직 보호대상이 아닌 뱀장어도 이대로 가면 언젠가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야 할지 모른다. 오염된 먹을거리로 정자가 줄어들고 항생제 내성이 높아지며 아토피에 고생하면서도 정력 탐하는 인간 때문이다. 인간은 언제 정신을 차릴까. 마지막 남은 뱀장어에 물어보아야 하나. (물푸레골에서, 2005년 4월호)